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서비스는 국내에서 개발 등으로 복개되거나 사라진 복개하천, 사라진 하천, 호수, 못, 습지, 늪, 갯벌, 샘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알기 쉽게 지도로 표시하고, 그 물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여 제공하는 국내 최초의 서비스입니다. 이렇게 개발 등으로 사라진 물흐름을 발굴하여 복원으로 이어지도록 하려고 정성껏 개발한 서비스에 우리 모두 고마움을 느끼기 바랍니다. ○ 현재 서울과 5대 광역시 지역의 물길이 기록되어 있으며, 수도권, 세종지역과 시 지역의 물길은 2024년 5월까지 기록할 예정입니다. ● 또한. 그동안 미처 기록하지 못하였던 물길들도 발굴되면 즉시 기록할 것이므로 지금까지 서비스에 기록을 마친 물길이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다면 수시로 F5 버튼을 눌러 페이지를 새로고침 해 주시기 바랍니다. |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 등의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가 지금 개최됩니다.
국내 최초로 사라진 물길을 기록한 지도인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에서 정식 서비스 시작을 기념하여 국내 최초로 사라진 물길을 기록하고, 이에 대한 각자의 참신한 복원 방안을 찾고자 국내 최초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경진대회인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번에 개최하는 경진대회는 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 3탄-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및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대회로 구분하여 개최돠며 경진대회 참여를 원하거나 경진대회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면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에 접속해주시기 바랍니다. |
지도에 표시된 아이콘과 3가지 색깔별로 표시된 물줄기들은 각각의 기호별로 아래와 같은 물길의 종류를 나타냅니다. | |||||||||
발원지 | 합수점 | 분수(分水)점 | 복개 시작점 | 복개 종료점 | 자연 호수 | 인공 호수 | 형태 미상 호수 | 습지 | 샘 |
기록이나 흔적이 명확한 물길 | 기록이나 흔적이 약간 불명확한 물길 | 기록이나 흔적이 매우 불명확한 물길 | 폐천(박스) 또는 예전에 흘렀던 적이 있었던 물길 | 과거에 복개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복원되어 흐르는 물길 |
달서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달서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관련 언론기사를 통하여 공개된 달서천 발원지 중 하나로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대구여상 ~ 삼각지네거리 ~ 물배기마을(대명2동행정복지센터 근처) 일부를 거쳐 남산동 2321 일대에서 삼봉산 좌측 하천 지류와 만나는 물줄기로 추정된다. (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영남일보-[기고] 달서천 복원 생태관광 허브로
(2)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삼각지네거리 일대의 1910 ~ 1930년대 지도를 보면 삼각지네거리 밑부분에 -52- 라고 표시된 커다란 호수인 새못이 보이며 이 호수가 달서천 영남대병원 뒷쪽 하천 지류의 일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 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새못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새못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새못(\\\'-52-\\\' 라고 표시된 호수)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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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천 영선못 ~ 산대못쪽 지류의 발원지로써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산대못 ~ 대구외인주택 ~ 영선못(영선시장) ~ 경북여상 근처 버스정류장(중앙대로에 위치) 일부를 거쳐 명덕119안전센터 앞(추정)에서 영남대병원 뒷쪽 하천 지류와 만나는 물줄기로 추정된다. (1) (2)
해당 발원지의 구체적인 위치는 그곳이 현재 미군부대(캠프워크)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출입이 금지되어 사실상 이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 있으며 한 블로거가 이 곳에서 발원할 것으로 예상한 지천을 답사한 기록을 남겨놓았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이 곳에서 발원할 것으로 예상한 하천의 예상 경로가 글에 지도로 표시되었다.
관련 글 :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대구 달서천 답사기 5/9
(2) 관련 기록 :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대구 달서천 답사기 8/9,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대구 달서천 답사기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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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언론기사(1)를 통하여 공개된 달서천 발원지 중 또 다른 발원지로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빈민가들이 밀집한 골목길을 지나 명덕로42길 ~ 명덕네거리 오른쪽 ~ 명덕초등학교와 남삼동 오토바이골목을 거쳐 남산동 2321 일대에서 영대병원 뒷쪽 하천 지류와 만나는 물줄기로 추정된다.
발원지 주위인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동편 일대에는 산비탈·절벽·하식애가 자주 나타나며 삼봉 중 대봉에는 대봉배수지도 만들었다고 전해졌다. [관련 언론기사] (2)
또한. 삼봉산 우측의 물줄기는 건들바위 옆에서 대구천의 물줄기와 만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자세한 경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자세한 사항은 대구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 영남일보-[기고] 달서천 복원 생태관광 허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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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언론기사(1)를 통하여 공개된 2개의 다른 발원지와는 다르게 개발자가 직접 예전 기억과 과거 지도를 보고 기억을 되짚어보면서 찾아낸 발원지 중 하나이다. 아마도 파도고개 일대가 주거지로 개발되고 1980 ~ 1995년까지 이루어진 83타워(당시 대구타워)와 이월드(당시 우방타워랜드)의 조성으로 물줄기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구남보건고 ~ 내당네거리 ~ 큰장길(서문시장 서편) ~ 큰장네거리를 거쳐 달성공원 동쪽(달성동 204-6) 일대에서 달서천 본류와 만나는 물줄기로 추정된다.
발원지에서 구남보건고 방향의 물줄기는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1960년대 지도에서 저수지가 있는 \\\'땅골\\\' 계곡 지류로 추정된다. (2) (다만. 1910 ~ 1930년대의 지도에는 이러한 저수지는 나오지 않는다. (3))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 (1) 영남일보-[기고] 달서천 복원 생태관광 허브로
(2)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이월드 뒤쪽과 반고개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옆에 \\\'땅골\\\' 이라고 표시된 작은 저수지가 있는 계곡이 보이며 저수지는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인공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저수지가 있는 \\\'땅골\\\' 계곡이 나오는 이월드 뒤쪽과 반고개 일대의 1960년대 지도 이미지 (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3) \\\'(2)\\\' 에서 설명한 땅골에 위치한 작은 저수지는 이 일대의 1910 ~ 1930년대의 지도에서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고 인공적으로 축조한 것으로로 추정된다. 그 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저수지가 없는 \\\'땅골\\\' 계곡이 나오는 이월드 뒤쪽과 반고개 일대의 1910 ~ 1930년대의 지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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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대못 위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달서천 발원지 1(영남대병원 뒤쪽-추정\\\" 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만나는 지점이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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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천 발원지 1(영남대학교병원 뒤쪽-추정)\\\"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달서천 발원지 3(삼봉산 좌측-추정)\\\"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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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천 합수 예상지점-1(명덕초등학교 뒷쪽)\\\"에서 하나로 합쳐진 물줄기와 \\\"달서천 발원지 4(이월드 83타워 뒷쪽 -추정)\\\"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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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당1동우체국앞 버스정류장 발원지와 황제종합장식 건너 발원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곳에서 하나로 합쳐져 들마못을 경유한 후 서대구중학교 뒤쪽에서 달서천 본류와 합쳐진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달서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달서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내당1동우체국앞 버스정류장 발원지와 황제종합장식 건너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평리푸르지오 뒤쪽에서 하나로 합쳐져 들마못을 경유한 후 이곳에서 달서천 본류와 합쳐진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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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천 합수 예상지점 1(명덕초등학교 뒤쪽)\"에서 하나로 합쳐진 물줄기와 \"달서천 발원지 3(이월드 83타워 뒤쪽 - 추정)\"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달성공원 옆에서 만나 하나로 합쳐져 흐르다가 이 곳에서 본류와 굴곡이 심한 구간이 있는 만평네거리 방향의 물줄기로 나누어지는 지점이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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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천 발원지 1(영남대학교병원 뒤쪽 - 추정)\"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달서천 발원지 2(삼봉산 좌측 - 추정)\"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달서천 합수 예상지점 1(명덕초등학교 뒤쪽)\"에서 하나로 합쳐져 흐르다가 \"달서천 발원지 3(이월드 83타워 뒤쪽 -추정)\"에서 발원한 물줄기와도 \"달서천 합수지점 2(달성공원 근처)\"와도 합쳐져서 하나로 흐르다가 북부정류장 밑의 다리에서 복개가 끝나고 하천이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이 곳에서는 달서천 복개구간을 흐르던 오수는 별도의 관으로 흘려보내고 대구시민들이 사용하던 생활하수와 공장폐수 등을 인근 달서천하수처리장에서 깨끗한 물로 정화하여 달서천으로 방류한다. (1) 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천은 생태하천으로 금호강 합수점까지 흐른다.
(1).참고자료(링크): https://www.dgeic.or.kr/dgeic_doc.html?cid=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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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본류의 발원지로써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보성청록타운 ~ 안지랑네거리 ~ 경동빌딩(구 홀마트) ~ 두리봉네거리 ~ 제일여상 ~ 장기동 먹자골목 ~ 대명유수지(달서구 대천동)까지 흐르다가 진천천으로 합류한다.
발원지의 약수터에는 한자로 청수천(淸水泉)과 함께 \\\\\\\'91.4.5\\\\\\\' 라고 적혀진 표시가 보인다.(1)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관련 이미지가 있는 게시물(링크): https://blog.naver.com/tlsxhdgkspdy/221277806160
대명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대명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대명천의 안지랑골 지류의 발원지로써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대덕식당 ~ 가르멜수녀원 옆 ~ 안지랑 곱창골목을 흐르다가 안지랑네거리 남쪽에서 대명천 본류와 합류한다. 안지랑골 골짜기의 물은 당시 효험이 뛰어나서 부스럼, 헌디, 두드러기 등은 찬물에 씻기만 하면 다 나았다고 한다. 또한. 안지랑골 계곡 속에 철분이 많아서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이 물에 씻으면 고름이 툭툭 터지고 가려움증이 가신다고 하고 심지어 좋다는 약을 다 써도 고치지 못한 병도 안지랑골 계곡에 와서 씻고 나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옛날에는 백리 밖에서도 가마를 타고 와서 씻고 가기도 하고 정말인지 거짓말인지는 몰라도 앉은뱅이도 나아갔다고 해서 안지랑이라 불린다고 한다.(1) 또한. 경북 군위군에 살던 한 친척분이 폭포(안지랑골에 있는)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기 위해 안지랑골까지 왔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대구이야기-안지랑이(링크): http://www.daegustory.com/story/story-nam/nam-035.htm (2) 관련 게시물(링크) https://potter1007.tistory.com/283?category=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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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의 무당골 지류의 발원지로써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앞산빨래터공원~ 대명남로(추정~ 코스모스맨션 서쪽(추정)을 흐르다가 두리봉네거리 서쪽에서 대명천 본류와 합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무당골 지류가 있었던 곳이 어딘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거나 무당골 지류에 대한 여러 내용들을 알고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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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매자골 지류의 발원지로써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매자골 입구(구 승마장) ~ 송현공원 서쪽 ~ 한영한마음 아동병원(구 달성군청) 서쪽을 흐르다가 장원숯불 건너편에서 대명천 본류와 합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매자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 매화(梅花) 낙화지(洛花地)에서 연유되었으며, 지금으로부터 300약 전에 대덕산에 있었던 성 기도사가 이 곡의 지세를 목형으로 보았고, 그런 어느 해 이른 봄 이 골짜기에 매화가 스럽게 피더니 구암동(현 송현동)에 떨어졌다 하여 매자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1) 매자골 지류에 대한 여러 내용들을 알고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자료(링크): http://www.daegustory.com/story/story-dal/dal-034.htm
대명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대명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청룡지맥의 산줄기와 맞닿아 있으며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양지남길 서쪽 ~ 성당시장 앞(종합복지회관) ~ 두류공원네거리를 거쳐 두리봉네거리 앞에서 대명천 본류와 합류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존재할 것으로 예상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실제 양지로 동아설비상사 앞에서 골목길로 들어가면 내리막이 나오고 그 내리막이 양지남길이 있는 곳에서 끝나고 다시 오르막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곳에도 물줄기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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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발원지(본류-앞산큰골계곡 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복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복개는 1980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주위로는 앞산공원 버스종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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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발원지(본류-앞산큰골계곡 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복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복개는 1980년대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주위로는 앞산공원 버스종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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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매자골 지류의 물길 이 곳에서 복개되어 흐르기 시작한다. 주위로는 과거에 승마장이 있었고, 현재는 양궁 훈련장과 한 골프연습장이 있다. 매자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옛날 매화(梅花) 낙화지(洛花地)에서 연유되었으며, 지금으로부터 300약 전에 대덕산에 있었던 성 기도사가 이 곡의 지세를 목형으로 보았고, 그런 어느 해 이른 봄 이 골짜기에 매화가 스럽게 피더니 구암동(현 송현동)에 떨어졌다 하여 매자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1) 매자골 지류에 대한 여러 내용들을 알고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자료(링크): http://www.daegustory.com/story/story-dal/dal-03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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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발원지(본류-앞산큰골계곡 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대명천 발원지(지류-앞산 안지랑골 발원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명천 합수지점-1(안지랑네거리 남쪽)\\\\\\\" 에서 하나로 합쳐저 흐르다가 두리봉네거리에서 \\\\\\\"대명천 발원지(지류-삼성{닥트}공업사 건너-예상물길)\\\\\\\"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합쳐저 흘러가다가 복개가 종료되고 하천이 모습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복개 종료지점 위에 있는 구마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동쪽으로는 장기동 먹자골목이, 서쪽으로는 대구출판인쇄정보밸리가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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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당동 안땅골 계곡에서 발원하여 두류네거리 옆을 흘러간 후 감삼못을 통과하고, 감삼동 일대를 흘러간 물줄기가 복개가 끝나고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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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발원지(본류-앞산큰골계곡 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대명천 발원지(지류-앞산안지랑골 발원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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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천 발원지(본류 - 앞산큰골계곡 약수터)\"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대명천 발원지(지류 2 - 앞산 무당골 발원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명천 합수지점 1(안지랑네거리 남쪽)\" 에서 하나로 합쳐저 흐르다가 \"대명천 발원지(지류-삼성{닥트}공업사 건너-예상물길)\"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만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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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골에서 발원한 대명천의 지류가 \'무당골 입구 복개 시작지점\'에서 복개된 채로 흐르다가 대명천으로 합수되는 지점이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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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자골에서 발원한 대명천의 지류가 \\\'대명천 복개 시작지점(지류-매자골 입수{구 승마장} 에서 복개된 채로 흐르다가 대명천으로 합수되는 지점이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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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별빛캠프 캠핑장 위와 성불사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곳에서 하나로 합쳐저 흐른다. 산대미못 옆에서 하나로 합쳐저 흐르는 물줄기는 대명천 물줄기와는 약 200 ~ 400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른다.(1)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본리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대명천 본류 물줄기와 약 약 200 ~ 400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또 하나의 물줄기가 보인다.아마도 이 물줄기가 대명천의 산대미못 지류의 물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물줄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대명천의 산대미못 지류의 물줄기가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대명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대명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달서별빛캠프 캠핑장 위와 성불사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산대미못 옆에서 하나로 합쳐저 흐르다가 이 곳에서 대명천 본류와 합쳐진다. 산대미못 옆에서 하나로 합쳐저 흐르는 물줄기는 대명천 물줄기와는 약 200 ~ 400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흐른다.(1)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본리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대명천 본류 물줄기와 약 약 200 ~ 400m 정도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또 하나의 물줄기가 보인다.아마도 이 물줄기가 대명천의 산대미못 지류의 물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물줄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대명천의 산대미못 지류의 물줄기가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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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새방골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 곳에서 복개가 시작된 후 흐르다가 성당자동차학원 앞에서 대명천의 감삼못 지류와 합쳐져 흐른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대구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대구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과거 대구 중심 일대를 흘렀다가 일제시대 이후 복개된(물줄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대구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여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대구천의 발원지로 이 곳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경일여고 뒷쪽과 ~ 대구화교중학교 ~ 봉덕시장 ~ 건들바위네거리까지 이어지다가 이곳에서 ~ 봉산문화거리 ~ 반월당 일대를 거쳐 대구제일교회 앞(계산오거리 근처)에서 달서천 본류와 만나는 물줄기와 경대사대부고 ~ 중앙도서관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 ~ 칠성시장 서편을 거쳐 신천으로 합류하는 두 개로 갈라져 흐르는 물줄기로 추정된다. [ 관련 기사] (1)[관련 게시물](2)
또한. 1910 ~ 1930년대에는 삼정골 일대에 동그란 호수가 있었지만, 1960년대에는 동그란 호수가 없어지고 \'ㄱ\' 자 형태로 된 호수가 보인다. (3)
또한. 대구천 발원지인 \'삼정골\' 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으며 730번 버스의 지선 중 \'삼정골\' 방향 지선이 있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영남일보-잘못된 지명 신천은 ‘사이천’의 오류… 원래 지금처럼 흘렀지 새 물줄기 아니다
(2) 관련 게시물(링크): https://blog.naver.com/bizopenkorea/221684715570
(3)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삼정골 일대의 1910 ~ 1930년대 지도를 보면 삼정골 일대에 동그란 호수가 보이지만, 1960년대의 지도에는 동그란 호수가 없고, 주변에 \'ㄱ\' 자 모양의 길쭉한 호수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동그란 호수를 매립하고 주변에 \'ㄱ\' 자 모양의 길쭉한 호수를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그 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동그란 호수가 보이는 1910 ~ 1930년대의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주변에 \'ㄱ\' 자 모양의 길쭉한 호수가 보이는 1960년대의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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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대구천의 물줄기가 봉산문화거리 ~ 반월당 일대를 거쳐 대구제일교회 앞(계산오거리 근처)에서 달서천 본류와 만나는 물줄기와 경대사대부고 ~ 중앙도서관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 ~ 칠성시장 서편을 거쳐 신천으로 합류하는 두 개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곳이다. [관련 기사] (1)[관련 게시물](2) 건들바위는 암벽의 균열과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언덕 아래 퇴적암으로 구성된 일종의 하식애(河蝕崖) 형태의 입석(立石)으로 과거에는 입암(立巖) 이라고 불렸으며,(3) [관련기사](4) 일제시대에 대구천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건들바위 주위로 맑고 풍부한 냇물이 흘렀다.(5) 또한. 일부에서는 건들바위가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구 10경의 하나로 서거정 선생이 지은 ‘입암조어(笠巖釣魚)’의 배경이라는 설과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한 부인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많이 찾는다는 설, 건들바위 위에서는 낚시를 할 수 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모두 거짓이다. (6) 그 이유는 서거정 선생이 1530년(중종 25년)에 남긴 시 7언절구 10수인 대구십영(大丘十詠)에 나오는 입압(笠巖) 이 건들바위가 아니라 삿갓바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건들바위를 입압(笠巖)으로 보는 것은 모두 잘못된 생각이며 건들바위는 조선시대부터 중요한 역사가 있었던 장소가 아니다. (7) 또한. 대구천 발원지인 \\\'삼정골\\\' 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으며 730번 버스의 지선 중 \\\'삼정골\\\' 방향 지선이 있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건제보하기 바랍니다. (1), (6) 영남일보-잘못된 지명 신천은 ‘사이천’의 오류… 원래 지금처럼 흘렀지 새 물줄기 아니다 (2) 관련 게시물(링크): https://blog.naver.com/bizopenkorea/221684715570 (3) 관련 게시물(링크): https://blog.naver.com/haksengyo/221092554470 (4) 매일신문-[大邱十景] ②입암의 낚시(笠巖釣魚) (5) 관련 게시물(링크): https://blog.naver.com/adagio1017/222142929053 (7) 매일신문-[광장]건들바위(立巖)와 삿갓바위(笠巖) : 네이버 뉴스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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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하여 경일여고 앞 ~ 봉덕시장 앞 ~ 고미술거리 일대를 거쳐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중앙도서관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거친 물줄기가 이곳에서 칠성시장 동쪽 끝에서 신천으로 합류하는 물줄기와 경명여중 ~ 옥산초 옆쪽을 거치는 물줄기를 비롯하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거쳐 원대동과 노원동쪽으로 가는 여러 물줄기로 갈라지는 곳으로 추정된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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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갈라져 경명여중 ~ 옥산초 옆쪽을 거친 물줄기가 이곳에서 도청교 건너편으로 가는 물줄기와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거쳐 원대동과 노원동쪽으로 가는 여러 물줄기로 갈라지는 곳으로 추정된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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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갈라져 경명여중 ~ 옥산초 옆쪽을 거친 물줄기가 이곳에서 도청교 건너편으로 가는 물줄기와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거쳐 원대동과 노원동쪽으로 가는 여러 물줄기로 갈라지는 곳으로 추정된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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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갈라져 경명여중 ~ 옥산초 옆쪽을 거친 후 침산2동 일대에서 갈라져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거친 물줄기가 원대동과 노원동쪽으로 가는 여러 물줄기로 갈라지는 곳으로 추정된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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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갈라져 경명여중 ~ 옥산초 옆쪽을 거친 후 침산2동 일대에서 갈라져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거친 후 노원동과 침산동쪽으로 가는 여러 물줄기로 갈라지는 곳으로 추정된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달서천, 대구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각각 달서천, 대구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대구천 발원지(앞산 삼정골)\" 에서 발원하여 대구천 물줄기가 건들바위 ~ 봉산문화거리 ~ 반월당 일대를 흘러간 대구천 물줄기가 달서천 본류와 만나는 지점이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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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칠성시상 서편을 흐르다가 이 곳에서 신천과 합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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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분류하여 경명여고 ~ 침산초 옆쪽과 침산2동 일대를 흐른 후 이 곳에서 신천과 합류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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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분류하여 경명여고 ~ 침산초 옆쪽을 흐르다가 침산2동 일대에서 분류하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흐른 후 노원동과 원대동 쪽으로 분류하여 흐르는 물줄기 중 하나가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이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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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분류하여 경명여고 ~ 침산초 옆쪽을 흐르다가 침산2동 일대에서 분류하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흐른 후 노원동과 원대동 쪽으로 분류하여 흐르는 물줄기 중 하나가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이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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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삼정골에서 발원한 후 건들바위 앞에서 분류(分流)하여 경대사대부고 ~ 대구광역시청 ~ 교동네거리를 거치고 대성시장 앞에서 분류하여 경명여고 ~ 침산초 옆쪽을 흐르다가 침산2동 일대에서 분류하여 대구삼성창조캠퍼스(구 제일모직) 안을 흐른 후 노원동과 원대동 쪽으로 분류하여 흐르는 물줄기 중 하나가 금호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이다.(1) (2)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대구천의 칠성시장 방향 지류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일부 추정 기록과 과거 지도가 전부이며 세부적인 기록은 정확하게 밝혀져야 이를 알 수 있다.
범어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범어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범어천 본류의 발원지로써 이 곳에서 범어천이 발원한 후 진밭골 일대를 거친 후 복개된 범어천으로 이어진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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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천이 진밭골 발원지에서 흐르다가 첫 번째로 복개가 시작되는 곳으로 주위에 있는 작은 저수지에서 나온 물이 얼마 안 가 복개된다. 이 곳에서 작은 도로를 따라 조금 이동하면 범물동 버스종점과 대구도시철도 3호선의 종착역인 용지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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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천이 814번 버스종점 앞에서부터 복개되어 흐르다가 첫 번째로 복개가 끝나고 모습을 드러내는 곳으로 가창정수장에서 취수하여 공급한 수성못 물이 이 곳에 위치한 분수를 통하여 범어천에 공급된다.(1) 이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천은 대구도시철도 3호선 교량 밑-동대구로의 두 방향 차선 사이를 흐르다가 \\\'범어천 두 번째 복개 시작지점(어린이회관역 앞)\\\' 에서 다시 복개가 되어 흘러간다. (1) 관련 게시물: https://blog.naver.com/daegu_news/221687273606
범어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범어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범어천이 동대구로 일대를 흐르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흐르기 시작하는 지점으로 주변에 어린이회관과 대구학생과학관(구 대구과학교육원) 이 위치해 있고, 이 곳부터 대구중앙고 앞까지 복개가 이어지다가 복개가 끝나고 얼마 안 가 신천으로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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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천이 어린이회관역 앞에서 부터 복개되어 흐르다가 복개가 끝나고 하천의 모습이 드러나는 곳이다. 이 곳을 흐르는 물줄기는 얼마 안 가 신천으로 합류한다.
범어천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는 범어천 물줄기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
두리봉 밑 계곡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 곳에서 복개된 후 달구벌대로 밑쪽의 만촌동과 범어동 일대를 경유한 후 범어못으로 흘러들어가고, 그 물줄기가 범어못에서 나와 야시골 일대를 흐른 후 범어천 본류와 합쳐진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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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봉 밑 계곡에서 발원한 후 달구벌대로 밑쪽의 만촌동과 범어동 일대를 경유한 후 범어못으로 흘러들어가고, 그 물줄기가 야시골 일대를 흘러 이 곳에서 범어천 본류와 합쳐진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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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위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수성못을 통과한 후 바로 복개되고, 들안길 서편 ~ 황금동 일대 ~ 범어3동주민센터 밑을 흐른 후 이 곳에서 범어천 본류와 합쳐진다.
만일 이러한 물줄기에 대하여 개발자가 미처 발굴하지 못한 또 다른 사실이나 기록(다른 지류, 지금까지 밝혀진 것과는 다른 사실이나 기록 등)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형태 | 인공 호수(조선 중엽으로 추정) |
면적 | 0.042 km2(현재) |
위치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1동 일대 |
유입/유출 | 죽곡취수장 - 죽곡정수장 - 성당못(유입) 성당못 - 대명천 - 낙동강(유출) |
매립 구간 | 앞산공원 버스종점 옆 ~ 장기동 먹자골목 2공영주차장 옆(총 6.9km 정도) |
매립 년도 | 대구문화예술회관 및 두류공원 서편 일부, 두류공원 무료주차장 및 인라인 스케이트장(1970년대) |
성당못(聖堂못)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1동에 있는 못으로 면적은 0.042 km2 이며 1970년대에 도시 개발로 본래 크기의 30% 정도만 남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성당못을 채우는 물은 죽곡취수장에서 취수한 물을 죽곡정수장을 통하여 정수한 후 매일 5천 t 씩 공급하며 물이 나가는 경로는 대명천을 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성당못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2가지가 전해 내려온다고 하며 이 중 하나는 이 지역의 산 모습이 성당못을 중심으로 하여 용이 승천하는 모양으로 길지(명당)의 의미인 성당으로 불렀다고 하고, 또 하나는 일제시대 이곳에 천주교 성당이 있었는데 독립운동 장소로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로 철거된데 따라 성당이라 부른다고 전해진 것이며 성당못에서의 성당이라는 명칭은 일반적인 의미의 종교 시설인 성당과는 다르다.(1)
또한. 성당못 일대를 옛날에는 성댕이, 상댕이라고 불리다가 1910년부터 성당동이라고 불렸는데, 동네 이름을 따서 예부터 성당못이라고 하였다. 이곳 성당못이 있던 자리는 조선 중엽 채씨 성을 가진 판서가 살던 집터였는데, 국풍(나라에서 지정한 공인 풍수가)이 이곳을 지나다 보니 그 자리가 아주 명당이라 장차 임금이 태어날 명당이라고 해서 나라에서 집을 짓지 못하도록 성당못을 만들었다고 한다.(2)
(이러한 유래만으로는 성당못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호수라는 것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며 인공호수임을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나 성당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관련 게시물: 성당못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대구지역의 도시개발로 없어진 못들
형태 | 인공 호수(고려시대 축조로 추정) |
면적 | 11,212㎡(1994년 매립 이전까지) |
위치 |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2동 일대 |
유입/유출 | 금호강(배자못 양수장)-배자못(유입) 배자못 - ?(유출) |
매립 구간 | 모든 부분 매립 |
매립 년도 | 모든 부분 매립(1994년) |
배자못(-대불지{大佛池})은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2동의 복현오거리 근처 ~ 검단네거리 까지의 일대에 있었던 인공 못으로 1994년에 모두 매립되었고, 못의 면적은 11,212㎡ 이었던 못이었으며 남북으로 길쭉한 형태를 가진 못이었다. 1994년에 못이 모두 매립된 후 배자못이 위치했던 곳에는 총 5곳의 건설사(건영,청구,대백,서한,보성,화성)가 시공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게 되었다.
배자못은 대불지(大佛池) 라고도 불리며 못 이름의 유래는 못 주변에 배씨와 채씨가 많이 거주하여 \\\'배채못\\\' 으로 불렸던 것이 \\\'배자못\\\' 으로 변하였다는 설과 저수지를 축조하다가 커다란 불상이 빌견되어 \\\'대불지\\\' 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 등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대불지 이전에도 16세기 조선시대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18세기 \\\'대구읍지\\\'에는 대불지가 불상지(佛上池)로 나왔으며 고려시대 때부터 존재하였던 유서 깊은 못이라는 점이 존재한다.(1)
그 후 일제강점기인 1938년 5월에는 못이 확장되었고, 1958년 7월 초에는 대구에 일주일간 내린 장마비로 대불지가 범람위기에 처했던 적이 있었다.(2)
또한. 배자못은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식용이 가능한 말을 채취할 만큼 물이 깨끗하였고, 버들붕어,가물치,송사리 붕어 등의 여러 종류의 물고기가 많았으며 여름에는 못에서 멱을 감고 못의 둑은 낚시꾼으로 가득하였다.
1974년에는 희귀연꽃인 가시연꽃이 발견되었을 정도로 물이 상당히 맑고 깨끗하였다. 또한 70년대 못 인근 대학교 지리학과 대학생이 배자못에서 측량실습을 하기도 하였다.(3)
하지만. 1975년 부터는 인근에 검단공단이 조성되고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서게 되면서 공장폐수와 생활오수가 배자못으로 유입되어 굽격하게 오염되기 시작하였고, 심지어는 기형물고기까지 발견이 되었다.(4)
또한. 같은 해 무허가 시계수리공인 범인이 피해자로부터 시계수리를 부탁받은 후 팔아버리고 도망갔고 1년 후 피해자가 시계수리공에게 항의하자 머리를 때려서 살해한 후 시신을 토막내서 배자못에 버렸다고 전해진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배자못 안에서 토막살해된 시신까지 발견되어 전국적인 뉴스가 되었다.
배자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3),(4)관련 기사: 고려 때 축조된 ‘대불지’에서 불상·가시연꽃·토막시신·기형물고기 발견 (yeongnam.com), 호수만 그냥 두었으면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을 텐데 : 네이버 뉴스 (naver.com)
(5) 관련 기사 목록: 배자못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1975년 기사
형태 | 자연 호수로 추정 |
면적 | 25,000㎡(1984년 전면 매립 이전까지) |
위치 |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4동, 달서구 두류3동 일대 |
유입/유출 | 땅골 지류 및 그 밖의 두류산, 금봉산에서 발원한 물중기들-감삼못(유입) 감삼못-대명천-낙동강(유출) |
매립 구간 | 모든 부분 매립 |
매립 년도 | 못 동쪽 일부(현 달성고등학교) 및 두류3동 일대(1973년) 나머지 부분(현. 청구광장타운1·2차아파트단지) 매립(모든 부분매립)(1984년 3월) |
감삼못(甘三못)은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4동과 달서구 두류3동 일대에 있었던 못으로 면적은 25,000㎡이었고 자연호수로 추정되는 못이었다. 감삼못은 1973년에 동편이 먼저 매립되으며 이로부터 11년 후인 1984년에는 나머지 부분이 모두 매립되어 현재는 못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배자못(대불지), 성당못과 함께 수 백년의 역사를 가진 커다란 못 중에 하나이고, 61년에는 감삼못에서 낚시를 하던 2명의 대학생이 익사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80년 1월에는 미군헬기가 감삼못에서 얼음을 지치다 빠진 한 어린이를 구조한 사건이 발생하였다.(1)
감삼못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 감삼못은 ‘감생이못’이라 불리기도 하였고., 감삼못 뒤편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삼이 됐다는 설, 원님이 지나다 백성이 준 감 3개를 먹은 후 감삼으로 했다는 설, 못 주변에 홍씨(洪氏)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아 홍시(감)가 됐다는 설이 있지만 이 중 어느 하나의 설도 분명하지 않다.(2)
감삼못의 수원은 내당동 안땅골에서 발원한 물줄기와 그 밖에 금봉산과 두류산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이며 아러한 물줄기들이 모여 감삼못을 이루게 되었다. 이 물은 감삼동, 죽전동, 용산동 등 성서와 월배지역 농토에 농업용수로 공급되어 ‘단물(甘水) 역할을 하게 되었다.(3)
1768년에 발간된 대구읍지에는 ‘감삼제(甘三堤), 즉 감삼지가 서하하(西下下)에 위치하며 둘레가 6천410척(약 2㎞), 수심이 9척(2.7m)’이라고 나와 있고, 1918년 대구지형도에는 \\\'감삼지\\\' 가 보이며 감삼지 주변은 습지와 모래흙으로 덮여있고, 침엽수가 자생하고 있다고 전해졌다.(4)
감삼못은 1973년에 달성고등학교의 신설로 못의 동편이 먼저 매립되으며 이로부터 11년 후인 1984년 3월에는 청구주택이 감삼못을 메워 광장타운1·2차아파트단지를 조성하면서 나머지 부분까지도 모두 매립되어 안타깝게도 역사 속으로 못이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5)
감삼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3),(4) 관련 기사: 고려 때 축조된 ‘대불지’에서 불상·가시연꽃·토막시신·기형물고기 발견 (yeongnam.com)
(5) 관련 기사: 호수만 그냥 두었으면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을 텐데 : 네이버 뉴스 (naver.com)
형태 | 자연 호수 |
면적 | 약 **평 정도(1928년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일대 |
유입/유출 | 주변 구릉지의 물줄기 - 천황당못(유입) 천황당못 - ?(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28년으로 추정(전 구간 매립) |
천왕당못(天王堂못) 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신동 일대의 현재의 서문시장 자리에 있었던 못으로 1920년대 초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진 못이다. 조선시대까지는 남소(南沼) 라고 부르다가 1905년부터 일제에 의하여 천왕당지(天王堂池)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천왕당못은 주변 구릉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에 의하여 저절로 만들어진 자연 호수로 호수 주변에는 참나무 숲이 무성했고, 지금의 동산병원 앞길과 대신로타리, 대신파출소 앞길, 옛 계성중고등학교의 담을 따라 위치한 건어물상 일대가 못이 위치했던 자리였으며, 성내 한량들이 즐겨 찾던 놀이터고 봄, 가을이면 인근 부녀자들의 놀이터로 각광을 받던 곳이었다.(1)
천황당못의 이름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남소(南沼)(천왕당못)는 서거정의 대구십영(大丘十詠) 이라는 시에서 나오는 10경 중 제5경인 남소하화(南沼荷花)에 처음 등장하며 서거정은 달성서씨로 달성토성이 세거지였고, 또한. 남소는 ‘달성토성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 해서 ‘남지(南池)’라고도 불렸다. 1750년대 초에 제작된 해동지도와 연대 미상의 여지도에는 ‘남소’로 나오고 지승(地乘) 경상도편에는 ‘남지’ 로 나온다. 경주도회(좌통지도)와 1903년 제작된 대구시가지도에는 이름 없이 나오다가 1905년과 1915년에 일제가 제작한 지도에는 ‘천왕당지(天王堂池)’로 바뀌어 나오며, 그 지도에서 나오는 \\\'천왕당지\\\'의 위치는 조선시대까지의 지도에 나왔던 \\\'남소\\\'와 일치한다는 점이 존재한다.(2)
천왕당못은 일제에 의하여 1928년에 내당동과 비산동 고지대에 있던 고분군의 봉토와 현재 대성초등학교 가 위치한 언덕의 흙으로 메워지면서 사라졌으며 달서문 터(중구 경상감영길 1) 앞에서 동산 파출소 터(중구 동산동 15) 앞의 오토바이 골목 일대에 위치히였던 옛 서문시장(큰장)은 천왕당못이 메워진 곳인 현재의 서문시장 위치(천왕당못)로 옮겨졌다.(3)
천왕당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관련 게시물: 대구이야기-지명유래 : 중구-천황당못
(2)(3) 관련 기사: 고려 때 축조된 ‘대불지’에서 불상·가시연꽃·토막시신·기형물고기 발견 (yeongnam.com), 호수만 그냥 두었으면 세계적 관광지가 되었을 텐데 : 네이버 뉴스 (naver.com)
형태 | 자연 호수로 추정 |
면적 | 약 13,200㎡ 정도(1972년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3동 일대 |
유입/유출 | 달성토성의 천연 해자 - 사리못(유입) 사리못 - ?(달서천 - 금호강 으로 추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2년(전 구간 매립) |
사리못은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3동 일대, 현재의 서부시장 자리에 있었던 자연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면적은 약 13,200㎡ 정도였고 1972년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못이다, 사리못은 성당못, 배자못과 더불어 \\\'연화지\\\' 라는 이름으로 1530년에 발간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못 중 하나로써 고려시대에도 존재하였던 유서깊은 못이다.
하지만. \\\'연화지\\\'는 지금까지 어디에 위치했는지 정확하게 고증된 것이 하나도 없었고, 달성토성 인근에 있던 것으로만 추정하고 있으며, 대구읍지에는 연화제에 대해선 ‘서상(西上)에 있다. 둘레가 1천980척이고, 수심이 3척’이라 했고, 사리제에 대해선 ‘서중(西中)에 있으며 둘레가 1천840척, 수심이 3척’이라고 기록되어 연화제와 사리제를 따로 설명할 뿐만 아니라 1918년에 제작한 대구지형도에도 사리제, 또는 연화지로 추정되는 못이 나오는 등으로 \\\'연화지\\\' 가 \\\'사리못\\\' 이 아니라 다른 못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기록도 있어 \\\'연화지\\\' 가 \\\'사리못\\\' 이라고 무조건 100%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1)
사리못 물의 수원에 대하여는 달성토성은 천연 해자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그 천연 해자의 물이 범람하여 토성 주위에 크고 작은 못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것이며, 사리못에 연(蓮)이 많이 자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2)
사리못의 유래에 대하여는 못 주위에 몇 채의 집과 논밭이 있었고, 못 둘레에는 수양버드나무가 있었다고 하며, 이 곳이 사리못이라고 불려진 것은 아마도 불교에서 스님이 열반한 뒤 부장을 하면 남는다는 \\\"사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이 곳에는 옛날 불교와 관련이 있는 유적이 없어 이러한 설도 확실하지 않다. 또한. 일설에는 날뫼 언덕에 싸리나무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사리못이라고 불리었다는 말이 있다.(3)
사리못은 1972년에 모두 매립한 후 현재의 서부시장으로 개발하였으며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현 서부시장의 면적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4)
사리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 관련 기사: MBC네거리 일대는 원래 ‘한골못’…‘연화지’ 는 정확한 위치 몰라 (yeongnam.com)
(3)(4) 관련 게시물: 대구이야기:지명유래 - 서구 - 사리못
형태 | 자연 호수로 추정(후에 인공으로 증축) |
면적 | 약 **㎡ 정도(1974년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3동 일대 |
유입/유출 | 달서천 지류 물줄기 - 들마못(유입) 들마못 - 달서천 지류 물줄기 - 금호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4년(전 구간 매립) |
들마못은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3동 일대, 현재의 서구청 자리에 있었던 자연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1974년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못이다.
들마못은 달서천 수계의 지류에 위치해 있으며, 못에서 방류된 물중기는 달서천을 통하여 금호강으로 흘러들어간다.
들마못은 이름조차 없는 조그마한 못이었지만 못 주위로 점점 한 집, 두 집 인구가 늘어나면서 마을이 생기고 부터 \"들마을 못\" 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 변해서 \'들마못\'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고, 들마못에서의 \'들마\'는 평리동의 옛 이름으로, 우리말 그대로 ‘들이 있는 마을’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당시 들마못 일대 주민들은 못이 작아서 이 못의 물로는 농사짓기가 어렵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돈을 내어 못의 규모를 더 크게 만들었다고 한다. 들마못은 지금의 서구청이 들어서기 직전인 1974년까지 있었고 그 당시 못 주위에는 4, 5호의 집이 있었다고 한다. 들마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 관련 기사 및 게시물: 대구이야기:지명유래 - 서구 - 들마못, MBC네거리 일대는 원래 ‘한골못’…‘연화지’ 는 정확한 위치 몰라 (yeongnam.com)
형태 | 인공 호수로 추정 |
면적 | 약 3300㎡ 정도(197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1동,원대동 일대 |
유입/유출 | 달서천 지류 물줄기 - 날뫼못(유입) 날뫼못 - 달서천 지류 물줄기 - 금호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0년대(전 구간 매립) |
날뫼못은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1동,원대동 일대, 현재의 비산 지하도 서편에 위치하였던 인공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면적은 약 3300㎡ 정도였고, 1970년대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진 못이다.
날뫼못은 현재는 복개된 달서천과 바로 인접해 있었고, 주변은 대부분 논과 밭, 미나리 등의 재배지로 이용되었으며, 상류로부터 물이 흘러 들어오고, 비가 많이 올 때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에 농경지로 내보내 농사에 이용했다고 하며, 경부선 철도가 건설되기 이전까지는 못은 하나였지만 철도가 건설된 이후 기찻길을 경계로 2개의 못으로로 나눠졌다. 그 밖에도 날뫼못은 겨울철 스케이트 연습 장소로도 사용된 적도 있었다.(1)
날뫼못에서의 \\\'날뫼\\\' 라는 이름에 대한 유래는 비산동의 옛 이름으로 옛날 금호강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한 여인이 서쪽 하늘에서 요란한 풍악소리가 들려와서 하늘을 바라보니 산 모양을 하고 있는 구름이 날아오고 있었고 이를 본 여인이 \\\"산이 날아온다\\\"고 비명을 지르자 날아오던 구름 산이 이전까지 평야였다고 전해졌던 비산동에 떨어져 동산이 되었다고 하며, 그 후 사람들은 이 지역을 \\\'날아온 산\\\' 이라고 하여 \\\'날뫼\\\' 라고 부르게 된 것이고, \\\'날뫼\\\' 가 한자로 \\\'비산(飛山)\\\' 이 되어 현재의 비산동에 이르게 된 것이다.(2)
1918년의 대구지형도에는 2개의 날뫼못이 표시돼 있으며, 날뫼못은 산업화가 되면서 과거 농토였던 곳에 주택과 공장이 들어서면서 생활하수와 공장폐수 등으로 오염되어 못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여 1970년대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되었다.(3)
날뫼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3)관련 기사 및 게시물: 대구이야기:지명유래 - 서구 - 날뫼못, 고려 때 축조된 ‘대불지’에서 불상·가시연꽃·토막시신·기형물고기 발견 (yeongnam.com)
(2) 관련 게시물: 대구이야기:지명유래 - 서구 - 비산동
형태 | 인공 호수 |
면적 | 약 만 여평 정도(1955년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2동 일대 |
유입/유출 | 달서천(지류) - 새못(유입) 새못 - 달서천(지류) - 금호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55년(전 구간 매립) | </tr
새못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2동과 대명7동의 삼각로타리와 경상중학교 사이에 걸쳐 있었던 약 1만평 장도의 못으로 일제시대에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 못이다. 1918년에 제작된 대구지형도에는 -52- 라는 글자가 표시된 호수로 나온다. (1)
새못 이름의 유래는 못이 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새못\\\' 이라고 불렸고, 못의 남쪽에 새못 안동네가 있었다고 한다.새못은 1955년경에 대구시의 주거 지역 확보를 위한 구획 정리로 쓰레기와 주위 야산을 깍아 내린 흙으로 매립되어 주거지로 변하면서 사라졌고, 현재는 못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2)
새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삼각지네거리 일대의 1910 ~ 1930년대 지도를 보면 새못이 -52- 라고 표시된 커다란 호수로 보인다. 그 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52-\\\' 라고 표시된 호수가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 관련 게시물: 대구이야기-지명유래 : 남구-새못
형태 | 인공 호수 |
면적 | 약 2만평 정도(197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2동 일대 |
유입/유출 | 산대못 - 달서천 - 영선못(유입) 영선못 - 달서천 - 금호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전 구간 매립(1970년대) |
영선못(靈仙못)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2동 일대에 있었던 인공 못으로 면적은 약 2만 평이고 조선시대 말기에 축조되어 1970년 완전히 매립되기 이전까지 존재하였던 못이다.
영선지(靈仙池)라는 이름은 1924년 동아일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그 이전인 1918년에 발행한 대구지형도에는 영선못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고 대신 영선못(약 2만평)이라 추정되는 저수지 북편에 수도배수지(수도산)가 위치하고, 바로 서쪽에 신지(新池·새못)가 있다고 나왔다.(1)
과거 영선지에는 못 둑에 막걸리와 비빔밥을 파는 주막이 있었고, 참나무와 벚꽃이 무성했다고 전해졌으며, 연신지(蓮信池)’ ‘영선지(營繕池) 라고 부른다는 1926년의 기록도 있다.(2)
또한. 영선지 남쪽에는 일제가 만든 충령탑(忠靈塔)이 높이 서 있었고 66년에 철거되었고. 영선못에서는 빙상경기도 자주 열렸으며 대구의 원로화가인 이경희 화백은 영선못에서 열린 빙상대회에 출전했다.(3)
광복 후 영선못은 대부분 매립되어 시민운동장으로 사용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완전히 매립되어 영선시장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4)
영선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3),(4) 관련 게시물: 고려 때 축조된 ‘대불지’에서 불상·가시연꽃·토막시신·기형물고기 발견 (yeongnam.com)
형태 | 형태 미상 |
면적 | 약 **평 정도(196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일대 |
유입/유출 | 달서천(지류) - 산대못(유입) 산대못 - 달서천(지류) - 금호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60년대(전 구간 매립) |
산대못(山垈못)은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의 영대병원네거리 남쪽의 미군부대 내부(추정)에 있었던 못으로 1960년대에 매립되었고, 그 못이 자연못인지 인공못인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는 못이다.
산대못은 달서천의 영선시장쪽 지류의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못의 물은 달서천을 통해 금호강으로 유출된다.
그 밖에 1922년에 서상일이 독립운동 장소로 사용하기 위하여 착공한 조양회관(朝陽會舘)의 건설 과정에서 회원들이 건축비를 내지 못하게 되어 공사비를 혼자 떠맡게 되면서 서상일은 벽돌값으로 성주에 있던 논과 산대못을 백남채에게 넘겨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산대못이 그 산대못이 맞는지는 확실하지 않다.(1)
산대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관련 게시물:조양회관 朝陽會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형태 | 인공 호수로 추정 |
면적 | 약 2만평 정도(196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신천1동 일대 |
유입/유출 | 이름미상의 하천 - 소래못(유입) 소래못 - 이름미상의 하천 - 신천(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60년대(전 구간 매립) |
소래못(-송라못{松羅못})은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신천1동 일대, 경부선철도가 지나는 신암지하도를 기준으로 북쪽 신암동 동신초등학교와 남쪽 신천동 송라아파트와 송라시장 일대에 위치 하였던 인공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면적은 약 2만 평 정도였고 1960년대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소래못은 원래 1개의 못이었지만 못 일대에 경부선 철도가 건설된 이후 2개의 못으로 나눠지면서 쌍둥이못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소래못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못의 형태가 소라를 닮았다고 해 소라라고 불려졌고, 그 이후 \\\'소라\\\'라는 말이 ‘소래’로 바뀌어지면서 소래못으로 불려지게 되고, \\\'소래\\\'를 한자로 표기하게 되면서 \\\'송라(松羅)\\\'가 되어 송라못이라고 불러졌다고 한다.(1)
소래못의 수원은 현재 신천시장 부근(수성구 범어동)으로 흐르는 범어천의 물을 막아 보를 만들고, 수로를 만어 배일촌(背日村, 현재의 대구청구중학교 앞 언덕 밑)을 거쳐 신천변 언덕(동구 신천동)을 따라 현재의 송라시장 일대(동구 신천동)를 지나 소래못으로 물이 들어가게 되었다.(2)
또한. 18세기에 발간한 대구읍지에는 ‘송라재의 둘레가 368척, 수심이 3척2촌’이라고 나와 있으며, 6·25전쟁 당시에는 못 주변에 피난민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3)
소래못 주변에는 소래못안 마을이 있으며 소래못이 형성될 때 못 안은 야산이었고, 골짜기는 논과 밭이었지만 대구시가 확장되면서 소래못안에 30여호, 50여호 자연 부락이 신천 1동 산언덕 동편에 형성되어 점차 마을이 커지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100여호가 이곳에 살았으며, 도시계획으로 도로변 주위의 가건물이 철거되되면서 그 주민들이 못안으로 많이 이주하였고,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몰리면서 마을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4)
소래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3)(4) 관련 게시물: 대구이야기: 지명유래-동구-소래못안
(2) 관련 기사: MBC네거리 일대는 원래 ‘한골못’…‘연화지’ 는 정확한 위치 몰라 (yeongnam.com)
형태 | 자연 호수로 추정 |
면적 | 16,500㎡(196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4동, 수성구 범어1동 일대 |
유입/유출 | 이름미상의 하천 - 한골못(유입) 한골못 - 이름미상의 하천 - 금호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60년대(전 구간 매립) |
한골못은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4동, 수성구 범어1동 일대, 현재의 MBC네거리 일대와 그 주변에 위치하였던 자연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면적은 16,500㎡ 정도였고 1960년대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도 과거 한골못이었던 곳인 동부로30길 서쪽 호텔 밀집지역에 \\\'한골\\\' 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칼국수집이 존재하고 있다. (1) 주소와 설명 바로가기 (또한. 못의 동쪽인 만촌1동에도 \\\'한골\\\' 이라는 상호를 사용하는 한우 가마솥 국밥집이 있어 언론을 타고 유명해졌지만 결국 2014년 이후로 폐업하여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
한골못은 한자로는 대곡(大谷) 이라고도 불리며 못 이름의 유래는 골짜기에 둘러싸인 큰 못이라는 뜻에서 한골못이라고 불러졌다.
또한. 이 못은 동대구역을 지나서 동구청 ~ 대구관광고 ~신암선열공원 쪽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으며 이 골을 한골(大谷)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이 골짜기의 상류에 위치한 못을 한골못이라고 불였다는 유래도 있다. 또한. 못 주위에는 민가가 없고 골짜기가 험하고 나무가 많고 여우가 살았다 하여 여우골이라고도 불리기도 하였다. (3)
약 50여년 전에는 한골못에 씨알 좋은 붕어들이 곧잘 낚여 낚시꾼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었다.(4)
한골못은 1960년대에 모두 매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구체적인 매립년도는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못하여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는 점이 있다.
한골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식당의 상호는 \\\'한골 칼국수\\\' 이고 주소는 대구 동구 동부로30길 79(호텔밀집지역 건너편) 이다. 전화번호: 053-753-3544 주소와 설명 바로가기
(2) 하지만, 2014년에 지역신문 언론기사까지 나오게 되면서 화제의 식당으로 자리잡았던 \\\'한골한우가마솥국밥\\\' 이라는 식당은 이곳의 로드뷰를 확인해본 결과 폐업한 후 2016년 2월에는 건물이 철거되었고 2017년 12월부터 현재까지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후 유지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금도 존재하는 새로운 건물에는 삭당 자체가 없고, 1층에는 파스구찌(커피전문점), 1층과 2층에는 하이마트, 3층에는 맑은두대현한의원, 4층에는 SG스크린골프 만촌점이 들어선 것으로 확인되었다.
(2)(4) 관련 기사: [정영진의 대구이야기](48.끝)\'수변\'이 좋았던 대구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관련 게시물: 대구이야기: 지명유래-동구-한골
형태 | 인공 호수로 추정 |
면적 | 약 12,500㎡ 정도(1970년대 중반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1동, 범어4동 일대 |
유입/유출 | 범어천 만촌방향 지류 - 범어못(유입) 범어못 - 범어천 지류와 본류 - 신천(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0년대 중반(전 구간 매립) |
범어못(泛魚못)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1동, 범어4동 일대, 현재의 수성구청, 수성경찰서, 대구여고 일대와 그 주변지역에 위치하였던 인공 호수인 못으로 면적은 12,500㎡ 정도였고 1970년대 중반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범어못으로 들어오는 물줄기는 두리봉 쪽에서 발원하여 대륜고 앞과 만촌동 일대를 거쳐 온 물줄기이고, 범어못에서 나온 물줄기는 범어천 지류와 본류를 통하여 신천으로 유입된다.
못 이름의 유래는 범어동의 유래와도 같으며 옛날 이 마을을 일구던 당시 이 산의 형세가 마치 붕어가 입을 벌리고 산아래에 흐르는 범어천(泛魚川)에 떠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며 이 마을의 이름을 \\\'뜰 범((泛)\\\'자와 \\\'고기 어 (魚)\\\' 자를 합하여 \\\'범어동(泛魚洞)\\\'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
현재 범어네거리를 기준으로 서북쪽 법원 맞은편 일대의 범어동은 골짜기였고, 지금의 신천과 맞닿은 범어천의 물길과 일치하며, 이곳은 야시골로 불리기도 하였다. 여우가 자주 출몰해서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다. 그리고 현재 범어배수지 동편의 대동교회 뒤쪽도 골짜기였고, 밤밭이 많아 밤골로 불렸다. (2)
또한. 범어못에서는 과거 여름에는 멱도 감았고, 아이들과 함께 썰매를 타는 장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3)
(1)(3) 관련 기사: 고려 때 축조된 ‘대불지’에서 불상·가시연꽃·토막시신·기형물고기 발견 (yeongnam.com)
(2) 관련 게시물: 대구이야기: 지명유래-수성구-범어동
형태 | 호수형태를 판정하기 어려움 |
면적 | 약 9,900평 정도(197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1동 일대 |
유입/유출 | 이름미상의 하천 - 소못(유입) 소못 - 이름미상의 하천 - 금호강(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0년대(전 구간 매립) |
소못(-효목못{(孝睦못})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1동 일대, 현재의 수성도서관과 효목공원 일대에 위치하였던 못의 형태를 정확하게 판정하기 어려운 못으로 면적은 약 약 9,900평 정도이고, 이 못은 농수산부(현재 농림축산식품부) 소유였으며, 1970년대에 모두 매립되어 현재는 이 일대에 수성도서관과 효목공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1918년에 발행된 대구지형도에는 소못 또는 효목못이 보이며, 이 못에서 효목동과 만촌동 일대의 논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였다.
소못의 형태에 대하여는 옛날 효목동, 만촌동 일대의 논밭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한 못이라는 이야기와 원래부터 이 곳에 작은 못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러한 설 중 어느 하나가 맞는지는 지금도 이를 판정하기 어려우므로 소못의 형태는 정확하게 판정하기 어렵다.
또한. 이 못이 위치한 곳의 주변 지역인 효목동은 과거 ‘소못골’ 또는 ‘소못곡(谷)’으로 불렸으며, 효목동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과거 조선 숙종이 소못골에 세거한 동래정씨 정종악의 호인 효목을 따 마을이름을 효목(孝睦)으로 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소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2) 관련 기사 및 게시물: MBC네거리 일대는 원래 ‘한골못’…‘연화지’ 는 정확한 위치 몰라 (yeongnam.com), 대구이야기: 지명유래-수성구-효목못, 지명유래-동구-효목동
형태 | 인공 호수로 추정 |
면적 | 약 **평 정도(197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1동 일대 |
유입/유출 | 범어천의 지류 - 윗못(유입) 윗못 - 범어천(지류와 본류) - 신천(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0년대(전 구간 매립) |
윗못(-지산저수지{池山貯水地}-둔동제{屯洞堤})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산동 일대, 현재의 녹원맨션 자리에 있었던 인공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둔동제(屯洞堤) 또는 지산저수지(池山貯水地) 라고 불리기도 하였으며, 1970년대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진 못이다. (1)
또한. 윗못은 인공 호수로 추정되는 못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부터 존재하였던 꽤 역사가 오래된 대구의 못 중에 하나이다.
윗못의 명칭 유래와 관련 역사 및 자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이 거의 없지만 조선시대부터 존재했던 \\\'둔동제\\\'를 일제강점기에 증축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둔동제 증축설’이 사실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으며, 그 이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사료 고찰을 통하여 둔동제의 위치가 범어천 줄기인 수동(현재 지산동 녹원맨션 자리)으로 밝혀져 지금의 수성못이 아님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2)
(참고로. 일제시대에 미즈사키 린타로(水崎林太郞)가 대구지역 조선인 유지 4명과 함께 수성수리조합을 설립하고 기존의 자연 호수를 대규모로 증축한 역사가 있었던 곳은 조선시대에 \\\'문동제\\\' 라고 불렸던 수성못이다.) (3)
윗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지산동 녹원맨션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두산동(斗山洞) 이라는 한자표시 위에 \\\'윗못\\\' 이라고 표시된 커다란 호수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둔동제가 \\\'윗못\\\' 이라고도 불렸다고 볼 수 있다.
\\\'윗못\\\' 이라고 표시된 호수가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기사 : 수성못, 역사와 문화 스토리를 품다 - 뉴스웨이 (newsway.co.kr), \\\'빼앗긴 들\\\'을 바라보는 일본인 농민의 무덤 : 네이버 뉴스 (naver.com)
○ 온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5.62km |
발원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노포동 범어사 계곡 |
하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연제구 연산9동 수영하수처리장 위쪽 (수영강) |
복개 구간 | 남산시장 위쪽 ~ 남산역 공영주차장 뒤쪽(약 1.08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온천천(溫泉川)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노포동 범어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산동 ~ 구서동 ~ 명륜동 ~ 연안교 앞 ~ 안락동과 연산동 사이까지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연제구 연산9동 수영하수처리장 위쪽에서 수영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남산시장 위쪽 ~ 남산역 공영주차장 뒤쪽(약 1.08km 정도)이고, 1990년대에 근처 영락공원에 화장터를 만드는 과정과 함께 복개되었다.(1) 지류로는 텃밭과 작은 저수지가 위치한 부산외대 옆 남산동쪽 지류, 구서동쪽 지류, 비교적 깨끗한 숲 속 계곡이 있는 장전동쪽 지류, 부산대 안에 위치한 미리내 계곡, 금정마을 근처를 흐르는 지류, 사직천, 거제천, 쌍미천(마곡천) 등의 여러 지류들이 있으며(이러한 하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 하천에 대한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온천천 구간 중 구서역 앞 ~동래역 앞까지의 구간은 하천 위에 부산도시철도 1호선 교량이 있어 1호선 경로와 같은 경로로 흐른다. 온천천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하천이었지만 그 후 하천 근처에 주택과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유입되면서 심각한 오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후 1995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온천천 살리기 사업이 1997년 12월에 착공한 후 자연적인 하천으로 복원사업을 한 후 오염이 사라지고 여러 생물들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또한. 상류쪽 청룡2호교 위쪽에는 온천천 유지용수 차원에서 물금취수장에서 취수하여 깨끗하게 처리된 물을 방류하여 온천천으로 내보내며 평소 때는 발원지부터 동래역까지는 비교적으로 꺠끗한 수질을 유지하지만 폭우가 오는 때에는 주변의 하수가 온천천으로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르게 될 때도 있다. (2) (1) 관련 기사: 사하·금정구, 생태하천 복원 입장 ‘딴판’ : 국제신문 (kookje.co.kr) (2) 지금은 우수(빗물)관거와 오수관거를 분리하는 공사가 완료된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검은 물이 예전보다는 덜 역류할 가능성도 있다.
○ 온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5.62km |
발원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노포동 범어사 계곡 |
하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연제구 연산9동 수영하수처리장 위쪽 (수영강) |
복개 구간 | 남산시장 위쪽 ~ 남산역 공영주차장 뒤쪽(약 1.08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온천천(溫泉川)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노포동 범어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산동 ~ 구서동 ~ 명륜동 ~ 연안교 앞 ~ 안락동과 연산동 사이까지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연제구 연산9동 수영하수처리장 위쪽에서 수영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남산시장 위쪽 ~ 남산역 공영주차장 뒤쪽(약 1.08km 정도)이고, 1990년대에 근처 영락공원에 화장터를 만드는 과정과 함께 복개되었다.(1) 지류로는 텃밭과 작은 저수지가 위치한 부산외대 옆 남산동쪽 지류, 구서동쪽 지류, 비교적 깨끗한 숲 속 계곡이 있는 장전동쪽 지류, 부산대 안에 위치한 미리내 계곡, 금정마을 근처를 흐르는 지류, 사직천, 거제천, 쌍미천(마곡천) 등의 여러 지류들이 있으며(이러한 하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 하천에 대한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온천천 구간 중 구서역 앞 ~동래역 앞까지의 구간은 하천 위에 부산도시철도 1호선 교량이 있어 1호선 경로와 같은 경로로 흐른다. 온천천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하천이었지만 그 후 하천 근처에 주택과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유입되면서 심각한 오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후 1995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온천천 살리기 사업이 1997년 12월에 착공한 후 자연적인 하천으로 복원사업을 한 후 오염이 사라지고 여러 생물들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또한. 상류쪽 청룡2호교 위쪽에는 온천천 유지용수 차원에서 물금취수장에서 취수하여 깨끗하게 처리된 물을 방류하여 온천천으로 내보내며 평소 때는 발원지부터 동래역까지는 비교적으로 꺠끗한 수질을 유지하지만 폭우가 오는 때에는 주변의 하수가 온천천으로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르게 될 때도 있다. (2) (1) 관련 기사: 사하·금정구, 생태하천 복원 입장 ‘딴판’ : 국제신문 (kookje.co.kr) (2) 지금은 우수(빗물)관거와 오수관거를 분리하는 공사가 완료된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검은 물이 예전보다는 덜 역류할 가능성도 있다.
길이 | 15.62km |
발원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노포동 범어사 계곡 |
하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연제구 연산9동 수영하수처리장 위쪽 (수영강) |
복개 구간 | 남산시장 위쪽 ~ 남산역 공영주차장 뒤쪽(약 1.08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온천천(溫泉川)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청룡노포동 범어사 계곡에서 발원하여 남산동 ~ 구서동 ~ 명륜동 ~ 연안교 앞 ~ 안락동과 연산동 사이까지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2동,연제구 연산9동 수영하수처리장 위쪽에서 수영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남산시장 위쪽 ~ 남산역 공영주차장 뒤쪽(약 1.08km 정도)이고, 1990년대에 근처 영락공원에 화장터를 만드는 과정과 함께 복개되었다.(1)
지류로는 텃밭과 작은 저수지가 위치한 부산외대 옆 남산동쪽 지류, 구서동쪽 지류, 비교적 깨끗한 숲 속 계곡이 있는 장전동쪽 지류, 부산대 안에 위치한 미리내 계곡, 금정마을 근처를 흐르는 지류, 사직천, 거제천, 쌍미천(마곡천) 등의 여러 지류들이 있으며(이러한 하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그 하천에 대한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온천천 구간 중 구서역 앞 ~동래역 앞까지의 구간은 하천 위에 부산도시철도 1호선 교량이 있어 1호선 경로와 같은 경로로 흐른다.
온천천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하천이었지만 그 후 하천 근처에 주택과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유입되면서 심각한 오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 후 1995년부터 추진하기 시작한 온천천 살리기 사업이 1997년 12월에 착공한 후 자연적인 하천으로 복원사업을 한 후 오염이 사라지고 여러 생물들도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또한. 상류쪽 청룡2호교 위쪽에는 온천천 유지용수 차원에서 물금취수장에서 취수하여 깨끗하게 처리된 물을 방류하여 온천천으로 내보내며 평소 때는 발원지부터 동래역까지는 비교적으로 꺠끗한 수질을 유지하지만 폭우가 오는 때에는 주변의 하수가 온천천으로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르게 될 때도 있다. (2)
(1) 관련 기사: 사하·금정구, 생태하천 복원 입장 ‘딴판’ : 국제신문 (kookje.co.kr)
(2) 지금은 우수(빗물)관거와 오수관거를 분리하는 공사가 완료된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검은 물이 예전보다는 덜 역류할 가능성도 있다.
○ 사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뒤쪽 |
하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연제구 거제1동 구 송월타올 건너 (온천천)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미복개 구간은 정확한 물길을 찾기 어려움) |
복개 년도 | 1980년대 복개로 추정 |
사직천(社稷川)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뒤쪽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연제구 거제1동 구 송월타올 건너편에서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총 길이는 약 2.9km 정도이고, 1980년대 사직동 일대의 도시개발로 인하여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류의 온천천 합수점 근처에는 조금이나마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상류의 발원지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위쪽 계곡의 경로가 불분명하여 찾기가 어렵다. (1)
(1) 하류의 온천천 합수점 앞의 하천도 비가 온 직후가 아니면 물이 흐르지 않고, 상류의 발원지 쪽 계곡도 비가 온 직후가 아니면 물줄기를 거의 볼 수 없다.
○ 사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뒤쪽 |
하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연제구 거제1동 구 송월타올 건너 (온천천)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미복개 구간은 정확한 물길을 찾기 어려움) |
복개 년도 | 1980년대 복개로 추정 |
사직천(社稷川)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뒤쪽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연제구 거제1동 구 송월타올 건너편에서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총 길이는 약 2.9km 정도이고, 1980년대 사직동 일대의 도시개발로 인하여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류의 온천천 합수점 근처에는 조금이나마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상류의 발원지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위쪽 계곡의 경로가 불분명하여 찾기가 어렵다. (1)
(1) 하류의 온천천 합수점 앞의 하천도 비가 온 직후가 아니면 물이 흐르지 않고, 상류의 발원지 쪽 계곡도 비가 온 직후가 아니면 물줄기를 거의 볼 수 없다.
○ 사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뒤쪽 |
하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연제구 거제1동 구 송월타올 건너 (온천천)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미복개 구간은 정확한 물길을 찾기 어려움) |
복개 년도 | 1980년대 복개로 추정 |
사직천(社稷川)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뒤쪽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2동,연제구 거제1동 구 송월타올 건너편에서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총 길이는 약 2.9km 정도이고, 1980년대 사직동 일대의 도시개발로 인하여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류의 온천천 합수점 근처에는 조금이나마 물줄기를 볼 수 있지만 상류의 발원지는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위쪽 계곡의 경로가 불분명하여 찾기가 어렵다. (1)
(1) 하류의 온천천 합수점 앞의 하천도 비가 온 직후가 아니면 물이 흐르지 않고, 상류의 발원지 쪽 계곡도 비가 온 직후가 아니면 물줄기를 거의 볼 수 없다.
○ 거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2동 고운사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연안교 옆(온천천) |
복개 구간 | 부산진여고 뒤쪽 ~ 연안교 옆(약 4.15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거제천(巨堤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2동 고운사 위쪽에서 발원하여 양정청소년수련관 뒤쪽 ~ 부산시청 뒤쪽 ~ 명은병원 옆 ~ 삼익아파트 앞 ~ 과정교차로 옆까지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연안교 옆에서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 정도 이고, 복개구간은 부산진여고 뒤쪽 ~ 연안교 옆까지로 약 4.15km 정도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물만골 계곡에서 발원한 중앙천 등 여러 지류가 있다. (1)
(1) 물만골에서 발원한 지류는 중앙천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그 하천이 복개된 곳 위에 만들어진 중앙천로의 일부구간은 봄이 되면 아름다운 가로수 벚꽃이 피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 거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2동 고운사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연안교 옆(온천천) |
복개 구간 | 부산진여고 뒤쪽 ~ 연안교 옆(약 4.15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거제천(巨堤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2동 고운사 위쪽에서 발원하여 양정청소년수련관 뒤쪽 ~ 부산시청 뒤쪽 ~ 명은병원 옆 ~ 삼익아파트 앞 ~ 과정교차로 옆까지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연안교 옆에서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 정도 이고, 복개구간은 부산진여고 뒤쪽 ~ 연안교 옆까지로 약 4.15km 정도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물만골 계곡에서 발원한 중앙천 등 여러 지류가 있다. (1)
(1) 물만골에서 발원한 지류는 중앙천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그 하천이 복개된 곳 위에 만들어진 중앙천로의 일부구간은 봄이 되면 아름다운 가로수 벚꽃이 피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 거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2동 고운사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연안교 옆(온천천) |
복개 구간 | 부산진여고 뒤쪽 ~ 연안교 옆(약 4.15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거제천(巨堤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2동 고운사 위쪽에서 발원하여 양정청소년수련관 뒤쪽 ~ 부산시청 뒤쪽 ~ 명은병원 옆 ~ 삼익아파트 앞 ~ 과정교차로 옆까지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연안교 옆에서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 정도 이고, 복개구간은 부산진여고 뒤쪽 ~ 연안교 옆까지로 약 4.15km 정도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물만골 계곡에서 발원한 중앙천 등 여러 지류가 있다. (1)
(1) 물만골에서 발원한 지류는 중앙천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그 하천이 복개된 곳 위에 만들어진 중앙천로의 일부구간은 봄이 되면 아름다운 가로수 벚꽃이 피는 벚꽃길로 유명하다.
○ 중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3동 물만골계곡 상류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3동 거제시장 앞(거제천) |
복개 구간 |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중앙천(中央川)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물만골 계곡(1) 상류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이마트 연제점 옆 ~ 중앙천로 벚꽃길을 지나 거제시장 앞에서 거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4km이고, 복개 구간은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까지로, 약 1.8km 정도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과거 이 계곡에 물이 많다는 의미로 붙여졌는데, 도시철도 3호선 물만골역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물만골 계곡이 있다.(물만골역에서 조금 올라가면 곧바로 나오는 골목길 위의 계곡은 마하사 계곡이다.)
○ 중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3동 물만골계곡 상류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3동 거제시장 앞(거제천) |
복개 구간 |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중앙천(中央川)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물만골 계곡(1) 상류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이마트 연제점 옆 ~ 중앙천로 벚꽃길을 지나 거제시장 앞에서 거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4km이고, 복개 구간은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까지로, 약 1.8km 정도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과거 이 계곡에 물이 많다는 의미로 붙여졌는데, 도시철도 3호선 물만골역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물만골 계곡이 있다.(물만골역에서 조금 올라가면 곧바로 나오는 골목길 위의 계곡은 마하사 계곡이다.)
○ 중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3동 물만골계곡 상류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3동 거제시장 앞(거제천) |
복개 구간 |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중앙천(中央川)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물만골 계곡(1) 상류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이마트 연제점 옆 ~ 중앙천로 벚꽃길을 지나 거제시장 앞에서 거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4km이고, 복개 구간은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까지로, 약 1.8km 정도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과거 이 계곡에 물이 많다는 의미로 붙여졌는데, 도시철도 3호선 물만골역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물만골 계곡이 있다.(물만골역에서 조금 올라가면 곧바로 나오는 골목길 위의 계곡은 마하사 계곡이다.)
○마곡천(쌍미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마하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1동 연안교 앞 (온천천) |
복개 구간 | 하이자동차운전학원 앞 ~ 연안교 앞 (약 3.15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마곡천(쌍미천)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마하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하이자동차운전학원 앞 복개 시작점 ~ 신리삼거리 동쪽 ~ 연제국민체육센터 앞의 경로로 흐르다가 연안교 앞에서 거제천과 만나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까지로 약 3.15km 정도이며, 복개는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망미고개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있지만 부산여상 ~ 현대아파트 방향 지류는 행정구역상 연제구에 발원지와 물길이 있지만(물길 위 도로쪽을 기준으로 연제구와 수영구가 나뉜다.) 마곡천 수계의 물길이 아니라 병무청 뒤쪽 ~ 수영사적공원 뒤쪽을 거쳐 세종빌라 옆의 합수점에서 수영강으로 합류하는 명칭미상의 물길 수계의 지류에 속한다. (1)
(1) 이 곳은 과거 연제구가 생기기 이전의 동래구였을때에도 당시 행정구역이 수영구(1983년 이전에는 남구)가 아니라 동래구였다.
○마곡천(쌍미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마하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1동 연안교 앞 (온천천) |
복개 구간 | 하이자동차운전학원 앞 ~ 연안교 앞 (약 3.15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마곡천(쌍미천)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마하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하이자동차운전학원 앞 복개 시작점 ~ 신리삼거리 동쪽 ~ 연제국민체육센터 앞의 경로로 흐르다가 연안교 앞에서 거제천과 만나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까지로 약 3.15km 정도이며, 복개는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망미고개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있지만 부산여상 ~ 현대아파트 방향 지류는 행정구역상 연제구에 발원지와 물길이 있지만(물길 위 도로쪽을 기준으로 연제구와 수영구가 나뉜다.) 마곡천 수계의 물길이 아니라 병무청 뒤쪽 ~ 수영사적공원 뒤쪽을 거쳐 세종빌라 옆의 합수점에서 수영강으로 합류하는 명칭미상의 물길 수계의 지류에 속한다. (1)
(1) 이 곳은 과거 연제구가 생기기 이전의 동래구였을때에도 당시 행정구역이 수영구(1983년 이전에는 남구)가 아니라 동래구였다.
○마곡천(쌍미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마하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1동 연안교 앞 (온천천) |
복개 구간 | 하이자동차운전학원 앞 ~ 연안교 앞 (약 3.15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마곡천(쌍미천)은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6동 마하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하이자동차운전학원 앞 복개 시작점 ~ 신리삼거리 동쪽 ~ 연제국민체육센터 앞의 경로로 흐르다가 연안교 앞에서 거제천과 만나 온천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물만골 입구 ~ 거제시장 앞까지로 약 3.15km 정도이며, 복개는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망미고개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있지만 부산여상 ~ 현대아파트 방향 지류는 행정구역상 연제구에 발원지와 물길이 있지만(물길 위 도로쪽을 기준으로 연제구와 수영구가 나뉜다.) 마곡천 수계의 물길이 아니라 병무청 뒤쪽 ~ 수영사적공원 뒤쪽을 거쳐 세종빌라 옆의 합수점에서 수영강으로 합류하는 명칭미상의 물길 수계의 지류에 속한다. (1)
(1) 이 곳은 과거 연제구가 생기기 이전의 동래구였을때에도 당시 행정구역이 수영구(1983년 이전에는 남구)가 아니라 동래구였다.
○신선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1.9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1동 초록공원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1동 세월교 옆(수영강) |
복개 구간 |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약 0.35km 정도)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 ~ 세월교 옆(약 0.65km 정도) |
복개 년도 |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1980년대),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 ~ 세월교 옆(2000년대 초반) |
신선천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1동 초록공원 위쪽에서 발원하여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 ~ 위봉초등학교 뒤쪽 ~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을 흐르다가 세월교 옆에서 수영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1.99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까지의 구간(약 0.35km 정도)은 1980년대에,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 ~ 세월교 옆까지의 구간(약 0.65km 정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선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2015년까지 반여도서관 건너편에서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까지의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온갖 오수와 생활하수가 그대로 유입되어 물 색깔이 회색을 띈 분홍색이었고, 물에서는 온갖 악취가 진동하였으며, 하천 물길과 그 주위에는 쓰레기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으로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었다. 신선선 주변에 위치한 위봉초등학교에서는 이 학교의 4~6학년 학생 수십 명이 매주 1, 2차례씩 학교 정문 앞에서 등하교 시간에 맞춰 피켓을 들고 하천 정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다. (1) 이러한 오염으로 주위는 위봉초등학교와 텃밭이 위치하였고, 텃밭이 위치한 곳은 2017년부터는 바우텍 건설(주) 가 매입하여 문을 파손하고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와 함께 문을 넘고 들어가도 문을 파손하고 들어간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구가 붙었고 텃밭 입구는 펜스로 막혀있게 된 것으로 추정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 하천 주변 지역인 해운대구 일대에서 생활하수와 빗물(우수) 을 나눠서 흘러보내는 오•우수관거 분리사업을 실시하여 완공된 후 지금은 이 일대를 흐르는 부분을 비롯하여 신선천의 거의 모든 구간의 수질이 상당히 깨끗해진채로 흘러가고 있다.
(1) 관련 기사: [부산/경남]“학교앞 하천 정화해주세요”… 거리로 나선 초등생들 : 네이버 뉴스 (naver.com)
○신선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1.9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1동 초록공원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1동 세월교 옆(수영강) |
복개 구간 |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약 0.35km 정도)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 ~ 세월교 옆(약 0.65km 정도) |
복개 년도 |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1980년대),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 ~ 세월교 옆(2000년대 초반) |
신선천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반여1동 초록공원 위쪽에서 발원하여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 ~ 위봉초등학교 뒤쪽 ~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을 흐르다가 세월교 옆에서 수영강으로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1.99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초록공원 입구 ~ 반여도서관 건너까지의 구간(약 0.35km 정도)은 1980년대에,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 ~ 세월교 옆까지의 구간(약 0.65km 정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선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2015년까지 반여도서관 건너편에서 해운대인문학도서관 뒤쪽까지의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온갖 오수와 생활하수가 그대로 유입되어 물 색깔이 회색을 띈 분홍색이었고, 물에서는 온갖 악취가 진동하였으며, 하천 물길과 그 주위에는 쓰레기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으로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었다. 신선선 주변에 위치한 위봉초등학교에서는 이 학교의 4~6학년 학생 수십 명이 매주 1, 2차례씩 학교 정문 앞에서 등하교 시간에 맞춰 피켓을 들고 하천 정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였다. (1) 이러한 오염으로 주위는 위봉초등학교와 텃밭이 위치하였고, 텃밭이 위치한 곳은 2017년부터는 바우텍 건설(주) 가 매입하여 문을 파손하고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와 함께 문을 넘고 들어가도 문을 파손하고 들어간 것으로 간주한다는 문구가 붙었고 텃밭 입구는 펜스로 막혀있게 된 것으로 추정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 하천 주변 지역인 해운대구 일대에서 생활하수와 빗물(우수) 을 나눠서 흘러보내는 오•우수관거 분리사업을 실시하여 완공된 후 지금은 이 일대를 흐르는 부분을 비롯하여 신선천의 거의 모든 구간의 수질이 상당히 깨끗해진채로 흘러가고 있다.
(1) 관련 기사: [부산/경남]“학교앞 하천 정화해주세요”… 거리로 나선 초등생들 : 네이버 뉴스 (naver.com)
○춘천(부산)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동백섬 입구(남해) |
복개 구간 | 동백섬 입구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약 2.3km 정도) |
복개 년도 |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1994년) |
춘천(부산)(春川)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에서 발원하여 대천계곡(양운폭포) ~ 해운대신시가지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 해운대구청 뒤쪽 ~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호텔밀집단지를 거쳐 동백섬 입구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5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 구간은 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구간은 1994년에 주변에 해운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약 2.3km 정도이다. 지류는 협성프라임빌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 ~ 해리단길 시작점 ~ 동백섬 입구까지 흐르는 지류와 현재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53사단 위쪽에서 발원하여 53사단 안을 거쳐 신해운대역 앞 ~ 해운대신시가지 일대를 거쳐 장산역 일대까지 흐르는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춘천은 강원도 도청이 소재한 도시인 춘천과 한자도 같지만 부산의 춘천과 강원도 춘천과는 아무런 역사적인 유래나 기록, 관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춘천 상류 구간 중 장산역 서편의 뒤쪽에서 대천공원 입구까지의 구간은 하천 주위로 잘 보전된 청정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 수온이 상승할 때와 강수량이 적어 물이 적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천 물이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마치 강원도 오지의 한 계곡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과거에 춘천은 수영강,낙동강,우동천과 함께 해운대해수욕장에 자연 모래를 공급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해안가 주위에 옹벽이 설치된 것과 함께 하천이 복개되고 상류의 대천계곡 입구에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모래공급이 불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해운대해수욕장의 규모가 축소되어 부산시에서는 매 년마다 모래를 외부에서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1) (2)
(1) 관련 게시물: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의 비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또한. 해운대 근해역의 파랑 특성이 지난 20년 동안 뚜렷하게 변한 것도 또 다른 침식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장기파랑모델인 WAM을 이용하여 얻은 파랑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일대의 평균파고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1년에 약 1.5cm씩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파고의 증가는 당장은 백사장 침식을 유발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사장이 현재에 비해 모래를 더 유실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춘천(부산)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동백섬 입구(남해) |
복개 구간 | 동백섬 입구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약 2.3km 정도) |
복개 년도 |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1994년) |
춘천(부산)(春川)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에서 발원하여 대천계곡(양운폭포) ~ 해운대신시가지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 해운대구청 뒤쪽 ~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호텔밀집단지를 거쳐 동백섬 입구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5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 구간은 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구간은 1994년에 주변에 해운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약 2.3km 정도이다. 지류는 협성프라임빌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 ~ 해리단길 시작점 ~ 동백섬 입구까지 흐르는 지류와 현재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53사단 위쪽에서 발원하여 53사단 안을 거쳐 신해운대역 앞 ~ 해운대신시가지 일대를 거쳐 장산역 일대까지 흐르는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춘천은 강원도 도청이 소재한 도시인 춘천과 한자도 같지만 부산의 춘천과 강원도 춘천과는 아무런 역사적인 유래나 기록, 관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춘천 상류 구간 중 장산역 서편의 뒤쪽에서 대천공원 입구까지의 구간은 하천 주위로 잘 보전된 청정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 수온이 상승할 때와 강수량이 적어 물이 적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천 물이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마치 강원도 오지의 한 계곡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과거에 춘천은 수영강,낙동강,우동천과 함께 해운대해수욕장에 자연 모래를 공급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해안가 주위에 옹벽이 설치된 것과 함께 하천이 복개되고 상류의 대천계곡 입구에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모래공급이 불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해운대해수욕장의 규모가 축소되어 부산시에서는 매 년마다 모래를 외부에서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1) (2)
(1) 관련 게시물: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의 비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또한. 해운대 근해역의 파랑 특성이 지난 20년 동안 뚜렷하게 변한 것도 또 다른 침식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장기파랑모델인 WAM을 이용하여 얻은 파랑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일대의 평균파고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1년에 약 1.5cm씩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파고의 증가는 당장은 백사장 침식을 유발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사장이 현재에 비해 모래를 더 유실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춘천(부산)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동백섬 입구(남해) |
복개 구간 | 동백섬 입구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약 2.3km 정도) |
복개 년도 |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1994년) |
춘천(부산)(春川)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에서 발원하여 대천계곡(양운폭포) ~ 해운대신시가지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 해운대구청 뒤쪽 ~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호텔밀집단지를 거쳐 동백섬 입구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5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 구간은 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구간은 1994년에 주변에 해운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약 2.3km 정도이다. 지류는 협성프라임빌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 ~ 해리단길 시작점 ~ 동백섬 입구까지 흐르는 지류와 현재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53사단 위쪽에서 발원하여 53사단 안을 거쳐 신해운대역 앞 ~ 해운대신시가지 일대를 거쳐 장산역 일대까지 흐르는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춘천은 강원도 도청이 소재한 도시인 춘천과 한자도 같지만 부산의 춘천과 강원도 춘천과는 아무런 역사적인 유래나 기록, 관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춘천 상류 구간 중 장산역 서편의 뒤쪽에서 대천공원 입구까지의 구간은 하천 주위로 잘 보전된 청정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 수온이 상승할 때와 강수량이 적어 물이 적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천 물이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마치 강원도 오지의 한 계곡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과거에 춘천은 수영강,낙동강,우동천과 함께 해운대해수욕장에 자연 모래를 공급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해안가 주위에 옹벽이 설치된 것과 함께 하천이 복개되고 상류의 대천계곡 입구에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모래공급이 불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해운대해수욕장의 규모가 축소되어 부산시에서는 매 년마다 모래를 외부에서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1) (2)
(1) 관련 게시물: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의 비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또한. 해운대 근해역의 파랑 특성이 지난 20년 동안 뚜렷하게 변한 것도 또 다른 침식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장기파랑모델인 WAM을 이용하여 얻은 파랑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일대의 평균파고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1년에 약 1.5cm씩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파고의 증가는 당장은 백사장 침식을 유발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사장이 현재에 비해 모래를 더 유실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춘천(부산)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동백섬 입구(남해) |
복개 구간 | 동백섬 입구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약 2.3km 정도) |
복개 년도 |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1994년) |
춘천(부산)(春川)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에서 발원하여 대천계곡(양운폭포) ~ 해운대신시가지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 해운대구청 뒤쪽 ~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호텔밀집단지를 거쳐 동백섬 입구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5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 구간은 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구간은 1994년에 주변에 해운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약 2.3km 정도이다. 지류는 협성프라임빌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 ~ 해리단길 시작점 ~ 동백섬 입구까지 흐르는 지류와 현재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53사단 위쪽에서 발원하여 53사단 안을 거쳐 신해운대역 앞 ~ 해운대신시가지 일대를 거쳐 장산역 일대까지 흐르는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춘천은 강원도 도청이 소재한 도시인 춘천과 한자도 같지만 부산의 춘천과 강원도 춘천과는 아무런 역사적인 유래나 기록, 관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춘천 상류 구간 중 장산역 서편의 뒤쪽에서 대천공원 입구까지의 구간은 하천 주위로 잘 보전된 청정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 수온이 상승할 때와 강수량이 적어 물이 적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천 물이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마치 강원도 오지의 한 계곡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과거에 춘천은 수영강,낙동강,우동천과 함께 해운대해수욕장에 자연 모래를 공급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해안가 주위에 옹벽이 설치된 것과 함께 하천이 복개되고 상류의 대천계곡 입구에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모래공급이 불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해운대해수욕장의 규모가 축소되어 부산시에서는 매 년마다 모래를 외부에서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1) (2)
(1) 관련 게시물: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의 비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또한. 해운대 근해역의 파랑 특성이 지난 20년 동안 뚜렷하게 변한 것도 또 다른 침식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장기파랑모델인 WAM을 이용하여 얻은 파랑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일대의 평균파고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1년에 약 1.5cm씩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파고의 증가는 당장은 백사장 침식을 유발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사장이 현재에 비해 모래를 더 유실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춘천(부산)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동백섬 입구(남해) |
복개 구간 | 동백섬 입구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약 2.3km 정도) |
복개 년도 |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1994년) |
춘천(부산)(春川)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에서 발원하여 대천계곡(양운폭포) ~ 해운대신시가지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 해운대구청 뒤쪽 ~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호텔밀집단지를 거쳐 동백섬 입구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5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 구간은 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구간은 1994년에 주변에 해운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약 2.3km 정도이다. 지류는 협성프라임빌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 ~ 해리단길 시작점 ~ 동백섬 입구까지 흐르는 지류와 현재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53사단 위쪽에서 발원하여 53사단 안을 거쳐 신해운대역 앞 ~ 해운대신시가지 일대를 거쳐 장산역 일대까지 흐르는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춘천은 강원도 도청이 소재한 도시인 춘천과 한자도 같지만 부산의 춘천과 강원도 춘천과는 아무런 역사적인 유래나 기록, 관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춘천 상류 구간 중 장산역 서편의 뒤쪽에서 대천공원 입구까지의 구간은 하천 주위로 잘 보전된 청정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 수온이 상승할 때와 강수량이 적어 물이 적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천 물이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마치 강원도 오지의 한 계곡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과거에 춘천은 수영강,낙동강,우동천과 함께 해운대해수욕장에 자연 모래를 공급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해안가 주위에 옹벽이 설치된 것과 함께 하천이 복개되고 상류의 대천계곡 입구에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모래공급이 불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해운대해수욕장의 규모가 축소되어 부산시에서는 매 년마다 모래를 외부에서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1) (2)
(1) 관련 게시물: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의 비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또한. 해운대 근해역의 파랑 특성이 지난 20년 동안 뚜렷하게 변한 것도 또 다른 침식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장기파랑모델인 WAM을 이용하여 얻은 파랑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일대의 평균파고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1년에 약 1.5cm씩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파고의 증가는 당장은 백사장 침식을 유발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사장이 현재에 비해 모래를 더 유실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춘천(부산)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동백섬 입구(남해) |
복개 구간 | 동백섬 입구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약 2.3km 정도) |
복개 년도 |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1994년) |
춘천(부산)(春川)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좌4동 장산마을 위쪽에서 발원하여 대천계곡(양운폭포) ~ 해운대신시가지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 해운대구청 뒤쪽 ~ 해운대해수욕장 주변의 호텔밀집단지를 거쳐 동백섬 입구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5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동백섬 입구 ~ 동백섬 입구 도로 앞 구간은 1959년, 동백섬 입구 도로 앞 ~ 2호선 장산역 서편의 뒤쪽 구간은 1994년에 주변에 해운대 신도시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약 2.3km 정도이다. 지류는 협성프라임빌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운대도서관 우동분관 ~ 해리단길 시작점 ~ 동백섬 입구까지 흐르는 지류와 현재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있는 53사단 위쪽에서 발원하여 53사단 안을 거쳐 신해운대역 앞 ~ 해운대신시가지 일대를 거쳐 장산역 일대까지 흐르는 지류 등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춘천은 강원도 도청이 소재한 도시인 춘천과 한자도 같지만 부산의 춘천과 강원도 춘천과는 아무런 역사적인 유래나 기록, 관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춘천 상류 구간 중 장산역 서편의 뒤쪽에서 대천공원 입구까지의 구간은 하천 주위로 잘 보전된 청정자연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여름 수온이 상승할 때와 강수량이 적어 물이 적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천 물이 놀라울 정도로 맑아서 마치 강원도 오지의 한 계곡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과거에 춘천은 수영강,낙동강,우동천과 함께 해운대해수욕장에 자연 모래를 공급하는 곳 중 하나였지만 해안가 주위에 옹벽이 설치된 것과 함께 하천이 복개되고 상류의 대천계곡 입구에 대천공원이 조성되어 모래공급이 불가능해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해운대해수욕장의 규모가 축소되어 부산시에서는 매 년마다 모래를 외부에서 구입하여 공급하고 있다. (1) (2)
(1) 관련 게시물: 해운대 해수욕장 모래의 비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또한. 해운대 근해역의 파랑 특성이 지난 20년 동안 뚜렷하게 변한 것도 또 다른 침식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장기파랑모델인 WAM을 이용하여 얻은 파랑자료에 따르면 해운대 일대의 평균파고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1년에 약 1.5cm씩 높아지고 있으며, 이러한 파고의 증가는 당장은 백사장 침식을 유발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사장이 현재에 비해 모래를 더 유실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해간다고 할 수 있다.
길이 | 약 3.5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실제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
복개 년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2000년대 초반) |
남천(南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에서 발원하여 동광골프장 ~ 장백장미타워아파트 앞 ~ 대연램프 앞 ~ 대남교차로 위쪽 ~ 메가마트 남천점 앞을 거쳐 광안대교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59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구간은 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가 되었다. 지류는 현재 방치된 황령산 스노우캐슬 근처에서 발원하는 지류와 사자봉 일데에서 발원하여 신원에버그린아파트와 대우그린아파트 사이를 통과하는 지류, 냉수욕터 체육공원을 경유하는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또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1)
(1)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도로시설(램프,IC,JC 등)이나 소규모 공장, 고물상과 같은 오염유발 산업시설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섰기 때문에 하천이 보이는 구간과 복개구간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구간도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남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5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실제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
복개 년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2000년대 초반) |
남천(南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에서 발원하여 동광골프장 ~ 장백장미타워아파트 앞 ~ 대연램프 앞 ~ 대남교차로 위쪽 ~ 메가마트 남천점 앞을 거쳐 광안대교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59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구간은 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가 되었다. 지류는 현재 방치된 황령산 스노우캐슬 근처에서 발원하는 지류와 사자봉 일데에서 발원하여 신원에버그린아파트와 대우그린아파트 사이를 통과하는 지류, 냉수욕터 체육공원을 경유하는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또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1) (1)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도로시설(램프,IC,JC 등)이나 소규모 공장, 고물상과 같은 오염유발 산업시설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섰기 때문에 하천이 보이는 구간과 복개구간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구간도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남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5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실제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
복개 년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2000년대 초반) |
남천(南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에서 발원하여 동광골프장 ~ 장백장미타워아파트 앞 ~ 대연램프 앞 ~ 대남교차로 위쪽 ~ 메가마트 남천점 앞을 거쳐 광안대교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59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구간은 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가 되었다. 지류는 현재 방치된 황령산 스노우캐슬 근처에서 발원하는 지류와 사자봉 일데에서 발원하여 신원에버그린아파트와 대우그린아파트 사이를 통과하는 지류, 냉수욕터 체육공원을 경유하는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또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1) (1)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도로시설(램프,IC,JC 등)이나 소규모 공장, 고물상과 같은 오염유발 산업시설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섰기 때문에 하천이 보이는 구간과 복개구간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구간도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남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5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실제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
복개 년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2000년대 초반) |
남천(南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에서 발원하여 동광골프장 ~ 장백장미타워아파트 앞 ~ 대연램프 앞 ~ 대남교차로 위쪽 ~ 메가마트 남천점 앞을 거쳐 광안대교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59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구간은 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가 되었다. 지류는 현재 방치된 황령산 스노우캐슬 근처에서 발원하는 지류와 사자봉 일데에서 발원하여 신원에버그린아파트와 대우그린아파트 사이를 통과하는 지류, 냉수욕터 체육공원을 경유하는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또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1) (1)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도로시설(램프,IC,JC 등)이나 소규모 공장, 고물상과 같은 오염유발 산업시설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섰기 때문에 하천이 보이는 구간과 복개구간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구간도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남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59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실제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
복개 년도 |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2000년대 초반) |
남천(南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안창약수터 위쪽에서 발원하여 동광골프장 ~ 장백장미타워아파트 앞 ~ 대연램프 앞 ~ 대남교차로 위쪽 ~ 메가마트 남천점 앞을 거쳐 광안대교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59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광안대교 입구 앞 ~ 대남교차로 위쪽(약 900m) 구간은 1980년대, 동광골프장 위쪽 ~ 산새소리어린이집 뒤쪽(약 1.77km)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가 되었다. 지류는 현재 방치된 황령산 스노우캐슬 근처에서 발원하는 지류와 사자봉 일데에서 발원하여 신원에버그린아파트와 대우그린아파트 사이를 통과하는 지류, 냉수욕터 체육공원을 경유하는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또한. 남천은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중 상당수가 일부분만 모습을 드러내거나 복개된 경우가 많아 복개하천이라고 보기 애매한 부분이 상당수 존재한다. (1) (1) 대남교차로 위쪽부터 황령터널까지의 구간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상당수가 도로시설(램프,IC,JC 등)이나 소규모 공장, 고물상과 같은 오염유발 산업시설들이 불규칙하게 들어섰기 때문에 하천이 보이는 구간과 복개구간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하는 구간도 존재한다고 할 것이다.
길이 | 약 4.1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동천고등학교 앞 ~ UN조각공원 뒤쪽(1.9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대연천(大淵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 못골못 ~ 대연역 뒤쪽 ~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고 옆 ~ LG메트로시티아파트 앞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광안대교 입구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15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동천고등학교 앞에서 ~ UN조각공원 뒤쪽까지이며(1.9km),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연천의 미복개 구간 중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자이 아파트 뒤쪽까지의 구간은 최근 생태하천을 조성하였지만 물이 유입되지 않아 평상시와 갈수기에는 오수가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주변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하천에 검은색을 띄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2)
(1) 언젠가 대연천의 전 구간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하고 과거 상류에 위치하였던 자연 못인 못골못까지 모두 복원하면 언젠가 이 곳에도 황령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대연고 밑의 대연수목전시관에는 인공 수로가 있지만 이 곳 수로를 흐르던 물은 대연천 바로 앞까지 도달한 후 대연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밑으로 유입된다.
○대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동천고등학교 앞 ~ UN조각공원 뒤쪽(1.9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대연천(大淵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 못골못 ~ 대연역 뒤쪽 ~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고 옆 ~ LG메트로시티아파트 앞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광안대교 입구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15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동천고등학교 앞에서 ~ UN조각공원 뒤쪽까지이며(1.9km),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연천의 미복개 구간 중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자이 아파트 뒤쪽까지의 구간은 최근 생태하천을 조성하였지만 물이 유입되지 않아 평상시와 갈수기에는 오수가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주변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하천에 검은색을 띄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2) (1) 언젠가 대연천의 전 구간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하고 과거 상류에 위치하였던 자연 못인 못골못까지 모두 복원하면 언젠가 이 곳에도 황령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대연고 밑의 대연수목전시관에는 인공 수로가 있지만 이 곳 수로를 흐르던 물은 대연천 바로 앞까지 도달한 후 대연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밑으로 유입된다.
○대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동천고등학교 앞 ~ UN조각공원 뒤쪽(1.9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대연천(大淵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 못골못 ~ 대연역 뒤쪽 ~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고 옆 ~ LG메트로시티아파트 앞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광안대교 입구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15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동천고등학교 앞에서 ~ UN조각공원 뒤쪽까지이며(1.9km),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연천의 미복개 구간 중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자이 아파트 뒤쪽까지의 구간은 최근 생태하천을 조성하였지만 물이 유입되지 않아 평상시와 갈수기에는 오수가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주변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하천에 검은색을 띄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2) (1) 언젠가 대연천의 전 구간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하고 과거 상류에 위치하였던 자연 못인 못골못까지 모두 복원하면 언젠가 이 곳에도 황령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대연고 밑의 대연수목전시관에는 인공 수로가 있지만 이 곳 수로를 흐르던 물은 대연천 바로 앞까지 도달한 후 대연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밑으로 유입된다.
○대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동천고등학교 앞 ~ UN조각공원 뒤쪽(1.9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대연천(大淵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 못골못 ~ 대연역 뒤쪽 ~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고 옆 ~ LG메트로시티아파트 앞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광안대교 입구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15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동천고등학교 앞에서 ~ UN조각공원 뒤쪽까지이며(1.9km),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연천의 미복개 구간 중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자이 아파트 뒤쪽까지의 구간은 최근 생태하천을 조성하였지만 물이 유입되지 않아 평상시와 갈수기에는 오수가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주변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하천에 검은색을 띄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2) (1) 언젠가 대연천의 전 구간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하고 과거 상류에 위치하였던 자연 못인 못골못까지 모두 복원하면 언젠가 이 곳에도 황령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대연고 밑의 대연수목전시관에는 인공 수로가 있지만 이 곳 수로를 흐르던 물은 대연천 바로 앞까지 도달한 후 대연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밑으로 유입된다.
○대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동천고등학교 앞 ~ UN조각공원 뒤쪽(1.9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대연천(大淵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 못골못 ~ 대연역 뒤쪽 ~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고 옆 ~ LG메트로시티아파트 앞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광안대교 입구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15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동천고등학교 앞에서 ~ UN조각공원 뒤쪽까지이며(1.9km),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연천의 미복개 구간 중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자이 아파트 뒤쪽까지의 구간은 최근 생태하천을 조성하였지만 물이 유입되지 않아 평상시와 갈수기에는 오수가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주변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하천에 검은색을 띄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2) (1) 언젠가 대연천의 전 구간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하고 과거 상류에 위치하였던 자연 못인 못골못까지 모두 복원하면 언젠가 이 곳에도 황령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대연고 밑의 대연수목전시관에는 인공 수로가 있지만 이 곳 수로를 흐르던 물은 대연천 바로 앞까지 도달한 후 대연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밑으로 유입된다.
○대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동천고등학교 앞 ~ UN조각공원 뒤쪽(1.9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대연천(大淵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 못골못 ~ 대연역 뒤쪽 ~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고 옆 ~ LG메트로시티아파트 앞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광안대교 입구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15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동천고등학교 앞에서 ~ UN조각공원 뒤쪽까지이며(1.9km),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연천의 미복개 구간 중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자이 아파트 뒤쪽까지의 구간은 최근 생태하천을 조성하였지만 물이 유입되지 않아 평상시와 갈수기에는 오수가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주변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하천에 검은색을 띄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2) (1) 언젠가 대연천의 전 구간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하고 과거 상류에 위치하였던 자연 못인 못골못까지 모두 복원하면 언젠가 이 곳에도 황령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대연고 밑의 대연수목전시관에는 인공 수로가 있지만 이 곳 수로를 흐르던 물은 대연천 바로 앞까지 도달한 후 대연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밑으로 유입된다.
○대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수영구 남천1동 광안대교 입구 앞(남해) |
복개 구간 | 동천고등학교 앞 ~ UN조각공원 뒤쪽(1.9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대연천(大淵川)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동천고등학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 못골못 ~ 대연역 뒤쪽 ~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고 옆 ~ LG메트로시티아파트 앞의 방향으로 흐르다가 광안대교 입구 앞에서 남해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15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동천고등학교 앞에서 ~ UN조각공원 뒤쪽까지이며(1.9km),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대연천의 미복개 구간 중 UN조각공원 뒤쪽 ~ 대연자이 아파트 뒤쪽까지의 구간은 최근 생태하천을 조성하였지만 물이 유입되지 않아 평상시와 갈수기에는 오수가 흐르고 악취가 진동하며,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주변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하천에 검은색을 띄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1) (2) (1) 언젠가 대연천의 전 구간에서 복개를 걷어내고 복원하고 과거 상류에 위치하였던 자연 못인 못골못까지 모두 복원하면 언젠가 이 곳에도 황령산에서 내려온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 대연고 밑의 대연수목전시관에는 인공 수로가 있지만 이 곳 수로를 흐르던 물은 대연천 바로 앞까지 도달한 후 대연천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밑으로 유입된다.
길이 | 약 2.5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1동 봉암사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4동 부산골프클럽 뒤쪽(동천) |
복개 구간 | 봉암사 뒤쪽(복개시작점) ~ 부산골프클럽 뒤쪽(2.35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문현천(門峴川) 은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1동 봉암사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문현로 일대 ~ 문현베스티움아파트 뒤쪽 ~ 번영로 입구 ~ 문현동 곱창골목을 거쳐 부산골프클럽 뒤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51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봉암사 뒤쪽(복개시작점)에서 ~ 부산골프클럽 뒤쪽까지(2.35km)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문현천은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어 물이 흐르는 모습을 사실상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류 발원지쪽 계곡에도 폭우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물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지류는 성암사쪽 지천과 지게골 지천이 존재한다. (1) (2)
(1) 사실 물만골 계곡을 제외하고는 황령산에서 발원한 계곡들은 대부분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로 흘러간다. 그 이유는 황령산 줄기 밑에 번영로와 황령터널이 들어선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황령산 자체가 대부분 골이 깊지 않은 영향도 있다고 할 것이다.
과거 자연못이 있었던 못골못 쪽의 계곡뿐만 아니라 마하사 계곡, 장대골 계곡, 황령산레포츠공원쪽 계곡 등 황령산의 여러 계곡들이 수량이 적은 편에 속하며 비교적으로 긴 남천 역시 도시개발로 자연 상태의 하천은 얼마 남지 않은 영향으로 대부분 가물어 있다.)
○문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5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1동 봉암사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4동 부산골프클럽 뒤쪽(동천) |
복개 구간 | 봉암사 뒤쪽(복개시작점) ~ 부산골프클럽 뒤쪽(2.35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문현천(門峴川) 은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1동 봉암사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문현로 일대 ~ 문현베스티움아파트 뒤쪽 ~ 번영로 입구 ~ 문현동 곱창골목을 거쳐 부산골프클럽 뒤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51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봉암사 뒤쪽(복개시작점)에서 ~ 부산골프클럽 뒤쪽까지(2.35km)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문현천은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어 물이 흐르는 모습을 사실상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류 발원지쪽 계곡에도 폭우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물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지류는 성암사쪽 지천과 지게골 지천이 존재한다. (1) (2) (1) 사실 물만골 계곡을 제외하고는 황령산에서 발원한 계곡들은 대부분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로 흘러간다. 그 이유는 황령산 줄기 밑에 번영로와 황령터널이 들어선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황령산 자체가 대부분 골이 깊지 않은 영향도 있다고 할 것이다. 과거 자연못이 있었던 못골못 쪽의 계곡뿐만 아니라 마하사 계곡, 장대골 계곡, 황령산레포츠공원쪽 계곡 등 황령산의 여러 계곡들이 수량이 적은 편에 속하며 비교적으로 긴 남천 역시 도시개발로 자연 상태의 하천은 얼마 남지 않은 영향으로 대부분 가물어 있다.)
○문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5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1동 봉암사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4동 부산골프클럽 뒤쪽(동천) |
복개 구간 | 봉암사 뒤쪽(복개시작점) ~ 부산골프클럽 뒤쪽(2.35km)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문현천(門峴川) 은 부산광역시 남구 문현1동 봉암사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문현로 일대 ~ 문현베스티움아파트 뒤쪽 ~ 번영로 입구 ~ 문현동 곱창골목을 거쳐 부산골프클럽 뒤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51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봉암사 뒤쪽(복개시작점)에서 ~ 부산골프클럽 뒤쪽까지(2.35km)이며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문현천은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어 물이 흐르는 모습을 사실상 찾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상류 발원지쪽 계곡에도 폭우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물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지류는 성암사쪽 지천과 지게골 지천이 존재한다. (1) (2) (1) 사실 물만골 계곡을 제외하고는 황령산에서 발원한 계곡들은 대부분 수량이 풍부하지 않은 상태로 흘러간다. 그 이유는 황령산 줄기 밑에 번영로와 황령터널이 들어선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도 황령산 자체가 대부분 골이 깊지 않은 영향도 있다고 할 것이다. 과거 자연못이 있었던 못골못 쪽의 계곡뿐만 아니라 마하사 계곡, 장대골 계곡, 황령산레포츠공원쪽 계곡 등 황령산의 여러 계곡들이 수량이 적은 편에 속하며 비교적으로 긴 남천 역시 도시개발로 자연 상태의 하천은 얼마 남지 않은 영향으로 대부분 가물어 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전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전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전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전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전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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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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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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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전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길이 | 약 4.4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부산시민공원 구간(0.48km) 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3.98 km 정도)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전포천(田浦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초읍동당산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어린이공원 앞 ~ 초연근린공원 앞 ~ 부산시민공원 뒤쪽 ~ 서면 대중교통전용지구 일대를 거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 범내골램프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46km이고, 복개는 현재 부산시민공원 안에 위치한 구간(0.48km) 을 제외한 모근 구간이 복개(약 3.98 km 정도)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되었다. 지류는 원당골 방향 지류 등 여러 지류들이 존재한다.
전포천 물길 중 연지동 구간에는 과거 화지언(和池堰) 이라는 오래된 못과 신지언(新池堰) 이라는 또 다른 오래된 못이 있었는데(1960년대의 지도까지 화지언과 신지언 두 개의 못이 표시된다.) (1), 이러한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2)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3)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길이 | 약 6.0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수원지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2동 서면로 남쪽 끝(동천) |
복개 구간 | 어린이대공원 옆 ~ 서면로 남쪽 끝(4.13km) |
복개 년도 | 부산시민공원 서편 ~ 서면로 남쪽 끝(1980년대) 어린이대공원 옆 ~ 부산시민공원 서편(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부전천(釜田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수원지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어린이대공원 옆 복개시작점 ~ 부산시민공원 서편 ~ 영광도서 앞 ~ 서면로 일대를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2동 서면로 남쪽 끝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0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어린이대공원 옆 ~ 서면로 남쪽 끝(4.13km)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부산시민공원 서편 ~ 서면로 남쪽 끝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어린이대공원 옆 ~ 부산시민공원 서편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14년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한 후 공원의 서쪽 끝부분으로 부전천이 흐르도록 복원되었지만 실제의 물줄기는 이보다 조금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2~3차선의 골목길(새싹로92번길) 이고, 초읍 회전교차로 옆쪽부터 세동한신아파트 뒤쪽까지는 \'초읍천로\' 의 경로를 따라 흐른다.
일부에서는 부전천을 동천의 본류 물줄기라고 보기도 하지만(1) 실제 동천의 본류 물줄기는 백양산 애전봉 밑에서 발원하여 선암사 계곡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하고, 서면네오스포 앞을 거쳐 광무교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가 진정한 본류 물줄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2) 관련 백과: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관련 게시물: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동천 답사기 1/20
○부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0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수원지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2동 서면로 남쪽 끝(동천) |
복개 구간 | 어린이대공원 옆 ~ 서면로 남쪽 끝(4.13km) |
복개 년도 | 부산시민공원 서편 ~ 서면로 남쪽 끝(1980년대) 어린이대공원 옆 ~ 부산시민공원 서편(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부전천(釜田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수원지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어린이대공원 옆 복개시작점 ~ 부산시민공원 서편 ~ 영광도서 앞 ~ 서면로 일대를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2동 서면로 남쪽 끝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0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어린이대공원 옆 ~ 서면로 남쪽 끝(4.13km)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부산시민공원 서편 ~ 서면로 남쪽 끝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어린이대공원 옆 ~ 부산시민공원 서편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14년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한 후 공원의 서쪽 끝부분으로 부전천이 흐르도록 복원되었지만 실제의 물줄기는 이보다 조금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2~3차선의 골목길(새싹로92번길) 이고, 초읍 회전교차로 옆쪽부터 세동한신아파트 뒤쪽까지는 \\\'초읍천로\\\' 의 경로를 따라 흐른다. 일부에서는 부전천을 동천의 본류 물줄기라고 보기도 하지만(1) 실제 동천의 본류 물줄기는 백양산 애전봉 밑에서 발원하여 선암사 계곡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하고, 서면네오스포 앞을 거쳐 광무교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가 진정한 본류 물줄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2) 관련 백과: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관련 게시물: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동천 답사기 1/20
길이 | 약 6.0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수원지 뒤쪽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2동 서면로 남쪽 끝(동천) |
복개 구간 | 어린이대공원 옆 ~ 서면로 남쪽 끝(4.13km) |
복개 년도 | 부산시민공원 서편 ~ 서면로 남쪽 끝(1980년대) 어린이대공원 옆 ~ 부산시민공원 서편(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부전천(釜田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성지곡수원지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어린이대공원 옆 복개시작점 ~ 부산시민공원 서편 ~ 영광도서 앞 ~ 서면로 일대를 흐르다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2동 서면로 남쪽 끝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0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어린이대공원 옆 ~ 서면로 남쪽 끝(4.13km)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부산시민공원 서편 ~ 서면로 남쪽 끝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어린이대공원 옆 ~ 부산시민공원 서편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2014년 부산시민공원이 개장한 후 공원의 서쪽 끝부분으로 부전천이 흐르도록 복원되었지만 실제의 물줄기는 이보다 조금 서쪽으로 약간 떨어진 2~3차선의 골목길(새싹로92번길) 이고, 초읍 회전교차로 옆쪽부터 세동한신아파트 뒤쪽까지는 \'초읍천로\' 의 경로를 따라 흐른다.
일부에서는 부전천을 동천의 본류 물줄기라고 보기도 하지만(1) 실제 동천의 본류 물줄기는 백양산 애전봉 밑에서 발원하여 선암사 계곡을 따라 흘러가기 시작하고, 서면네오스포 앞을 거쳐 광무교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가 진정한 본류 물줄기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2) 관련 백과: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관련 게시물: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동천 답사기 1/20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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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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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동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9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동천(東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3동 백양산 애전봉 밑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 부암삼성래미안아파트 앞 ~ 당감종합사회복지관 앞 ~ 진양사거리 옆 ~ 서면네오스포 앞 ~ 광무교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자성대부두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96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선암사 밑 ~ 광무교 앞(약 6.03km)까지의 구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로는 백양터널 서쪽 방향의 지천을 비롯하여 천안사 방향,부산국제고 방향,동원초 방향,1번 지천(동평로 굴다리 방향) 등의 여러 지류가 존재한다. 동천은 한 때 5급수 수준이었다가 2010년 5월부터 부산시에서 북항의 해수를 하루 5만 톤씩 끌어와서 3만 톤은 광무교 하류에 폭포 형태로 방류하고, 나머지 2만 톤은 각각 문현금융단지와 이마트 앞에 분수 형태로 방류하고 있었으며, 광무교에서 동천하류까지는 준설작업을 벌였고, 하천 주변인 범3호교에서 범일교 구간(965m)에는 산책로와 녹지공간도 조성하는 등의 환경 개선사업을 시행하였지만 1년만에 다시 악취를 풍기게 되었다. 그 후 수질환경 개선사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동천의 수질이 4급수 수준인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 3.0㎎/ℓ으로 개선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동천일대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이 발표되었지만, 당시 서면 일대의 상인들이 도로를 걷어내면 차량 통행이 안 되어 유동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사 기간동안 피해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반발하자 생태하천 대신 기능분리형 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하는 계획으로 변경하였고, 2018년 오거돈 전 시장이 취임한 후 환경부는 \\\"이층형 하천은 생태하천 복원으로 볼 수 없어 국비를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후 생태하천 조성사업은 2022년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
(1) 관련 백과: 동천 (부산)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동천(부산) - 나무위키 (namu.wiki) (2) 관련 기사: [팩트체크-영상뭐라노] 부전천의 미래는 생태 하천? 인공 실개천? : 국제신문 (kookje.co.kr)
○가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1) 관련 백과: 밀면 - 나무위키 (namu.wiki)
○가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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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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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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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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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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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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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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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동천) |
복개 구간 |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가야천(伽爺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가야2동 가야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암1동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7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가야고 앞 ~ 2호선 부암역 뒤쪽 옆(약 2.77 km 정도)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동의대쪽 지천, 가야벽산아파트 옆쪽⋅앞쪽⋅뒤쪽 지천, 가야역 뒤쪽 지천 등 여러 크고 작은 지천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천 물줄기가 주로 속해있는 가야동이 가야 밀면이 최초로 탄생한 지역으로 부산 곳곳 뿐만 아니라 대구,서울,창원 등의 여러 지역에서 부산식 밀면집을 가야밀면이라는 상호를 가지고 영업하는 경우를 자주 찾아볼 수 있다. (1)
(1) 관련 백과: 밀면 - 나무위키 (namu.wiki)
○견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44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2동 관음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동천) |
복개 구간 |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약 2.13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견우천(어느 한자인지 밝혀지지 않았음, 한자 \\\'견우\\\'를 아시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2동 관음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부산철도차량정비창 뒤쪽 ~ 범내골역 앞을 거쳐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에서 동천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44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약 2.13 km 정도) 이고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부산철도차량정비창 옆쪽을 흐르는 구간은 콘크리트 수로로 흐르거나 일부만 복개된 구간도 있는 등으로 완전히 복개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견우천은 과거 호랑이가 살았을 정도로 골이 깊었던 범내골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전혀 다른 계곡이다.(범내골 계곡은 이보다도 더 남쪽에 있다. 범내골 계곡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범내골 부분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1) (1) 부산철도차량정비창 옆쪽을 흐르는 구간은 주택가 밑에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고 있고, 전체의 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낸 부분도 있어 완전하게 복개되었다고 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견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44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2동 관음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동천) |
복개 구간 |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약 2.13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견우천(어느 한자인지 밝혀지지 않았음, 한자 \\\\\\\'견우\\\\\\\'를 아시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2동 관음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부산철도차량정비창 뒤쪽 ~ 범내골역 앞을 거쳐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에서 동천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44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약 2.13 km 정도) 이고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부산철도차량정비창 옆쪽을 흐르는 구간은 콘크리트 수로로 흐르거나 일부만 복개된 구간도 있는 등으로 완전히 복개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견우천은 과거 호랑이가 살았을 정도로 골이 깊었던 범내골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전혀 다른 계곡이다.(범내골 계곡은 이보다도 더 남쪽에 있다. 범내골 계곡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범내골 부분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1)
(1) 부산철도차량정비창 옆쪽을 흐르는 구간은 주택가 밑에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고 있고, 전체의 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낸 부분도 있어 완전하게 복개되었다고 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견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44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2동 관음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동천) |
복개 구간 |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약 2.13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견우천(어느 한자인지 밝혀지지 않았음, 한자 \\\\\\\'견우\\\\\\\'를 아시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2동 관음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부산철도차량정비창 뒤쪽 ~ 범내골역 앞을 거쳐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에서 동천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44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절골마을 복개시작점 ~ 대원1단지 아파트 뒤쪽(약 2.13 km 정도) 이고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부산철도차량정비창 옆쪽을 흐르는 구간은 콘크리트 수로로 흐르거나 일부만 복개된 구간도 있는 등으로 완전히 복개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견우천은 과거 호랑이가 살았을 정도로 골이 깊었던 범내골과는 어떠한 관련도 없는 전혀 다른 계곡이다.(범내골 계곡은 이보다도 더 남쪽에 있다. 범내골 계곡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범내골 부분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1)
(1) 부산철도차량정비창 옆쪽을 흐르는 구간은 주택가 밑에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고 있고, 전체의 반 정도만 모습을 드러낸 부분도 있어 완전하게 복개되었다고 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학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10.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2동 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도매시장 뒤쪽(낙동강) |
복개 구간 |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약 2.83km 정도),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일대(약 360m 정도) |
복개 년도 |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구 주령터널 뒤쪽(1970년대) 주령터널 뒤쪽 ~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1980~1990년대) (1)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1990년대) |
호 학장천(鶴章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2동 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도매시장 뒤쪽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7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약 2.83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일대의 일부 구간(약 360m 정도)이며 각각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구 주령터널 뒤쪽 구간은 1970년대에, 주령터널 뒤쪽 ~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까지의 구간은 1980~1990년대에, (1)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학장천의 발원지 쪽 구간(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 ~ 구 주령터널 옆쪽)은 행정구역상 사상구가 아닌 부산진구에 속해 있어 언젠가 수계에 따른 행정구역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행정구역상 연제구에 속해 있는 부산여상 뒤쪽에서 발원하여 수영구 망미동 일대를 거쳐 수영강으로 흐르는 명칭미상의 물길처럼 행정구역과 수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2) (1) 견우천,호계천과 더불어 학장천도 주례동 일대의 경부선 철길 남쪽의 빈민가를 흐르는 구간에서는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근처 주민이 아니라면 마곡천(쌍미천)의 한 지류로 잘못 알게 되는 부산여상에서 발원한 하천과 마찬가지로 학장천의 상류도 이 쪽에 오랫동안 살던 주민이 아니면 이 물길이 학장천 물길이 아니라 가야천 물길로 잘못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이유는 이 하천의 발원지와 밑의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이 행정구역상 부산진구에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10.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2동 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도매시장 뒤쪽(낙동강) |
복개 구간 |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약 2.83km 정도),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일대(약 360m 정도) |
복개 년도 |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구 주령터널 뒤쪽(1970년대) 주령터널 뒤쪽 ~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1980~1990년대) (1)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1990년대) |
호 학장천(鶴章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2동 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도매시장 뒤쪽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7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약 2.83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일대의 일부 구간(약 360m 정도)이며 각각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구 주령터널 뒤쪽 구간은 1970년대에, 주령터널 뒤쪽 ~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까지의 구간은 1980~1990년대에, (1)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학장천의 발원지 쪽 구간(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 ~ 구 주령터널 옆쪽)은 행정구역상 사상구가 아닌 부산진구에 속해 있어 언젠가 수계에 따른 행정구역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행정구역상 연제구에 속해 있는 부산여상 뒤쪽에서 발원하여 수영구 망미동 일대를 거쳐 수영강으로 흐르는 명칭미상의 물길처럼 행정구역과 수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2) (1) 견우천,호계천과 더불어 학장천도 주례동 일대의 경부선 철길 남쪽의 빈민가를 흐르는 구간에서는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근처 주민이 아니라면 마곡천(쌍미천)의 한 지류로 잘못 알게 되는 부산여상에서 발원한 하천과 마찬가지로 학장천의 상류도 이 쪽에 오랫동안 살던 주민이 아니면 이 물길이 학장천 물길이 아니라 가야천 물길로 잘못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이유는 이 하천의 발원지와 밑의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이 행정구역상 부산진구에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10.7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2동 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도매시장 뒤쪽(낙동강) |
복개 구간 |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약 2.83km 정도),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일대(약 360m 정도) |
복개 년도 |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구 주령터널 뒤쪽(1970년대) 주령터널 뒤쪽 ~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1980~1990년대) (1)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1990년대) |
호 학장천(鶴章川)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개금2동 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 엄궁농산물도매시장 뒤쪽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7km 정도이고, 복개 구간은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약 2.83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엄궁농산물도매시장 일대의 일부 구간(약 360m 정도)이며 각각 개금대동아파트 뒤쪽 ~ 구 주령터널 뒤쪽 구간은 1970년대에, 주령터널 뒤쪽 ~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까지의 구간은 1980~1990년대에, (1) 주례역 옆 골목길 복개 주차장 ~ 럭키주례아파트 뒤쪽 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학장천의 발원지 쪽 구간(부산진구 자원회수센터 뒤쪽 계곡 발원지 ~ 구 주령터널 옆쪽)은 행정구역상 사상구가 아닌 부산진구에 속해 있어 언젠가 수계에 따른 행정구역 조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는 행정구역상 연제구에 속해 있는 부산여상 뒤쪽에서 발원하여 수영구 망미동 일대를 거쳐 수영강으로 흐르는 명칭미상의 물길처럼 행정구역과 수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2) (1) 견우천,호계천과 더불어 학장천도 주례동 일대의 경부선 철길 남쪽의 빈민가를 흐르는 구간에서는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근처 주민이 아니라면 마곡천(쌍미천)의 한 지류로 잘못 알게 되는 부산여상에서 발원한 하천과 마찬가지로 학장천의 상류도 이 쪽에 오랫동안 살던 주민이 아니면 이 물길이 학장천 물길이 아니라 가야천 물길로 잘못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이유는 이 하천의 발원지와 밑의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이 행정구역상 부산진구에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감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사상근린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사상근린공원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약 2.68km 정도) |
복개 년도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사상근린공원 앞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2000년대 중반으로 추정) |
감전천(甘田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사상근린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2호선 감전역 뒤쪽 ~ 부산새벽시장 입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5km이고, 복개 구간은 사상근린공원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약 2.68km 정도)까지 이며, 각각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사상근린공원 앞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중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감전천은 발원지 쪽 복개되지 않은 계곡 부분도 폭우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시사철 물이 흐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2)
(1) 본래 감전천은 하천 폭이 좁아 물이 아주 적게 흐르거나 물이 흐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사상근린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사상근린공원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약 2.68km 정도) |
복개 년도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사상근린공원 앞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2000년대 중반으로 추정) |
감전천(甘田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사상근린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2호선 감전역 뒤쪽 ~ 부산새벽시장 입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5km이고, 복개 구간은 사상근린공원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약 2.68km 정도)까지 이며, 각각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사상근린공원 앞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중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감전천은 발원지 쪽 복개되지 않은 계곡 부분도 폭우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시사철 물이 흐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2)
(1) 본래 감전천은 하천 폭이 좁아 물이 아주 적게 흐르거나 물이 흐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사상근린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사상근린공원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약 2.68km 정도) |
복개 년도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사상근린공원 앞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2000년대 중반으로 추정) |
감전천(甘田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사상근린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2호선 감전역 뒤쪽 ~ 부산새벽시장 입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5km이고, 복개 구간은 사상근린공원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약 2.68km 정도)까지 이며, 각각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 ~ 일공공일중고차아울렛 뒤쪽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사상근린공원 앞 ~ 감전LH아파트 뒤쪽 굴다리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중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감전천은 발원지 쪽 복개되지 않은 계곡 부분도 폭우가 올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시사철 물이 흐르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2)
(1) 본래 감전천은 하천 폭이 좁아 물이 아주 적게 흐르거나 물이 흐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괘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04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의생명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산업교 앞(삼락천) |
복개 구간 | 태능자원 옆 ~ 산업교 앞(약 2.31km 정도)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약 367m 정도) |
복개 년도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 ~ 산업교 앞(1960년대로 추정) 태능자원 옆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괘법천(掛法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의생명관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태능자원 옆 복개 시작점 ~ 경부선 사상역 앞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을 거쳐 산업교 앞에서 삼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04km 정도 이고, 복개된 구간은 태능자원 옆 ~ 산업교 앞(약 2.31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약 367m 정도)이며, 각각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 ~ 산업교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태능자원 옆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1990년대 중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은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산천과 더불어 신라대 캠퍼스 안을 관통하여 흐르는 하천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라대 캠퍼스 안 구간은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하천이며, 감전동 쪽에는 조선시대부터 생긴 둑에 일제강점기부터 포퓰러나무를 심었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과거에는 이 일대에 유명한 집창촌이 있었다고 한다.(현재 집창촌은 없어지고 이 일대가 포퓰러 문화거리로 조성되었다.) (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괘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04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의생명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산업교 앞(삼락천) |
복개 구간 | 태능자원 옆 ~ 산업교 앞(약 2.31km 정도)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약 367m 정도) |
복개 년도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 ~ 산업교 앞(1960년대로 추정) 태능자원 옆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괘법천(掛法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의생명관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태능자원 옆 복개 시작점 ~ 경부선 사상역 앞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을 거쳐 산업교 앞에서 삼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04km 정도 이고, 복개된 구간은 태능자원 옆 ~ 산업교 앞(약 2.31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약 367m 정도)이며, 각각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 ~ 산업교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태능자원 옆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1990년대 중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은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산천과 더불어 신라대 캠퍼스 안을 관통하여 흐르는 하천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라대 캠퍼스 안 구간은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하천이며, 감전동 쪽에는 조선시대부터 생긴 둑에 일제강점기부터 포퓰러나무를 심었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과거에는 이 일대에 유명한 집창촌이 있었다고 한다.(현재 집창촌은 없어지고 이 일대가 포퓰러 문화거리로 조성되었다.) (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괘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04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의생명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산업교 앞(삼락천) |
복개 구간 | 태능자원 옆 ~ 산업교 앞(약 2.31km 정도)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약 367m 정도) |
복개 년도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 ~ 산업교 앞(1960년대로 추정) 태능자원 옆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괘법천(掛法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의생명관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태능자원 옆 복개 시작점 ~ 경부선 사상역 앞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을 거쳐 산업교 앞에서 삼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04km 정도 이고, 복개된 구간은 태능자원 옆 ~ 산업교 앞(약 2.31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약 367m 정도)이며, 각각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 ~ 산업교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태능자원 옆 ~ 구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1990년대 중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신라대학교 캠퍼스 내 구간은 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산천과 더불어 신라대 캠퍼스 안을 관통하여 흐르는 하천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신라대 캠퍼스 안 구간은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하천이며, 감전동 쪽에는 조선시대부터 생긴 둑에 일제강점기부터 포퓰러나무를 심었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일본인들이 이 일대를 포푸라마치(포퓰러거리) 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과거에는 이 일대에 유명한 집창촌이 있었다고 한다.(현재 집창촌은 없어지고 이 일대가 포퓰러 문화거리로 조성되었다.) (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운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 ~ 삼락생태공원 일대(약 2.43km 정도) |
복개 년도 |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1970년대)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1990~2000년대) (1) |
운산천(雲山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신라대 안 ~ 능인사 옆 계곡 ~ 사상초 옆쪽 ~ 괘법2차한신아파트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8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 구간은 1970년대에,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또한. 운산천 상류 능인사 옆 계곡은 계곡 옆에 신라대의 폐수배출구이지만 이곳에 신라대에서 폐수를 배출하지 않는 한 비교적으로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도 마치 강원도의 한 계곡과 같이 1급수 수준의 물이 흐르고 물 속에는 다슬기가 살고 있는 등으로 도심 속 청정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운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 ~ 삼락생태공원 일대(약 2.43km 정도) |
복개 년도 |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1970년대)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1990~2000년대) (1) |
운산천(雲山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신라대 안 ~ 능인사 옆 계곡 ~ 사상초 옆쪽 ~ 괘법2차한신아파트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8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 구간은 1970년대에,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또한. 운산천 상류 능인사 옆 계곡은 계곡 옆에 신라대의 폐수배출구이지만 이곳에 신라대에서 폐수를 배출하지 않는 한 비교적으로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도 마치 강원도의 한 계곡과 같이 1급수 수준의 물이 흐르고 물 속에는 다슬기가 살고 있는 등으로 도심 속 청정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운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 ~ 삼락생태공원 일대(약 2.43km 정도) |
복개 년도 |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1970년대)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1990~2000년대) (1) |
운산천(雲山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신라대 안 ~ 능인사 옆 계곡 ~ 사상초 옆쪽 ~ 괘법2차한신아파트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8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 구간은 1970년대에,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또한. 운산천 상류 능인사 옆 계곡은 계곡 옆에 신라대의 폐수배출구이지만 이곳에 신라대에서 폐수를 배출하지 않는 한 비교적으로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도 마치 강원도의 한 계곡과 같이 1급수 수준의 물이 흐르고 물 속에는 다슬기가 살고 있는 등으로 도심 속 청정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운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 ~ 삼락생태공원 일대(약 2.43km 정도) |
복개 년도 |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1970년대)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1990~2000년대) (1) |
운산천(雲山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신라대 안 ~ 능인사 옆 계곡 ~ 사상초 옆쪽 ~ 괘법2차한신아파트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8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 구간은 1970년대에,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또한. 운산천 상류 능인사 옆 계곡은 계곡 옆에 신라대의 폐수배출구이지만 이곳에 신라대에서 폐수를 배출하지 않는 한 비교적으로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도 마치 강원도의 한 계곡과 같이 1급수 수준의 물이 흐르고 물 속에는 다슬기가 살고 있는 등으로 도심 속 청정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운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9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삼락생태공원 일대(낙동강) |
복개 구간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 ~ 삼락생태공원 일대(약 2.43km 정도) |
복개 년도 |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1970년대)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1990~2000년대) (1) |
운산천(雲山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신라대학교 글로벌타운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신라대 안 ~ 능인사 옆 계곡 ~ 사상초 옆쪽 ~ 괘법2차한신아파트 뒤쪽을 거쳐 삼락생태공원 일대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2.98km 정도이고, 복개는 각각 삼락생태공원 일대 ~ 사상초 옆쪽 구간은 1970년대에, 사상초 옆쪽 ~ 신라대 글로벌타운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사이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또한. 운산천 상류 능인사 옆 계곡은 계곡 옆에 신라대의 폐수배출구이지만 이곳에 신라대에서 폐수를 배출하지 않는 한 비교적으로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뿐만 아니라 강수량이 적은 시기에도 마치 강원도의 한 계곡과 같이 1급수 수준의 물이 흐르고 물 속에는 다슬기가 살고 있는 등으로 도심 속 청정자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2) (1) 운산천도 덕포지 안 및 뒤쪽 계곡, 능인사 옆 계곡 등의 일부 구간에서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는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 관련 게시물: 다슬기가 살 정도로 최고의 수질을 자랑하는 운..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2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 운수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 삼락IC 앞(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약 2.5k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운수천(雲水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 운수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모라주공아파트 앞 ~ 신모라교차로 앞 ~ 2호선 모라역 옆 ~ 국제식품 삼락점 앞을 거쳐 삼락IC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2km 정도 이고, 복개된 구간은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약 2.5km 정도)까지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수천의 상류는 백양산에서 발원하는 하천 중 골이 깊고 사시사철 계곡에 풍부한 물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한 계곡을 가지고 있으며, 계곡 옆에 운수사(雲水寺)라는 유명 고찰이 있다. (1)
(1) 운수천은 앞서 설명한 운산천과는 다르게 복개 시작점부터는 낙동강 합류점까지 계속 복개된 상태로 흐른다.
○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2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 운수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 삼락IC 앞(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약 2.5k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운수천(雲水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 운수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모라주공아파트 앞 ~ 신모라교차로 앞 ~ 2호선 모라역 옆 ~ 국제식품 삼락점 앞을 거쳐 삼락IC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2km 정도 이고, 복개된 구간은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약 2.5km 정도)까지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수천의 상류는 백양산에서 발원하는 하천 중 골이 깊고 사시사철 계곡에 풍부한 물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한 계곡을 가지고 있으며, 계곡 옆에 운수사(雲水寺)라는 유명 고찰이 있다. (1)
(1) 운수천은 앞서 설명한 운산천과는 다르게 복개 시작점부터는 낙동강 합류점까지 계속 복개된 상태로 흐른다.
○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2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 운수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상구 삼락동 삼락IC 앞(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약 2.5k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운수천(雲水川)은 부산광역시 사상구 모라3동 운수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모라주공아파트 앞 ~ 신모라교차로 앞 ~ 2호선 모라역 옆 ~ 국제식품 삼락점 앞을 거쳐 삼락IC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2km 정도 이고, 복개된 구간은 백양터널 요금소 뒤쪽 ~ 삼락IC 앞(약 2.5km 정도)까지이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운수천의 상류는 백양산에서 발원하는 하천 중 골이 깊고 사시사철 계곡에 풍부한 물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한 계곡을 가지고 있으며, 계곡 옆에 운수사(雲水寺)라는 유명 고찰이 있다. (1)
(1) 운수천은 앞서 설명한 운산천과는 다르게 복개 시작점부터는 낙동강 합류점까지 계속 복개된 상태로 흐른다.
○대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교 옆(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1980년대로 추정) |
대리천(大里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 구포사장 안을 거쳐 덕천배수지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전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약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까지의 구간으로 각각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구간과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포3동 입구 언덕 쪽의 대리천은 하천 모습이 주위에 도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의 오지 하천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1)
(1) 대리천의 구포3동 입구쪽의 구간은 대부분 경사가 급해 바위 형태로 하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교 옆(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1980년대로 추정) |
대리천(大里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 구포사장 안을 거쳐 덕천배수지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전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약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까지의 구간으로 각각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구간과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포3동 입구 언덕 쪽의 대리천은 하천 모습이 주위에 도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의 오지 하천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1)
(1) 대리천의 구포3동 입구쪽의 구간은 대부분 경사가 급해 바위 형태로 하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교 옆(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1980년대로 추정) |
대리천(大里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 구포사장 안을 거쳐 덕천배수지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전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약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까지의 구간으로 각각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구간과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포3동 입구 언덕 쪽의 대리천은 하천 모습이 주위에 도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의 오지 하천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1)
(1) 대리천의 구포3동 입구쪽의 구간은 대부분 경사가 급해 바위 형태로 하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교 옆(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1980년대로 추정) |
대리천(大里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 구포사장 안을 거쳐 덕천배수지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전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약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까지의 구간으로 각각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구간과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포3동 입구 언덕 쪽의 대리천은 하천 모습이 주위에 도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의 오지 하천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1)
(1) 대리천의 구포3동 입구쪽의 구간은 대부분 경사가 급해 바위 형태로 하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교 옆(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1980년대로 추정) |
대리천(大里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 구포사장 안을 거쳐 덕천배수지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전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약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까지의 구간으로 각각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구간과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포3동 입구 언덕 쪽의 대리천은 하천 모습이 주위에 도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의 오지 하천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1)
(1) 대리천의 구포3동 입구쪽의 구간은 대부분 경사가 급해 바위 형태로 하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교 옆(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1980년대로 추정) |
대리천(大里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 구포사장 안을 거쳐 덕천배수지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전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약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까지의 구간으로 각각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구간과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포3동 입구 언덕 쪽의 대리천은 하천 모습이 주위에 도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의 오지 하천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1)
(1) 대리천의 구포3동 입구쪽의 구간은 대부분 경사가 급해 바위 형태로 하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교 옆(낙동강) |
복개 구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 |
복개 년도 |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1980년대로 추정) |
대리천(大里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3동 백양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 구포사장 안을 거쳐 덕천배수지 앞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전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약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약 1.18km 정도),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약 680m 정도)까지의 구간으로 각각 백양아파트 뒤쪽 ~ 포천사거리 옆쪽 구간과 리버파크반도유보라아파트 옆 주차장 ~ 덕천배수지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구포3동 입구 언덕 쪽의 대리천은 하천 모습이 주위에 도시가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마치 강원도의 오지 하천과 비슷한 느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1)
(1) 대리천의 구포3동 입구쪽의 구간은 대부분 경사가 급해 바위 형태로 하천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덕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61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대리천 ~ 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
복개 년도 |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덕천천(德川川)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 금정산성 남문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덕사지 옆 ~ 만덕삼성아파트 뒤쪽 ~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 ~ 기찰로 일대 ~ 덕천교차로 북쪽을 거쳐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1동 덕천배수지 앞쪽에서 대리천 ~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복개된 구간은 동원아파트 뒤쪽 ~ 덕천배수지 앞쪽(약 2.78km 정도)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약 430m 정도) 구간이며, 각각 3호선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원아파트 뒤쪽 ~ 3호선 남산정역 앞까지의 구간과 만덕돼지국밥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천천은 금정산과 백양산 줄기에서 발원한 하천인 만큼 상류구간은 풍경도 수려하고 수량도 풍부하며, 곳곳에 바위 틈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지류는 공식적으로 소하천으로 등록된 명칭을 가진 지류인 용을천,사기천,병풍천과 옥천사 지천, 동일아파트 지천, 폴리텍대학 쪽 지천 등의 금정산 쪽에서 발원하는 지천과 은행나무길 지천, 유림아파트 지천, 한신아파트 지천 만덕고-보건환경연구원 쪽 지천, 병풍천의 통나무집쪽 지천, 신덕초 지천, 노인전문제1병원 지천, 덕양초 지천, 양천초 지천 등의 백양산 쪽에서 발원하는 여러 지천들이 있으며, (1) 현재 3호선 숙등역과 남산정역의 역명 유래가 되는 하천의 중류 구간에 위치한 숙등과 남산정이라는 두 자연부락이 과거에 존재하였다. (2) 또한. 동원아파트 뒤쪽 ~ SK셀프주유소 뒤쪽까지의 미복개 구간은 생태하천이지만 비가 오면 주위의 하수도가 역류하여 검은 물이 흐를 때가 가끔씩 있으며 남산정역 앞 ~ 덕천배수지 앞쪽까지의 기찰로 구간은 하천이 도로 밑을 지나기 때문에 복개흔적이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1) 덕천천도 수 많은 지천이 존재하는 특성상 견우천,안창천,학장천과 마찬가지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구간이 자주 나타나며 도시 구간이지만 돌,바위 등의 자연적인 모습을 가진 구간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2) 현재 자연부락은 모두 사라지고 주거지와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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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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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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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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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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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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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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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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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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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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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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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호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8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동천) |
복개 구간 |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1) |
복개 년도 | 1970년대 복개로 추정 |
호계천(虎溪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안창마을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안창마을 입구 ~ 범일동 구름다리 ~ 범일역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1동 범5호교 앞쪽에서 동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8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안창마을 뒤쪽 복개시작점 ~ 범5호교 앞쪽(약 2.89 km 정도) 중 안창마을 구간과 범곡교차로 서쪽 일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이고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2) 또한. 과거부터 \\\\\\\\\\\\\\\'범내골\\\\\\\\\\\\\\\' 이라고 불리던 계곡이 바로 호계천의 상류인 안창마을쪽의 계곡이며 이러한 이름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는 과거 이 일대의 계곡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었으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올만 한 곳으로 생각하게 되었다.(3) 하지만. 호계천의 하류는 지하철 범내골 역이 아닌 범일역 앞쪽을 통과하고, 범내골역을 통과하는 하천은 호계천이 아닌 견우천(자세한 사항은 견우천에 대한 설명 참조 바랍니다.)이라는 점에서 아마도 지명 바로잡기를 할 필요성도 있을 것이다.
(1)(2) 호계천도 복개구간과 복개되지 않은 구간이 불규칙하게 반복되면서 흐르는 견우천과 마찬가지로 안창마을 일부구간과 범천사 밑쪽, 범곡교차로 뒤쪽, 범일동구름다리 오른쪽 일부 등의 여러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닿혔다를 반복하거나 일부만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관련 기사: 물길따라 지명따라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충청투데이 (cctoday.co.kr)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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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남해) |
복개 구간 |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 |
복개 년도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앞수정초 뒤쪽,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198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부산천(釜山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2동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수정아트빌 옆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 김원묵기념 봉생병원 ~ 부산진역 옆을 거쳐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5동 동아원 부산공장 건너편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수정초 뒤쪽(약 1.77km 정도)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약 597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 수정초 뒤쪽 까지의 구간과 수정초 뒤쪽 ~ 부산진역 경부선 철길 건너편(화성리사이클링 옆) 까지의 구간은 각각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수정산체육공원 뒤쪽 ~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앞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천이 잠시나마 복개가 풀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수정초 뒤쪽 구간은 콘크리트로 된 바닥과 옆 수로에 주위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검은 물이 흐르고 심한 악취가 진동하는 모습이 보여지며, (1) 부산천 상류 미복개 구간은 폭우가 올 떄가 아니면 사시사철 수량이 적어 실개천 수준으로 흐른다. (2) 부산이라는 대도시 명칭이 들어간 하천임에도 불구하고 물줄기는 동구 수정동과 범일동 일대만 통과하여 부산 원도심 일대의 작은 계곡 정도의 물줄기에 불과한 정도이다.(참고로. 수원천, 안양천, 전주천, 천안천, 안성천, 안산천, 충주천, 대전천과 같이 한 도시의 명칭이 들어간 하천 중 상당수는 그 지역의 도심을 대부분 경유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졌고, 대우도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그 지역을 대표할 만한 하천이라 할 것이며, 현재 대구에서 사라진 대⋅구천도 일제강점기 매립되기 이전까지는 수려한 풍경과 풍부한 계류를 자랑한 하천이었다.)아마도 이러한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가 과거 이 일대가 부산의 원도심의 외곽지역이었기 떄문에 아마도 이러한 이름이 붙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1: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3/12 (2) 부산천 미복개 구간 사진이 있는 게시물-2: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부산 부산천 답사기 6/12
○초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3동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남해) |
복개 구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약 1.0km 정도)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약 485m 정도) |
복개 년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초량천(草梁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봉북길 끝 ~ 아르미나 아파트 옆 ~ 구봉성당 옆 ~ 초량육거리 앞 ~ 하나은행 옆 ~ 부산역 뒤쪽을 거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현재 복개 철거 공사 시작점{진행 중})(약 1.0km 정도)과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약 485m 정도)이 있으며, 각각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천의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2010년도에 발표되었고, 점유지 매입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2016년 1단계 구간인 부산고 앞 ~ 하나은행 옆까지의 구간부터 기존의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몇 차례 지연된 후 2021년에 완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2021년 8월에 1단계 구간부터 완공하였고, 초량육거리 ~ 부산고 앞까지의 2단계 구간은 2024 ~ 2025년까지 완공할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1) 또한. 2021년 8월에 완공한 1단계 구간에서는 벌써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복개된 구간의 하수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게 되어 관련 민원이 폭주하게 되었다. (2)
(1) 관련 게시물:초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2) 관련 기사: 복개 걷으니 악취 새는 초량천…민원 폭주 : 네이버 뉴스 (naver.com)
○초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3동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남해) |
복개 구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약 1.0km 정도)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약 485m 정도) |
복개 년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초량천(草梁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봉북길 끝 ~ 아르미나 아파트 옆 ~ 구봉성당 옆 ~ 초량육거리 앞 ~ 하나은행 옆 ~ 부산역 뒤쪽을 거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현재 복개 철거 공사 시작점{진행 중})(약 1.0km 정도)과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약 485m 정도)이 있으며, 각각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천의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2010년도에 발표되었고, 점유지 매입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2016년 1단계 구간인 부산고 앞 ~ 하나은행 옆까지의 구간부터 기존의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몇 차례 지연된 후 2021년에 완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2021년 8월에 1단계 구간부터 완공하였고, 초량육거리 ~ 부산고 앞까지의 2단계 구간은 2024 ~ 2025년까지 완공할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1) 또한. 2021년 8월에 완공한 1단계 구간에서는 벌써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복개된 구간의 하수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게 되어 관련 민원이 폭주하게 되었다. (2)
(1) 관련 게시물:초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2) 관련 기사: 복개 걷으니 악취 새는 초량천…민원 폭주 : 네이버 뉴스 (naver.com)
○초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3동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남해) |
복개 구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약 1.0km 정도)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약 485m 정도) |
복개 년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초량천(草梁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봉북길 끝 ~ 아르미나 아파트 옆 ~ 구봉성당 옆 ~ 초량육거리 앞 ~ 하나은행 옆 ~ 부산역 뒤쪽을 거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현재 복개 철거 공사 시작점{진행 중})(약 1.0km 정도)과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약 485m 정도)이 있으며, 각각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천의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2010년도에 발표되었고, 점유지 매입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2016년 1단계 구간인 부산고 앞 ~ 하나은행 옆까지의 구간부터 기존의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몇 차례 지연된 후 2021년에 완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2021년 8월에 1단계 구간부터 완공하였고, 초량육거리 ~ 부산고 앞까지의 2단계 구간은 2024 ~ 2025년까지 완공할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1) 또한. 2021년 8월에 완공한 1단계 구간에서는 벌써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복개된 구간의 하수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게 되어 관련 민원이 폭주하게 되었다. (2)
(1) 관련 게시물:초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2) 관련 기사: 복개 걷으니 악취 새는 초량천…민원 폭주 : 네이버 뉴스 (naver.com)
○초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3동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남해) |
복개 구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약 1.0km 정도)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약 485m 정도) |
복개 년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초량천(草梁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봉북길 끝 ~ 아르미나 아파트 옆 ~ 구봉성당 옆 ~ 초량육거리 앞 ~ 하나은행 옆 ~ 부산역 뒤쪽을 거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현재 복개 철거 공사 시작점{진행 중})(약 1.0km 정도)과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약 485m 정도)이 있으며, 각각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천의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2010년도에 발표되었고, 점유지 매입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2016년 1단계 구간인 부산고 앞 ~ 하나은행 옆까지의 구간부터 기존의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몇 차례 지연된 후 2021년에 완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2021년 8월에 1단계 구간부터 완공하였고, 초량육거리 ~ 부산고 앞까지의 2단계 구간은 2024 ~ 2025년까지 완공할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1) 또한. 2021년 8월에 완공한 1단계 구간에서는 벌써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복개된 구간의 하수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게 되어 관련 민원이 폭주하게 되었다. (2)
(1) 관련 게시물:초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2) 관련 기사: 복개 걷으니 악취 새는 초량천…민원 폭주 : 네이버 뉴스 (naver.com)
○초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3동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남해) |
복개 구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약 1.0km 정도)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약 485m 정도) |
복개 년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초량천(草梁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봉북길 끝 ~ 아르미나 아파트 옆 ~ 구봉성당 옆 ~ 초량육거리 앞 ~ 하나은행 옆 ~ 부산역 뒤쪽을 거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현재 복개 철거 공사 시작점{진행 중})(약 1.0km 정도)과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약 485m 정도)이 있으며, 각각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천의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2010년도에 발표되었고, 점유지 매입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2016년 1단계 구간인 부산고 앞 ~ 하나은행 옆까지의 구간부터 기존의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몇 차례 지연된 후 2021년에 완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2021년 8월에 1단계 구간부터 완공하였고, 초량육거리 ~ 부산고 앞까지의 2단계 구간은 2024 ~ 2025년까지 완공할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1) 또한. 2021년 8월에 완공한 1단계 구간에서는 벌써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복개된 구간의 하수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게 되어 관련 민원이 폭주하게 되었다. (2)
(1) 관련 게시물:초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2) 관련 기사: 복개 걷으니 악취 새는 초량천…민원 폭주 : 네이버 뉴스 (naver.com)
○초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3동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남해) |
복개 구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약 1.0km 정도)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약 485m 정도) |
복개 년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초량천(草梁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봉북길 끝 ~ 아르미나 아파트 옆 ~ 구봉성당 옆 ~ 초량육거리 앞 ~ 하나은행 옆 ~ 부산역 뒤쪽을 거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현재 복개 철거 공사 시작점{진행 중})(약 1.0km 정도)과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약 485m 정도)이 있으며, 각각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천의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2010년도에 발표되었고, 점유지 매입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2016년 1단계 구간인 부산고 앞 ~ 하나은행 옆까지의 구간부터 기존의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몇 차례 지연된 후 2021년에 완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2021년 8월에 1단계 구간부터 완공하였고, 초량육거리 ~ 부산고 앞까지의 2단계 구간은 2024 ~ 2025년까지 완공할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1) 또한. 2021년 8월에 완공한 1단계 구간에서는 벌써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복개된 구간의 하수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게 되어 관련 민원이 폭주하게 되었다. (2) (1) 관련 게시물:초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2) 관련 기사: 복개 걷으니 악취 새는 초량천…민원 폭주 : 네이버 뉴스 (naver.com)
○초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3동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남해) |
복개 구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약 1.0km 정도)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약 485m 정도) |
복개 년도 |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초량천(草梁川)은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4동 구봉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구봉북길 끝 ~ 아르미나 아파트 옆 ~ 구봉성당 옆 ~ 초량육거리 앞 ~ 하나은행 옆 ~ 부산역 뒤쪽을 거쳐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현재 복개 철거 공사 시작점{진행 중})(약 1.0km 정도)과 하나은행 옆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약 485m 정도)이 있으며, 각각 초량육거리 앞 ~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밑(부산항 3부두 옆)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봉북길 끝 ~ 초량육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천의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2010년도에 발표되었고, 점유지 매입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 후 2016년 1단계 구간인 부산고 앞 ~ 하나은행 옆까지의 구간부터 기존의 복개를 걷어내고 다시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원래는 2017년 12월에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몇 차례 지연된 후 2021년에 완공하려고 하였지만 결국 2021년 8월에 1단계 구간부터 완공하였고, 초량육거리 ~ 부산고 앞까지의 2단계 구간은 2024 ~ 2025년까지 완공할 목표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1) 또한. 2021년 8월에 완공한 1단계 구간에서는 벌써 여름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복개된 구간의 하수구에서 악취가 새어나오게 되어 관련 민원이 폭주하게 되었다. (2) (1) 관련 게시물:초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의 현장을 지켜보다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1)(2) 관련 기사: 복개 걷으니 악취 새는 초량천…민원 폭주 : 네이버 뉴스 (naver.com)
○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6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약 3.55km 정도) |
복개 년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보수천(寶水川)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 ~ 구덕터널 뒤쪽 ~ 구덕운동장 옆 ~ 구 흑교{검정다리} 일대 ~ 부평교차로 앞 ~ 1호선 자갈치역 앞을 거쳐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65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 까지(약 3.55km 정도)이며,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천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에는 보수천을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동래군 사하면과 부산면의 경계는 이 보수천 물줄기로 하였으며 보수천의 하구유역은 부민포(富民浦-현재의 부민동,남부민동의 유래 중 하나이다.)라 불렸다. 부산이 개항되기 이전인 1876년 전만 해도 부산 일대의 호안 정비와 바다가 매축(매립이나 간척)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도 땅이 아니라 바다였고, 그 무렵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홍수 때면 부평동쪽으로 돌자갈을 밀어붙여 부평동 터를 넓히는 결과가 되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80년 보수천 상류에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관을 설치하여 상류로부터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이것이 현재 부산 상수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부산 일대의 일본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대나무 관의 물도 모자라게 되었으며,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나무 죽관을 통나무 목통으로 바꿨으며, 그 후 1886년 정도에는 목재 배수관이 지름 6인치의 콘크리트 토관으로 바뀌어 현대식 상수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진화되었다. (1) 그 후 1894년에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를 하는 배수지를 설치하여 당시 일본거류민에게 공급하였으며, 이 배수 시설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 역사상 최초의 배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또한. 보수천의 지류 중 하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당시의 생산량은 1일 2천톤이나 되었다. (3) (1)(2) 참고 기사 및 백과: 134년 만에 100%… 부산 상수도 보급 마침표 찍다 - 부산일보 (busan.com),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3) 참고 백과: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6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약 3.55km 정도) |
복개 년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보수천(寶水川)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 ~ 구덕터널 뒤쪽 ~ 구덕운동장 옆 ~ 구 흑교{검정다리} 일대 ~ 부평교차로 앞 ~ 1호선 자갈치역 앞을 거쳐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65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 까지(약 3.55km 정도)이며,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천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에는 보수천을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동래군 사하면과 부산면의 경계는 이 보수천 물줄기로 하였으며 보수천의 하구유역은 부민포(富民浦-현재의 부민동,남부민동의 유래 중 하나이다.)라 불렸다. 부산이 개항되기 이전인 1876년 전만 해도 부산 일대의 호안 정비와 바다가 매축(매립이나 간척)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도 땅이 아니라 바다였고, 그 무렵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홍수 때면 부평동쪽으로 돌자갈을 밀어붙여 부평동 터를 넓히는 결과가 되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80년 보수천 상류에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관을 설치하여 상류로부터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이것이 현재 부산 상수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부산 일대의 일본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대나무 관의 물도 모자라게 되었으며,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나무 죽관을 통나무 목통으로 바꿨으며, 그 후 1886년 정도에는 목재 배수관이 지름 6인치의 콘크리트 토관으로 바뀌어 현대식 상수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진화되었다. (1) 그 후 1894년에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를 하는 배수지를 설치하여 당시 일본거류민에게 공급하였으며, 이 배수 시설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 역사상 최초의 배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또한. 보수천의 지류 중 하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당시의 생산량은 1일 2천톤이나 되었다. (3)
(1)(2) 참고 기사 및 백과: 134년 만에 100%… 부산 상수도 보급 마침표 찍다 - 부산일보 (busan.com),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3) 참고 백과: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6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약 3.55km 정도) |
복개 년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보수천(寶水川)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 ~ 구덕터널 뒤쪽 ~ 구덕운동장 옆 ~ 구 흑교{검정다리} 일대 ~ 부평교차로 앞 ~ 1호선 자갈치역 앞을 거쳐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65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 까지(약 3.55km 정도)이며,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천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에는 보수천을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동래군 사하면과 부산면의 경계는 이 보수천 물줄기로 하였으며 보수천의 하구유역은 부민포(富民浦-현재의 부민동,남부민동의 유래 중 하나이다.)라 불렸다. 부산이 개항되기 이전인 1876년 전만 해도 부산 일대의 호안 정비와 바다가 매축(매립이나 간척)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도 땅이 아니라 바다였고, 그 무렵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홍수 때면 부평동쪽으로 돌자갈을 밀어붙여 부평동 터를 넓히는 결과가 되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80년 보수천 상류에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관을 설치하여 상류로부터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이것이 현재 부산 상수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부산 일대의 일본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대나무 관의 물도 모자라게 되었으며,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나무 죽관을 통나무 목통으로 바꿨으며, 그 후 1886년 정도에는 목재 배수관이 지름 6인치의 콘크리트 토관으로 바뀌어 현대식 상수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진화되었다. (1) 그 후 1894년에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를 하는 배수지를 설치하여 당시 일본거류민에게 공급하였으며, 이 배수 시설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 역사상 최초의 배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또한. 보수천의 지류 중 하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당시의 생산량은 1일 2천톤이나 되었다. (3)
(1)(2) 참고 기사 및 백과: 134년 만에 100%… 부산 상수도 보급 마침표 찍다 - 부산일보 (busan.com),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3) 참고 백과: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6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약 3.55km 정도) |
복개 년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보수천(寶水川)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 ~ 구덕터널 뒤쪽 ~ 구덕운동장 옆 ~ 구 흑교{검정다리} 일대 ~ 부평교차로 앞 ~ 1호선 자갈치역 앞을 거쳐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65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 까지(약 3.55km 정도)이며,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천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에는 보수천을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동래군 사하면과 부산면의 경계는 이 보수천 물줄기로 하였으며 보수천의 하구유역은 부민포(富民浦-현재의 부민동,남부민동의 유래 중 하나이다.)라 불렸다. 부산이 개항되기 이전인 1876년 전만 해도 부산 일대의 호안 정비와 바다가 매축(매립이나 간척)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도 땅이 아니라 바다였고, 그 무렵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홍수 때면 부평동쪽으로 돌자갈을 밀어붙여 부평동 터를 넓히는 결과가 되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80년 보수천 상류에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관을 설치하여 상류로부터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이것이 현재 부산 상수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부산 일대의 일본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대나무 관의 물도 모자라게 되었으며,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나무 죽관을 통나무 목통으로 바꿨으며, 그 후 1886년 정도에는 목재 배수관이 지름 6인치의 콘크리트 토관으로 바뀌어 현대식 상수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진화되었다. (1) 그 후 1894년에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를 하는 배수지를 설치하여 당시 일본거류민에게 공급하였으며, 이 배수 시설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 역사상 최초의 배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또한. 보수천의 지류 중 하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당시의 생산량은 1일 2천톤이나 되었다. (3)
(1)(2) 참고 기사 및 백과: 134년 만에 100%… 부산 상수도 보급 마침표 찍다 - 부산일보 (busan.com),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3) 참고 백과: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6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약 3.55km 정도) |
복개 년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보수천(寶水川)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 ~ 구덕터널 뒤쪽 ~ 구덕운동장 옆 ~ 구 흑교{검정다리} 일대 ~ 부평교차로 앞 ~ 1호선 자갈치역 앞을 거쳐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65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 까지(약 3.55km 정도)이며,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천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에는 보수천을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동래군 사하면과 부산면의 경계는 이 보수천 물줄기로 하였으며 보수천의 하구유역은 부민포(富民浦-현재의 부민동,남부민동의 유래 중 하나이다.)라 불렸다. 부산이 개항되기 이전인 1876년 전만 해도 부산 일대의 호안 정비와 바다가 매축(매립이나 간척)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도 땅이 아니라 바다였고, 그 무렵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홍수 때면 부평동쪽으로 돌자갈을 밀어붙여 부평동 터를 넓히는 결과가 되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80년 보수천 상류에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관을 설치하여 상류로부터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이것이 현재 부산 상수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부산 일대의 일본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대나무 관의 물도 모자라게 되었으며,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나무 죽관을 통나무 목통으로 바꿨으며, 그 후 1886년 정도에는 목재 배수관이 지름 6인치의 콘크리트 토관으로 바뀌어 현대식 상수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진화되었다. (1) 그 후 1894년에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를 하는 배수지를 설치하여 당시 일본거류민에게 공급하였으며, 이 배수 시설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 역사상 최초의 배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또한. 보수천의 지류 중 하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당시의 생산량은 1일 2천톤이나 되었다. (3)
(1)(2) 참고 기사 및 백과: 134년 만에 100%… 부산 상수도 보급 마침표 찍다 - 부산일보 (busan.com),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3) 참고 백과: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6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약 3.55km 정도) |
복개 년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보수천(寶水川)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 ~ 구덕터널 뒤쪽 ~ 구덕운동장 옆 ~ 구 흑교{검정다리} 일대 ~ 부평교차로 앞 ~ 1호선 자갈치역 앞을 거쳐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65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 까지(약 3.55km 정도)이며,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천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에는 보수천을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동래군 사하면과 부산면의 경계는 이 보수천 물줄기로 하였으며 보수천의 하구유역은 부민포(富民浦-현재의 부민동,남부민동의 유래 중 하나이다.)라 불렸다. 부산이 개항되기 이전인 1876년 전만 해도 부산 일대의 호안 정비와 바다가 매축(매립이나 간척)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도 땅이 아니라 바다였고, 그 무렵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홍수 때면 부평동쪽으로 돌자갈을 밀어붙여 부평동 터를 넓히는 결과가 되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80년 보수천 상류에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관을 설치하여 상류로부터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이것이 현재 부산 상수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부산 일대의 일본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대나무 관의 물도 모자라게 되었으며,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나무 죽관을 통나무 목통으로 바꿨으며, 그 후 1886년 정도에는 목재 배수관이 지름 6인치의 콘크리트 토관으로 바뀌어 현대식 상수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진화되었다. (1) 그 후 1894년에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를 하는 배수지를 설치하여 당시 일본거류민에게 공급하였으며, 이 배수 시설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 역사상 최초의 배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또한. 보수천의 지류 중 하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당시의 생산량은 1일 2천톤이나 되었다. (3)
(1)(2) 참고 기사 및 백과: 134년 만에 100%… 부산 상수도 보급 마침표 찍다 - 부산일보 (busan.com),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3) 참고 백과: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보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65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남해) |
복개 구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약 3.55km 정도) |
복개 년도 |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1970년대 초반으로 추정) |
보수천(寶水川)은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4동 내원정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제2수원지 ~ 구덕터널 뒤쪽 ~ 구덕운동장 옆 ~ 구 흑교{검정다리} 일대 ~ 부평교차로 앞 ~ 1호선 자갈치역 앞을 거쳐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에서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65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구덕터널 뒤쪽 ~ 자갈치시장 공영주차장 뒤쪽 까지(약 3.55km 정도)이며, 197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수천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과거에는 보수천을 법수천(法水川) 또는 법수천(法首川)이라고 하였고, 그 후 19세기에 와서 보수천(寶水川)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보수천(寶水川)·법수천(法水川)·법수천(法首川)은 모두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조선시대 동래군 사하면과 부산면의 경계는 이 보수천 물줄기로 하였으며 보수천의 하구유역은 부민포(富民浦-현재의 부민동,남부민동의 유래 중 하나이다.)라 불렸다. 부산이 개항되기 이전인 1876년 전만 해도 부산 일대의 호안 정비와 바다가 매축(매립이나 간척)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토성상가가 있는 곳까지도 땅이 아니라 바다였고, 그 무렵의 보수천은 침식곡을 빠져나온 물길이 홍수 때면 부평동쪽으로 돌자갈을 밀어붙여 부평동 터를 넓히는 결과가 되었으며, 개항 이후 일본인들은 1880년 보수천 상류에 대나무에 홈을 파서 만든 관을 설치하여 상류로부터 중구 지역까지 물을 끌어 들였다.(이것이 현재 부산 상수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부산 일대의 일본인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 대나무 관의 물도 모자라게 되었으며,이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대나무 죽관을 통나무 목통으로 바꿨으며, 그 후 1886년 정도에는 목재 배수관이 지름 6인치의 콘크리트 토관으로 바뀌어 현대식 상수도에 가까운 수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진화되었다. (1) 그 후 1894년에 보수천 상류에서 끌어들인 물을 대청동에 모아 배수를 하는 배수지를 설치하여 당시 일본거류민에게 공급하였으며, 이 배수 시설이 비록 일본인의 필요에 따라 만든 것이었지만 부산 상수도 역사상 최초의 배수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또한. 보수천의 지류 중 하나인 구덕산 계곡에 구덕수원지는 1900년에서 1902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그 당시의 생산량은 1일 2천톤이나 되었다. (3)
(1)(2) 참고 기사 및 백과: 134년 만에 100%… 부산 상수도 보급 마침표 찍다 - 부산일보 (busan.com),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3) 참고 백과: 보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괴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5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 괴정1교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약 4.79km 정도) |
복개 년도 |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괴정천(槐亭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애서 발원하여 동주대 입구 ~ 1호선 대티역 옆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1호선 당리역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을 거쳐 괴정1교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약 4.79km 정도)이며, 각각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게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상류 구간에서 수려한 비경과 풍부한 계류를 보여주는 제석골 지류를 비롯하여 대티고개 쪽 지류, 사하도서관 쪽 지류, 당리동 공동묘지 쪽 지류, 동아공고 쪽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괴정천은 198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심각한 오염과 악취에 시달렸고, 폭우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지역이 자주 침수되었으며, 복개가 된 후부터는 하수도 정비등을 통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지류 중 하나인 제석골 일대는 채석장이 들어서기 전에 분뇨처리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이 당리천을 따라 흘러내려간 후 물줄기를 따라 괴정천으로 흘러들어간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과거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은 인근 밭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었다. 또한. 현재 복개된 구간 중 하단 5일장 ~ 하단역공영주차장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고, 2021년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으며, 2022년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착공 소식이 없다. (1)
(1) 관련 백과: 괴정천 - 나무위키 (namu.wiki)
○괴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5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 괴정1교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약 4.79km 정도) |
복개 년도 |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괴정천(槐亭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애서 발원하여 동주대 입구 ~ 1호선 대티역 옆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1호선 당리역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을 거쳐 괴정1교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약 4.79km 정도)이며, 각각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게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상류 구간에서 수려한 비경과 풍부한 계류를 보여주는 제석골 지류를 비롯하여 대티고개 쪽 지류, 사하도서관 쪽 지류, 당리동 공동묘지 쪽 지류, 동아공고 쪽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괴정천은 198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심각한 오염과 악취에 시달렸고, 폭우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지역이 자주 침수되었으며, 복개가 된 후부터는 하수도 정비등을 통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지류 중 하나인 제석골 일대는 채석장이 들어서기 전에 분뇨처리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이 당리천을 따라 흘러내려간 후 물줄기를 따라 괴정천으로 흘러들어간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과거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은 인근 밭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었다. 또한. 현재 복개된 구간 중 하단 5일장 ~ 하단역공영주차장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고, 2021년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으며, 2022년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착공 소식이 없다. (1)
(1) 관련 백과: 괴정천 - 나무위키 (namu.wiki)
○괴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5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 괴정1교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약 4.79km 정도) |
복개 년도 |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괴정천(槐亭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애서 발원하여 동주대 입구 ~ 1호선 대티역 옆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1호선 당리역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을 거쳐 괴정1교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약 4.79km 정도)이며, 각각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게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상류 구간에서 수려한 비경과 풍부한 계류를 보여주는 제석골 지류를 비롯하여 대티고개 쪽 지류, 사하도서관 쪽 지류, 당리동 공동묘지 쪽 지류, 동아공고 쪽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괴정천은 198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심각한 오염과 악취에 시달렸고, 폭우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지역이 자주 침수되었으며, 복개가 된 후부터는 하수도 정비등을 통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지류 중 하나인 제석골 일대는 채석장이 들어서기 전에 분뇨처리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이 당리천을 따라 흘러내려간 후 물줄기를 따라 괴정천으로 흘러들어간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과거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은 인근 밭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었다. 또한. 현재 복개된 구간 중 하단 5일장 ~ 하단역공영주차장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고, 2021년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으며, 2022년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착공 소식이 없다. (1)
(1) 관련 백과: 괴정천 - 나무위키 (namu.wiki)
○괴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5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 괴정1교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약 4.79km 정도) |
복개 년도 |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괴정천(槐亭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애서 발원하여 동주대 입구 ~ 1호선 대티역 옆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1호선 당리역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을 거쳐 괴정1교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약 4.79km 정도)이며, 각각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게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상류 구간에서 수려한 비경과 풍부한 계류를 보여주는 제석골 지류를 비롯하여 대티고개 쪽 지류, 사하도서관 쪽 지류, 당리동 공동묘지 쪽 지류, 동아공고 쪽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괴정천은 198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심각한 오염과 악취에 시달렸고, 폭우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지역이 자주 침수되었으며, 복개가 된 후부터는 하수도 정비등을 통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지류 중 하나인 제석골 일대는 채석장이 들어서기 전에 분뇨처리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이 당리천을 따라 흘러내려간 후 물줄기를 따라 괴정천으로 흘러들어간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과거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은 인근 밭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었다. 또한. 현재 복개된 구간 중 하단 5일장 ~ 하단역공영주차장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고, 2021년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으며, 2022년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착공 소식이 없다. (1)
(1) 관련 백과: 괴정천 - 나무위키 (namu.wiki)
○괴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5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 괴정1교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약 4.79km 정도) |
복개 년도 |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괴정천(槐亭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애서 발원하여 동주대 입구 ~ 1호선 대티역 옆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1호선 당리역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을 거쳐 괴정1교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약 4.79km 정도)이며, 각각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게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상류 구간에서 수려한 비경과 풍부한 계류를 보여주는 제석골 지류를 비롯하여 대티고개 쪽 지류, 사하도서관 쪽 지류, 당리동 공동묘지 쪽 지류, 동아공고 쪽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괴정천은 198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심각한 오염과 악취에 시달렸고, 폭우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지역이 자주 침수되었으며, 복개가 된 후부터는 하수도 정비등을 통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지류 중 하나인 제석골 일대는 채석장이 들어서기 전에 분뇨처리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이 당리천을 따라 흘러내려간 후 물줄기를 따라 괴정천으로 흘러들어간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과거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은 인근 밭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었다. 또한. 현재 복개된 구간 중 하단 5일장 ~ 하단역공영주차장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고, 2021년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으며, 2022년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착공 소식이 없다. (1)
(1) 관련 백과: 괴정천 - 나무위키 (namu.wiki)
○괴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5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 괴정1교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약 4.79km 정도) |
복개 년도 |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괴정천(槐亭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애서 발원하여 동주대 입구 ~ 1호선 대티역 옆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1호선 당리역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을 거쳐 괴정1교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약 4.79km 정도)이며, 각각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게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상류 구간에서 수려한 비경과 풍부한 계류를 보여주는 제석골 지류를 비롯하여 대티고개 쪽 지류, 사하도서관 쪽 지류, 당리동 공동묘지 쪽 지류, 동아공고 쪽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괴정천은 198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심각한 오염과 악취에 시달렸고, 폭우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지역이 자주 침수되었으며, 복개가 된 후부터는 하수도 정비등을 통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지류 중 하나인 제석골 일대는 채석장이 들어서기 전에 분뇨처리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이 당리천을 따라 흘러내려간 후 물줄기를 따라 괴정천으로 흘러들어간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과거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은 인근 밭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었다. 또한. 현재 복개된 구간 중 하단 5일장 ~ 하단역공영주차장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고, 2021년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으며, 2022년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착공 소식이 없다. (1) (1) 관련 백과: 괴정천 - 나무위키 (namu.wiki)
○괴정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6.56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1동 괴정1교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약 4.79km 정도) |
복개 년도 |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괴정천(槐亭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3동 동주대 뒤쪽 계곡 발원지애서 발원하여 동주대 입구 ~ 1호선 대티역 옆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1호선 당리역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을 거쳐 괴정1교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쳐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6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동주대 뒤쪽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약 4.79km 정도)이며, 각각 동주대 뒤쪽 ~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게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르네상스아파트 옆 ~ 하단역공영주차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류는 상류 구간에서 수려한 비경과 풍부한 계류를 보여주는 제석골 지류를 비롯하여 대티고개 쪽 지류, 사하도서관 쪽 지류, 당리동 공동묘지 쪽 지류, 동아공고 쪽 지류 등 크고 작은 여러 지류들이 있다. 괴정천은 1980년대 복개되기 이전에는 생활하수가 흘러들어 심각한 오염과 악취에 시달렸고, 폭우만 오면 하천이 범람해 저지대 지역이 자주 침수되었으며, 복개가 된 후부터는 하수도 정비등을 통하여 하천이 범람하는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지류 중 하나인 제석골 일대는 채석장이 들어서기 전에 분뇨처리장이 있었고,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이 당리천을 따라 흘러내려간 후 물줄기를 따라 괴정천으로 흘러들어간 후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갔으며, 과거 이곳에서 배출된 분뇨들은 인근 밭에서 자주 사용된 적이 있었다. 또한. 현재 복개된 구간 중 하단 5일장 ~ 하단역공영주차장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는 계획이 있고, 2021년에는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였으며, 2022년까지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2년부터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착공 소식이 없다. (1) (1) 관련 백과: 괴정천 - 나무위키 (namu.wiki)
○장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2동 다대자연병원 옆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부네치아 선셋전망대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다대자연병원 옆 ~ 장림생태공원 뒤쪽(약 2.33km 정도) |
복개 년도 | 장림생태공원 뒤쪽 ~ 장림초등학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장림초등학교 뒤쪽 ~ 다대자연병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장림천(長林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2동 다대자연병원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탑마트 뒤쪽 ~ CJ제일제당 부산공장 뒤쪽 ~ 장림생태공원 뒤쪽 ~ 장림유수지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부네치아 선셋전망대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다대자연병원 옆 ~ 장림생태공원 뒤쪽(약 2.33km 정도)이며, 각각 장림생태공원 뒤쪽 ~ 장림초등학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장림초등학교 뒤쪽 ~ 다대자연병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에 존재하는 복개하천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하천이라고 볼 수 있고, (1) 하류 장림유수지 옆 구간에는 장림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하류 주변에는 주위 건물들이 대부분 여러 색깔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부네치아라고 불릴 만큼 전국에서 알려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장림포구가 위치해 있다. (2) (1) 위도상으로 장림천의 발원지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영도 중리 일부와 태종대,동삼동 일대의 일부 복개된 작은 개울들과 다대포쪽의 일부 복개된 물길들이 있지만 과거에도 물이 흐르지 않을 때가 많아 하천이라고 보기 어렵다. (2) 관련 게시물: 사하마을교과서 2탄_부산의 베네치아 장림포구에..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장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03km 정도 |
발원지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2동 다대자연병원 옆 발원지 |
하구 |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부네치아 선셋전망대 옆 합수점(낙동강) |
복개 구간 | 다대자연병원 옆 ~ 장림생태공원 뒤쪽(약 2.33km 정도) |
복개 년도 | 장림생태공원 뒤쪽 ~ 장림초등학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장림초등학교 뒤쪽 ~ 다대자연병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장림천(長林川)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2동 다대자연병원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탑마트 뒤쪽 ~ CJ제일제당 부산공장 뒤쪽 ~ 장림생태공원 뒤쪽 ~ 장림유수지 앞을 거쳐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1동 부네치아 선셋전망대 옆 합수점에서 낙동강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03km 정도이고, 복개된 구간은 다대자연병원 옆 ~ 장림생태공원 뒤쪽(약 2.33km 정도)이며, 각각 장림생태공원 뒤쪽 ~ 장림초등학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장림초등학교 뒤쪽 ~ 다대자연병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에 존재하는 복개하천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하천이라고 볼 수 있고, (1) 하류 장림유수지 옆 구간에는 장림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하류 주변에는 주위 건물들이 대부분 여러 색깔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부네치아라고 불릴 만큼 전국에서 알려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장림포구가 위치해 있다. (2) (1) 위도상으로 장림천의 발원지보다 더 남쪽에 위치한 영도 중리 일부와 태종대,동삼동 일대의 일부 복개된 작은 개울들과 다대포쪽의 일부 복개된 물길들이 있지만 과거에도 물이 흐르지 않을 때가 많아 하천이라고 보기 어렵다. (2) 관련 게시물: 사하마을교과서 2탄_부산의 베네치아 장림포구에..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형태 | 자연 호수 |
면적 | 약 **㎡ 정도(197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일대 |
유입/유출 | 대연천 물줄기 - 못골못(유입) 못골못 - 대연천 물줄기 - 남해(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0년대(전 구간 매립) |
못골못은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5동 일대에 있었던 자연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1970년대에 모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못이다. 못골못은 대연천 수계의 본류에 위치해 있으며, 못에서 방류된 물줄기는 대연천을 통하여 남해로 흘러들어간다. (1) 부산진구 연지동의 화지언(추정)과 더불어 과거 부산에 있었던 얼마 안 되는 자연 못 중 하나이고, 과거 못골못의 모습, 못골못이 표시된 지도 등의 못골못 관련 기록은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적으며, 지금까지 남아있는 기록은 한 블로거가 게시한 1950년대의 못골 일대를 담았던 과거 사진과 과거 지도 등의 몇 안되는 관련 기록들만 남아있다. (1)(2) 못골못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관련 게시물: [피란수도 부산] 1950년대 옛 사진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 위에서 8번째 사진이 과거 1950년대의 못골못 사진이다. (2)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대연5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과거 못골못이 있었던 자리에 호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못골못이 1960년대까지는 존재하였다고 할 것이다. 못골못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형태 | 자연 호수로 추정 |
면적 | 약 **㎡ 정도(197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 일대 |
유입/유출 | 전포천 물줄기 - 화지언(유입) 화지언 - 전포천 물줄기 - 동천(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0년대(전 구간 매립) |
화지언(和池堰)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연지동 일대,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자연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1970년대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못이다.
화지언과 신지언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2)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형태 | 인공 호수로 추정 |
면적 | 약 **㎡ 정도(1970년대 매립 이전) |
위치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일대 |
유입/유출 | 전포천 물줄기 - 신지언(유입) 신지언 - 전포천 물줄기 - 동천(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70년대(전 구간 매립) |
신지언(新池堰)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일대, 지금의 초연근린공원 옆쪽에 있었던 인공 호수로 추정되는 못으로 1970년대에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못이다. 화지언과 신지언 두 못에 대한 유래는 과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에 작은 저수지(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 못에 연(蓮)이 많이 있어서 그 주위 일대를 연지라고 불렀으며, 이 못은 \\\\\\\'새못\\\\\\\'이라고도 불렸다. 또한. 마을 북쪽 현재의 초읍에 해당되는 지역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오래된 못이 있었다고 하고, 이러한 이류로 \\\\\\\'화지언\\\\\\\'에 빗대어 \\\\\\\'연지\\\\\\\'의 못을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으며, 화지언을 구못, 신지언을 새못이라고 부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1) 또한. 1740년에 간행된 「동래부지」 산천조에서는,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두번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연지\\\\\\\'라는 지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보아 조선 시대에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라는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불렸다고 할 것이다. (2) (1)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의 연지동 일대의 1960년대 지도를 보면 현재의 동평로 위쪽 부분에 두 개의 못이 보인다. 이 두개의 못 중 남쪽의 작은 못은 신지언(新池堰)이고, 북쪽 본류의 길쭉한 못은 화지언(和池堰)이다. 이 두개의 못(호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신지언과 화지언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각각의 호수 부분을 클릭하면 알아볼 수 있습니다.) 신지언과 화지언이 있는 모습이 보이는 지도 이미지(출처: 국토정보플랫폼 국토정보맵 \\\\\\\'구지도 통판서비스\\\\\\\')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형태 | 호수형태를 판정하기 어려움 |
면적 | 약 **㎡ 정도(일제 강점기 매립 이전) |
위치 |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4,5동,거제1,3동 일대 |
유입/유출 | 거제천 물줄기 - 함성지(유입) 함성지 - 거제천 물줄기 - 온천천(유출) |
매립 구간 | 전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일제 강점기 매립으로 추정(전 구간 매립) |
함성지(涵星池)는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4,5동,거제1,3동 일대, 지금의 거제천로 ~ 쉐보레 부산서비스센터 ~ 연산삼익맨션 ~ 남일아파트 ~ 협신자동차서비스 일대에 있었던 못으로 일제 강점기에 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못이다. 현재 함성지에 대한 문서 기록은 거의 없다고 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밝혀진 유래조차 없어 그 못의 역사를 자세히 알기는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며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 거제동 일대의 과거 지도에 함성지가 표시된 것이 현재까지 함성지에 대하여 밝혀진 유일한 기록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함성지에 대한 옛 기록을 보유하고 있거나 옛 이야기를 아는 분들도 존재할 수 있으니 혹시라도 함성지에 대한 옛 기록이나 옛 이야기를 알고 있는 분들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의 한국근대지리정보의 부산 연산동과 거제동 일대의 일제강점기 지도에서는 온천천 물줄기에서 조금 남쪽으로 떨어진 곳에 \\\'함성지\\\' 라고 표시된 커다란 못이 보인다.(물론. 지도만 봐서는 못 안에 표시된 한자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함성지\\\' 라고 표시된 지를 대부분 모를 것이다.) 함성지에 대하여 밝혀진 기록은 이 기록이 전부일 것이며 국토지리정보원 구지도 서비스에도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못이 일제강점기 초기에 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함성지\\\' 가 보이는 일제강점기의 지도 이미지(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근대지리정보) (2)(3) 관련 게시물: [지명 유래] 부산 연지동의 유래 및 전국의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92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 |
복개 년도 |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청계광장 ~ 광교(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로 추정)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임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 60번지에서 동대문구 용두동 34번지 사이에는 1976년 8월 15일부터 2003년 6월 30일까지 고가도로가 있었음 |
1. 개요
청계천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효자동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자하문로 합류점 ~ 경복궁역 옆 ~ 청계광장 옆 ~ 광교 ~ 세운상가 위쪽 ~ 평화시장 위쪽 ~ 중앙시장 위쪽 ~ 용두공원 밑을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살곶이 수역의 중랑천과의 합수점에서 중랑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길이는 10.92km 이다. 또한. 청계천의 발원지는 위의 설명 표에서 언급되고 자하문 부근의 백운동천 물줄기로 이어지는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발원지뿐만 아니라 또 다른 백운동천의 물줄기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 뒤쪽의 백운장터(\\\\\\\\\\\\\\\'백운동천\\\\\\\\\\\\\\\' 이라는 한자가 표시된 커다란 바위가 있음),인왕산 수성동계곡을 지나는 옥류동천이라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식적인 발원지 표시가 있고, 조선시대부터 지금의 세종로 사거리에서부터 개천(청계천)이라고 불려졌던 백운동천의 윤동주문학관 옆쪽 방향의 물줄기의 시작점을 발원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2. 복개에 대한 정보
복개된 구간은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 위쪽(약 2.91km 정도)까지의 구간이며, 각각 윤동주문학관 옆 청계천발원지 표시석 옆 ~ 청계광장까지의 구간과 청계광장 ~ 광교까지의 구간*은 일제강점기 ~ 1955년 까지 복개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은 1958년 5월 ~ 1961년 12월까지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은 1965년 ~ 196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고,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은 1970년 ~ 1977년까지 복개가 이루어졌다.(*별표로 표시된 부분은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2005년 9월 30일에 복개가 모두 철거되고 복원된 구간이다.)3. 역사
청계천의 역사에 대하여는 고려시대와 조선의 한양정도(漢陽定都) 당시까지는 자연하천 그대로였기 때문에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 그 후 조선 초기에 태종이 박자청에게 하천의 바닥을 넓히고, 둑을 쌓는 개거공사(開渠工事)를 맏기면서 처음으로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으며(또한 이 때 광통교, 혜정교 등의 다리를 돌로 만드는 공사도 진행되었다. 이때부터 게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에 치수사업을 상당히 진행하였지만 폭우가 올때마다 피해는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 이후로는 준설된 적이 없어 토사가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오간수문이 막히게 될 상황까지 이르게 되자 영조는 1760년 2월에 자원한 분들에게 국가에서 품삯(일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을 주고 고용한 고공들을 동원하여 하천 준설과 양쪽 하천변에 석축을 쌓고, 하천 물줄기 경로를 변경하는 본격적인 치수사업을 시행하였으며, 이러한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실상 자연상태의 구불구불하였던 물줄기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직선화 되었다. 이렇게 조선 초기와 중기를 거치면서 청계천의 치수사업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건천에 가까운 상태로 흘러갔고,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등의 영향에 따라 오수가 많이 들어오는 관계로 주기적으로 보수를 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 발생하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순조때부터 고종 때까지도 준설공사는 계속되었으며, 심지어는 청계천으로 이름이 바꾼 후인 일제강점기 초반에도 근대적 도시계획의 성격을 띤 대대적인 준설공사가 계속 이루어졌다. 그 후 청계천은 광복 이전까지 일제에 의하여 청계천 복개공사가 진행되었지만, 일부 구간만 마무리된 채 미완성 상태로 남았고, 6.25전쟁 이후인 1958년 5월부터 복개 공사가 재개되어, 1961년 12월까지 광교 ~ 청계6가까지의 구간이 복개가 이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65년 ~ 1967년까지는 청계6가 ~ 청계8가(신설동)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고, 1970년 ~ 1977년까지는 청계8가 ~ 신답철교까지의 구간의 복개가 이루어졌으며, 복개된 청계천 위에는 청계고가도로가 건설되게 되었다. 그 후. 1990년대 들어 청계천의 복개 구조물과 상당히 노후된 청계고가도로의 안전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대두되었고, 이에 따라 이명박 당시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청계천의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것을 공약하였고, 32대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후 2003년 1월에 청계고가도로의 철거공사가 시작되었고, 지금의 청계광장 앞쪽부터 성동구 신답 철교까지의 약 5.84km의 구간에 고가도로와 복개를 철거하고, 물길을 복원하는 공사가 38억 6,739만원을 들여서 2005년 9월 30일에 모두 완공되었다. 현재 복원된 청계천을 흐르는 물은 잠실대교 부근의 자양취수장에서 취수한 한강물과 도심 지하철역 부근의 지하수를 정수·소독 처리하여 공급된 물이며, 통수단면 아래쪽에는 여전히 도심의 오·폐수가 흐르고 있다. 또한.청계천 장통교 옆 벽면에는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화성을 행차하는 것을 그린 반차도(班次圖)를 타일로 옮겨놓은 벽면 예술이 조성되었고, 다산교와 영도교 사이에는 복개 이전에 아낙네들이 빨래를 했던 \\\\\\\\\\\\\\\'청계천 빨래터\\\\\\\\\\\\\\\'를 복원해 놓았으며, 청계천 복원 사업에 맞추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는 만든 타일 벽인 \\\\\\\\\\\\\\\'소망의 벽\\\\\\\\\\\\\\\'을 만들어 놓은 등 복원된 청계천에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또한 \\\\\\\\\\\\\\\'존치교각\\\\\\\\\\\\\\\'이라는 이름으로 옛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을 3개 남겨 놓았고, 청계광장에는 팝 아티스트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하여 KT가 서울시에 기증한 소라탑이라는 작품이 설치되었다. 그 후. 서울특별시는 2050년까지 장기 계획을 세워 청계천을 역사와 전통이 있는 방향의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러한 계획에 따르면, 2018년까지 청계천의 인공 보를 철거하고. 2030년까지는 수표교 등의 유적을 본래의 위치에 옮겨놓으며, 중·하류 부분의 수질을 개선할 예정이고, 청계천 발원지 쪽 물줄기인 백운동천이나 지류인 삼청동천의 계곡수도 이 때까지 유입시키도록 결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2050년까지는 옥류동천과 남산동천의 물줄기도 청계천으로 유입시키기로 하였다. (1)○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의 청계천의 발원지쪽인 청운효자동 일대는 청와대 주변으로 개발이 상당히 제한되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예전의 모습이 상당히 보전되어 있으며 이에 더해 청계천 물줄기까지 복원된다면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청계천의 물길을 상당부분 복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부분 중 청계천의 조선시대 초 역사의 부분처럼 청계천이 조선시대 초반에는 하천에 홍수가 나면 민가가 침수되는 피해를 일으켰고, 평소 때에는 오수가 흘러들어 매우 더러운 상태를 보였다는 과거의 사실이 있었고 그나마 여름철에 시원한 물이 많이 흐르는 수성동계곡쪽 옥류동천을 제외하면 청계천의 발원지쪽의 지천 물줄기도 거의 대부분이 과거에도 물이 적게 흘렀고 지금은 아예 건천화된 하천도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아 청계천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몇일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수량이 감소하면서 물에 녹조가 생기고 악취가 발생하거나 아예 건천화(하천의 물이 마르게 되는 것)되면서 하천의 바닥이 모두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시민들에게 깨끗한 자연환경을 누리도록 하기 위하여 청계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필요가 있다면 남산동천 등 거의 모든 지천을 복원하고, 팔당댐에서 물이나 한강에 강변여과 장치를 설치하여 한강변에서 취수한 강변여과수를 청계천 상류의 계곡에 강수량에 따라 적절한 수량으로 공급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도림천이나 양재천 하류의 물줄기를 한강으로 방류하지 않고 청계천으로 방류하도록 한강 합수점 인근에 관로를 만들어 청계천에 방류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1) 청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청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청계천 복원사업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4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성북천(城北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성북로 일대 ~ 한성대잎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 ~ 보문골목시장 옆 ~ 신설동 일대를 거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45km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복개된 구간은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까지(약 1.8km 정도)의 구간이고 예전에는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약 1.86km 정도) 구간도 복개되어 있어 약 3.66km 정도가 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복개되었던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 구간은 2001년 1단계부터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 착공을 시작한 후 2003년부터 2010년 마지막 단계인 4,5단계의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가 모두 완료되어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존재하는 구간이다.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한성대입구역 뒤쪽 ~ 양회다리 부근까지의 구간은 1967년 10월 30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선교 북쪽 180m 구간은 1977년 9월 1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방대 대학원 옆 ~ 성북초 옆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대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물가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맑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수질이 많이 악화되었다. 그 후 2001년 후반부터 2010년 후반까지 복개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의 복개 시작지점부터 청계천 합류점까지 모두 생태하천으로 조성한 이후, 지금은 하천의 물이 매우 맑고, 하천변 중 상당 수 구간은 생태계가 충분히 복원되어 있으며, 성북천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용수의 기능을 할 목적으로 인근 지하철 역사, 통신구, 전력구에서 배출되는 지하수를 성북천으로 흐르게 하였고, 청계천 물을 성북천에 매설한 유지 용수관을 이용해 한성대입구역 부근까지 끌어 올려 방류하여 하류로 흐르게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청계천의 청운효자동 일대 구간과 마찬가지로, 현재 복개된 구간을 모두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대기업이나 국내 여러 저명한 기업가 또는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의 저택과 여러 나라의 외교관 대사관저 건물들, 간송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적인 감각을 가진 작품 수준의 건물들, 중산층 자택,과거 이 일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달동네 등의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성북천의 복개 구간도 철거할 경우 성북동 안쪽의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한 주요 도로인 성북로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되므로 복원될 경우 하천 주위로 천변도로를 넓게 개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성북천의 상류는 청계천의 상류와는 다르게 물이 어느 정도는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생태계도 제대로 보존되어 성공적인 복원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 성북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북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성북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4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성북천(城北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성북로 일대 ~ 한성대잎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 ~ 보문골목시장 옆 ~ 신설동 일대를 거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45km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복개된 구간은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까지(약 1.8km 정도)의 구간이고 예전에는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약 1.86km 정도) 구간도 복개되어 있어 약 3.66km 정도가 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복개되었던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 구간은 2001년 1단계부터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 착공을 시작한 후 2003년부터 2010년 마지막 단계인 4,5단계의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가 모두 완료되어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존재하는 구간이다.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한성대입구역 뒤쪽 ~ 양회다리 부근까지의 구간은 1967년 10월 30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선교 북쪽 180m 구간은 1977년 9월 1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방대 대학원 옆 ~ 성북초 옆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대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물가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맑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수질이 많이 악화되었다. 그 후 2001년 후반부터 2010년 후반까지 복개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의 복개 시작지점부터 청계천 합류점까지 모두 생태하천으로 조성한 이후, 지금은 하천의 물이 매우 맑고, 하천변 중 상당 수 구간은 생태계가 충분히 복원되어 있으며, 성북천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용수의 기능을 할 목적으로 인근 지하철 역사, 통신구, 전력구에서 배출되는 지하수를 성북천으로 흐르게 하였고, 청계천 물을 성북천에 매설한 유지 용수관을 이용해 한성대입구역 부근까지 끌어 올려 방류하여 하류로 흐르게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청계천의 청운효자동 일대 구간과 마찬가지로, 현재 복개된 구간을 모두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대기업이나 국내 여러 저명한 기업가 또는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의 저택과 여러 나라의 외교관 대사관저 건물들, 간송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적인 감각을 가진 작품 수준의 건물들, 중산층 자택,과거 이 일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달동네 등의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성북천의 복개 구간도 철거할 경우 성북동 안쪽의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한 주요 도로인 성북로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되므로 복원될 경우 하천 주위로 천변도로를 넓게 개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성북천의 상류는 청계천의 상류와는 다르게 물이 어느 정도는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생태계도 제대로 보존되어 성공적인 복원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 성북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북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성북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4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성북천(城北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성북로 일대 ~ 한성대잎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 ~ 보문골목시장 옆 ~ 신설동 일대를 거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45km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복개된 구간은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까지(약 1.8km 정도)의 구간이고 예전에는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약 1.86km 정도) 구간도 복개되어 있어 약 3.66km 정도가 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복개되었던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 구간은 2001년 1단계부터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 착공을 시작한 후 2003년부터 2010년 마지막 단계인 4,5단계의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가 모두 완료되어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존재하는 구간이다.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한성대입구역 뒤쪽 ~ 양회다리 부근까지의 구간은 1967년 10월 30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선교 북쪽 180m 구간은 1977년 9월 1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방대 대학원 옆 ~ 성북초 옆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대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물가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맑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수질이 많이 악화되었다. 그 후 2001년 후반부터 2010년 후반까지 복개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의 복개 시작지점부터 청계천 합류점까지 모두 생태하천으로 조성한 이후, 지금은 하천의 물이 매우 맑고, 하천변 중 상당 수 구간은 생태계가 충분히 복원되어 있으며, 성북천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용수의 기능을 할 목적으로 인근 지하철 역사, 통신구, 전력구에서 배출되는 지하수를 성북천으로 흐르게 하였고, 청계천 물을 성북천에 매설한 유지 용수관을 이용해 한성대입구역 부근까지 끌어 올려 방류하여 하류로 흐르게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청계천의 청운효자동 일대 구간과 마찬가지로, 현재 복개된 구간을 모두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대기업이나 국내 여러 저명한 기업가 또는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의 저택과 여러 나라의 외교관 대사관저 건물들, 간송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적인 감각을 가진 작품 수준의 건물들, 중산층 자택,과거 이 일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달동네 등의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성북천의 복개 구간도 철거할 경우 성북동 안쪽의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한 주요 도로인 성북로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되므로 복원될 경우 하천 주위로 천변도로를 넓게 개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성북천의 상류는 청계천의 상류와는 다르게 물이 어느 정도는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생태계도 제대로 보존되어 성공적인 복원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 성북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북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성북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4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성북천(城北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성북로 일대 ~ 한성대잎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 ~ 보문골목시장 옆 ~ 신설동 일대를 거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45km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복개된 구간은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까지(약 1.8km 정도)의 구간이고 예전에는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약 1.86km 정도) 구간도 복개되어 있어 약 3.66km 정도가 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복개되었던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 구간은 2001년 1단계부터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 착공을 시작한 후 2003년부터 2010년 마지막 단계인 4,5단계의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가 모두 완료되어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존재하는 구간이다.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한성대입구역 뒤쪽 ~ 양회다리 부근까지의 구간은 1967년 10월 30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선교 북쪽 180m 구간은 1977년 9월 1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방대 대학원 옆 ~ 성북초 옆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대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물가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맑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수질이 많이 악화되었다. 그 후 2001년 후반부터 2010년 후반까지 복개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의 복개 시작지점부터 청계천 합류점까지 모두 생태하천으로 조성한 이후, 지금은 하천의 물이 매우 맑고, 하천변 중 상당 수 구간은 생태계가 충분히 복원되어 있으며, 성북천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용수의 기능을 할 목적으로 인근 지하철 역사, 통신구, 전력구에서 배출되는 지하수를 성북천으로 흐르게 하였고, 청계천 물을 성북천에 매설한 유지 용수관을 이용해 한성대입구역 부근까지 끌어 올려 방류하여 하류로 흐르게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청계천의 청운효자동 일대 구간과 마찬가지로, 현재 복개된 구간을 모두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대기업이나 국내 여러 저명한 기업가 또는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의 저택과 여러 나라의 외교관 대사관저 건물들, 간송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적인 감각을 가진 작품 수준의 건물들, 중산층 자택,과거 이 일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달동네 등의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성북천의 복개 구간도 철거할 경우 성북동 안쪽의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한 주요 도로인 성북로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되므로 복원될 경우 하천 주위로 천변도로를 넓게 개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성북천의 상류는 청계천의 상류와는 다르게 물이 어느 정도는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생태계도 제대로 보존되어 성공적인 복원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 성북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북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성북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4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성북천(城北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성북로 일대 ~ 한성대잎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 ~ 보문골목시장 옆 ~ 신설동 일대를 거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45km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복개된 구간은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까지(약 1.8km 정도)의 구간이고 예전에는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약 1.86km 정도) 구간도 복개되어 있어 약 3.66km 정도가 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복개되었던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 구간은 2001년 1단계부터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 착공을 시작한 후 2003년부터 2010년 마지막 단계인 4,5단계의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가 모두 완료되어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존재하는 구간이다.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한성대입구역 뒤쪽 ~ 양회다리 부근까지의 구간은 1967년 10월 30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선교 북쪽 180m 구간은 1977년 9월 1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방대 대학원 옆 ~ 성북초 옆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대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물가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맑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수질이 많이 악화되었다. 그 후 2001년 후반부터 2010년 후반까지 복개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의 복개 시작지점부터 청계천 합류점까지 모두 생태하천으로 조성한 이후, 지금은 하천의 물이 매우 맑고, 하천변 중 상당 수 구간은 생태계가 충분히 복원되어 있으며, 성북천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용수의 기능을 할 목적으로 인근 지하철 역사, 통신구, 전력구에서 배출되는 지하수를 성북천으로 흐르게 하였고, 청계천 물을 성북천에 매설한 유지 용수관을 이용해 한성대입구역 부근까지 끌어 올려 방류하여 하류로 흐르게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청계천의 청운효자동 일대 구간과 마찬가지로, 현재 복개된 구간을 모두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대기업이나 국내 여러 저명한 기업가 또는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의 저택과 여러 나라의 외교관 대사관저 건물들, 간송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적인 감각을 가진 작품 수준의 건물들, 중산층 자택,과거 이 일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달동네 등의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성북천의 복개 구간도 철거할 경우 성북동 안쪽의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한 주요 도로인 성북로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되므로 복원될 경우 하천 주위로 천변도로를 넓게 개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성북천의 상류는 청계천의 상류와는 다르게 물이 어느 정도는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생태계도 제대로 보존되어 성공적인 복원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 성북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북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성북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북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4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약 1.8km 정도) |
복개 년도 |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성북천(城北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삼청각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성북로 일대 ~ 한성대잎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 ~ 보문골목시장 옆 ~ 신설동 일대를 거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 성북천교 밑쪽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45km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복개된 구간은 동방대 대학원 옆 ~ 한성대잎구역 뒤쪽까지(약 1.8km 정도)의 구간이고 예전에는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약 1.86km 정도) 구간도 복개되어 있어 약 3.66km 정도가 복개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전에 복개되었던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구청 및 성북경찰서 부근까지의 구간은 2001년 1단계부터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 착공을 시작한 후 2003년부터 2010년 마지막 단계인 4,5단계의 복개 철거 및 복원공사가 모두 완료되어 지금은 생태하천으로 존재하는 구간이다.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성북초 옆쪽 ~ 한성대입구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한성대입구역 뒤쪽 ~ 양회다리 부근까지의 구간은 1967년 10월 30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삼선교 북쪽 180m 구간은 1977년 9월 1일에 복개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동방대 대학원 옆 ~ 성북초 옆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일대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물가에서 빨래를 하였다고 할 정도로 물이 맑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수질이 많이 악화되었다. 그 후 2001년 후반부터 2010년 후반까지 복개를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지금의 복개 시작지점부터 청계천 합류점까지 모두 생태하천으로 조성한 이후, 지금은 하천의 물이 매우 맑고, 하천변 중 상당 수 구간은 생태계가 충분히 복원되어 있으며, 성북천을 유지하기 위한 유지용수의 기능을 할 목적으로 인근 지하철 역사, 통신구, 전력구에서 배출되는 지하수를 성북천으로 흐르게 하였고, 청계천 물을 성북천에 매설한 유지 용수관을 이용해 한성대입구역 부근까지 끌어 올려 방류하여 하류로 흐르게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청계천의 청운효자동 일대 구간과 마찬가지로, 현재 복개된 구간을 모두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대기업이나 국내 여러 저명한 기업가 또는 일부 사회 저명인사들의 저택과 여러 나라의 외교관 대사관저 건물들, 간송미술관을 비롯하여 여러 예술적인 감각을 가진 작품 수준의 건물들, 중산층 자택,과거 이 일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역할을 하는 달동네 등의 주변의 여러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성북천의 복개 구간도 철거할 경우 성북동 안쪽의 사실상 유일하다시피 한 주요 도로인 성북로가 상당 부분 사라지게 되므로 복원될 경우 하천 주위로 천변도로를 넓게 개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성북천의 상류는 청계천의 상류와는 다르게 물이 어느 정도는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고, 주위의 생태계도 제대로 보존되어 성공적인 복원사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 성북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북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성북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7.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 (1955 ~ 1957년 복개로 추정)*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 (1939년 복개로 추정)*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1967년 8월 15일)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만초천(蔓草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무악동 무악재 밑에서 발원하여 독립문 앞 ~ 서대문역 동쪽 ~ 서울역 서편 ~ 남영역 서편 ~ 용산전자상가 앞쪽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정지 뒤쪽을 거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동 원효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7.1km 정도이다. 또한. 성북천 구간 중 한성대입구역 뒤쪽 ~ 성북천교 밑쪽 청계천 합류점까지는 현재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무악재 밑 ~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55 ~ 1957년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역 서편 ~서소문로 앞까지의 구간은 1939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효대교 북단 ~ 서울역 서편까지의 구간은 1967년 8월 15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만초천에는 연적교(硯滴橋), 석교(石橋), 경교(京橋)를 비롯하여 여러개의 다리가 있었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이 용산을 점령함과 동시에 만초천의 개수공사를 하였다. 그 후 1914년에는 한강의 역류를 막기 위하여 제방공사에 착수하였고, 1919년에는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기존의 만초천을 경부선 서쪽으로 옮기고 기존 물줄기 중 갈월동 ~ 삼각지 까지의 구간은 지류로 남겨두었다. (1) 또한 1939년에는 청파로 일대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되었고, 해방 이후 1955 ~ 1957년 사이에는 발원지부터 서울역 서쪽까지의 상류 구간 모두가 복개되었으며, 1962년 8월 22일부터는 서울역에서 원효대교 북단까지의 복개 공사가 시작되었고, 복개 공사는 1967년 8월 15일에 대체로 완공되었다. 1972년에는 만초천을 복개한 부지에 서소문아파트가 들어서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무악재 밑 발원지부터 시작하는 상류 구간을 비롯하여 본류와 지류를 포함한 전 구간을 복원할 경우 본류 주위의 독립문,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 용산전자상가뿐만 아니라 각각의 지류 주위에 위치한 경리단길, 이태원, 용산공원, 전쟁기념관, 독일문화원 등의 여러 명소와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의 품격이 더해져 역사문화와 자연환경이 조화된 성공적인 도시재생 사례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완공될 경우 주위의 고층 건물들과도 조화되고, 현재 숲으로 변한 용산 정비창 일대가 보존될 경우 아름다운 숲과도 조화되는 등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이 모두 조화되는 방향의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무악재부터 독립문까지의 구간을 비롯하여 서소문성지 ~ 원효대교 북단 구간도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만초천변 도시고속화도로 건설 등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더구나. 1919년 남대문역을 개축하면서 지류로 바뀌거나 사라지게 된 예전의 만초천 물길의 경우 이를 복원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며, 그 이유는 만초천 물길을 경부선 철로가 가로질러 가기 때문이며 물길을 복원할 경우 경부선 해당 구간의 지하화나 고가화 등으로 철로를 통째로 옮기는 공사도 진행하여야 물길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으로 복원하는 것이 어려운 본류와는 다르게, 지류 구간은 대부분 쉽게 복원할 수 있고, 이태원 쪽 지류는 복원될 경우 경리단길과 이태원 일대를 비롯하여 과거 미군 부지였다가 현재는 반환되어 조성된 용산공원 등의 여러 명소와도 조화될 뿐만 아니라 경리단길과도 조화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후암천 지류 구간을 비롯한 다른 지류들도 복원될 경우 대부분 구간이 경사가 있는 구간이라 깨끗하고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므로 언젠가는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만초천 물길이 남겨놓은 흔적, 갈월동 굴다리 숙명여대 앞 진입도로가 두 갈래 일방통행로가 된 까닭은? | 민족문제연구소 (minjok.or.kr) (2) 만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아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3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현동 렉스힐빌라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용강동 마포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40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점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아현천(阿峴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현동 렉스힐빌라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렉스힐빌라 옆 복개 시작점 ~ 아현역 옆 ~ 애오개역 뒤쪽 ~ 공덕역 옆을 거쳐 마포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3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아현천은 과거 마포에 모여든 물자들을 작은 배에 나누어 실은 후 물길을 통하여 돈의문 인근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한양 도심으로 물자를 가장 빠르게 운송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뜻에서 아현천은 \\\'물건이 먼저 통과하는 하천\\\' 이라는 의미로 ‘선통물천’(先通物川→善通物川)이라고도 불렸고, 한편 아현동 주민과 공덕동 주민은 각각 ‘놋개천’ 이나 ‘공덕천’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예전에는 아현천 상류 일대를 \\\'새절터\\\' 라고 불렀고, 이 일대에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였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아현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가장 빠르게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과 만초천의 지류로써일제가 1920년대 만들었던 인공하천인 선통물천을 제외하고는 인근의 만초천이나 청계천과는 다르게 특별한 역사나 문화적인 요소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류구간의 계곡마저 특별한 비경이 있지 않고 물도 거의 흐르지 않는, 단지 아현동과 공덕동 일대를 흐르는 평범한 하천에 불과하다. 물론 상류 구간에 복수천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현천 상류쪽에 과거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 역시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현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운송하는 주요 경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돈의문 인근에서 마포대교까지의 구간은 나루터를 테마로 하여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충분히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연세대,이화여대,추계예술대 3개의 대학이 밀집한 곳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이 많은 서울 도심의 사이에 있는 위치를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상류 구간에는 계곡수가 충분하지 않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필히 유지용수를 계속 흘러야 유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애오개역에서 공덕역을 아우르는 중류 구간은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천변도로 건설 든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일부는 추계예술대와도 인접해 있어 예술대생 및 교수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제대로 조화시켜 복원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아현, 흔적 더듬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아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아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아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3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현동 렉스힐빌라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용강동 마포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40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점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아현천(阿峴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현동 렉스힐빌라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렉스힐빌라 옆 복개 시작점 ~ 아현역 옆 ~ 애오개역 뒤쪽 ~ 공덕역 옆을 거쳐 마포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3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아현천은 과거 마포에 모여든 물자들을 작은 배에 나누어 실은 후 물길을 통하여 돈의문 인근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한양 도심으로 물자를 가장 빠르게 운송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뜻에서 아현천은 \\\\\\\\\\\\\\\'물건이 먼저 통과하는 하천\\\\\\\\\\\\\\\' 이라는 의미로 ‘선통물천’(先通物川→善通物川)이라고도 불렸고, 한편 아현동 주민과 공덕동 주민은 각각 ‘놋개천’ 이나 ‘공덕천’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예전에는 아현천 상류 일대를 \\\\\\\\\\\\\\\'새절터\\\\\\\\\\\\\\\' 라고 불렀고, 이 일대에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였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아현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가장 빠르게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과 만초천의 지류로써일제가 1920년대 만들었던 인공하천인 선통물천을 제외하고는 인근의 만초천이나 청계천과는 다르게 특별한 역사나 문화적인 요소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류구간의 계곡마저 특별한 비경이 있지 않고 물도 거의 흐르지 않는, 단지 아현동과 공덕동 일대를 흐르는 평범한 하천에 불과하다. 물론 상류 구간에 복수천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현천 상류쪽에 과거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 역시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현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운송하는 주요 경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돈의문 인근에서 마포대교까지의 구간은 나루터를 테마로 하여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충분히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연세대,이화여대,추계예술대 3개의 대학이 밀집한 곳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이 많은 서울 도심의 사이에 있는 위치를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상류 구간에는 계곡수가 충분하지 않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필히 유지용수를 계속 흘러야 유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애오개역에서 공덕역을 아우르는 중류 구간은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천변도로 건설 든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일부는 추계예술대와도 인접해 있어 예술대생 및 교수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제대로 조화시켜 복원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아현, 흔적 더듬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아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아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아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3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현동 렉스힐빌라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용강동 마포대교 북단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40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점 *위의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년월일은 현재 알려지지 않았음 |
1. 개요 아현천(阿峴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현동 렉스힐빌라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렉스힐빌라 옆 복개 시작점 ~ 아현역 옆 ~ 애오개역 뒤쪽 ~ 공덕역 옆을 거쳐 마포대교 북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3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복개년도는 해당 구간이 복개가 된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하는 관련 자료를 참조하여 작성한 것이므로 해당 구간에 대한 정확한 복개시기는 현재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3. 역사 아현천은 과거 마포에 모여든 물자들을 작은 배에 나누어 실은 후 물길을 통하여 돈의문 인근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한양 도심으로 물자를 가장 빠르게 운송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뜻에서 아현천은 \\\\\\\'물건이 먼저 통과하는 하천\\\\\\\' 이라는 의미로 ‘선통물천’(先通物川→善通物川)이라고도 불렸고, 한편 아현동 주민과 공덕동 주민은 각각 ‘놋개천’ 이나 ‘공덕천’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예전에는 아현천 상류 일대를 \\\\\\\'새절터\\\\\\\' 라고 불렀고, 이 일대에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기도 하였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아현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가장 빠르게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과 만초천의 지류로써일제가 1920년대 만들었던 인공하천인 선통물천을 제외하고는 인근의 만초천이나 청계천과는 다르게 특별한 역사나 문화적인 요소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상류구간의 계곡마저 특별한 비경이 있지 않고 물도 거의 흐르지 않는, 단지 아현동과 공덕동 일대를 흐르는 평범한 하천에 불과하다. 물론 상류 구간에 복수천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현천 상류쪽에 과거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이 역시 확실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현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운송하는 주요 경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돈의문 인근에서 마포대교까지의 구간은 나루터를 테마로 하여 생태하천 복원사업을 충분히 진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연세대,이화여대,추계예술대 3개의 대학이 밀집한 곳과 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조물들이 많은 서울 도심의 사이에 있는 위치를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상류 구간에는 계곡수가 충분하지 않아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필히 유지용수를 계속 흘러야 유지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애오개역에서 공덕역을 아우르는 중류 구간은 현재 넓은 도로로 되어있어 천변도로 건설 든 복원할 경우의 교통 관련 대책들을 충분히 마련한 후 복원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일부는 추계예술대와도 인접해 있어 예술대생 및 교수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제대로 조화시켜 복원한다면 또 다른 핫플레이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아현, 흔적 더듬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아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아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선통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08km 정도 |
분수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아현동 마포경찰서{아현파출소}뒤쪽 분수점 |
합수점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마포소방서 앞 합수점(봉원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마포소방서 앞 봉원천 합수점 ~ 신수동, 대흥동 ~ 염리동 ~ 아현동(1968년 ~ 1969년 9월 2일 ~ 1970년대 초반{추정}) |
1. 개요
선통물천(善通物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아현동 마포경찰서{아현파출소 뒤쪽}의 아현천에서 나누어져 대흥시장 앞 ~ 서강대 옆 ~ 마포소방서 앞을 거쳐 마포대교 북단에서 봉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인공하천으로 길이는 약 2.08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마포소방서 앞 봉원천 합수점 ~ 신수동, 대흥동 ~ 염리동 ~ 아현동까지의 구간은 1968년 ~ 1969년 9월 2일 ~ 1970년대 초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신수동 일대 135m 구간은 1985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수동 일대 195m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숭문중·고 앞 210m 구간(1993 ~ 1994년)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아 조선 시대에는 선통물천은 아현천의 다른 이름이었다.과거 마포에 모여든 물자들을 작은 배에 나누어 실은 후 물길을 통하여 돈의문 인근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한양 도심으로 물자를 가장 빠르게 운송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현천 부분을 참조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선통물천은 1925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인공하천으로써, 지금까지도 하수 처리와 범람원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지속적 관리를 통하여 보존해야 할 시설물로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아현동 쪽 터널 입구에는 ‘선통물(先通物)’이 음각된 표지석이 있었지만 보존 처리된 후에 매립되었고, 그 후 이러한 표지석를 시에서 복제하여 2014년 원래 자리에 전시하였으며,표지석에 \\\'선통물\\\' 이라고 표시된 한문 글씨는 제6대 조선총독인 우가키 가즈시게가 쓴 것이다.
그 후 1932년 5월에는 경성부의 5개년 계획사업에 의하여 착수된 쌍룡산을 관통하는 터널(당시 이 터널은 터널은 길이는 약 620m 였고, 단면의 폭은 약 4m였다.)의 공사가 준공되었고, 1953년 하반기에는 긴급 준설 공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1962년에는 아현동 일대의 빗물이 아현천으로 유입되어 마포 일대를 침수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를 선통물천으로 유입시키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 후 1969년부터는 복개공사가 시작된 후 1993~1994년까지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또한. 2016년 5월 21일 경의선숲길이 전 구간 완공되면서 숲길의 신수동 구간에는 선통물천이 재현되는 모습이 보여지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아 비록 지금의 선통물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운송하는 주요 경로의 역할을 하였던 조선시대까지의 선통물천과는 다른 하천이고, 자연하천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든 하천이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일제 잔재라고도 할 수 있지만 특별한 비경이 있지 않고 물도 거의 흐르지 않는, 단지 아현동과 공덕동 일대를 흐르는 평범한 하천에 불과하다. 물론 상류 구간에 복수천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현천 상류쪽에 과거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하수 처리와 범람원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지속적 관리를 통하여 보존해야 할 시설물로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보아 모든 구간을 과거의 역사와 문화, 자연 생태가 공존하는 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선통물천의 신수동 구간이 서강대 옆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유지용수로는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아현, 흔적 더듬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선통물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선통물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선통물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2.08km 정도 |
분수점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아현동 마포경찰서{아현파출소}뒤쪽 분수점 |
합수점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마포소방서 앞 합수점(봉원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마포소방서 앞 봉원천 합수점 ~ 신수동, 대흥동 ~ 염리동 ~ 아현동(1968년 ~ 1969년 9월 2일 ~ 1970년대 초반{추정}) |
1. 개요
선통물천(善通物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아현동 마포경찰서{아현파출소 뒤쪽}의 아현천에서 나누어져 대흥시장 앞 ~ 서강대 옆 ~ 마포소방서 앞을 거쳐 마포대교 북단에서 봉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인공하천으로 길이는 약 2.08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마포소방서 앞 봉원천 합수점 ~ 신수동, 대흥동 ~ 염리동 ~ 아현동까지의 구간은 1968년 ~ 1969년 9월 2일 ~ 1970년대 초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신수동 일대 135m 구간은 1985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수동 일대 195m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숭문중·고 앞 210m 구간(1993 ~ 1994년)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아 조선 시대에는 선통물천은 아현천의 다른 이름이었다.과거 마포에 모여든 물자들을 작은 배에 나누어 실은 후 물길을 통하여 돈의문 인근까지 운송하는 역할을 하였고, 이러한 경로를 통하여 한양 도심으로 물자를 가장 빠르게 운송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현천 부분을 참조하시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선통물천은 1925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인공하천으로써, 지금까지도 하수 처리와 범람원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지속적 관리를 통하여 보존해야 할 시설물로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아현동 쪽 터널 입구에는 ‘선통물(先通物)’이 음각된 표지석이 있었지만 보존 처리된 후에 매립되었고, 그 후 이러한 표지석를 시에서 복제하여 2014년 원래 자리에 전시하였으며,표지석에 \\\'선통물\\\' 이라고 표시된 한문 글씨는 제6대 조선총독인 우가키 가즈시게가 쓴 것이다.
그 후 1932년 5월에는 경성부의 5개년 계획사업에 의하여 착수된 쌍룡산을 관통하는 터널(당시 이 터널은 터널은 길이는 약 620m 였고, 단면의 폭은 약 4m였다.)의 공사가 준공되었고, 1953년 하반기에는 긴급 준설 공사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1962년에는 아현동 일대의 빗물이 아현천으로 유입되어 마포 일대를 침수시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를 선통물천으로 유입시키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 후 1969년부터는 복개공사가 시작된 후 1993~1994년까지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또한. 2016년 5월 21일 경의선숲길이 전 구간 완공되면서 숲길의 신수동 구간에는 선통물천이 재현되는 모습이 보여지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아 비록 지금의 선통물천은 과거 한양까지 물건을 운송하는 주요 경로의 역할을 하였던 조선시대까지의 선통물천과는 다른 하천이고, 자연하천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든 하천이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일제 잔재라고도 할 수 있지만 특별한 비경이 있지 않고 물도 거의 흐르지 않는, 단지 아현동과 공덕동 일대를 흐르는 평범한 하천에 불과하다. 물론 상류 구간에 복수천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아현천 상류쪽에 과거 화장터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하수 처리와 범람원을 조절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지속적 관리를 통하여 보존해야 할 시설물로 인정받아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것으로 보아 모든 구간을 과거의 역사와 문화, 자연 생태가 공존하는 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선통물천의 신수동 구간이 서강대 옆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유지용수로는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자료: 아현, 흔적 더듬다.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선통물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선통물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원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교 북쪽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봉원천(奉元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연세대,신촌세브란스병원 옆쪽 ~ 신촌역 옆쪽 ~ 서강대역 옆쪽 ~ 광흥창역 옆쪽을 거쳐 서강대교 북쪽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창전삼거리 옆 ~ 서강대교 북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1960년대부터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복개공사가 진행 된 후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그 후. 2006년 부터는 서울의 9개 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이 중에서 6개 하천은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하천의 상당 수 구간 위에 도로가 있어 복개 구조물 철거에 따른 차로 축소가 교통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본 뒤 복원을 추진하기로 한 후 지금까지도 복개 철거와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봉원사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위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아현천과 비슷하게 상류에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실상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되어 있어 복원의 기대효과가 낮지만 상류쪽에는 서울의 주요 번화가 중 하나인 신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선통물천의 신수동 구간이 서강대 옆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유지용수로는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수도권]복개하천 6곳 콘크리트 걷어 낸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봉원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원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원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교 북쪽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봉원천(奉元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연세대,신촌세브란스병원 옆쪽 ~ 신촌역 옆쪽 ~ 서강대역 옆쪽 ~ 광흥창역 옆쪽을 거쳐 서강대교 북쪽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창전삼거리 옆 ~ 서강대교 북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1960년대부터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복개공사가 진행 된 후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그 후. 2006년 부터는 서울의 9개 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이 중에서 6개 하천은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하천의 상당 수 구간 위에 도로가 있어 복개 구조물 철거에 따른 차로 축소가 교통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본 뒤 복원을 추진하기로 한 후 지금까지도 복개 철거와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봉원사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위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아현천과 비슷하게 상류에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실상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되어 있어 복원의 기대효과가 낮지만 상류쪽에는 서울의 주요 번화가 중 하나인 신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선통물천의 신수동 구간이 서강대 옆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유지용수로는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수도권]복개하천 6곳 콘크리트 걷어 낸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봉원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원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원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교 북쪽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봉원천(奉元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연세대,신촌세브란스병원 옆쪽 ~ 신촌역 옆쪽 ~ 서강대역 옆쪽 ~ 광흥창역 옆쪽을 거쳐 서강대교 북쪽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창전삼거리 옆 ~ 서강대교 북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1960년대부터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복개공사가 진행 된 후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그 후. 2006년 부터는 서울의 9개 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이 중에서 6개 하천은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하천의 상당 수 구간 위에 도로가 있어 복개 구조물 철거에 따른 차로 축소가 교통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본 뒤 복원을 추진하기로 한 후 지금까지도 복개 철거와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봉원사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위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아현천과 비슷하게 상류에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실상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되어 있어 복원의 기대효과가 낮지만 상류쪽에는 서울의 주요 번화가 중 하나인 신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선통물천의 신수동 구간이 서강대 옆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유지용수로는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수도권]복개하천 6곳 콘크리트 걷어 낸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봉원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원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원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교 북쪽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봉원천(奉元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연세대,신촌세브란스병원 옆쪽 ~ 신촌역 옆쪽 ~ 서강대역 옆쪽 ~ 광흥창역 옆쪽을 거쳐 서강대교 북쪽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창전삼거리 옆 ~ 서강대교 북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1960년대부터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복개공사가 진행 된 후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그 후. 2006년 부터는 서울의 9개 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이 중에서 6개 하천은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하천의 상당 수 구간 위에 도로가 있어 복개 구조물 철거에 따른 차로 축소가 교통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본 뒤 복원을 추진하기로 한 후 지금까지도 복개 철거와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봉원사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위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아현천과 비슷하게 상류에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실상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되어 있어 복원의 기대효과가 낮지만 상류쪽에는 서울의 주요 번화가 중 하나인 신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선통물천의 신수동 구간이 서강대 옆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유지용수로는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수도권]복개하천 6곳 콘크리트 걷어 낸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봉원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원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원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교 북쪽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1960년대로 추정) |
1. 개요
봉원천(奉元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신촌동 봉원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연세대,신촌세브란스병원 옆쪽 ~ 신촌역 옆쪽 ~ 서강대역 옆쪽 ~ 광흥창역 옆쪽을 거쳐 서강대교 북쪽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6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봉원사 위쪽 ~ 창전삼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창전삼거리 옆 ~ 서강대교 북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1960년대부터는 1980년대 초반까지는 복개공사가 진행 된 후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그 후. 2006년 부터는 서울의 9개 하천을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고, 이 중에서 6개 하천은 복개를 철거하고 복원할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하천의 상당 수 구간 위에 도로가 있어 복개 구조물 철거에 따른 차로 축소가 교통에 미칠 영향을 따져 본 뒤 복원을 추진하기로 한 후 지금까지도 복개 철거와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아현천이나 선통물천과는 다르게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봉원사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위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아현천과 비슷하게 상류에 약수터가 있지만, 특별한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실상 먹을 수 없는 상태로 되어 있어 복원의 기대효과가 낮지만 상류쪽에는 서울의 주요 번화가 중 하나인 신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선통물천의 신수동 구간이 서강대 옆이라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여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며, 유지용수로는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수도권]복개하천 6곳 콘크리트 걷어 낸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봉원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원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연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9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성원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2동 성산대교 북단의 옆(홍제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연희천(延喜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성원아파트 뒤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대문소방서 옆 ~ 연희IC 옆 ~ 동교로 일대 ~ 망원정사거리 앞을 거쳐 마포구 망원2동 성산대교 북단의 옆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9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연희천도 봉원천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또한. 연희천이 복개된 곳에 위치한 연희맛로 일대는 한 곳에서 10년은 기본이고 30년을 넘어 50년동안 이 곳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온 오래된 식당들이 복개도로를 따라 위치해 있어 전국 곳곳에서 미식가들이 모여드는 유명한 맛집 거리로 알려져 있다.(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연희천도 봉원천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쪽 하천 주위로 예전부터 널리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명 맛집거리인 연희맛로가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생태계와 음식 문화가 적절하게 조화된 관광지로 복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유지용수로는 홍제천이나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오래된 식당들…모든 길은 ‘연희맛로’로 통한다 - 매일경제 (mk.co.kr)
○연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9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성원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2동 성산대교 북단의 옆(홍제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연희천(延喜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성원아파트 뒤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대문소방서 옆 ~ 연희IC 옆 ~ 동교로 일대 ~ 망원정사거리 앞을 거쳐 마포구 망원2동 성산대교 북단의 옆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9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연희천도 봉원천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또한. 연희천이 복개된 곳에 위치한 연희맛로 일대는 한 곳에서 10년은 기본이고 30년을 넘어 50년동안 이 곳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온 오래된 식당들이 복개도로를 따라 위치해 있어 전국 곳곳에서 미식가들이 모여드는 유명한 맛집 거리로 알려져 있다.(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연희천도 봉원천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쪽 하천 주위로 예전부터 널리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명 맛집거리인 연희맛로가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생태계와 음식 문화가 적절하게 조화된 관광지로 복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유지용수로는 홍제천이나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오래된 식당들…모든 길은 ‘연희맛로’로 통한다 - 매일경제 (mk.co.kr)
○연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9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성원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망원2동 성산대교 북단의 옆(홍제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연희천(延喜川)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성원아파트 뒤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대문소방서 옆 ~ 연희IC 옆 ~ 동교로 일대 ~ 망원정사거리 앞을 거쳐 마포구 망원2동 성산대교 북단의 옆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9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연희천도 봉원천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다.
또한. 연희천이 복개된 곳에 위치한 연희맛로 일대는 한 곳에서 10년은 기본이고 30년을 넘어 50년동안 이 곳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온 오래된 식당들이 복개도로를 따라 위치해 있어 전국 곳곳에서 미식가들이 모여드는 유명한 맛집 거리로 알려져 있다.(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연희천도 봉원천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의 역사나 기록이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판정하기는 어려운 하천이지만, 제법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상류 쪽의 계곡에는 여름철에 물이 어느 정도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쪽 하천 주위로 예전부터 널리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유명 맛집거리인 연희맛로가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생태계와 음식 문화가 적절하게 조화된 관광지로 복원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연세대와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대학생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병원을 중심으로 힐링을 테마로 하는 공간으로 복원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유지용수로는 홍제천이나 아현천과 봉원천의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오래된 식당들…모든 길은 ‘연희맛로’로 통한다 - 매일경제 (mk.co.kr)
○불광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2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불광사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2동 성산교 옆(홍제천) |
복개 구간 | 불광사 옆 ~ 응암역 옆(약 3.71km 정도) |
복개 년도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불광천(佛光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불광사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불광사 옆 ~ 연신내역 앞 ~ 구산역 앞 ~ 응암역 옆 ~ 증산역 앞 ~ 서울월드컵경기장 옆을 거쳐 마포구 성산2동 성산교 옆에서 홍제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2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불광사 옆 ~ 응암역 옆 까지의 구간(약 3.7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 ~ 응암역 옆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불광천은 불광동(佛光洞) 지명의 유래와 같이 상류 지역에 위치한 불광사(佛光寺)에서 이름을 따왔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연서내, 연신내, 까치내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한자로는 연서천(延曙川)이라고도 하였고, 역촌동이 마을 동쪽에 위치한 산에 가려져서 새벽을 늦게 맞이하는 곳이라고 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또한. 조선시대 인조반정 때 거사에 참여하기로 한 장단부사 이서(李曙)가 약속 장소인 이곳에 늦게 도착한 다음에 능양군(綾陽君:인조)이 신하를 늦게 맞이한 곳이라고 하여 영서천(迎曙川)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각각 불광동에서는 \\\'연서내\\\'라고 불렸고, 증산동에서는 \\\'까치내\\\'로 불렸다. 그 밖에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적의 불광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겸재 정선의 작품을 통하여 주변지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불광천은 예부터 모래내, 홍제천과 맞닿아 한강으로 흘러들었고 이 곳은 지금의 수색, 화전 지역이며 저지대였고,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당시 한강 폭이 넓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러한 모양이 호수처럼 넓어 보인다고 하여 서호(西湖)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서호지역과 반대편 안양천은 한강에 흙모래를 실어 오면서 결국 이 곳에 모래섬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생긴 섬이 지금의 난지도다. 그 후 1980년대부터는 불광천의 상류 구간 중 응암역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면서 건천화되어 곳곳에 오수가 유입되고 악취가 진동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1980년대 말까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인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으며 복개공사는 응암역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말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불광천은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하천일 뿐만 아니라, 상류의 불광사 계곡이 북한산에서 물줄기가 발원하므로 항상 수량이 풍부한 계류가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자연과 문명이 조화된 아름다운 생태하천으로 거듭니게 될 것이다. 물론. 연신내역 앞부터 응암역 옆까지는 평소 통행량이 많고 넓은 도로가 있지만 천변도로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면 복원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1) 관련 기사: 도림.우이.도봉천 2008년까지 복원(종합)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불광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불광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불광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2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불광사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2동 성산교 옆(홍제천) |
복개 구간 | 불광사 옆 ~ 응암역 옆(약 3.71km 정도) |
복개 년도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불광천(佛光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불광사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불광사 옆 ~ 연신내역 앞 ~ 구산역 앞 ~ 응암역 옆 ~ 증산역 앞 ~ 서울월드컵경기장 옆을 거쳐 마포구 성산2동 성산교 옆에서 홍제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2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불광사 옆 ~ 응암역 옆 까지의 구간(약 3.7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 ~ 응암역 옆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불광천은 불광동(佛光洞) 지명의 유래와 같이 상류 지역에 위치한 불광사(佛光寺)에서 이름을 따왔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연서내, 연신내, 까치내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한자로는 연서천(延曙川)이라고도 하였고, 역촌동이 마을 동쪽에 위치한 산에 가려져서 새벽을 늦게 맞이하는 곳이라고 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또한. 조선시대 인조반정 때 거사에 참여하기로 한 장단부사 이서(李曙)가 약속 장소인 이곳에 늦게 도착한 다음에 능양군(綾陽君:인조)이 신하를 늦게 맞이한 곳이라고 하여 영서천(迎曙川)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각각 불광동에서는 \\\\\\\'연서내\\\\\\\'라고 불렸고, 증산동에서는 \\\\\\\'까치내\\\\\\\'로 불렸다. 그 밖에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적의 불광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겸재 정선의 작품을 통하여 주변지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불광천은 예부터 모래내, 홍제천과 맞닿아 한강으로 흘러들었고 이 곳은 지금의 수색, 화전 지역이며 저지대였고,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당시 한강 폭이 넓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러한 모양이 호수처럼 넓어 보인다고 하여 서호(西湖)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서호지역과 반대편 안양천은 한강에 흙모래를 실어 오면서 결국 이 곳에 모래섬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생긴 섬이 지금의 난지도다. 그 후 1980년대부터는 불광천의 상류 구간 중 응암역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면서 건천화되어 곳곳에 오수가 유입되고 악취가 진동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1980년대 말까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인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으며 복개공사는 응암역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말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불광천은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하천일 뿐만 아니라, 상류의 불광사 계곡이 북한산에서 물줄기가 발원하므로 항상 수량이 풍부한 계류가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자연과 문명이 조화된 아름다운 생태하천으로 거듭니게 될 것이다. 물론. 연신내역 앞부터 응암역 옆까지는 평소 통행량이 많고 넓은 도로가 있지만 천변도로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면 복원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1) 관련 기사: 도림.우이.도봉천 2008년까지 복원(종합)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불광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불광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불광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9.21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불광사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2동 성산교 옆(홍제천) |
복개 구간 | 불광사 옆 ~ 응암역 옆(약 3.71km 정도) |
복개 년도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불광천(佛光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불광사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불광사 옆 ~ 연신내역 앞 ~ 구산역 앞 ~ 응암역 옆 ~ 증산역 앞 ~ 서울월드컵경기장 옆을 거쳐 마포구 성산2동 성산교 옆에서 홍제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9.2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불광사 옆 ~ 응암역 옆 까지의 구간(약 3.7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 ~ 응암역 옆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불광천은 불광동(佛光洞) 지명의 유래와 같이 상류 지역에 위치한 불광사(佛光寺)에서 이름을 따왔고, 또 다른 이름으로는 연서내, 연신내, 까치내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한자로는 연서천(延曙川)이라고도 하였고, 역촌동이 마을 동쪽에 위치한 산에 가려져서 새벽을 늦게 맞이하는 곳이라고 한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또한. 조선시대 인조반정 때 거사에 참여하기로 한 장단부사 이서(李曙)가 약속 장소인 이곳에 늦게 도착한 다음에 능양군(綾陽君:인조)이 신하를 늦게 맞이한 곳이라고 하여 영서천(迎曙川)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으며, 각각 불광동에서는 \\\\\\\'연서내\\\\\\\'라고 불렸고, 증산동에서는 \\\\\\\'까치내\\\\\\\'로 불렸다. 그 밖에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적의 불광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찾기 어렵지만, 겸재 정선의 작품을 통하여 주변지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불광천은 예부터 모래내, 홍제천과 맞닿아 한강으로 흘러들었고 이 곳은 지금의 수색, 화전 지역이며 저지대였고, 이러한 지형적 특성으로 당시 한강 폭이 넓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러한 모양이 호수처럼 넓어 보인다고 하여 서호(西湖)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서호지역과 반대편 안양천은 한강에 흙모래를 실어 오면서 결국 이 곳에 모래섬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생긴 섬이 지금의 난지도다. 그 후 1980년대부터는 불광천의 상류 구간 중 응암역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면서 건천화되어 곳곳에 오수가 유입되고 악취가 진동하게 되었고, 1990년대에는 1980년대 말까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인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으며 복개공사는 응암역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 불광사 옆 ~ 연신내역 뒤쪽 연서시장 입구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말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불광천은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하천일 뿐만 아니라, 상류의 불광사 계곡이 북한산에서 물줄기가 발원하므로 항상 수량이 풍부한 계류가 흐르고 있어 복개된 구간을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자연과 문명이 조화된 아름다운 생태하천으로 거듭니게 될 것이다. 물론. 연신내역 앞부터 응암역 옆까지는 평소 통행량이 많고 넓은 도로가 있지만 천변도로를 충분히 확보하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면 복원이 쉽게 이루어질 것이다.
(1) 관련 기사: 도림.우이.도봉천 2008년까지 복원(종합)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불광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불광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녹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1km 정도(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 약 4.95km 정도(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양평슈퍼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1동 응암역 옆(불광천) |
복개 구간 | 양평슈퍼 옆쪽 발원 물줄기: 전 구간 복개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 물줄기: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23km 정도) |
복개 년도 | 양평슈퍼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구기터널 밑의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녹번천(碌磻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녹번터널 밑의 옆 복개 시작점 ~ 북한산생태공원 앞 ~ 한국행정연구원 입구 ~ 불광역 뒤쪽을 거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와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독바위역 앞 ~ 불광역 앞 ~ 역촌역 앞 ~ 이마트 옆을 거쳐 응암1동 응암역 옆에서 불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3.21km 이고,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4.9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양평슈퍼 옆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구기터널계곡 위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구기터널 입구의 위쪽부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 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양평슈퍼 옆에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기터널 밑의 옆부터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녹번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70년대 양평슈퍼 쪽 물줄기를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의 구기터널 방향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불광천과 마찬가지로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하천이라 볼 수 있지만, 양평슈퍼 옆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예전에도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하지 않았지만 대구 달서천처럼 발원지까지의 모든 구간이 사라진 만큼 복원할 경우 가지게 되는 역사적 의미가 상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기터널 방향의 물줄기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계류가 흐르는 구기터널계곡에서 발원하고, 구기터널로 향하는 진홍로의 상당 수 구간 옆의 풍경도 수려한 만큼 복원할 경우 주위의 수려한 자연풍경과도 조화되어 성공적인 생태복원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부터 응암역 옆까지의 구간은 복원할 경우 인근 불광천과도 연계되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LG헬로비전 양천방송 - 녹번천 복개 하천 복원 공약 살펴보니 (2) 녹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녹번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와, 관련 백과인 녹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녹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1km 정도(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 약 4.95km 정도(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양평슈퍼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1동 응암역 옆(불광천) |
복개 구간 | 양평슈퍼 옆쪽 발원 물줄기: 전 구간 복개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 물줄기: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23km 정도) |
복개 년도 | 양평슈퍼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구기터널 밑의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녹번천(碌磻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녹번터널 밑의 옆 복개 시작점 ~ 북한산생태공원 앞 ~ 한국행정연구원 입구 ~ 불광역 뒤쪽을 거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와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독바위역 앞 ~ 불광역 앞 ~ 역촌역 앞 ~ 이마트 옆을 거쳐 응암1동 응암역 옆에서 불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3.21km 이고,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4.9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양평슈퍼 옆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구기터널계곡 위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구기터널 입구의 위쪽부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 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양평슈퍼 옆에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기터널 밑의 옆부터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녹번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70년대 양평슈퍼 쪽 물줄기를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의 구기터널 방향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불광천과 마찬가지로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하천이라 볼 수 있지만, 양평슈퍼 옆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예전에도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하지 않았지만 대구 달서천처럼 발원지까지의 모든 구간이 사라진 만큼 복원할 경우 가지게 되는 역사적 의미가 상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기터널 방향의 물줄기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계류가 흐르는 구기터널계곡에서 발원하고, 구기터널로 향하는 진홍로의 상당 수 구간 옆의 풍경도 수려한 만큼 복원할 경우 주위의 수려한 자연풍경과도 조화되어 성공적인 생태복원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부터 응암역 옆까지의 구간은 복원할 경우 인근 불광천과도 연계되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LG헬로비전 양천방송 - 녹번천 복개 하천 복원 공약 살펴보니 (2) 녹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녹번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와, 관련 백과인 녹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녹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1km 정도(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 약 4.95km 정도(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양평슈퍼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1동 응암역 옆(불광천) |
복개 구간 | 양평슈퍼 옆쪽 발원 물줄기: 전 구간 복개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 물줄기: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23km 정도) |
복개 년도 | 양평슈퍼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구기터널 밑의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녹번천(碌磻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녹번터널 밑의 옆 복개 시작점 ~ 북한산생태공원 앞 ~ 한국행정연구원 입구 ~ 불광역 뒤쪽을 거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와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독바위역 앞 ~ 불광역 앞 ~ 역촌역 앞 ~ 이마트 옆을 거쳐 응암1동 응암역 옆에서 불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3.21km 이고,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4.9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양평슈퍼 옆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구기터널계곡 위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구기터널 입구의 위쪽부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 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양평슈퍼 옆에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기터널 밑의 옆부터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녹번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70년대 양평슈퍼 쪽 물줄기를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의 구기터널 방향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불광천과 마찬가지로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하천이라 볼 수 있지만, 양평슈퍼 옆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예전에도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하지 않았지만 대구 달서천처럼 발원지까지의 모든 구간이 사라진 만큼 복원할 경우 가지게 되는 역사적 의미가 상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기터널 방향의 물줄기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계류가 흐르는 구기터널계곡에서 발원하고, 구기터널로 향하는 진홍로의 상당 수 구간 옆의 풍경도 수려한 만큼 복원할 경우 주위의 수려한 자연풍경과도 조화되어 성공적인 생태복원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부터 응암역 옆까지의 구간은 복원할 경우 인근 불광천과도 연계되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LG헬로비전 양천방송 - 녹번천 복개 하천 복원 공약 살펴보니 (2) 녹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녹번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와, 관련 백과인 녹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녹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1km 정도(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 약 4.95km 정도(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양평슈퍼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1동 응암역 옆(불광천) |
복개 구간 | 양평슈퍼 옆쪽 발원 물줄기: 전 구간 복개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 물줄기: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23km 정도) |
복개 년도 | 양평슈퍼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구기터널 밑의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녹번천(碌磻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녹번터널 밑의 옆 복개 시작점 ~ 북한산생태공원 앞 ~ 한국행정연구원 입구 ~ 불광역 뒤쪽을 거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와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독바위역 앞 ~ 불광역 앞 ~ 역촌역 앞 ~ 이마트 옆을 거쳐 응암1동 응암역 옆에서 불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3.21km 이고,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4.9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양평슈퍼 옆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구기터널계곡 위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구기터널 입구의 위쪽부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 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양평슈퍼 옆에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기터널 밑의 옆부터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녹번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70년대 양평슈퍼 쪽 물줄기를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의 구기터널 방향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불광천과 마찬가지로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하천이라 볼 수 있지만, 양평슈퍼 옆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예전에도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하지 않았지만 대구 달서천처럼 발원지까지의 모든 구간이 사라진 만큼 복원할 경우 가지게 되는 역사적 의미가 상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기터널 방향의 물줄기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계류가 흐르는 구기터널계곡에서 발원하고, 구기터널로 향하는 진홍로의 상당 수 구간 옆의 풍경도 수려한 만큼 복원할 경우 주위의 수려한 자연풍경과도 조화되어 성공적인 생태복원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부터 응암역 옆까지의 구간은 복원할 경우 인근 불광천과도 연계되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LG헬로비전 양천방송 - 녹번천 복개 하천 복원 공약 살펴보니 (2) 녹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녹번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와, 관련 백과인 녹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녹번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1km 정도(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 약 4.95km 정도(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양평슈퍼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은평구 응암1동 응암역 옆(불광천) |
복개 구간 | 양평슈퍼 옆쪽 발원 물줄기: 전 구간 복개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 물줄기: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23km 정도) |
복개 년도 | 양평슈퍼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197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구기터널 밑의 옆 ~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 응암역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녹번천(碌磻川)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1동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녹번터널 밑의 옆 복개 시작점 ~ 북한산생태공원 앞 ~ 한국행정연구원 입구 ~ 불광역 뒤쪽을 거쳐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에서 합류하는 물줄기와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독바위역 앞 ~ 불광역 앞 ~ 역촌역 앞 ~ 이마트 옆을 거쳐 응암1동 응암역 옆에서 불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구기터널계곡 위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3.21km 이고, 양평슈퍼 옆쪽 발원지 기준으로는 약 4.9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양평슈퍼 옆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구기터널계곡 위쪽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구기터널 입구의 위쪽부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 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양평슈퍼 옆에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초반에 이미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구기터널 밑의 옆부터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녹번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70년대 양평슈퍼 쪽 물줄기를 시작으로 1980년대 후반의 구기터널 방향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불광천과 마찬가지로 서울 북서부지역을 흐르는 중요한 젖줄 역할을 하는 또 다른 하천이라 볼 수 있지만, 양평슈퍼 옆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예전에도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하지 않았지만 대구 달서천처럼 발원지까지의 모든 구간이 사라진 만큼 복원할 경우 가지게 되는 역사적 의미가 상당할 것이다. 그렇지만, 구기터널 방향의 물줄기는 수량이 풍부하고 맑은 계류가 흐르는 구기터널계곡에서 발원하고, 구기터널로 향하는 진홍로의 상당 수 구간 옆의 풍경도 수려한 만큼 복원할 경우 주위의 수려한 자연풍경과도 조화되어 성공적인 생태복원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대조불광시장 교차로 앞 합수점부터 응암역 옆까지의 구간은 복원할 경우 인근 불광천과도 연계되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LG헬로비전 양천방송 - 녹번천 복개 하천 복원 공약 살펴보니 (2) 녹번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녹번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와, 관련 백과인 녹번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8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약 2.45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정릉천(貞陵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복개 시작점 ~ 우이신설선 정릉역 옆 ~ 길음119안전센터 건너편 ~ 4호선 길음역 옆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을 거쳐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약 2.45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개된 모든 구간은 내부순환로 밑을 지나간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정릉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현재와 같은 상태로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비교적으로 길이는 짧지만 북한산에서 발원하고, 정릉터널 방향 지류의 옆에는 고려대 사범대학 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복개된 모든 구간이 내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특성과 적절하게 조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하고, 중류와 하류 구간은 여름철에는 내부순환도로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내부순환도로를 철거하고 하천 옆으로 도시고속화도로를 만들 경우 사실상 완전한 모습의 생태하천으로 태어나게 되어 주변환경과 문화가 하천의 자연생태와 조화되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김문수 서울시의원 \"정릉천 복원해 청계천~북한산 잇자\"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정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정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8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약 2.45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정릉천(貞陵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복개 시작점 ~ 우이신설선 정릉역 옆 ~ 길음119안전센터 건너편 ~ 4호선 길음역 옆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을 거쳐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약 2.45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개된 모든 구간은 내부순환로 밑을 지나간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정릉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현재와 같은 상태로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비교적으로 길이는 짧지만 북한산에서 발원하고, 정릉터널 방향 지류의 옆에는 고려대 사범대학 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복개된 모든 구간이 내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특성과 적절하게 조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하고, 중류와 하류 구간은 여름철에는 내부순환도로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내부순환도로를 철거하고 하천 옆으로 도시고속화도로를 만들 경우 사실상 완전한 모습의 생태하천으로 태어나게 되어 주변환경과 문화가 하천의 자연생태와 조화되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김문수 서울시의원 \\\"정릉천 복원해 청계천~북한산 잇자\\\"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정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정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8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약 2.45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정릉천(貞陵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복개 시작점 ~ 우이신설선 정릉역 옆 ~ 길음119안전센터 건너편 ~ 4호선 길음역 옆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을 거쳐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약 2.45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개된 모든 구간은 내부순환로 밑을 지나간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정릉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현재와 같은 상태로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비교적으로 길이는 짧지만 북한산에서 발원하고, 정릉터널 방향 지류의 옆에는 고려대 사범대학 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복개된 모든 구간이 내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특성과 적절하게 조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하고, 중류와 하류 구간은 여름철에는 내부순환도로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내부순환도로를 철거하고 하천 옆으로 도시고속화도로를 만들 경우 사실상 완전한 모습의 생태하천으로 태어나게 되어 주변환경과 문화가 하천의 자연생태와 조화되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김문수 서울시의원 \\\"정릉천 복원해 청계천~북한산 잇자\\\"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정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정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8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약 2.45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정릉천(貞陵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복개 시작점 ~ 우이신설선 정릉역 옆 ~ 길음119안전센터 건너편 ~ 4호선 길음역 옆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을 거쳐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약 2.45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개된 모든 구간은 내부순환로 밑을 지나간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정릉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현재와 같은 상태로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비교적으로 길이는 짧지만 북한산에서 발원하고, 정릉터널 방향 지류의 옆에는 고려대 사범대학 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복개된 모든 구간이 내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특성과 적절하게 조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하고, 중류와 하류 구간은 여름철에는 내부순환도로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내부순환도로를 철거하고 하천 옆으로 도시고속화도로를 만들 경우 사실상 완전한 모습의 생태하천으로 태어나게 되어 주변환경과 문화가 하천의 자연생태와 조화되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김문수 서울시의원 \\\"정릉천 복원해 청계천~북한산 잇자\\\"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정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정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8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약 2.45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정릉천(貞陵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복개 시작점 ~ 우이신설선 정릉역 옆 ~ 길음119안전센터 건너편 ~ 4호선 길음역 옆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을 거쳐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약 2.45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개된 모든 구간은 내부순환로 밑을 지나간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정릉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현재와 같은 상태로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비교적으로 길이는 짧지만 북한산에서 발원하고, 정릉터널 방향 지류의 옆에는 고려대 사범대학 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복개된 모든 구간이 내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특성과 적절하게 조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하고, 중류와 하류 구간은 여름철에는 내부순환도로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내부순환도로를 철거하고 하천 옆으로 도시고속화도로를 만들 경우 사실상 완전한 모습의 생태하천으로 태어나게 되어 주변환경과 문화가 하천의 자연생태와 조화되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김문수 서울시의원 \\\"정릉천 복원해 청계천~북한산 잇자\\\"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정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정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8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약 2.45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정릉천(貞陵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복개 시작점 ~ 우이신설선 정릉역 옆 ~ 길음119안전센터 건너편 ~ 4호선 길음역 옆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을 거쳐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약 2.45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개된 모든 구간은 내부순환로 밑을 지나간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정릉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현재와 같은 상태로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비교적으로 길이는 짧지만 북한산에서 발원하고, 정릉터널 방향 지류의 옆에는 고려대 사범대학 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복개된 모든 구간이 내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특성과 적절하게 조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하고, 중류와 하류 구간은 여름철에는 내부순환도로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내부순환도로를 철거하고 하천 옆으로 도시고속화도로를 만들 경우 사실상 완전한 모습의 생태하천으로 태어나게 되어 주변환경과 문화가 하천의 자연생태와 조화되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김문수 서울시의원 \\\"정릉천 복원해 청계천~북한산 잇자\\\"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정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정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정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8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청계천) |
복개 구간 |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약 2.45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정릉천(貞陵川)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보국문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복개 시작점 ~ 우이신설선 정릉역 옆 ~ 길음119안전센터 건너편 ~ 4호선 길음역 옆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을 거쳐 동대문구 용신동 정릉천교 밑 합수점에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정릉푸르지오아파트 건너 ~ 하월곡분기점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약 2.45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복개된 모든 구간은 내부순환로 밑을 지나간다.
3. 역사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정릉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현재와 같은 상태로 물줄기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길이가 있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비교적으로 길이는 짧지만 북한산에서 발원하고, 정릉터널 방향 지류의 옆에는 고려대 사범대학 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복개된 모든 구간이 내부순환도로를 끼고 있는 특성과 적절하게 조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은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을 하고, 중류와 하류 구간은 여름철에는 내부순환도로가 만드는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의 내부순환도로를 철거하고 하천 옆으로 도시고속화도로를 만들 경우 사실상 완전한 모습의 생태하천으로 태어나게 되어 주변환경과 문화가 하천의 자연생태와 조화되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보여지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김문수 서울시의원 \\\"정릉천 복원해 청계천~북한산 잇자\\\"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정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정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월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2동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정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월곡천(月谷川)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에서 발원하여 미아2동 밑 체육공원 밑 복개 시작점 ~ 삼양파출소 옆 ~ 미아삼거리역 옆 ~ 숭곡초 옆을 거처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에서 정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약 3.38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월곡천 지류의 상류에는 1960년대부터 삼각한 기슭에 형성된 판자촌인 미향 마을이 있었으며, 2007년도를 기준으로 당시 마을 주민 외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2008년 정도에 미향마을의 판자촌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미향마을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이 일대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는 도시형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성북천과는 다르게 상당부분 주거지와 아파트 밀집지역을 통과하여 문화적 가치와 조화되는 부분은 적지만, 발원지가 북한산 기슰이라는 점 등을 이용하여 충분히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류구간의 계곡에는 비교적으로 물이 많이 흘러 복원 사업을 진행할 경우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볼 가능성도 높으니 언젠가 사실상 전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서울 환경복원 원년] 청계천 支流도 옛모습 찾는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월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월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월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2동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정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월곡천(月谷川)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에서 발원하여 미아2동 밑 체육공원 밑 복개 시작점 ~ 삼양파출소 옆 ~ 미아삼거리역 옆 ~ 숭곡초 옆을 거처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에서 정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약 3.38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월곡천 지류의 상류에는 1960년대부터 삼각한 기슭에 형성된 판자촌인 미향 마을이 있었으며, 2007년도를 기준으로 당시 마을 주민 외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2008년 정도에 미향마을의 판자촌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미향마을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이 일대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는 도시형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성북천과는 다르게 상당부분 주거지와 아파트 밀집지역을 통과하여 문화적 가치와 조화되는 부분은 적지만, 발원지가 북한산 기슰이라는 점 등을 이용하여 충분히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류구간의 계곡에는 비교적으로 물이 많이 흘러 복원 사업을 진행할 경우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볼 가능성도 높으니 언젠가 사실상 전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서울 환경복원 원년] 청계천 支流도 옛모습 찾는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월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월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월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2동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정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월곡천(月谷川)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에서 발원하여 미아2동 밑 체육공원 밑 복개 시작점 ~ 삼양파출소 옆 ~ 미아삼거리역 옆 ~ 숭곡초 옆을 거처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에서 정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약 3.38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월곡천 지류의 상류에는 1960년대부터 삼각한 기슭에 형성된 판자촌인 미향 마을이 있었으며, 2007년도를 기준으로 당시 마을 주민 외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2008년 정도에 미향마을의 판자촌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미향마을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이 일대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는 도시형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성북천과는 다르게 상당부분 주거지와 아파트 밀집지역을 통과하여 문화적 가치와 조화되는 부분은 적지만, 발원지가 북한산 기슰이라는 점 등을 이용하여 충분히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류구간의 계곡에는 비교적으로 물이 많이 흘러 복원 사업을 진행할 경우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볼 가능성도 높으니 언젠가 사실상 전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서울 환경복원 원년] 청계천 支流도 옛모습 찾는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월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월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월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2동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정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월곡천(月谷川)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에서 발원하여 미아2동 밑 체육공원 밑 복개 시작점 ~ 삼양파출소 옆 ~ 미아삼거리역 옆 ~ 숭곡초 옆을 거처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에서 정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약 3.38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월곡천 지류의 상류에는 1960년대부터 삼각한 기슭에 형성된 판자촌인 미향 마을이 있었으며, 2007년도를 기준으로 당시 마을 주민 외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2008년 정도에 미향마을의 판자촌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미향마을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이 일대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는 도시형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성북천과는 다르게 상당부분 주거지와 아파트 밀집지역을 통과하여 문화적 가치와 조화되는 부분은 적지만, 발원지가 북한산 기슰이라는 점 등을 이용하여 충분히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류구간의 계곡에는 비교적으로 물이 많이 흘러 복원 사업을 진행할 경우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볼 가능성도 높으니 언젠가 사실상 전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서울 환경복원 원년] 청계천 支流도 옛모습 찾는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월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월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월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7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북구 월곡2동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정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약 3.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6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월곡천(月谷川)은 서울특별시 강북구 삼양동 미아2동 밑 체육공원 위쪽에서 발원하여 미아2동 밑 체육공원 밑 복개 시작점 ~ 삼양파출소 옆 ~ 미아삼거리역 옆 ~ 숭곡초 옆을 거처 성북트리즘빌딩 교차로 옆에서 정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약 3.38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월곡천 지류의 상류에는 1960년대부터 삼각한 기슭에 형성된 판자촌인 미향 마을이 있었으며, 2007년도를 기준으로 당시 마을 주민 외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된 상태였다. 2008년 정도에 미향마을의 판자촌이 인근 아파트 주민들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미향마을은 대부분 철거되었으며, 지금은 이 일대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는 도시형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인근의 성북천과는 다르게 상당부분 주거지와 아파트 밀집지역을 통과하여 문화적 가치와 조화되는 부분은 적지만, 발원지가 북한산 기슰이라는 점 등을 이용하여 충분히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류구간의 계곡에는 비교적으로 물이 많이 흘러 복원 사업을 진행할 경우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을 볼 가능성도 높으니 언젠가 사실상 전 구간을 철거하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관련 기사: [서울 환경복원 원년] 청계천 支流도 옛모습 찾는다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월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월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당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약 1.94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당현천(堂峴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상계3,4동 수락산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덕릉교 옆 복개 시작점 ~ 4호선 당고개역 앞 ~ 상명고 옆 ~ 중계역 뒤쪽을 거쳐 상계6,7동 당현4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50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약 1.94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당현천 명칭의 유래는 발원지인 당고개의 지명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록. 동막골유원지 위쪽 계곡을 비롯하여 당현천 상류에 위치한 불암산과 수락산의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계곡들이 위치해 있지만, 도시 개발 이전부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으며, 이에 따라 하천 부지에 물 한 줄기 없이 온갖 쓰레기들로 뒤덮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각한 악취가 자주 발생하였고, 비가 온 후에만 폭포수처럼 물이 흐르고 물줄기를 따라 오리나 왜가리 같은 여러 새들을 볼 수 있었다. 그 후 1990년대 후반에는 덕릉교 옆 ~ 당고개입구 오거리 옆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7년경 부터는 당현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공사는 조금씩 진척을 보이다가 2009년 11월에 상계역 근처에서 통수식 행사가 열렸지만 당시에는 공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고, 공사가 끝날 때 까지는 20 ~ 30%의 물만 방류하겠다고 하였다. 2010년 12월 부터는 상계역의 남쪽 주차장과 북쪽 주차장을 철거를 하며 생태하천 공사를 시작하였지만 장마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2011년 10월부터 공사가 재개되었다. 2012년 12월 경부터 2013년 3월 경까지는 마지막 구간인 상계역 북쪽 구간의 생태하천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원래는 2012년 12월 경에 완공할 것을 목표로 하였지만, 2013년 3월 경에야 완공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당현천 복원사업 잰걸음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당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당현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마전내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8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노원고개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1동 당현2교 옆 합수점(당현천) |
복개 구간 | 문화방범창 옆쪽 ~ 당현2교 옆(약 2.1km 정도) |
복개 년도 | 1983년 12월~ 1992년 12월까지 복개되었음*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에 따라 복개되었음 |
1. 개요
마전내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노원고개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백사마을 입구 ~ 행운마트 앞 ~ 수암초교 앞 ~ 노해체육공원 앞을 거쳐 중계1동 당현2교 옆 합수점에서 당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문화방범창 옆쪽 ~ 당현2교 옆까지의 구간(약 2.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3년 12월부터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이 수립되어 1992년 12월까지 복개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역사
마전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기록이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마전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3년 12월부터 수립된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에 따라 1992년 12월까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물이 흐르고 있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마전내는 길이가 짧고 하천의 폭도 넓지 않지만,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중계동 백사마을을 경유한다는 특성을 제대로 살려 하천 주변의 달동네의 도시재생과 조화된 방향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지류가 합쳐져 복개된 구간에서 제법 큰 계곡의 모습을 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의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과 함께 중류와 하류 구간의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서울 걷고싶은 하천 산책로2 당현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마전내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마전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마전내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8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노원고개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1동 당현2교 옆 합수점(당현천) |
복개 구간 | 문화방범창 옆쪽 ~ 당현2교 옆(약 2.1km 정도) |
복개 년도 | 1983년 12월~ 1992년 12월까지 복개되었음*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에 따라 복개되었음 |
1. 개요
마전내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노원고개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백사마을 입구 ~ 행운마트 앞 ~ 수암초교 앞 ~ 노해체육공원 앞을 거쳐 중계1동 당현2교 옆 합수점에서 당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문화방범창 옆쪽 ~ 당현2교 옆까지의 구간(약 2.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3년 12월부터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이 수립되어 1992년 12월까지 복개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역사
마전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기록이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마전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3년 12월부터 수립된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에 따라 1992년 12월까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물이 흐르고 있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마전내는 길이가 짧고 하천의 폭도 넓지 않지만,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중계동 백사마을을 경유한다는 특성을 제대로 살려 하천 주변의 달동네의 도시재생과 조화된 방향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지류가 합쳐져 복개된 구간에서 제법 큰 계곡의 모습을 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의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과 함께 중류와 하류 구간의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서울 걷고싶은 하천 산책로2 당현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마전내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마전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마전내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8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노원고개 밑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1동 당현2교 옆 합수점(당현천) |
복개 구간 | 문화방범창 옆쪽 ~ 당현2교 옆(약 2.1km 정도) |
복개 년도 | 1983년 12월~ 1992년 12월까지 복개되었음*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에 따라 복개되었음 |
1. 개요
마전내는 서울특별시 노원구 중계본동 노원고개 밑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백사마을 입구 ~ 행운마트 앞 ~ 수암초교 앞 ~ 노해체육공원 앞을 거쳐 중계1동 당현2교 옆 합수점에서 당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85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문화방범창 옆쪽 ~ 당현2교 옆까지의 구간(약 2.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1983년 12월부터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이 수립되어 1992년 12월까지 복개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 역사
마전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기록이 없다고 볼 수 있으며,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마전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3년 12월부터 수립된 당현천 일대와 그 지류의 대대적인 하천 정비 계획에 따라 1992년 12월까지 복개된 기록이 있어 복개되기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물이 흐르고 있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다고 볼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마전내는 길이가 짧고 하천의 폭도 넓지 않지만,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중계동 백사마을을 경유한다는 특성을 제대로 살려 하천 주변의 달동네의 도시재생과 조화된 방향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뿐만 아니라, 여러 지류가 합쳐져 복개된 구간에서 제법 큰 계곡의 모습을 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의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과 함께 중류와 하류 구간의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서울 걷고싶은 하천 산책로2 당현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마전내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마전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공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24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2동 서울과학기술대 창조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1동 한천교 옆 합수점(당현천) |
복개 구간 | 서울과학기술대 입구 ~ 한천교 옆(약 1.1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공대천(工大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2동 서울과학기술대 창조관 뒤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울과학기술대 입구 ~ 서울동산고 옆 ~ 노원문화원 옆 ~ 공릉3단지 라이프아파트 옆을 거쳐공릉1동 한천교 옆 합수점에서 당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24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과학기술대(구 서울산업대) 입구 ~ 한천교 옆까지의 구간(약 1.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서울과학기술대 내부의 구간은 대학 캠퍼스 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고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역사
공대천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기록이 없지만, 이 하천이 지나는 동네에서 주로 이러한 이름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많이 불렸다고 볼 수 있으며 (1),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공대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중류와 하류 쪽 구간이 복개되어 지금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공대천은 길이가 짧고 하천의 폭도 넓지 않으며, 지류 역시 많지 않지만, 서울과학기술대가 이 하천 옆에 위치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대학 캠퍼스의 젊고 활기찬 문화와 조화시켜 생태와 교육, 문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며,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의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과 함께 중류와 하류 구간의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공대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공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공대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공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24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2동 서울과학기술대 창조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1동 한천교 옆 합수점(당현천) |
복개 구간 | 서울과학기술대 입구 ~ 한천교 옆(약 1.1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공대천(工大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2동 서울과학기술대 창조관 뒤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울과학기술대 입구 ~ 서울동산고 옆 ~ 노원문화원 옆 ~ 공릉3단지 라이프아파트 옆을 거쳐공릉1동 한천교 옆 합수점에서 당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24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과학기술대(구 서울산업대) 입구 ~ 한천교 옆까지의 구간(약 1.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서울과학기술대 내부의 구간은 대학 캠퍼스 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고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역사
공대천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기록이 없지만, 이 하천이 지나는 동네에서 주로 이러한 이름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많이 불렸다고 볼 수 있으며 (1),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공대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중류와 하류 쪽 구간이 복개되어 지금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공대천은 길이가 짧고 하천의 폭도 넓지 않으며, 지류 역시 많지 않지만, 서울과학기술대가 이 하천 옆에 위치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대학 캠퍼스의 젊고 활기찬 문화와 조화시켜 생태와 교육, 문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며,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의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과 함께 중류와 하류 구간의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공대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공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공대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공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24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2동 서울과학기술대 창조관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1동 한천교 옆 합수점(당현천) |
복개 구간 | 서울과학기술대 입구 ~ 한천교 옆(약 1.1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공대천(工大川)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2동 서울과학기술대 창조관 뒤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서울과학기술대 입구 ~ 서울동산고 옆 ~ 노원문화원 옆 ~ 공릉3단지 라이프아파트 옆을 거쳐공릉1동 한천교 옆 합수점에서 당현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24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과학기술대(구 서울산업대) 입구 ~ 한천교 옆까지의 구간(약 1.1k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서울과학기술대 내부의 구간은 대학 캠퍼스 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고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역사
공대천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기록이 없지만, 이 하천이 지나는 동네에서 주로 이러한 이름으로 주민들 사이에서 많이 불렸다고 볼 수 있으며 (1),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 시대를 비롯하여 공대천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기록이 거의 없어 역사를 추정하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지만, 1980년대 후반에 중류와 하류 쪽 구간이 복개되어 지금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공대천은 길이가 짧고 하천의 폭도 넓지 않으며, 지류 역시 많지 않지만, 서울과학기술대가 이 하천 옆에 위치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대학 캠퍼스의 젊고 활기찬 문화와 조화시켜 생태와 교육, 문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며,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상류 구간의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과 함께 중류와 하류 구간의 시원한 그늘과 하천의 물줄기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공대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공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공대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당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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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면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 |
하구 | 서울특별시 중랑구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면목천로 구간-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면목천로 구간-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1992년 7월 21일)(1) 그 밖의 구간(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면목천(面牧川)은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본동 한울네세창 아파트 위쪽에서 발원하여 한일써니스빌 옆쪽 ~ 상봉터미널 앞 ~ 아남리치카운티아파트 옆쪽을 거쳐 면목4동 면목교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쪽 계곡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각각 면목천로 구간의 겸재로 ~ 면목교 옆 합수점까지는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면목천로 구간의 봉우재로 ~ 겸재로 구간은 1992년 7월 21일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면목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70년대 하류 구간이 먼저 복개되기 시작한 후, 하류 구간에는 면목배수펌프장이 들어섰으며, 1992년 7월 21일에는 1990년 5월에 착공한 면목천로의 주요 구간의 복개공사와 복개도로 개설공사가 완공되었으며 (1), 상류 구간을 비롯한 그 밖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이미 중류와 하류, 상류의 미복개 구간은 이미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기 때문에 복개된 짧은 구간을 복원할 경우 상류의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수락산의 계곡과도 연계되어 생태계가 잘 보전된 청정계곡이 될 것이며 여름철에는 열대야를 피하고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면목천 복개도로 개통-1992년 7월 21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면목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추진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면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면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중곡천{추정}{긴고랑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긴고랑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3동 중곡빗물펌프장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긴고랑계곡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차-1977년, 2차-1979년 7월 12일 (1) |
1. 개요
중곡천(中谷川){추정}{긴고랑천} 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긴고랑계곡 위쪽에서 발원하여 긴고랑계곡 밑 복개 시작점 ~ 긴고랑공원 옆 ~ 중곡사거리 옆 ~ 용마사거리 옆을 거쳐 중곡3동 중곡빗물펌프장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긴고랑계곡 구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1차 구간은 1977년에 복개되었고 2차 구간은 1979년 7월 12일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중곡천{추정}{긴고랑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차 구간은 1977년에 복개 공사가 완료되었고, 2차 구간은 1977년 2월 22일 부터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9년 7월 12일에 복개 공사가 완공되어 현재의 긴고랑로로 사용되고 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중곡천{추정}{긴고랑천}은 비교적 하천 폭이 좁은 소하천이지만, 상류쪽에 아차산에서 발원하여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긴고랑계곡이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며, 하류쪽 구간은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고 하천 주위로 자전거길을 만들 경우 생태하천의 풍경과 조화된 뛰어난 운동코스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1978년 6월 21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중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긴고랑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중곡천{추정}{긴고랑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긴고랑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3동 중곡빗물펌프장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긴고랑계곡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차-1977년, 2차-1979년 7월 12일 (1) |
1. 개요
중곡천(中谷川){추정}{긴고랑천} 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긴고랑계곡 위쪽에서 발원하여 긴고랑계곡 밑 복개 시작점 ~ 긴고랑공원 옆 ~ 중곡사거리 옆 ~ 용마사거리 옆을 거쳐 중곡3동 중곡빗물펌프장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긴고랑계곡 구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1차 구간은 1977년에 복개되었고 2차 구간은 1979년 7월 12일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중곡천{추정}{긴고랑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차 구간은 1977년에 복개 공사가 완료되었고, 2차 구간은 1977년 2월 22일 부터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9년 7월 12일에 복개 공사가 완공되어 현재의 긴고랑로로 사용되고 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중곡천{추정}{긴고랑천}은 비교적 하천 폭이 좁은 소하천이지만, 상류쪽에 아차산에서 발원하여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긴고랑계곡이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며, 하류쪽 구간은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고 하천 주위로 자전거길을 만들 경우 생태하천의 풍경과 조화된 뛰어난 운동코스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1978년 6월 21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중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긴고랑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중곡천{추정}{긴고랑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9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긴고랑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3동 중곡빗물펌프장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긴고랑계곡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차-1977년, 2차-1979년 7월 12일 (1) |
1. 개요
중곡천(中谷川){추정}{긴고랑천} 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긴고랑계곡 위쪽에서 발원하여 긴고랑계곡 밑 복개 시작점 ~ 긴고랑공원 옆 ~ 중곡사거리 옆 ~ 용마사거리 옆을 거쳐 중곡3동 중곡빗물펌프장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9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긴고랑계곡 구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1차 구간은 1977년에 복개되었고 2차 구간은 1979년 7월 12일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중곡천{추정}{긴고랑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차 구간은 1977년에 복개 공사가 완료되었고, 2차 구간은 1977년 2월 22일 부터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9년 7월 12일에 복개 공사가 완공되어 현재의 긴고랑로로 사용되고 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중곡천{추정}{긴고랑천}은 비교적 하천 폭이 좁은 소하천이지만, 상류쪽에 아차산에서 발원하여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긴고랑계곡이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며, 하류쪽 구간은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고 하천 주위로 자전거길을 만들 경우 생태하천의 풍경과 조화된 뛰어난 운동코스가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1978년 6월 21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중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긴고랑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구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4.0km 정도) |
복개 년도 |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197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구의천(九宜川)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구의2동 아차산 해맞이명소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영화사 옆 복개 시작점 ~ 아차산역 사거리 앞 ~ 대진택시 옆 ~ 구의사거리 옆 ~ 자양사거리 앞을 거쳐 자양2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7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자양유수지 구간에는 유수지 안을 흐른 후 강변북로 밑의 수문을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한강 물줄기 옆의 우수토출구를 통하여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4.0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구의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사 옆 ~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제일경희 한의원 옆(자양사거리 밑) ~ 자양유수지 밑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발원지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거의 모든 구간이 생태계가 잘 보존되고, 주변의 자연과 인공구조물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구의천:아차산 둘레길에서 한강까지 흐르던 개천..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성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분수점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77년 11월 8일 ~ 1978년 6월 (1) |
1. 개요 휘 성수천(聖水川)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에서 분수하여 한뚝섬역 뒤쪽 ~ 성수역 앞 ~ 건국대 앞을 거쳐 뚝섬한강공원 축구장 옆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인공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km 정도이다. 또한. 성수천은 구의천과 같은 지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과거에 성수천이 있었던 곳에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복개되었으며.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복개되었다. 3. 역사 성수천은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의 지도에서는 사실상 아예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건국대의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가 건국대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과거 습지였던 곳에 일감호를 만들면서 호수의 물을 빼기 위하여 만든 인공하천으로 추정된다. (1) 그 후. 성수천 물줄기를 따라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모든 구간이 지금처럼 복개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성수천은 본래 자연적으로 있었던 하천이 아니기 때문에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지만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변에 건국대 캠퍼스 안의 일감호가 위치한 것을 충분히 살려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이 흐르게 할 경우 건국대 캠퍼스 옆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젊은 문화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구의천과 같이 합류하는 자양유수지가 가지는 좋은 역할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성수천 본격분석:건국대 설립자 유석창 박사와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2) 성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분수점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77년 11월 8일 ~ 1978년 6월 (1) |
1. 개요 휘 성수천(聖水川)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에서 분수하여 한뚝섬역 뒤쪽 ~ 성수역 앞 ~ 건국대 앞을 거쳐 뚝섬한강공원 축구장 옆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인공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km 정도이다. 또한. 성수천은 구의천과 같은 지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과거에 성수천이 있었던 곳에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복개되었으며.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복개되었다. 3. 역사 성수천은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의 지도에서는 사실상 아예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건국대의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가 건국대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과거 습지였던 곳에 일감호를 만들면서 호수의 물을 빼기 위하여 만든 인공하천으로 추정된다. (1) 그 후. 성수천 물줄기를 따라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모든 구간이 지금처럼 복개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성수천은 본래 자연적으로 있었던 하천이 아니기 때문에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지만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변에 건국대 캠퍼스 안의 일감호가 위치한 것을 충분히 살려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이 흐르게 할 경우 건국대 캠퍼스 옆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젊은 문화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구의천과 같이 합류하는 자양유수지가 가지는 좋은 역할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성수천 본격분석:건국대 설립자 유석창 박사와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2) 성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분수점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77년 11월 8일 ~ 1978년 6월 (1) |
1. 개요 휘 성수천(聖水川)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에서 분수하여 한뚝섬역 뒤쪽 ~ 성수역 앞 ~ 건국대 앞을 거쳐 뚝섬한강공원 축구장 옆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인공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km 정도이다. 또한. 성수천은 구의천과 같은 지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과거에 성수천이 있었던 곳에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복개되었으며.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복개되었다. 3. 역사 성수천은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의 지도에서는 사실상 아예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건국대의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가 건국대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과거 습지였던 곳에 일감호를 만들면서 호수의 물을 빼기 위하여 만든 인공하천으로 추정된다. (1) 그 후. 성수천 물줄기를 따라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모든 구간이 지금처럼 복개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성수천은 본래 자연적으로 있었던 하천이 아니기 때문에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지만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변에 건국대 캠퍼스 안의 일감호가 위치한 것을 충분히 살려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이 흐르게 할 경우 건국대 캠퍼스 옆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젊은 문화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구의천과 같이 합류하는 자양유수지가 가지는 좋은 역할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성수천 본격분석:건국대 설립자 유석창 박사와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2) 성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성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km 정도 |
분수점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 |
하구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자양유수지 밑 합수점(한강)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77년 11월 8일 ~ 1978년 6월 (1) |
1. 개요 휘 성수천(聖水川)은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1가 신양빌딩 건너 분수점에서 분수하여 한뚝섬역 뒤쪽 ~ 성수역 앞 ~ 건국대 앞을 거쳐 뚝섬한강공원 축구장 옆 합수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인공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7km 정도이다. 또한. 성수천은 구의천과 같은 지점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과거에 성수천이 있었던 곳에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복개되었으며.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복개되었다. 3. 역사 성수천은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의 지도에서는 사실상 아예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건국대의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 박사가 건국대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과거 습지였던 곳에 일감호를 만들면서 호수의 물을 빼기 위하여 만든 인공하천으로 추정된다. (1) 그 후. 성수천 물줄기를 따라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1977년 11월 8일에 복개 공사를 시작하여 1978년 6월에 공사가 완공되면서 모든 구간이 지금처럼 복개되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성수천은 본래 자연적으로 있었던 하천이 아니기 때문에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지만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 주변에 건국대 캠퍼스 안의 일감호가 위치한 것을 충분히 살려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이 흐르게 할 경우 건국대 캠퍼스 옆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젊은 문화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구의천과 같이 합류하는 자양유수지가 가지는 좋은 역할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게시물: 성수천 본격분석:건국대 설립자 유석창 박사와 ..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2) 성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성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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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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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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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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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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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회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휘경2동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약 2.29km 정도) |
복개 년도 | 1967년 (1) |
1. 개요
회기천(回基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본관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경희대 청운교,대성교 옆 복개 시작점 ~ 경희대 정문 ~ 회기역 옆 ~ 삼육보건대 옆을 거쳐 휘경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또한. 하류의 휘경빗물펌프장 구간에는 가장 위쪽에 위치한 유출구 외에도 아래쪽에 또 다른 3개의 유출구가 있어 그 유출구로도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간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약 2.29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67년에 복개되었다. (1)
3. 역사
회기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에 복개된 역사가 있으며, 복개와 관련된 기사도 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회기천은 경희대 캠퍼스 안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은 경희대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옆쪽에 삼육보건대와 배봉산, 휘경빗물펌프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려 대학가의 젊은 문화와 배봉산의 자연,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회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회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휘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0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중랑천)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예전에는 하천이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물이 흐르지 않게 된 구간임 |
복개 구간 |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1967년 2월 1일 ~ 5월 16일) (1)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휘경천(徽慶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1동 천장산로 13길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안 ~ 신이문어울림아파트 옆 ~ 신이문역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을 거쳐 신이문2빗물펌프장 옆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14km 정도이다. 원래는 휘경천이 이문빌딩 옆에서 지금의 외대역동로 구간을 따라 휘경SK뷰 아파트 옆을 거쳐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에서 회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경로로 흘렀지만, 내부적으로 하천을 막은 후 이문1동의 신이문2빗물펌프장 방향으로 물길을 옮기게 되면서 현재는 곧바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원래의 구간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천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휘경천에 관한 과거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지만, 1967년 2월 1일부터 5월 16일까지는 장산로 13길 옆 ~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이와 관련된 기사도 있으며 (1), 1980년대 후반에는 예전에 휘경천이 흘렀던 구간인 이문빌딩 옆 우회하천 시작점 ~ 휘경센트레빌 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역사가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휘경천은 상류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천을 내부적으로 막아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외대역동로 구간도 존재하는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 구간 중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캠퍼스 안을 통과하므로 학생과 교수들이 향유하는 예술적인 감각, 젊은 문화와 잘 보존된 자연 생태가 적절하게 조화될 뿐만 아니라, 중류와 하류 구간도 상당한 굴곡 구간이 존재하는 특성과 함께 신이문2빗물펌프장으로 물길을 돌렸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질 살려 굴곡구간이 가지는 운치와 미적 감각, 빗물펌프장의 좋은 역할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5) 동대문구(상) | 중앙일보 (joongang.co.kr)
(2) 휘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휘경천 : 한국외대와 의릉에서 흐르던 개천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전농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5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중랑천) |
복개 구간 |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 |
복개 년도 | 군자차량기지 구간(1975년 ~ 1976년 사이에 복개)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1977년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1979년 1월 ~ 8월까지 복개)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 용답동 182 일대(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 |
1. 개요
전농천(典農川)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밑쪽 ~ 세종대왕기념관 교차로 옆 ~ 이룸교회 옆 ~ 홍파초 옆 ~ 깡통시장 옆 ~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안 ~ 청량리 청과물시장 옆 ~ 답십리 굴다리 안 ~ 신답육교 앞 ~ 답십리 고미술상가 옆 ~ BMW 도이치모터스 옆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을 거쳐 중랑물재생센터 앞 합수점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5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 위쪽 ~ 서울교통공사 본사 옆의 건너편(약 3.89km 정도) 까지의 구간과 군자차량기지 내부 ~ 중랑물재생센터 까지의 구간(약 710m 정도)이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시기는 각각 군자차량기지 구간은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 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되었고, (1)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구간은 1977년에 세 차례(6월 17일 착공 ~ 11월 22일, 12월 13일까지 완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2) 답십리동을 통과하는 0.09km 의 나머지 구간은 1979년 1월부터 8월까지 복개되었고 (3) , 약 0.75km의 나머지 지류 구간은 1977년 두 차례(10월 28일까지 준공)에 걸쳐 복개되었으며, 용답동 182 일대의 구간은 1993년 9월 ~ 1994년 8월까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4)
그 밖에 홍릉수목원과 수목원 인근 지역을 비롯한 상류 구간의 복개 시기는 지금까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
3. 역사
전농천은 1950-70년대 사이에는 홍릉천(洪陵川)으로도 불렸고 (5) , 1975년에서 1976년 사이에는 하류 쪽 일부 구간에 군자차량기지를 조성하면서 복개된 역사도 있으며, 1966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기계공구상가를 이전하는 계획에 따라 1982년에는 전농천이 있었던 곳으로 자동차부품상만 이전하였고 (6), 지금까지 복개되지 않은 하류 쪽 일부 구간은 2019년부터 전농천 재조성 사업에 따라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었고, 2021년 3월에 첫 삽을 뜨기 시작하여 2022년 10월 17일에 자연 친화적인 모습을 갖춘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하였다. 그 밖에 전농천에 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까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예전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기는 어렵다. (7)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전농천은 상류외 중, 하류뿐만 아니라 일부 지류 구간에 대하여도 구간별 로 특색있는 문화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한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 어우러져 있어 생태하천과 여러 다양한 문화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생태하천을 조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각각 상류 구간은 예전부터과학의 산실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서울캠퍼스가 위치해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놀라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이 위치해있는 특성을 살려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그늘 속의 시원한 계곡의 모습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 쪽 구간은 깡통시장과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통닭골목, 청과물시장 등의 여러 특색있는 시장이 위치해 온 특성을 살려 천변으로 특색있는 시장으로 조성하거나 수상 시장으로 만드는 것도 좋을 것이며, 하류 쪽 구간은 답십리 번화가와 차량기지, 중랑물재생센터 등의 여러 기관들이 밀집한 특성과 이미 생태하천으로 조성된 특성을 살려 다양한 기능을 하는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전농천은 상류 발원지 쪽과 하류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 사실상 대부분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물줄기를 원래의 경로대로 돌려 예전의 물줄기를 회복한 후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 중, 하류별로 그 구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와 요소, 전문적인 여러 역할들과 생태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75년 6월 2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 참고 기사:1977년 6월 17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전농천 하류 5백m 복개공사 준공 | 중앙일보, 典農川 복개完工 - 1977년 12월 13일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3) 참고 기사: 포장 안 된 전농천 복개공사 24일 착공 | 중앙일보, “都市계획問答 우리동네 어떻게 달라지나”
(4) 참고 기사: 민자유치 전농천 복개 내년5월 주차장 건설 | 중앙일보, “전농천 복개공사착공 내년완공 주차장으로”, “전농川 유료주차장 내일부터 이용”
(5) “새洞會의管轄區域” - 경향신문(1955년 4월 22일)
(6) “水魔 低地帶를包圍” - 동아일보(1966년 7월 26일)
(7) 전농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전농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전농천 - 나무위키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형태 | 자연 습지(농사 중단된 묵논이 습지로) |
면적 | 1.20k㎡(2015년 매립 이전) |
위치 |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곡동⋅오쇠동,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일대 |
유입/유출 | 동부간선수로,굴포천 - 김포공항습지(유입) 김포공항습지 - 동부간선수로,굴포천(유출) |
매립 구간 | 인서울27 골프클럽 건설로 거의 모든 구간 매립(현재 인서울27 골프클럽의 EAST 2번홀 주위로 맹꽁이가 살고 있는 작은 습지가 보전되어 있다.) |
매립 년도 | 2015년 ~ 2019년 10월(인서울27 골프클럽 개장 시기까지 매립하고 공사가 진행되었다.) |
1. 개요
김포공항습지(金浦空港濕地)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곡동⋅오쇠동과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일대에 있었던, 농사 중단된 묵논이 습지로 변하게 된 자연습지로 면적은 1.20k㎡이다. 김포공항습지는 모든 구간이 원래부터 존재하였던 습지가 아니라 대부분 구간이 1980년대 초반까지 농사를 짓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묵논(묵정논)이었지만, 농사가 중단된 후 이곳에 벼 대신 부들과 갈대 등의 수생식물이 자리잡게 되면서 넓은 면적의 습지로 변화되었다. (1)
2. 이 습지가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정보
김포공항습지는 2015년부터 2019년 10월까지 이 일대에 인서울27 골프클럽이 건설되면서 극히 일부 구간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매립되었고, 지금은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곡동의 김포공항 뒤쪽 일부구간에서 과거 이곳이 습지였던 흔적만 조금씩 보여지고 있다. 또한. 현재 인서울27 골프클럽의 EAST 2번홀 주위로 맹꽁이가 살고 있는 작은 습지가 보전되어 있고, (2) SOUTH 7번홀 주위에도 일부 습지가 보존되어 있다. (3) (더구나. SOUTH 7번홀의 경우 애초 보전 습지를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보전 습지를 살리기 위하여 페어웨이 코스를 전면 수정하는 방향으로 설계를 대폭 변경하여 습지 대부분을 지키게 되었다.) (4)
3. 역사
김포공항습지는 모든 구간이 원래부터 존재하였던 습지가 아니라 대부분 구간이 1980년대 초반까지 농사를 짓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묵논(묵정논)이었고, 김포평야에 속하는 곳으로 한강이 범람한 충적평야가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되었던 곳이며, 애초에 습지의 흔적이었던 이탄층이 발달되었고, 이 곳에 논농사를 짓게 되면서 묵정논이 형성된 것으로 보아 논농사를 짓기 전에는 이곳은 물이 풍부한 습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할 것이다. 그 후 1980년대 초반부터는 이 곳에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게 되면서 여러 방치된 논에서 벼 대신 부들과 갈대 등의 수생식물이 자리잡게 되었고, 재두루미, 금개구리,맹꽁이,쇠부엉이,물땡땡이 등의 여러 조류와 동물들도 이 곳을 찾거나 이 곳에 자리잡게 되면서 습지로 변화되었다.(5) 그 후 2012년부터 지역경제 활성화와 조류 충돌 위험 완화 등의 각종 안전 문제로 김포공항 주변의 습지를 매립하고 골프장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고, 환경단체와 지역 사회 등에서는 김포공항습지 매립과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계획들을 철회하고 김포공항습지를 보존하도록 요구하였다. 하지만. 여러 차례 이어진 습지 보존 요구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곳에 인서울27 골프클럽이 들어오기로 한 계획은 최종적으로 확정되었고, 2015년 부터는 습지를 매립하고 골프장 건설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이러한 공사는 2019년 10월 인서울27 골프클럽이 들어오면서 완공되었다. (6) 지금도 남아있는 김포공항습지 관련 흔적은 현재 인서울27 골프클럽의 EAST 2번홀과 SOUTH 7번홀 주위로 보존되어 있는 일부 습지와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곡동의 김포공항 뒤쪽 일부구간에서 과거 이곳이 습지였던 흔적만 조금씩 보여지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거의 없다고 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김포공항습지는 1980년대부터 버려진 묵논이 오래되면서 습지로 변한 곳이고, 이 곳에 인서울27 골프클럽이 조성되기 시작한 2015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면적이 습지로 있었기 때문에 관련 기록이 대부분 존재하고, 과거 습지의 흔적도 뚜렷하여 2010년대 초반의 지도만 보고도 이를 찾을 수 있을 만큼 비교적으로 복원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현재 골프장으로 변하게 된 곳을 예전의 모습처럼 다시 습지로 되돌려 생태계를 보전하도록 할 경우 지금의 골프장을 철거하여야 하는 문제와 함께 앞서 설명한 습지 매립의 이유 중 하나인 항공기에 의한 조류 충돌 문제가 있겠지만, 두 번째 문제의 경우 미국 연방항공청(FAA)과 농무부가 2005년 내놓은 ‘공항에서의 야생동물 위험 관리 매뉴얼’을 보면 \"골프장은 습지와 마찬가지로 위험을 줄이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설이다.\"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골프장의 넓은 초지와 연못이 기러기, 오리, 갈매기 등 위험을 초래할 야생동물을 끌어들인다”는 이유에서 이러한 매뉴얼이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매뉴얼은 또 기존 공항을 확장하는데 가까이에 습지가 있는, 김포와 비슷한 상황에서는 “야생동물 당국과 협의해 위험을 평가하고 최소화하는 조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습지를 없애라는 문구는 매뉴얼 어디에도 없다고 할 것이다. 더구나. 세계의 많은 공항 주변에 습지가 있다. 그렇다고 안전을 위해 습지를 메웠다는 얘기는 사실상 없으며,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공항이 그런 예인 것처럼 항공기 충돌 위험이 있지만 이를 줄여 가면서 생태계와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김포공항습지를 다시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조류 충돌 문제는 사실상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시드니 공항에 인접한 곳에는 연못 11개가 4㎞ 거리로 이어진 김포공항습지 절반 규모의 습지가 있고, 이 습지는 생태적으로 중요해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흥미로운 점은 이 습지 보전에 공항이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7) 이처럼 해외의 공항들이 주변 습지를 조류 충돌 등의 위험을 이유로 생태계가 잘 보전된 습지를 매립하지 않고 대부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골프장 건설로 파괴된 김포공항습지도 인서울27 골프장의 이전과 조류 충돌 방지 대책 등이 충분히 마련될 경우 사라진 습지를 다시 복원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며, 습지를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할 경우 김포공항과 인접해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찾는 명소가 될 뿐만 아니라 김포공항 서쪽의 농경지와 김포공항 주위의 도시와도 조화되어 습지의 생태계와 농경지, 하천(굴포천,동부간선수로), 도시의 모습이 서로 조화되어 도시 외곽지역의 아름다운 생태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김포공항습지와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6) 김포공항 옆 20년간 숨겨진 비밀습지 : 환경 : 사회 : 뉴스 : 한겨레 (hani.co.kr)
(2) 2H-인서울27골프클럽 (inseoul27.co.kr)
(3) (4) 7H-인서울27골프클럽 (inseoul27.co.kr)
(5)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 물바람숲 - 김포공항 담장 너머에 숨겨진 습지가 있다 (hani.co.kr)
(7) 한겨레 환경생태 전문 웹진 - 물바람숲 - 김포공항 옆 습지, 자연의 기적 뭉개나 (hani.co.kr)
○오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목감천) |
복개 구간 |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약 2.0km 정도)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1.05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오류천(梧柳川)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 오류동역 앞 ~ 오류자원 옆 ~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을 거쳐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편에서 목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쪽에 위치한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까지의 구간(약 2.0km 정도)과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 까지의 구간(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도 상류와 중류 일부 쪽에서는 반 정도만 복개되어 흐르거나 도로변의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는 구간도 가끔씩 존재한다.
3. 역사
오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동부제강(현 쿠팡물류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오류천은 상류 쪽 구간에는 물류창고나 고물상 등이 밀집해 있고, 중류 쪽에는 주로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러한 시설들에서 나오는 오염원들을 정화해주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도록 하며, 하류 쪽에는 주로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각각의 구간별로 여러 장점을 살려 오염물질 정화, 주민 편의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오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오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목감천) |
복개 구간 |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약 2.0km 정도)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1.05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오류천(梧柳川)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 오류동역 앞 ~ 오류자원 옆 ~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을 거쳐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편에서 목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쪽에 위치한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까지의 구간(약 2.0km 정도)과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 까지의 구간(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도 상류와 중류 일부 쪽에서는 반 정도만 복개되어 흐르거나 도로변의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는 구간도 가끔씩 존재한다.
3. 역사
오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동부제강(현 쿠팡물류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오류천은 상류 쪽 구간에는 물류창고나 고물상 등이 밀집해 있고, 중류 쪽에는 주로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러한 시설들에서 나오는 오염원들을 정화해주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도록 하며, 하류 쪽에는 주로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각각의 구간별로 여러 장점을 살려 오염물질 정화, 주민 편의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오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오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목감천) |
복개 구간 |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약 2.0km 정도)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1.05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오류천(梧柳川)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 오류동역 앞 ~ 오류자원 옆 ~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을 거쳐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편에서 목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쪽에 위치한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까지의 구간(약 2.0km 정도)과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 까지의 구간(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도 상류와 중류 일부 쪽에서는 반 정도만 복개되어 흐르거나 도로변의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는 구간도 가끔씩 존재한다.
3. 역사
오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동부제강(현 쿠팡물류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오류천은 상류 쪽 구간에는 물류창고나 고물상 등이 밀집해 있고, 중류 쪽에는 주로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러한 시설들에서 나오는 오염원들을 정화해주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도록 하며, 하류 쪽에는 주로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각각의 구간별로 여러 장점을 살려 오염물질 정화, 주민 편의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오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오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목감천) |
복개 구간 |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약 2.0km 정도)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1.05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오류천(梧柳川)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 오류동역 앞 ~ 오류자원 옆 ~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을 거쳐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편에서 목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쪽에 위치한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까지의 구간(약 2.0km 정도)과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 까지의 구간(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도 상류와 중류 일부 쪽에서는 반 정도만 복개되어 흐르거나 도로변의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는 구간도 가끔씩 존재한다.
3. 역사
오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동부제강(현 쿠팡물류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오류천은 상류 쪽 구간에는 물류창고나 고물상 등이 밀집해 있고, 중류 쪽에는 주로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러한 시설들에서 나오는 오염원들을 정화해주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도록 하며, 하류 쪽에는 주로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각각의 구간별로 여러 장점을 살려 오염물질 정화, 주민 편의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오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오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목감천) |
복개 구간 |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약 2.0km 정도)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1.05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오류천(梧柳川)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 오류동역 앞 ~ 오류자원 옆 ~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을 거쳐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편에서 목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쪽에 위치한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까지의 구간(약 2.0km 정도)과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 까지의 구간(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도 상류와 중류 일부 쪽에서는 반 정도만 복개되어 흐르거나 도로변의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는 구간도 가끔씩 존재한다.
3. 역사
오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동부제강(현 쿠팡물류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오류천은 상류 쪽 구간에는 물류창고나 고물상 등이 밀집해 있고, 중류 쪽에는 주로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러한 시설들에서 나오는 오염원들을 정화해주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도록 하며, 하류 쪽에는 주로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각각의 구간별로 여러 장점을 살려 오염물질 정화, 주민 편의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오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오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목감천) |
복개 구간 |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약 2.0km 정도)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1.05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오류천(梧柳川)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 오류동역 앞 ~ 오류자원 옆 ~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을 거쳐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편에서 목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쪽에 위치한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까지의 구간(약 2.0km 정도)과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 까지의 구간(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도 상류와 중류 일부 쪽에서는 반 정도만 복개되어 흐르거나 도로변의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는 구간도 가끔씩 존재한다.
3. 역사
오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동부제강(현 쿠팡물류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오류천은 상류 쪽 구간에는 물류창고나 고물상 등이 밀집해 있고, 중류 쪽에는 주로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러한 시설들에서 나오는 오염원들을 정화해주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도록 하며, 하류 쪽에는 주로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각각의 구간별로 여러 장점을 살려 오염물질 정화, 주민 편의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오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오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1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목감천) |
복개 구간 |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약 2.0km 정도)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1.05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오류천(梧柳川)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지양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 오류동역 앞 ~ 오류자원 옆 ~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을 거쳐 개봉2동 철산리버빌 주공아파트 건너편에서 목감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상류 쪽에 위치한 세연빌라트 옆 ~ 한국교통안전공단 옆 까지의 구간(약 2.0km 정도)과 카페엔제이 뒤쪽 ~ 오류자원 옆 까지의 구간(약 1.3km 정도), 개봉고가차도 건너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구간이 아닌 다른 구간도 상류와 중류 일부 쪽에서는 반 정도만 복개되어 흐르거나 도로변의 좁은 콘크리트 수로 형태로 흐르는 구간도 가끔씩 존재한다.
3. 역사
오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동부제강(현 쿠팡물류센터)를 비롯한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오류천은 상류 쪽 구간에는 물류창고나 고물상 등이 밀집해 있고, 중류 쪽에는 주로 공장이 밀집해 있다는 특성을 살려 이러한 시설들에서 나오는 오염원들을 정화해주도록 하는 역할을 하도록 하도록 하며, 하류 쪽에는 주로 주거지가 밀집해 있는 특성을 살려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고,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각각의 구간별로 여러 장점을 살려 오염물질 정화, 주민 편의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오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7동 지향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1동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오류천) |
복개 구간 |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3.37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세류천 ~ 학산천(한자 이름 미상, 세류천과 학산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7동 지향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복개 시작점 ~ 오류중학교 옆 ~ 고려한사랑 정형외과 옆 ~ 오류IC 옆 ~ 개봉역 뒤쪽을 거쳐 구로구 개봉1동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에서 오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3.37km 정도)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오류천과 마찬가지로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세류천 ~ 학산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세류천 ~ 학산천도 역시 오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어느 정도 길 뿐만 아니라 상류쪽에는 현재 연못이 있는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연의근린공원이 있는 것, 그 밖에도 목감천과 도림천, 한강 등 세류천 ~ 학산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유지용수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발원지 쪽에서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까지의 구간 중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상당 수 구간 옆이 주거지라는 점을 이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7동 지향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1동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오류천) |
복개 구간 |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3.37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세류천 ~ 학산천(한자 이름 미상, 세류천과 학산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7동 지향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복개 시작점 ~ 오류중학교 옆 ~ 고려한사랑 정형외과 옆 ~ 오류IC 옆 ~ 개봉역 뒤쪽을 거쳐 구로구 개봉1동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에서 오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3.37km 정도)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오류천과 마찬가지로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세류천 ~ 학산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세류천 ~ 학산천도 역시 오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어느 정도 길 뿐만 아니라 상류쪽에는 현재 연못이 있는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연의근린공원이 있는 것, 그 밖에도 목감천과 도림천, 한강 등 세류천 ~ 학산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유지용수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발원지 쪽에서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까지의 구간 중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상당 수 구간 옆이 주거지라는 점을 이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7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7동 지향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개봉1동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오류천) |
복개 구간 |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3.37km 정도) |
복개 년도 | 1990년대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세류천 ~ 학산천(한자 이름 미상, 세류천과 학산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7동 지향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복개 시작점 ~ 오류중학교 옆 ~ 고려한사랑 정형외과 옆 ~ 오류IC 옆 ~ 개봉역 뒤쪽을 거쳐 구로구 개봉1동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에서 오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14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 ~ 개봉상우 아파트 뒤쪽(약 3.37km 정도) 까지의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오류천과 마찬가지로 과거 오류천 물줄기 주변은 논과 밭이 많았던 농촌지역이었다가 여러 공장들과 고물상,창고.건설기계 차고지 등을 비롯하여 주로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공해유발시설이 들어서게 되었다가 1990년대부터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된 후 서울특별시의 주거지역이 점점 확장되면서 여러 아파트들이 들어서게 되면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도시 외곽의 주거지로 변하게 되었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세류천 ~ 학산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오류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세류천 ~ 학산천도 역시 오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어느 정도 길 뿐만 아니라 상류쪽에는 현재 연못이 있는 생태공원으로 조성된 연의근린공원이 있는 것, 그 밖에도 목감천과 도림천, 한강 등 세류천 ~ 학산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유지용수 확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발원지 쪽에서 서부화물트럭터미널 뒤쪽까지의 구간 중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상당 수 구간 옆이 주거지라는 점을 이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세류천 ~ 학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오류천 답사기 1/6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시흥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4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안양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1971년으로 추정)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시흥천(始興川)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2동 호암사 뒤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호암사 밑 호암로 앞 복개 시작점 ~ 동광초 뒤쪽 ~ 한광빌딩 옆 ~ 은행나무한의원 밑 삼거리 ~ 시흥사거리 앞을 거쳐 금천구 시흥1동 시흥대교 앞 합수점에서 안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3.24km 정도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약 1.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각각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은 1971년에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되고, 호암사 밑 호암로 앞 ~ 은행나무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시흥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71년 은행나무 사거리 앞 ~ 시흥대교 앞 합수점 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이후 유로가 심하게 변경되어 정확한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는다는 점이 존재한다. 또한.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시흥천에 대한 여러 정보들도 부족한 상태여서 복개된 것에 대한 역사를 제외하고는 시흥천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000년대부터 서울의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겠다는 계획이 곳곳에서 발표되었고, 이 중 일부는 실제로 생태하천으로 복원되었지만 시흥천은 지금까지도 사실상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조차 세워지지 않았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시흥천은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된 만큼 호암사 쪽 계곡과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쪽 계곡을 비롯하여 여러 지류 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풍부한 수량의 물줄기가 시흥천으로 유입되는 만큼. 비록. 하천 길이는 짧아도 하천 물줄기 주변에는 주로 주거지가 위치하고 있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시흥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시흥천 답사기 1/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대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4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대림3동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1975년 1월 13일)(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대방천(大方川)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복개 시작점 ~ 옹달샘 어린이공원 옆 ~ 하나로마트 옆 ~ 대방천사거리 앞 ~ 신길주유소 교차로 앞을 거쳐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7.4km 이다. 현재 대방천은 하수도용 집관로로 사용되고 있고, 신길5동에 위치한 대방천로 지하 구간에도 대방배수문이 있으며, 수질은 아주 좋지 않아 여름철에는 악취가 심하게 날 뿐만 아니라 대방천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도림2유수지는 침수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었고,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36년 경성부 확장 당시에 대방천은 경성부의 최남단 자연경계가 되었기에 현재의 상도동과 신대방동, 상도동과 봉천동의 경계이기도 하고, 구로리내깔, 구로리내말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일부에서는 대방천이 국사봉 밑의 발원지에서 국사봉길을 따라 흘러간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그 이유는 1940년대 지도에 따르면 국사봉길보다는 현재 상도3동-신대방2동 경계를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후.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이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가 되면서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면서 각각 여의대봉로23길과 대방천로가 개설되어 상류쪽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자료: 상도2동 하천 복개공사 기공식 : Seoul Photo Archive, 하천공작물(대방천복개공사) | 서울기록원 (seoul.go.kr)
(2) 대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대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대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관련 게시물인 대방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대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4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대림3동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1975년 1월 13일)(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대방천(大方川)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복개 시작점 ~ 옹달샘 어린이공원 옆 ~ 하나로마트 옆 ~ 대방천사거리 앞 ~ 신길주유소 교차로 앞을 거쳐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7.4km 이다. 현재 대방천은 하수도용 집관로로 사용되고 있고, 신길5동에 위치한 대방천로 지하 구간에도 대방배수문이 있으며, 수질은 아주 좋지 않아 여름철에는 악취가 심하게 날 뿐만 아니라 대방천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도림2유수지는 침수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었고,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36년 경성부 확장 당시에 대방천은 경성부의 최남단 자연경계가 되었기에 현재의 상도동과 신대방동, 상도동과 봉천동의 경계이기도 하고, 구로리내깔, 구로리내말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일부에서는 대방천이 국사봉 밑의 발원지에서 국사봉길을 따라 흘러간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그 이유는 1940년대 지도에 따르면 국사봉길보다는 현재 상도3동-신대방2동 경계를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후.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이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가 되면서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면서 각각 여의대봉로23길과 대방천로가 개설되어 상류쪽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자료: 상도2동 하천 복개공사 기공식 : Seoul Photo Archive, 하천공작물(대방천복개공사) | 서울기록원 (seoul.go.kr)
(2) 대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대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대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관련 게시물인 대방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대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4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대림3동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1975년 1월 13일)(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대방천(大方川)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복개 시작점 ~ 옹달샘 어린이공원 옆 ~ 하나로마트 옆 ~ 대방천사거리 앞 ~ 신길주유소 교차로 앞을 거쳐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7.4km 이다. 현재 대방천은 하수도용 집관로로 사용되고 있고, 신길5동에 위치한 대방천로 지하 구간에도 대방배수문이 있으며, 수질은 아주 좋지 않아 여름철에는 악취가 심하게 날 뿐만 아니라 대방천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도림2유수지는 침수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었고,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36년 경성부 확장 당시에 대방천은 경성부의 최남단 자연경계가 되었기에 현재의 상도동과 신대방동, 상도동과 봉천동의 경계이기도 하고, 구로리내깔, 구로리내말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일부에서는 대방천이 국사봉 밑의 발원지에서 국사봉길을 따라 흘러간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그 이유는 1940년대 지도에 따르면 국사봉길보다는 현재 상도3동-신대방2동 경계를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후.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이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가 되면서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면서 각각 여의대봉로23길과 대방천로가 개설되어 상류쪽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자료: 상도2동 하천 복개공사 기공식 : Seoul Photo Archive, 하천공작물(대방천복개공사) | 서울기록원 (seoul.go.kr)
(2) 대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대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대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관련 게시물인 대방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대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4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대림3동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1975년 1월 13일)(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199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대방천(大方川)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3동 사자암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복개 시작점 ~ 옹달샘 어린이공원 옆 ~ 하나로마트 옆 ~ 대방천사거리 앞 ~ 신길주유소 교차로 앞을 거쳐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7.4km 이다. 현재 대방천은 하수도용 집관로로 사용되고 있고, 신길5동에 위치한 대방천로 지하 구간에도 대방배수문이 있으며, 수질은 아주 좋지 않아 여름철에는 악취가 심하게 날 뿐만 아니라 대방천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도림2유수지는 침수 피해가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은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었고,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1936년 경성부 확장 당시에 대방천은 경성부의 최남단 자연경계가 되었기에 현재의 상도동과 신대방동, 상도동과 봉천동의 경계이기도 하고, 구로리내깔, 구로리내말 등의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일부에서는 대방천이 국사봉 밑의 발원지에서 국사봉길을 따라 흘러간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그 이유는 1940년대 지도에 따르면 국사봉길보다는 현재 상도3동-신대방2동 경계를 따라 흘러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후.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이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1) 대방천사거리 옆 ~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 성락빌딩 앞 교차로 옆 ~ 신도림역 건너편{도림천 건너}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가 되면서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면서 각각 여의대봉로23길과 대방천로가 개설되어 상류쪽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대방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자료: 상도2동 하천 복개공사 기공식 : Seoul Photo Archive, 하천공작물(대방천복개공사) | 서울기록원 (seoul.go.kr)
(2) 대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대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대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관련 게시물인 대방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상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1.9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1동 상도역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상도3동 하나로마트 앞(대방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75년 1월 13일)(1) |
1. 개요
상도천(上道川)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1동 상도역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장승배기역 밑 ~ 대성빌딩 옆 ~ 수영빌딩 앞 ~ 상도3동주민센터 앞을 거쳐 하나로마트 앞에서 대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1.97km 정도이다. 상도천은 대방천을 부르는 다른 명칭이라는 설이 있지만 상도천과 대방천은 별개의 하천으로 보인다. (한 블로거는 대방천 답사기를 쓰면서 상도천 구간도 모두 대방천 구간이라고 보았지만, 실제로 대방천은 사지암 위쪽에서 발원하여 옹달샘 어린이공원을 거쳐 신대방삼거리 아래에 위치한 하나로마트 앞에서 상도천과 합류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대방천의 지류라고 볼 수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대방천의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과 같은 시기인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었다. (2)
3. 역사
1940년대 지도에 따르면 대방천과 상도천은 별개의 하천으로 나왔고, 신대방삼거리 아래에 위치한 하나로마트 앞에서 대방천과 상도천이 합류하는 하천으로 나왔다. 그 후. 대방천의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과 같은 시기인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어 지금은 거의 모든 구간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상도천은 대구의 달서천처럼 발원지마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구간은 발원지가 다시 살아나고, 이로 인하여 발원지가 회복되었다는 역사적인 상징성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대방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관련 자료: 상도2동 하천 복개공사 기공식 : Seoul Photo Archive, 하천공작물(대방천복개공사) | 서울기록원 (seoul.go.kr)
(3) 상도천도 대방천의 지류 하천인 만큼, 상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대방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상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1.97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1동 상도역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구로구 상도3동 하나로마트 앞(대방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75년 1월 13일)(1) |
1. 개요
상도천(上道川)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1동 상도역 뒤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장승배기역 밑 ~ 대성빌딩 옆 ~ 수영빌딩 앞 ~ 상도3동주민센터 앞을 거쳐 하나로마트 앞에서 대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1.97km 정도이다. 상도천은 대방천을 부르는 다른 명칭이라는 설이 있지만 상도천과 대방천은 별개의 하천으로 보인다. (한 블로거는 대방천 답사기를 쓰면서 상도천 구간도 모두 대방천 구간이라고 보았지만, 실제로 대방천은 사지암 위쪽에서 발원하여 옹달샘 어린이공원을 거쳐 신대방삼거리 아래에 위치한 하나로마트 앞에서 상도천과 합류하는 방향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대방천의 지류라고 볼 수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대방천의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과 같은 시기인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었다. (2)
3. 역사
1940년대 지도에 따르면 대방천과 상도천은 별개의 하천으로 나왔고, 신대방삼거리 아래에 위치한 하나로마트 앞에서 대방천과 상도천이 합류하는 하천으로 나왔다. 그 후. 대방천의 상도3동 마을공원 위쪽 ~ 대방천사거리 옆까지의 구간과 같은 시기인 1975년 1월 13일에 복개되어 지금은 거의 모든 구간이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상도천은 대구의 달서천처럼 발원지마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구간은 발원지가 다시 살아나고, 이로 인하여 발원지가 회복되었다는 역사적인 상징성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대방천 답사기 1/4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관련 자료: 상도2동 하천 복개공사 기공식 : Seoul Photo Archive, 하천공작물(대방천복개공사) | 서울기록원 (seoul.go.kr)
(3) 상도천도 대방천의 지류 하천인 만큼, 상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대방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2동 보라매공원 밑쪽(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8년 (1) |
1. 개요
봉천천(奉天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삼정그린빌 뒤쪽 복개 시작점 ~ 봉천로사거리 앞 ~ 봉천역 뒤쪽 ~ 은천교 앞 ~ 당곡사거리 옆을 거쳐 보라매공원 밑쪽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8년에 복개되었으며, (1)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구간에는 1988년에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가 만들어졌다. (2)
3. 역사
봉천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8년을 전후로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는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라는 큰 도로가 만들어졌다. (2) 그 후. 2017년부터는 봉천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여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020년에는 민선7기로 당선된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봉천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2022년 상반기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4)(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봉천천은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쪽에 위치한 무당골 계곡에서 나온 맑고 깨끗한 물과 주변의 여러 지류의 물이 합쳐져 흐르게 되면서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1980년대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modoo.at)
(2) 관련 자료: 봉천천 복개도로 개통식 : Seoul Photo Archive
(3) 관련 기사: “낙성벤처밸리-골목상권 활성화… 힘내라, 청춘” : 네이버 뉴스 (naver.com)
(4) 봉천천 복개 철거 및 생태하천 복원 사업 관련 참고 기사: 성공적인 봉천천 생태하천 복원 방안? : 네이버 뉴스 (naver.com)
(5) 봉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2동 보라매공원 밑쪽(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8년 (1) |
1. 개요
봉천천(奉天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삼정그린빌 뒤쪽 복개 시작점 ~ 봉천로사거리 앞 ~ 봉천역 뒤쪽 ~ 은천교 앞 ~ 당곡사거리 옆을 거쳐 보라매공원 밑쪽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8년에 복개되었으며, (1)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구간에는 1988년에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가 만들어졌다. (2)
3. 역사
봉천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8년을 전후로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는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라는 큰 도로가 만들어졌다. (2) 그 후. 2017년부터는 봉천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여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020년에는 민선7기로 당선된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봉천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2022년 상반기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4)(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봉천천은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쪽에 위치한 무당골 계곡에서 나온 맑고 깨끗한 물과 주변의 여러 지류의 물이 합쳐져 흐르게 되면서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1980년대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modoo.at)
(2) 관련 자료: 봉천천 복개도로 개통식 : Seoul Photo Archive
(3) 관련 기사: “낙성벤처밸리-골목상권 활성화… 힘내라, 청춘” : 네이버 뉴스 (naver.com)
(4) 봉천천 복개 철거 및 생태하천 복원 사업 관련 참고 기사: 성공적인 봉천천 생태하천 복원 방안? : 네이버 뉴스 (naver.com)
(5) 봉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2동 보라매공원 밑쪽(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8년 (1) |
1. 개요
봉천천(奉天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삼정그린빌 뒤쪽 복개 시작점 ~ 봉천로사거리 앞 ~ 봉천역 뒤쪽 ~ 은천교 앞 ~ 당곡사거리 옆을 거쳐 보라매공원 밑쪽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8년에 복개되었으며, (1)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구간에는 1988년에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가 만들어졌다. (2)
3. 역사
봉천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8년을 전후로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는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라는 큰 도로가 만들어졌다. (2) 그 후. 2017년부터는 봉천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여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020년에는 민선7기로 당선된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봉천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2022년 상반기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4)(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봉천천은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쪽에 위치한 무당골 계곡에서 나온 맑고 깨끗한 물과 주변의 여러 지류의 물이 합쳐져 흐르게 되면서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1980년대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modoo.at)
(2) 관련 자료: 봉천천 복개도로 개통식 : Seoul Photo Archive
(3) 관련 기사: “낙성벤처밸리-골목상권 활성화… 힘내라, 청춘” : 네이버 뉴스 (naver.com)
(4) 봉천천 복개 철거 및 생태하천 복원 사업 관련 참고 기사: 성공적인 봉천천 생태하천 복원 방안? : 네이버 뉴스 (naver.com)
(5) 봉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2동 보라매공원 밑쪽(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8년 (1) |
1. 개요
봉천천(奉天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삼정그린빌 뒤쪽 복개 시작점 ~ 봉천로사거리 앞 ~ 봉천역 뒤쪽 ~ 은천교 앞 ~ 당곡사거리 옆을 거쳐 보라매공원 밑쪽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8년에 복개되었으며, (1)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구간에는 1988년에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가 만들어졌다. (2)
3. 역사
봉천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8년을 전후로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는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라는 큰 도로가 만들어졌다. (2) 그 후. 2017년부터는 봉천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여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020년에는 민선7기로 당선된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봉천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2022년 상반기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4)(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봉천천은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쪽에 위치한 무당골 계곡에서 나온 맑고 깨끗한 물과 주변의 여러 지류의 물이 합쳐져 흐르게 되면서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1980년대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modoo.at)
(2) 관련 자료: 봉천천 복개도로 개통식 : Seoul Photo Archive
(3) 관련 기사: “낙성벤처밸리-골목상권 활성화… 힘내라, 청춘” : 네이버 뉴스 (naver.com)
(4) 봉천천 복개 철거 및 생태하천 복원 사업 관련 참고 기사: 성공적인 봉천천 생태하천 복원 방안? : 네이버 뉴스 (naver.com)
(5) 봉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2동 보라매공원 밑쪽(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8년 (1) |
1. 개요
봉천천(奉天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삼정그린빌 뒤쪽 복개 시작점 ~ 봉천로사거리 앞 ~ 봉천역 뒤쪽 ~ 은천교 앞 ~ 당곡사거리 옆을 거쳐 보라매공원 밑쪽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8년에 복개되었으며, (1)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구간에는 1988년에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가 만들어졌다. (2)
3. 역사
봉천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8년을 전후로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는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라는 큰 도로가 만들어졌다. (2) 그 후. 2017년부터는 봉천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여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020년에는 민선7기로 당선된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봉천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2022년 상반기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4)(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봉천천은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쪽에 위치한 무당골 계곡에서 나온 맑고 깨끗한 물과 주변의 여러 지류의 물이 합쳐져 흐르게 되면서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1980년대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modoo.at)
(2) 관련 자료: 봉천천 복개도로 개통식 : Seoul Photo Archive
(3) 관련 기사: “낙성벤처밸리-골목상권 활성화… 힘내라, 청춘” : 네이버 뉴스 (naver.com)
(4) 봉천천 복개 철거 및 생태하천 복원 사업 관련 참고 기사: 성공적인 봉천천 생태하천 복원 방안? : 네이버 뉴스 (naver.com)
(5) 봉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봉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1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2동 보라매공원 밑쪽(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8년 (1) |
1. 개요
봉천천(奉天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무당골 계곡 위쪽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삼정그린빌 뒤쪽 복개 시작점 ~ 봉천로사거리 앞 ~ 봉천역 뒤쪽 ~ 은천교 앞 ~ 당곡사거리 옆을 거쳐 보라매공원 밑쪽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1km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8년에 복개되었으며, (1)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 구간에는 1988년에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가 만들어졌다. (2)
3. 역사
봉천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8년을 전후로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는 남부순환로의 교통량을 분산시키기 위하여 봉천로라는 큰 도로가 만들어졌다. (2) 그 후. 2017년부터는 봉천천의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여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하였고, 2020년에는 민선7기로 당선된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봉천천의 생태하천 복원 사업을 2022년 상반기 안에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3)(4)(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봉천천은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발원지 쪽에 위치한 무당골 계곡에서 나온 맑고 깨끗한 물과 주변의 여러 지류의 물이 합쳐져 흐르게 되면서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고,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는 등으로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게시물: 1980년대 |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 (modoo.at)
(2) 관련 자료: 봉천천 복개도로 개통식 : Seoul Photo Archive
(3) 관련 기사: “낙성벤처밸리-골목상권 활성화… 힘내라, 청춘” : 네이버 뉴스 (naver.com)
(4) 봉천천 복개 철거 및 생태하천 복원 사업 관련 참고 기사: 성공적인 봉천천 생태하천 복원 방안? : 네이버 뉴스 (naver.com)
(5) 봉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봉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난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36km 정도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도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난곡천(蘭谷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난향동 관악산휴먼시아아파트 뒤쪽에서 발원하여 보성운수 차고지 옆 ~ 느티나무 보호수 옆 ~ 세이브마트 옆 ~ 난곡사거리 앞을 거쳐 영등포구 대림2동 구로디지털단지역 앞에서 도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4.36km 정도 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 중 상류 쪽과 난곡사거리 위쪽부터 하류 쪽인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구간이 난곡로 밑으로 흘러간다.
3. 역사
난곡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의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0년대 후반에 지금과 같이 발원지 쪽 계곡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다. 그 후. 발원지 근처의 상류 쪽에 있었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가 2002년 7월부터 철거되기 시작한 후 2002년 4월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아파트가 착공되었고, 2006년에는 관악산휴먼시아 아파트가 완공되었으며, 같은 해 신림푸르지오아파트도 완공되어 이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변하게 되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지금 난곡천은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만큼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하천 주변에 주로 주거지가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인근 주민의 휴식처로 각광받을 뿐만 아니라 생태계까지 제대로 복원되어 하천 둔치와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관련 기사: 달동네 \'난곡\'이 아파트촌으로…입주시작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난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난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5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반포천) |
복개 구간 |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 (약 550m 정도)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 (약 75m 정도)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약 5.38km 정도) |
복개 년도 |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었음 |
1. 개요
방배천(사당천)-方背川(舍堂川)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현동 남태령 밑에서 발원하여 남태령역 뒤쪽 ~ 사당IC 옆쪽 ~ 사당역 옆쪽 ~ 천변 공영주차장 앞 ~ 이수역 옆쪽 ~ 방배4치안센터 옆쪽을 거쳐 서초구 방배본동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반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6.5km 정도이다. 또한. 방배천과 사당천이라는 이름 외에도 승방천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렸고, 특히 예전부터 사당천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왔지만 사실상 하천의 전 구간을 관리하는 서초구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방배천\\\\\\\\\\\\\\\' 이라는 명칭만만 인정하며, 그 이유는 사당동은 서초구가 아닌 동작구 소속이어서 그렇게 정한다고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남태령 밑 발원지 ~ 남태령역 뒤쪽까지의 구간(약 550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서울전자고 입구의 옆쪽 구간(약 75m 정도)과 함께 이 하천의 주된 복개 구간을 차지하는 사당IC 옆쪽 ~ 이수교차로 옆쪽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5.38km 정도)이 복개되었고, 1982년 ~ 1991년까지 복개 공사가 진행되면서 현재처럼 복개되었다.
3. 역사
현재 방배천은 1991년 복개된 이후부터 방배천로 라는 이름을 가진 복개도로가 복개된 하천 위를 지나고 있고, 이 도로를 비롯한 사당천의 복개 구간은 현재 서초구의 공영 주차장과 보행자 거리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 인근에 보드게임장(구 이수 서문클럽), 방배경찰서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이수역 부근에서는 이 도로가 주변 지반에 비하여 현저히 낮기 때문에 하천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고, 사당역 부근에는 하천이 지나는 자리 바로 위에 공중화장실이 있으며, 서문여고 쪽 구간도 복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고, 2010년에는 지난 1998년부터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렸던 벼룩시장이 사당천 복개도로로 자리를 옮겨서 개최하게 되었다. (2) 또한. 복원공사를 통해 녹지와 동시에 사당역 침수방지를 도모하려 하고 있었지만, 2015년 6월 기사 이후 소식이 없는 등으로 현재는 사실상 복원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할 것이며, 2016년부터 타당성 조사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기본계획 마련 등 후속 작업을 착수할 계획으로 서울시는 사당역 일대 방재시설을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아예 사당천을 복원해 빗물을 한강으로 흘려보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2021년 09월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한강지천 르네상스에 방배천(사당천)이 포함되어 복원계획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고, 실제로 사당천이 복원되면 사당천 주변엔 도심 수변공간이 조성되고 이수고가차도 아래에 흐르는 반포천을 통해 한강까지 연결될 전망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3)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1탄 사라진 물길 기록을 위한 공모전이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한 과거, 현재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방배천(사당천)은 상류에는 관악산과 전원주택지로 각광받는 남태령이 인접하고 있어 미복개 구간을 포함한 청정계곡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중류는 주로 주거지가 인접해 있는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하류 쪽 구간은 반포천으로 합류된다는 특성을 살려 여러 부분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밖에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3.7.8(토) 12:00 ~ 8.30(수) 24:00 까지 이며, *기존 접수기간동안 접수율이 저조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라진 물길 기록에 대한 기회를 공유하도록 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수기간을 연장하였습니다.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2탄: (1). 사라진 물길의 복원 방안 제시 공모대회 부문, (2).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 서비스 이용 후기 공모대회 부문과 3탄: (1).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앱 만들기 대회 부문, (2). 프로젝트를 운영할 동반운영진 특별 지원 부문으로 구분하여 개최합니다.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전국 패트롤] 사당천 복개도로 보행자 중심 거리로 재탄생 外 : 네이버 뉴스 (naver.com)
(2) 관련 기사: 서울시, 사당천 복원 검토…사당역 침수 방지 대책 : 네이버 뉴스 (naver.com)
(3) 방배천(사당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사당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방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반포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70 km |
발원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 발원지 |
하구 |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한강) |
복개 구간 |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약 5.05km 정도) |
복개 년도 |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1970년대)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반포천(盤浦川)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3동 서울연구원 뒤쪽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국립외교원 옆 ~ 강남빌딩 옆 ~ 반포IC 앞 ~ 고속터미널역 뒤쪽 ~ 서초구민체육센터 옆을 거쳐 동작구 동작동 동작대교 남단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70km이다. 또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따로 복개도로가 개설되어 있지 않아 현재 하천의 흔적 조차 찾을 수 없지만,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터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는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강남역 뒤쪽 구간까지는 강남대로 서편의 배후도로가 복개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 까지의 구간(약 5.0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은 배수관의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역사
복개되기 이전의 반포천은 서초구 서초동, 강남구 역삼동, 논현동 방면으로 여러 지류가 있어, 우면산 등지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이들 지역의 구릉지와 농경지를 통과하여 흐른 후 본류로 합수되어 흐르다가 한강으로 합류하였다. 그 후 서리풀공원 뒤쪽 ~ 고속터미널역 뒤쪽까지의 구간이 1970년대 복개된 것을 시작으로 서울특별시 인재개발원 뒤쪽 ~ 서리풀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면서 반포천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2호선 강남역 일대에서 상습적으로 침수가 발생하게 되자, 2015년 3월 서울특별시는 침수의 발생 원인을 병목 형태의 지형, 잘못 설치된 강남대로의 하수관로, 반포천 상류의 통수능력 부족, 삼성 사옥 인근에 역경사로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 등의 네 가지로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강남역 일대 종합배수개선대책’을 수립하였고, 이에 따라 서울특별시는 2016년 6월까지 강남대로 동쪽의 배수 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2021년 12월 까지 2호선 교대역 부근의 빗물이 강남역 부근을 거치지 않고 고속버스터미널 부근까지 곧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배수 터널을 시공하기로 하였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고속터미널역 뒤쪽에서 한강 합수점까지의 구간과 발원지 쪽 구간을 제외하면 상당부분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길이가 길고 수 많은 지류도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한강,양재천 등 반포천에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서초구와 강남구의 번화가와 중심상업지구를 대부분 지나가고, 본류와 일부 지류의 상류 쪽에는 서울연구원, 예술의전당,국립국악원 등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이 존재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강남 도심에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하여 도심의 젊은 문화와도 조화되어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도 찾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상류 쪽에는 우면산 밑에 존재하는 대규모 기관이나 문화시설들과 하천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1) 반포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반포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반포천 - 나무위키 (namu.wiki)와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반포천 답사기 1/17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삼산3교 앞(굴포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동수천(東樹川)은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6동 부평남부체육센터(구 경찰종합학교) 뒤쪽 발원지, 일신동 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와 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송내IC 뒤쪽 ~ 상미초 옆 ~ 웅진플레이도시 옆 ~ 부개여고 옆 ~ 동수천로 앞 ~ 부광여고 뒤쪽을 거쳐 삼산2동 삼산3교 앞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4.15km 정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기준), 약 8.97km 정도(풍림아파트 뒤쪽 계곡 발원지 기준), 약 8.5km 정도(철마산 밑 계곡 발원지 기준)이다.
또한. 동수천은 복개된 이후 동수천로 구간을 제외한 상당 수 구간에서 하천 흔적을 예상할 수 있는 복개도로 등이 개설되지 않아 물길을 찾기 어려운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를 제외한 발원지 쪽 구간(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발원지 구간도 과거 경찰종합학교가 있었을 때 까지만 하더라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발원지를 찾을 수 없었다.)은 현재 군사시설 등으로 출입이 금지되었고, 현재의 지도를 찾아도 물줄기를 찾기 어려우므로 과거 지도를 참조해야 간신히 발원지와 물줄기를 찾을 수 있다.
3. 역사
동수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인근 원통천과 마찬가지로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부평남부체육센터 뒤쪽, 풍림아파트 뒤쪽, 일신자이아파트 뒤쪽 ~ 방촌공원 건너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방촌공원 건너 ~ 삼산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동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일부 구간은 도로로 사용되고, 그 밖의 구간은 주거지 등으로 사용되어 지금은 하천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인근의 원통천과는 다르게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된 것으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발원지와 상류 쪽의 출입통제구역도 언젠가 출입통제의 이유가 되는 시설이 모두 철거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될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굴곡도가 심한 중류와 일부 하류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류 쪽의 굴포천 합수점과 가까운 구간은 인근의 부천영상문화단지와 함께 한국만화박물관,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도 잘 조화되어 만화를 테마로 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옛 물길 흔적 없는 동수천 - 인천투데이 (archive.org)
(2) 참고 기사: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동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원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8 km 정도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 인천가족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1동 쌍용플래티넘 뒤쪽(산곡천) |
복개 구간 | 인천가족공원 입구 ~ 쌍용플래티넘 뒤쪽(약 1.93km) |
복개 년도 |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원통천(圓通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 인천가족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인천가족공원 입구 ~ 부평사거리 옆 ~ 부평공원 옆 ~ 부평동아1,2단지아파트 옆을 거쳐 부평1동 쌍용플래티넘 뒤쪽에서 산곡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8 km 정도이다.
또한. 발원지 쪽 인천가족공원 구간은 드물게 본류와 일부 지류에서 다리나 각종 시설 등으로 100m 이하의 구간이 극히 아주 짧게 복개된 모습도 볼 수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인천가족공원 입구 ~ 쌍용플래티넘 뒤쪽(약 1.93km)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원지 쪽 인천가족공원 구간은 드물게 본류와 일부 지류에서 다리나 각종 시설 등으로 100m 이하의 구간이 극히 아주 짧게 복개된 모습도 볼 수 있는 등 상류 일부 구간에서는 드물게 짧은 복개 구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3. 역사
원통천은 굴포천과 더불어 중류지역까지는 조선시대에서 경인운하로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했던 하천이었지만 현재의 경인선 백운역 일대의 고개를 뚫지 못해서 결국 경인운하는 포기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고개 이름이 \\\'원통이고개\\\' 가 되었고, 하천이름이 \\\'원통천\\\'이 된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원통산의 유래가 먼저인지 원통이고개의 유래가 먼저인지는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옆의 산곡천과는 다르게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하류 쪽의 극히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원통천이 복개된 역사에 대하여는 각각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원통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21세기가 온 후부터는 부평지역의 도시개발사업의 확장과 인근 미군부대의 주둔에 따라 끊어져 있거나 복개된 구간을 앞으로 부평 미군부대가 철수하고 재개발사업을 하면 복원할 계획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러한 계획에 따른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착공되지 않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인천가족공원 입구 위쪽의 상류구간을 제외한 중류와 하류의 상당 수 구간이 복개가 되어 있고, 비교적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부족한 인천의 산과 숲의 특성상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원통천은 상류 쪽 구간은 위쪽에 인천가족공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복원하면 숭고한 추모 분위기와 자연적인 풍경이 잘 조화되어 깊은 아름다움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옆에 경인선 철로와 부평공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복원할 경우 편리한 접근성, 자연적인 풍경과 함께 생태하천의 흐르는 물이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고, 하류 쪽 구간도 주위에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굴포천 복원 큰 틀 짜야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2) 참고 기사: 부평 굴포천 복원, 제2의 청계천 만든다 (hankookilbo.com)
(3) 원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원통천 답사기 1/6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원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8 km 정도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 인천가족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1동 쌍용플래티넘 뒤쪽(산곡천) |
복개 구간 | 인천가족공원 입구 ~ 쌍용플래티넘 뒤쪽(약 1.93km) |
복개 년도 |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원통천(圓通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 인천가족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인천가족공원 입구 ~ 부평사거리 옆 ~ 부평공원 옆 ~ 부평동아1,2단지아파트 옆을 거쳐 부평1동 쌍용플래티넘 뒤쪽에서 산곡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8 km 정도이다.
또한. 발원지 쪽 인천가족공원 구간은 드물게 본류와 일부 지류에서 다리나 각종 시설 등으로 100m 이하의 구간이 극히 아주 짧게 복개된 모습도 볼 수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인천가족공원 입구 ~ 쌍용플래티넘 뒤쪽(약 1.93km)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원지 쪽 인천가족공원 구간은 드물게 본류와 일부 지류에서 다리나 각종 시설 등으로 100m 이하의 구간이 극히 아주 짧게 복개된 모습도 볼 수 있는 등 상류 일부 구간에서는 드물게 짧은 복개 구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3. 역사
원통천은 굴포천과 더불어 중류지역까지는 조선시대에서 경인운하로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했던 하천이었지만 현재의 경인선 백운역 일대의 고개를 뚫지 못해서 결국 경인운하는 포기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고개 이름이 \\\'원통이고개\\\' 가 되었고, 하천이름이 \\\'원통천\\\'이 된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원통산의 유래가 먼저인지 원통이고개의 유래가 먼저인지는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옆의 산곡천과는 다르게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하류 쪽의 극히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원통천이 복개된 역사에 대하여는 각각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원통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21세기가 온 후부터는 부평지역의 도시개발사업의 확장과 인근 미군부대의 주둔에 따라 끊어져 있거나 복개된 구간을 앞으로 부평 미군부대가 철수하고 재개발사업을 하면 복원할 계획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러한 계획에 따른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착공되지 않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인천가족공원 입구 위쪽의 상류구간을 제외한 중류와 하류의 상당 수 구간이 복개가 되어 있고, 비교적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부족한 인천의 산과 숲의 특성상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원통천은 상류 쪽 구간은 위쪽에 인천가족공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복원하면 숭고한 추모 분위기와 자연적인 풍경이 잘 조화되어 깊은 아름다움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옆에 경인선 철로와 부평공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복원할 경우 편리한 접근성, 자연적인 풍경과 함께 생태하천의 흐르는 물이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고, 하류 쪽 구간도 주위에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굴포천 복원 큰 틀 짜야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2) 참고 기사: 부평 굴포천 복원, 제2의 청계천 만든다 (hankookilbo.com)
(3) 원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원통천 답사기 1/6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원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5.8 km 정도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 인천가족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1동 쌍용플래티넘 뒤쪽(산곡천) |
복개 구간 | 인천가족공원 입구 ~ 쌍용플래티넘 뒤쪽(약 1.93km) |
복개 년도 |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원통천(圓通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2동 인천가족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인천가족공원 입구 ~ 부평사거리 옆 ~ 부평공원 옆 ~ 부평동아1,2단지아파트 옆을 거쳐 부평1동 쌍용플래티넘 뒤쪽에서 산곡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5.8 km 정도이다.
또한. 발원지 쪽 인천가족공원 구간은 드물게 본류와 일부 지류에서 다리나 각종 시설 등으로 100m 이하의 구간이 극히 아주 짧게 복개된 모습도 볼 수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인천가족공원 입구 ~ 쌍용플래티넘 뒤쪽(약 1.93km)까지의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원지 쪽 인천가족공원 구간은 드물게 본류와 일부 지류에서 다리나 각종 시설 등으로 100m 이하의 구간이 극히 아주 짧게 복개된 모습도 볼 수 있는 등 상류 일부 구간에서는 드물게 짧은 복개 구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3. 역사
원통천은 굴포천과 더불어 중류지역까지는 조선시대에서 경인운하로 사용하기 위해 공사를 했던 하천이었지만 현재의 경인선 백운역 일대의 고개를 뚫지 못해서 결국 경인운하는 포기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고개 이름이 \\\'원통이고개\\\' 가 되었고, 하천이름이 \\\'원통천\\\'이 된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원통산의 유래가 먼저인지 원통이고개의 유래가 먼저인지는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옆의 산곡천과는 다르게 상당 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이 되서야 하류 쪽의 극히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비교적으로 오래 물이 흐르는 모습으로 존재하였던 하천이라고 할 것이다.
원통천이 복개된 역사에 대하여는 각각 백마교 앞 ~ 쌍용플래티넘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인천가족공원 입구 ~ 백마교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원통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21세기가 온 후부터는 부평지역의 도시개발사업의 확장과 인근 미군부대의 주둔에 따라 끊어져 있거나 복개된 구간을 앞으로 부평 미군부대가 철수하고 재개발사업을 하면 복원할 계획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이러한 계획에 따른 생태하천 복원 공사는 착공되지 않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인천가족공원 입구 위쪽의 상류구간을 제외한 중류와 하류의 상당 수 구간이 복개가 되어 있고, 비교적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가 부족한 인천의 산과 숲의 특성상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원통천은 상류 쪽 구간은 위쪽에 인천가족공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복원하면 숭고한 추모 분위기와 자연적인 풍경이 잘 조화되어 깊은 아름다움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옆에 경인선 철로와 부평공원이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하여 복원할 경우 편리한 접근성, 자연적인 풍경과 함께 생태하천의 흐르는 물이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고, 하류 쪽 구간도 주위에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성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굴포천 복원 큰 틀 짜야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2) 참고 기사: 부평 굴포천 복원, 제2의 청계천 만든다 (hankookilbo.com)
(3) 원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원통천 답사기 1/6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 산곡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19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굴포천) |
복개 구간 |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로 추정 |
복개 년도 |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산곡천(山谷川)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3동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에서 발원하여 서초IC 밑 ~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밑 ~ 쌍용플래티넘 앞을 거쳐 갈산2동 부평구청 뒤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19km이다.
또한. 발원지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산곡천은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1997년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한 전 구간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개 구간 중 상류 쪽 육군 제3보급단 내부 구간은 현재는 군부대로써 민간인 통제구역이므로 과거 지도를 보아야 자세한 구간을 알 수 있고, 이외의 방법으로는 거의 알 수 없다.
3. 역사
산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초기에 대한 역사는 이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어 알기 어렵지만, 1920년대 지금의 제 3 보급단 자리가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발원지 쪽 상류 구간 중 일부가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이곳은 역사의 파고에 따라 미군, 국군의 순으로 주인이 바뀌어 온 것이다.
산업화 이후부터는 산곡천이 각각 육군 제3보급단 내부 발원지(추정) ~ 제3보급단 입구까지의 구간은 1920년대 이 곳이 일본군의 부평연습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복개되었고 (1), 제3보급단 입구 ~ 부평미군기지 선로까지의 구간과 백마2교 옆 ~ 부평구청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부평미군기지 선로 ~ 백마2교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산곡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 또는 주차장으로 바뀌어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1997년에는 산곡천이 인천광역시에 의하여 하수도로 지정되어 현재 법적으로는 하천이 아닌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3보급단을 2025년까지 17사단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28일 인천광역시와 인천도시공사는 28일(목) 제3보급단 등 군부대 이전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적인 추진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0.2 km)을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복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상당 수 구간이 배수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비교적으로 하천 흔적이 뚜렷하고 길이가 비교적으로 긴 지류가 하나 있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대부분이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상류 구간 중 제3보급단 안의 구간과 현재 복개되지 않은 부평미군기지 선로 옆 일부구간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의 근현대사를 상당 수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곳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복개된 구간은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을 지나는 특성도 있어 이를 잘 활용하여 생태하천을 복원할 경우 주거지의 접근설과 사시사철 깨끗한 물과 하천변의 생태계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도심 속 생태명소가 될 것이다.
(1) 참고 기사: 1950년대 미군 군수창고·철도 간직 ‘부평 제3보급단 터’ 보존할 가치 커 < 열린의정 < 정치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참고 기사: 인천시, \\\'여의도 절반 면적\\\' 제3보급단 등 군부대이전 본격 궤도 진입 - 중소기업뉴스 (kbiznews.co.kr)
(3) 산곡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산곡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과 관련 게시물인 tistory-잡동사니 내블로그 ver.2 :: 인천 산곡천 답사기 1/8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세월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8 km 정도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1동 원적산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1동 서부3교 앞(갈산천) |
복개 구간 | 거산아파트 뒤쪽 ~ 서부3교 앞(약 2.36km) |
복개 년도 |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1970년대 후반으로 추정)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세월천(한자 미상, 세월천의 한자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분들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1동 원적산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거산아파트 뒤쪽 ~ 청천푸르지오 뒤쪽 ~ 한국GM 부평공장 안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3.28km 정도이다.
또한. 세월천은 과거부터 이러한 명칭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1) 2014년 4월 16일 운항 중 침몰하여 다수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와는 일체 관련이 없는 하천이고, (2)(3)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은 현재 복개가 모두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구간들이 자주 보이며, 자연하천이지만 상류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이 직선 구간인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거산아파트 뒤쪽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약 2.36km)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이 포함된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은 현재 복개가 모두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구간들이 자주 보이며, 자연하천이지만 상류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이 직선 구간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세월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는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이 포함된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세월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지금의 세월천로가 과거에 서월천이 흘렀던 구간 중 대부분을 복개하고 만든 도로이다.
또한. 세월천은 2014년 4월 16일 운항 중 침몰하여 다수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며, 그 이유는 세월호는 일본에서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1994년 6월부터 2012년 10월 1일까지 \\\'페리 나미노우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였던 선박을 청해진해운에서 중고로 구입하여 개조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인천 ~ 제주간 항로에 운행하였고, (2) 세월천이라는 이름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아, (1) 세월천과 세월호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물론. 사고 당시 세월호의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의 본사가 인천에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과 세월천과도 일체의 관련이 없다.) 인근의 동수천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3)(4)(5)(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산업단지와 도시 개발 이전의 옛 물길이 모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비록 직선이기는 하지만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세월천은 세월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출항하였고, 청해진해운의 본사가 인천에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복원할 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을 테마로 하여 생태하천을 조성할 경우 또 다른 숭고한 역사가 담겨있는 살아있는 역사공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약 2년 전인 2012년에 한 네티즌이 세월천을 답사한 후기를 찾을 수 있다(후기 링크)
(2) 세월호에 대한 내용은 관련 백과인 세월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의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3)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내용은 관련 백과인 세월호 침몰 사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의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4) 참고 기사 1: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5) 참고 기사 2: 세월천, 생태하천으로 살아나길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6) 세월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세월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세월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8 km 정도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1동 원적산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1동 서부3교 앞(갈산천) |
복개 구간 | 거산아파트 뒤쪽 ~ 서부3교 앞(약 2.36km) |
복개 년도 |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1970년대 후반으로 추정)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세월천(한자 미상, 세월천의 한자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분들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1동 원적산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거산아파트 뒤쪽 ~ 청천푸르지오 뒤쪽 ~ 한국GM 부평공장 안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3.28km 정도이다.
또한. 세월천은 과거부터 이러한 명칭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1) 2014년 4월 16일 운항 중 침몰하여 다수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와는 일체 관련이 없는 하천이고, (2)(3)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은 현재 복개가 모두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구간들이 자주 보이며, 자연하천이지만 상류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이 직선 구간인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거산아파트 뒤쪽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약 2.36km)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이 포함된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은 현재 복개가 모두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구간들이 자주 보이며, 자연하천이지만 상류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이 직선 구간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세월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는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이 포함된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세월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지금의 세월천로가 과거에 서월천이 흘렀던 구간 중 대부분을 복개하고 만든 도로이다.
또한. 세월천은 2014년 4월 16일 운항 중 침몰하여 다수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며, 그 이유는 세월호는 일본에서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1994년 6월부터 2012년 10월 1일까지 \\\'페리 나미노우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였던 선박을 청해진해운에서 중고로 구입하여 개조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인천 ~ 제주간 항로에 운행하였고, (2) 세월천이라는 이름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아, (1) 세월천과 세월호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물론. 사고 당시 세월호의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의 본사가 인천에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과 세월천과도 일체의 관련이 없다.) 인근의 동수천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3)(4)(5)(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산업단지와 도시 개발 이전의 옛 물길이 모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비록 직선이기는 하지만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세월천은 세월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출항하였고, 청해진해운의 본사가 인천에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복원할 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을 테마로 하여 생태하천을 조성할 경우 또 다른 숭고한 역사가 담겨있는 살아있는 역사공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약 2년 전인 2012년에 한 네티즌이 세월천을 답사한 후기를 찾을 수 있다(후기 링크)
(2) 세월호에 대한 내용은 관련 백과인 세월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의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3)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내용은 관련 백과인 세월호 침몰 사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의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4) 참고 기사 1: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5) 참고 기사 2: 세월천, 생태하천으로 살아나길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6) 세월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세월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세월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3.28 km 정도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1동 원적산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갈산1동 서부3교 앞(갈산천) |
복개 구간 | 거산아파트 뒤쪽 ~ 서부3교 앞(약 2.36km) |
복개 년도 |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1970년대 후반으로 추정)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세월천(한자 미상, 세월천의 한자를 자세하게 알고 있는 분들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1동 원적산공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거산아파트 뒤쪽 ~ 청천푸르지오 뒤쪽 ~ 한국GM 부평공장 안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각각 약 3.28km 정도이다.
또한. 세월천은 과거부터 이러한 명칭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1) 2014년 4월 16일 운항 중 침몰하여 다수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와는 일체 관련이 없는 하천이고, (2)(3)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은 현재 복개가 모두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구간들이 자주 보이며, 자연하천이지만 상류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이 직선 구간인 하천 중 하나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거산아파트 뒤쪽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약 2.36km)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이 포함된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은 현재 복개가 모두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구간들이 자주 보이며, 자연하천이지만 상류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간이 직선 구간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세월천에 대한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시절의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역사를 알기 어렵지만,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는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한국GM 부평공장 안의 구간이 포함된 세월천사거리 앞 ~ 서부3교 앞까지의 구간은 197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거산아파트 뒤쪽 ~ 세월천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세월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지금의 세월천로가 과거에 서월천이 흘렀던 구간 중 대부분을 복개하고 만든 도로이다.
또한. 세월천은 2014년 4월 16일 운항 중 침몰하여 다수의 사망사고를 발생시킨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할 것이며, 그 이유는 세월호는 일본에서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1994년 6월부터 2012년 10월 1일까지 \\\'페리 나미노우에\\\'라는 이름으로 운영하였던 선박을 청해진해운에서 중고로 구입하여 개조 작업을 거친 후 2013년 3월부터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인천 ~ 제주간 항로에 운행하였고, (2) 세월천이라는 이름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아, (1) 세월천과 세월호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물론. 사고 당시 세월호의 운항사인 청해진해운의 본사가 인천에 있었지만 이러한 사실과 세월천과도 일체의 관련이 없다.) 인근의 동수천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계획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3)(4)(5)(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산업단지와 도시 개발 이전의 옛 물길이 모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비록 직선이기는 하지만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세월천은 세월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가 인천에서 출항하였고, 청해진해운의 본사가 인천에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복원할 때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역할을 하는 공간을 테마로 하여 생태하천을 조성할 경우 또 다른 숭고한 역사가 담겨있는 살아있는 역사공원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약 2년 전인 2012년에 한 네티즌이 세월천을 답사한 후기를 찾을 수 있다(후기 링크)
(2) 세월호에 대한 내용은 관련 백과인 세월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의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3) 세월호 참사에 대한 내용은 관련 백과인 세월호 침몰 사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의 내용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4) 참고 기사 1: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5) 참고 기사 2: 세월천, 생태하천으로 살아나길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6) 세월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세월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청천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6 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2동 시냇물공원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약 3.008km) |
복개 년도 |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청천천(淸川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2동 서인천IC 옆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청수사거리 앞 ~ 한국GM 부평공장 뒤쪽 ~ 갈산사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 ~ 서부2교 앞 ~ 서부1교 앞을 거쳐 삼산2동 서부3교 앞에서 갈산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6km 이다.
또한. 청천천은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특징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서인천IC 옆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약 3.008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부평 쪽이 산업화되면서 본래 청천천으로 합류하였던 세월천 물줄기를 갈산천으로 함류하도록 하였고, 인근의 세월천과 상류 쪽에도 어느 정도 굴곡이 있지만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청천천은 예전에는 이름답게 물이 상당히 맑아 부평 일대의 논과 밭에 벼 농사 등을 위한 용수를 공급하였으나, 지금은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오수가 흐르게 되면서 사실상 하수도로 전략하게 되었다.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에는 경기도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 \\\\\\\'눈다리ᄀᆡ천(黃魚川)\\\\\\\', \\\\\\\'뉵문이ᄀᆡ천(六門川)\\\\\\\'이라는 지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 중 눈다리개천(눈다리ᄀᆡ천)은 청천천의 별칭으로, 물고기가 많이 살았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하며, 육문이개천(뉵문이ᄀᆡ천)은 청천천의 지류이나 유래와 위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원래 세월천의 물줄기가 청천천으로 합류하였으나, 하천 근처에 부평국가산업단지(부평4공단)와 신진자동차공업 공장(현 한국GM 부평공장) 이 건설되면서 굴곡이 있었던 유로가 지금과 같이 대부분 구간이 직선인 형태로 유로를 바꾸면서 굴포천으로 바로 합류하게 되었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청천오거리 앞 ~ 정광아파트 옆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서인천IC 옆 ~ 청천오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청천천은 과거에는 이름답게 물이 맑았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주변의 세월천과 마찬가지로 중류 쪽에는 과거 신진공업 시절부터 있었던 한국GM공장이 존재하고 있어 만약 이 공장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경우 이러한 시설들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들을 잘 조화시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숭고한 역사적 가치가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더구나.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지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도 적을 것이고,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청천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청천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목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4.88km 정도,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하류 쪽 일부 구간의 물길이 단절되기 전 과거에 흘렀던 물길을 포함한 하천의 총 길이입니다.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서부간선수로) *취소선으로 표시된 구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이 과거에 합류하였던 지점입니다. |
복개 구간 |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약 3.94km) |
복개 년도 |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1960년대 후반으로 추정)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위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구간입니다. **취소선으로 표시된 부분 중 아래쪽 부분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단절된 물길의 위쪽에 1990년대 동안 이를 대체하는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구간입니다. |
1. 개요
목수천(한자 미상, 목수천의 한자를 알고 있는 분은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은 인천광역시 계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복개 시작점 ~ JC공원 옆 ~ 메뜰사거리 앞 ~ 상은장갑공장 옆을 거쳐 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8km 이다.
목수천교 앞부터 사랑샘공원 옆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을 거쳐 신상교 위쪽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류 쪽 구간은 예전에는 물이 흘렀지만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으며 이러한 구간을 포함한 목수천의 총 길이는 약 6.64km 정도이다.
또한. 현재 재개발을 위한 철거 준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상류 쪽 구간은 일부 구간에서 복개가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면서 흐르고 있고, 뉴코아그린맨션 몊 ~ 미래골든타운 옆을 거쳐 뉴서울5차 아파트 뒤쪽에서 본류와 합쳐지는 길이가 긴 또 다른 지류는 현재 이러한 물줄기가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94km)과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약 1.17km),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게 된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약 1.17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목수천은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지만,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목수천 이름에 대한 유래는 부평에서 동쪽으로 흐르던 굴포천이 북쪽으로 방향이 급격히 틀어지는 지점을 ‘목수통’이라 불러왔고, 이러한 지역은 현재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삼산동 325번지 일대이며, 목수천은 이 부근에서 굴포천으로 합류하므로 \\\\\\\\\\\\\\\'목수천\\\\\\\\\\\\\\\'이라 부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산업화 이전에는 물줄기가 어느 정도 굴곡이 있었던 물줄기가 산업화가 되면서 대부분 구간에서 물줄기가 많이 직선화되어 비교적 굴곡이 약한 직선 구간이 상당 수인 하천이 되었고, 그 후 상당 수 구간이 복개되면서 목수천은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1990년대에는 그 당시에 이미 복개된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을 대체하는 인공 물줄기가 그 물줄기에서 조금 북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지금은 이러한 물줄기도 복개되는 등으로 사실상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복개된 구간은 각각 효성요양병원 뒤쪽 ~ 메뜰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밑쪽 ~ 효성요양병원 뒤쪽까지의 구간, 상은장갑공장 옆 ~ 목수천교 앞까지의 구간, 목수천교 앞 ~ 삼산버스 차고지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 1990년대에 인공물길 형태로 있었던 목수천교 앞 ~ 신상교 위쪽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되는 등 청천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심지어는 전국 곳곳에서 수 많은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려고 하는 계획이 세워지는 단계에 접어들게 된 21세기 이후에도 목수천은 일부 구간에서 생활하수가 무분별하게 방류되어 심각한 악취가 발생되는 등의 이유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에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에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목수천은 비록 상당 수 구간이 직선인 하천이지만 비교적으로 길이가 길고 또 다른 길이가 긴 지류도 하나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과거에 물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봉오대로 사이를 흘렀던 구간의 경우 복원할 경우 하천변의 생태계와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지하로 모습 감춘 부평의 하천들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2) 참고 기사 2: 잊힌 하천을 생명의 물길로! <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 복원하기 < 기획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 (incheontoday.com)
(3) 목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목수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계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06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서부간선수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약 3.74km 정도) |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계산천(桂山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계산수영장 뒤쪽 ~ SK주유소 건너편 ~ 경인교대입구역 뒤쪽 ~ 계양경찰서 뒤쪽 ~ 계양구청 뒤쪽을 거쳐 첫 번째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용종동,서운동,병방동 일대를 거쳐 두 번째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06km 이다.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인근의 목수천과는 다르게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된 후에도 수로로부터 하류쪽의 구간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약 3.74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계산천은 인근 목수천과는 다르게 산업화 이후에도 본래의 물길 경로를 비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계산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각각 1980년대 후반에는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계산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로써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 등의 도로로 사용되고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간선도로부터 하류 쪽 구간은 123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였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이거나 공사 자체를 부실하게 하였다는 등의 이유들로 현재에도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계산천은 상류 쪽 구간과 서부간선수로를 기준으로 하류 쪽인 구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착공까지 15년, 굴포천 복원 - 인천 하천 정책의 전환점으로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2) 참고 기사 2: 인천의 가장 큰 하천, 굴포천 - 10개의 하천을 품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3) 계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계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계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06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서부간선수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약 3.74km 정도) |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계산천(桂山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계산수영장 뒤쪽 ~ SK주유소 건너편 ~ 경인교대입구역 뒤쪽 ~ 계양경찰서 뒤쪽 ~ 계양구청 뒤쪽을 거쳐 첫 번째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용종동,서운동,병방동 일대를 거쳐 두 번째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06km 이다.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인근의 목수천과는 다르게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된 후에도 수로로부터 하류쪽의 구간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약 3.74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계산천은 인근 목수천과는 다르게 산업화 이후에도 본래의 물길 경로를 비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계산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각각 1980년대 후반에는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계산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로써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 등의 도로로 사용되고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간선도로부터 하류 쪽 구간은 123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였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이거나 공사 자체를 부실하게 하였다는 등의 이유들로 현재에도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계산천은 상류 쪽 구간과 서부간선수로를 기준으로 하류 쪽인 구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착공까지 15년, 굴포천 복원 - 인천 하천 정책의 전환점으로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2) 참고 기사 2: 인천의 가장 큰 하천, 굴포천 - 10개의 하천을 품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3) 계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계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계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06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서부간선수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약 3.74km 정도) |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계산천(桂山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계산수영장 뒤쪽 ~ SK주유소 건너편 ~ 경인교대입구역 뒤쪽 ~ 계양경찰서 뒤쪽 ~ 계양구청 뒤쪽을 거쳐 첫 번째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용종동,서운동,병방동 일대를 거쳐 두 번째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06km 이다.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인근의 목수천과는 다르게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된 후에도 수로로부터 하류쪽의 구간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약 3.74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계산천은 인근 목수천과는 다르게 산업화 이후에도 본래의 물길 경로를 비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계산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각각 1980년대 후반에는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계산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로써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 등의 도로로 사용되고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간선도로부터 하류 쪽 구간은 123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였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이거나 공사 자체를 부실하게 하였다는 등의 이유들로 현재에도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계산천은 상류 쪽 구간과 서부간선수로를 기준으로 하류 쪽인 구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착공까지 15년, 굴포천 복원 - 인천 하천 정책의 전환점으로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2) 참고 기사 2: 인천의 가장 큰 하천, 굴포천 - 10개의 하천을 품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3) 계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계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계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06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서부간선수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약 3.74km 정도) |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계산천(桂山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계산수영장 뒤쪽 ~ SK주유소 건너편 ~ 경인교대입구역 뒤쪽 ~ 계양경찰서 뒤쪽 ~ 계양구청 뒤쪽을 거쳐 첫 번째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용종동,서운동,병방동 일대를 거쳐 두 번째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06km 이다.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인근의 목수천과는 다르게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된 후에도 수로로부터 하류쪽의 구간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약 3.74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계산천은 인근 목수천과는 다르게 산업화 이후에도 본래의 물길 경로를 비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계산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각각 1980년대 후반에는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계산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로써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 등의 도로로 사용되고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간선도로부터 하류 쪽 구간은 123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였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이거나 공사 자체를 부실하게 하였다는 등의 이유들로 현재에도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계산천은 상류 쪽 구간과 서부간선수로를 기준으로 하류 쪽인 구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착공까지 15년, 굴포천 복원 - 인천 하천 정책의 전환점으로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2) 참고 기사 2: 인천의 가장 큰 하천, 굴포천 - 10개의 하천을 품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3) 계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계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계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06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서부간선수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약 3.74km 정도) |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계산천(桂山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계산수영장 뒤쪽 ~ SK주유소 건너편 ~ 경인교대입구역 뒤쪽 ~ 계양경찰서 뒤쪽 ~ 계양구청 뒤쪽을 거쳐 첫 번째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용종동,서운동,병방동 일대를 거쳐 두 번째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06km 이다.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인근의 목수천과는 다르게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된 후에도 수로로부터 하류쪽의 구간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약 3.74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계산천은 인근 목수천과는 다르게 산업화 이후에도 본래의 물길 경로를 비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계산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각각 1980년대 후반에는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계산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로써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 등의 도로로 사용되고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간선도로부터 하류 쪽 구간은 123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였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이거나 공사 자체를 부실하게 하였다는 등의 이유들로 현재에도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계산천은 상류 쪽 구간과 서부간선수로를 기준으로 하류 쪽인 구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착공까지 15년, 굴포천 복원 - 인천 하천 정책의 전환점으로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2) 참고 기사 2: 인천의 가장 큰 하천, 굴포천 - 10개의 하천을 품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3) 계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계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계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06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서부간선수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약 3.74km 정도) |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계산천(桂山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계산수영장 뒤쪽 ~ SK주유소 건너편 ~ 경인교대입구역 뒤쪽 ~ 계양경찰서 뒤쪽 ~ 계양구청 뒤쪽을 거쳐 첫 번째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용종동,서운동,병방동 일대를 거쳐 두 번째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06km 이다.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인근의 목수천과는 다르게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된 후에도 수로로부터 하류쪽의 구간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약 3.74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계산천은 인근 목수천과는 다르게 산업화 이후에도 본래의 물길 경로를 비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계산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각각 1980년대 후반에는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계산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로써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 등의 도로로 사용되고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간선도로부터 하류 쪽 구간은 123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였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이거나 공사 자체를 부실하게 하였다는 등의 이유들로 현재에도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계산천은 상류 쪽 구간과 서부간선수로를 기준으로 하류 쪽인 구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착공까지 15년, 굴포천 복원 - 인천 하천 정책의 전환점으로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2) 참고 기사 2: 인천의 가장 큰 하천, 굴포천 - 10개의 하천을 품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3) 계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계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계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06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서부간선수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약 3.74km 정도) |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 |
1. 개요
계산천(桂山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산동 장미원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계산수영장 뒤쪽 ~ SK주유소 건너편 ~ 경인교대입구역 뒤쪽 ~ 계양경찰서 뒤쪽 ~ 계양구청 뒤쪽을 거쳐 첫 번째로 인천광역시 계양구 용종동 어린이교통공원 뒤쪽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고, 이후 용종동,서운동,병방동 일대를 거쳐 두 번째로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성광운수 차고지 건너편 합수점(굴포천)부평구 삼산1동 목수천교 앞 합수점에서 서부간선수로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06km 이다.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되면서 물길이 단절되어 사실상 물이 흐르지 않게 된 인근의 목수천과는 다르게 계산천은 서부간선수로가 개설된 후에도 수로로부터 하류쪽의 구간은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고, 생태하천으로 조성되어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과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약 3.74km)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은 199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장제고가 옆 구간은 상류와 중류 사이에서 생활하수가 방류되어 수질이 나쁘고 악취가 심각하다는 등의 이유로 삼산동 494번지의 엠코타운아파트 북쪽을 지나는 구간은 2006년 복개되었고, 장제로와 아나지로가 교차하는 메뜰사거리 남쪽 0.1 km 구간은 2018년 복개되어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계산천은 인근 목수천과는 다르게 산업화 이후에도 본래의 물길 경로를 비교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하천 중 하나이다.
3. 역사
계산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부터 각각 1980년대 후반에는 SK주유소 건너편 ~ 어린이교통공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계양산산림욕장 밑쪽의 복개된 일부 구간이 복개되는 등 계산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구간은 전체의 약 3분의 2 정도로써 계산천서로, 계산천동로, 계산새로 등의 도로로 사용되고 있게 되었다.
그 후. 서부간선도로부터 하류 쪽 구간은 123억원을 들여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하였지만, 관리가 소홀한 탓이거나 공사 자체를 부실하게 하였다는 등의 이유들로 현재에도 시민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계산천은 상류 쪽 구간과 서부간선수로를 기준으로 하류 쪽인 구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이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착공까지 15년, 굴포천 복원 - 인천 하천 정책의 전환점으로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2) 참고 기사 2: 인천의 가장 큰 하천, 굴포천 - 10개의 하천을 품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3) 계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계산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석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 복개 종료점(가좌천)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 복개 종료 및(가좌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분수점 ~ 510번 차고지 옆 합수점(주안갯골이 매립되면서부터 복개 시작{1966년부터})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간석천(間石川)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간석 1동, 2동 석천사거리 뒤쪽에서 발원하여 해성빌라 옆 ~ 중앙공원 안 ~ 간석역 앞 ~ 6공단입구 앞 ~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인천의료원 뒤쪽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뒤쪽을 거쳐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1동 510번 차고지 옆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또 다른 물길이 린나이코리어 본사 옆에서 갈라져 주안국가산단역 앞 ~ 인천의료원 앞 ~ 이마트 트레이더스 앞{인천트럭터미널 옆} ~ 인천산업용품유통센터 앞을 거쳐 두 번째로 동구 송현3동 방축삼서리 뒤쪽에서 가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6.73km - 7.02km(방축로 방향 물길 기준) 이다.
서간석천의 중, 하류 구간은 예전에는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이곳은 예전에는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었다.(주안갯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은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간석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하류인 주안갯골과 그 인근지역에 대한 역사와 연관이 깊다고 할 것이고, \\\\\\\'주안(朱岸)\\\\\\\' 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에서 비롯되었고, 그 이름이 그곳에 들어선 염전에 붙여지고,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차역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며, 염전의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때부터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 곳은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그 밖에 주안이라는 명칭에 대한 유래와 주안갯골 등 주안 일대에 대한 자세한 역사에 대하여는 주안갯골 부분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주안갯골이 매립되기 시작한 시기인 1966년부터 린나이코리아 본사 옆 ~ 510번 차고지 옆까지의 구간이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그 밖의 상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주안천은 예전부터 붉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주안산과 함께 인천에서 가장 큰 갯골인 주안갯골이 위치해 있었으며, 일제시대부터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었던 주안염전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운반하기 위해 소금창고와 기차역이 만들어졌으며,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1966년 주안염전이 폐염된 후 소금창고가 있던 자리에 커다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공단지대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간석천은 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소금밭 따라온 지명… 이젠 흔적 없이 이름만 남았구나 < 야장,박물관이 들려주는 인천 이야기 < 특집 < 기사본문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co.kr)
(2) 간석천이나 주안갯골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간석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주안갯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유신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6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4동 밤나무집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주안국가산단역 뒤쪽 합수점(간석천) |
복개 구간 |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
복개 년도 | 밤나무집 옆쪽 ~ E1 LPG 충전소 옆쪽 (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E1 LPG 충전소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2017 ~ 2018년에 걸쳐 복개되었음) |
1. 개요
유신천(維新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4동 밤나무집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밤나무집 옆 ~ 가좌완충녹지공원 옆 ~ 심팩인더스트리 옆을 거쳐 가좌3동 주안국가산단역 뒤쪽 합수점에서 간석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63km 이다.
\\\'유신천\\\' 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974년 11월 5일 당시 주안공단(한국수출산업공단주안지구 제5단지와 당시 조성되어 준공되었던 제6단지를 이어주기 위하여 건설된 \\\'유신교(維新橋)\\\' 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며, 유신천의 하류 쪽 구간은 전국 곳곳에서 여러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변신하고 있는 시기인 2017 ~ 2018년 정도에 복개되어 다른 여러 하천들과는 다르게 최근에 복개되었다는 특징이 있다.(이보다 더 자세한 부분은 아래의 역사 부분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밤나무집 옆쪽 ~ E1 LPG 충전소 옆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E1 LPG 충전소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2017 ~ 2018년에 걸쳐 복개된 것으로 추정(정확한 복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음)된다.
3. 역사
유신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신천\\\' 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974년 11월 5일 당시 주안공단(한국수출산업공단주안지구) 제5단지와 당시 조성되어 준공되었던 제6단지를 이어주기 위하여 건설된 \\\'유신교(維新橋)\\\' 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됨에 따라 이 하천의 명칭이 유신독재 시대에 중요한 산업기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붙여진 것으로 예상된다. (1)
또한. 유신천은 먼저 상류 쪽 구간인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유신천의 하류 쪽 구간은 전국 곳곳에서 여러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변신하고 있는 시기인 2017 ~ 2018년 정도에 복개되어 다른 여러 하천들과는 다르게 최근에 복개되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가장 최근에 복개된 유신천 하류 쪽 구간에는 유신천 인근에 인천도시철도 2호선 정거장이 들어선 것과 함께 유신천 에코파킹스트리트 조성사업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 있다. (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유신천은 \\\'유신\\\' 이라는 이름답게 유신시대부터 근대 산업화와 수출진흥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던 역할이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유신천은 상류쪽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1974년 11월 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2: 인천시, ‘유신천 에코파킹스트리트 조성’ 내년부터 추진 - 뉴스1 (news1.kr)
(3) 유신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유신천 답사기 1/4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유신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6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4동 밤나무집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주안국가산단역 뒤쪽 합수점(간석천) |
복개 구간 |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
복개 년도 | 밤나무집 옆쪽 ~ E1 LPG 충전소 옆쪽 (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E1 LPG 충전소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2017 ~ 2018년에 걸쳐 복개되었음) |
1. 개요
유신천(維新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4동 밤나무집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밤나무집 옆 ~ 가좌완충녹지공원 옆 ~ 심팩인더스트리 옆을 거쳐 가좌3동 주안국가산단역 뒤쪽 합수점에서 간석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63km 이다.
\\\'유신천\\\' 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974년 11월 5일 당시 주안공단(한국수출산업공단주안지구 제5단지와 당시 조성되어 준공되었던 제6단지를 이어주기 위하여 건설된 \\\'유신교(維新橋)\\\' 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며, 유신천의 하류 쪽 구간은 전국 곳곳에서 여러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변신하고 있는 시기인 2017 ~ 2018년 정도에 복개되어 다른 여러 하천들과는 다르게 최근에 복개되었다는 특징이 있다.(이보다 더 자세한 부분은 아래의 역사 부분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밤나무집 옆쪽 ~ E1 LPG 충전소 옆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E1 LPG 충전소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2017 ~ 2018년에 걸쳐 복개된 것으로 추정(정확한 복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음)된다.
3. 역사
유신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신천\\\' 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974년 11월 5일 당시 주안공단(한국수출산업공단주안지구) 제5단지와 당시 조성되어 준공되었던 제6단지를 이어주기 위하여 건설된 \\\'유신교(維新橋)\\\' 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됨에 따라 이 하천의 명칭이 유신독재 시대에 중요한 산업기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붙여진 것으로 예상된다. (1)
또한. 유신천은 먼저 상류 쪽 구간인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유신천의 하류 쪽 구간은 전국 곳곳에서 여러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변신하고 있는 시기인 2017 ~ 2018년 정도에 복개되어 다른 여러 하천들과는 다르게 최근에 복개되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가장 최근에 복개된 유신천 하류 쪽 구간에는 유신천 인근에 인천도시철도 2호선 정거장이 들어선 것과 함께 유신천 에코파킹스트리트 조성사업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 있다. (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유신천은 \\\'유신\\\' 이라는 이름답게 유신시대부터 근대 산업화와 수출진흥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던 역할이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유신천은 상류쪽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1974년 11월 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2: 인천시, ‘유신천 에코파킹스트리트 조성’ 내년부터 추진 - 뉴스1 (news1.kr)
(3) 유신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유신천 답사기 1/4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유신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2.6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4동 밤나무집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주안국가산단역 뒤쪽 합수점(간석천) |
복개 구간 |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
복개 년도 | 밤나무집 옆쪽 ~ E1 LPG 충전소 옆쪽 (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 E1 LPG 충전소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2017 ~ 2018년에 걸쳐 복개되었음) |
1. 개요
유신천(維新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4동 밤나무집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밤나무집 옆 ~ 가좌완충녹지공원 옆 ~ 심팩인더스트리 옆을 거쳐 가좌3동 주안국가산단역 뒤쪽 합수점에서 간석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2.63km 이다.
\\\'유신천\\\' 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974년 11월 5일 당시 주안공단(한국수출산업공단주안지구 제5단지와 당시 조성되어 준공되었던 제6단지를 이어주기 위하여 건설된 \\\'유신교(維新橋)\\\' 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며, 유신천의 하류 쪽 구간은 전국 곳곳에서 여러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변신하고 있는 시기인 2017 ~ 2018년 정도에 복개되어 다른 여러 하천들과는 다르게 최근에 복개되었다는 특징이 있다.(이보다 더 자세한 부분은 아래의 역사 부분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밤나무집 옆쪽 ~ E1 LPG 충전소 옆쪽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E1 LPG 충전소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까지의 구간은 2017 ~ 2018년에 걸쳐 복개된 것으로 추정(정확한 복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음)된다.
3. 역사
유신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신천\\\' 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1974년 11월 5일 당시 주안공단(한국수출산업공단주안지구) 제5단지와 당시 조성되어 준공되었던 제6단지를 이어주기 위하여 건설된 \\\'유신교(維新橋)\\\' 라는 다리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됨에 따라 이 하천의 명칭이 유신독재 시대에 중요한 산업기지의 역할을 하기 위하여 붙여진 것으로 예상된다. (1)
또한. 유신천은 먼저 상류 쪽 구간인 밤나무집 옆쪽 ~ 주안국가산단역 뒤쪽(약 1.74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고, 유신천의 하류 쪽 구간은 전국 곳곳에서 여러 하천들이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변신하고 있는 시기인 2017 ~ 2018년 정도에 복개되어 다른 여러 하천들과는 다르게 최근에 복개되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가장 최근에 복개된 유신천 하류 쪽 구간에는 유신천 인근에 인천도시철도 2호선 정거장이 들어선 것과 함께 유신천 에코파킹스트리트 조성사업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이 있다. (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유신천은 \\\'유신\\\' 이라는 이름답게 유신시대부터 근대 산업화와 수출진흥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던 역할이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유서깊은 근대 역사를 지닌 특성을 살려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간직한 생태하천으로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한. 유신천은 상류쪽을 제외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상류 쪽은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주로 존재하고, 중, 하류 쪽은 앞서 설명한 대로 살아있는 근대사의 현장을 간직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가좌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1974년 11월 8일 매일경제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naver.com)
(2) 참고 기사 2: 인천시, ‘유신천 에코파킹스트리트 조성’ 내년부터 추진 - 뉴스1 (news1.kr)
(3) 유신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유신천 답사기 1/4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가좌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4.87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가좌천(佳左川)은 인천광역시 서구 가좌3동 민탁사 위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민탁사 옆쪽 ~ 법명사 옆쪽 ~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복개 시작점 ~ 건지사거리 앞 ~ 정운아트빌라 옆 ~ 한세예스24홀딩스 옆 ~ 엠파크 수출단지 옆을 거쳐 동구 송현3동 인천교펌프장입구 사거라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4.87km 이다.
본래 가좌천 일대는 하천이 아니라 갯골이었으며, 현재는 석남유수지에서 인천교유수지로 연결되는 약 1.5km의 수로로만 존재하고 있으며, \\\'가좌천\\\'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이 있다. 또한. 가좌천은 현재 법적으로도 하천이 아니라는 점이 존재한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법명사 옆쪽의 일부 구간(약 158m 정도)과 오일뱅크 셀프주유소 건너 ~ 엠파크 수출단지 옆(약 2.84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가좌천에 대한 조선시대 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은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들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산업화 이후 가좌천 일대에 공장지대가 들어서면서 공장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들이 사실상 하천 위로 그대로 방류되면서 검은 기름때와 오염물질 등이 물 위에 그대로 떠 있다는 점이 존재하고, 다른 산단 주변 하천에 비해 가좌천의 BOD는 약 10배, COD는 6배, 부유물질(SS)는 5배 가량 높다는 점이 존재한다.
가좌천의 하류에는 석남유수지와 인천교유수지가 있는데 이러한 유수지는 일반시민들은 이러한 유수지의 존재를 잘 모르는데 가좌유수지는 가좌동 모래방죽사거리 해수워터피아 뒤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천교유수지는 현대제철과 인천환경공단 가좌사업소 사이에 위치해있다.
현재의 복개된 구간은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지금 가좌천은 공사가 한창이다. 석남유수지 차집관거 신설공사이다. 현장안내판에 ‘오수 차집이송에 의한 석남유수지 건천화로 악취예방 및 환경개선을 통한 민원해소’라고 공사목적을 적고 있다. 인천시는 2010년 2월, 인천교 유수지와 석남유수지 악취 저감을 위한 친수공간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9년 만이다. 북항과 청라지구 개발 등으로 악취 민원이 발생해 유수지를 준설하고 자연생태 습지, 자연친화적인 친수공간으로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쾌적한 여가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라 했다. 또 약 900억원을 투입하여 가좌하수처리시설을 고도처리시설로 개량하여 방류수를 법적기준 이내로 하겠다고도 밝혔다. 가좌천과 유수지, 지금의 가좌천은 여전히 공장들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의 수질은 등급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이며, 비가 오면 몰래 폐수를 방류하는 업체들이 있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일 뿐만 아니라 가좌천과 유수지의 가장자리로는 두껍게 쌓여 있는 오니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고, 회색과 검은색 물 위에는 부유물질들이 둥둥 떠 있다는 점이 있다. 특히. 가좌천에 대한 수질개선 방안에 대하여는 선거를 앞둔 공약(空約)이었는지 아직도 환경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있다..
유수지 옆 북항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주차(駐車)된 차량들과 함께 오랫동안 서 있는 박차(泊車)들이 빼곡하고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으며, 현대제철로 이어진 수십 대의 고철스크랩 운반차량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약 189,000㎡ 정도의 인천교유수지, 139,000㎡ 정도의 석남유수지와 약 4.87km 정도의 가좌천은 언젠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인천의 대표 공장지대인 서구와 동구에서 여전히 생태적인 희망으로 불릴 수 있는 물길이자 친수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있다. (1)(2)(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앞서 언급한 대로 가좌천은 현재 상류 쪽 구간을 제외하면 하천이라 불리기 어려울 정도로 기름때와 폐수, 오니, 그 밖의 여러 오염물질들로 가득 차 있어 사실상 하수도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고, 하류 쪽에 위치한 유수지 두 곳이 언젠가 생태적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류 쪽을 제와한 대부분 구간이 복개되어 있다는 점에 따라 언젠가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할 경우 청정자연이 잘 보전된 생태명소가 될 것이며, 하천 주위로는 대부분 주거지와 아파트촌, 공단지대가 위치하고 있어 하천변의 주거지 및 공단지대와 하천변의 생태계, 하천을 흐르는 꺠끗한 물이 서로 잘 조화되어 아름다운 명소가 될 것이다.
또한. 인천지역의 여느 하천과 마찬가지로 상류 구간에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천 흔적이 어느 정도 명확하기 때문에 복개를 걷어내고 생태하천으로 조성하는 것이 비교적으로 쉬울 것이다.
물론. 복개된 구간 중 상당수가 비교적 교통량이 많고 넓은 도로를 통과하여 않아 교통에 대한 우려가 높을 것이지만, 이러한 문제는 천변도로 또는 우회도로 건설 등으로 해결하면 될 것이며, 하류 구간에 굴포천이 위치해 있는 등 풍부한 유지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한 비교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여러 하천들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유지용수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1) 참고 기사 1: \'악취 진동\' 인천 가좌천, 전국 70개 산단하천 중 오염도 최악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2) 참고 기사 2: 비 오는 날 악취 진동 가좌천, 바닥에 쌓여있는 \'오니\' 때문 < 사회 < 인천 < 기사본문 - 중부일보 - 경기·인천의 든든한 친구 (joongboo.com)
(3) 가좌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게시물인 인천 가좌천 답사기 1/8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8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서해) |
복개 구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 |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 (196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 (1994 ~ 95년까지 복개) (1)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 (2005년부터 복개 시작) (2) |
1. 개요
용현천(龍峴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숭의4동 광명빌라 앞쪽에서 발원하여 코지팰리스 오피스텔 옆 ~ 주인선부지 앞 ~ 구 수인선철교 자리 앞 ~ CJ제일제당 인천1공장 앞쪽을 거쳐 연수구 옥련2동 옹암교차로 옆쪽 합수점에서 서해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85km 이다.
현재 복개되지 않은 용현천의 하류 쪽 구간에는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갯골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던 갯벌이었지만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 (3)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약 2.65km 정도)이 복개되었고,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은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이듬해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에 이르고 있다.
3. 역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으며, 그곳은 과거에는 바닷물이 드나들고, 철새가 날아들던 갯벌이었지만, 산업화 이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주변 지역이 매립되면서 갯벌의 정화기능은 사라지고 오수로 인한 오염과 악취가 심각한 곳이었지만, 최근 이 일대에 인천광역시의 환경개선 사업이 이루어져 그 사업을 통해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예전의 생태습지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용현천은 광명빌라 앞 발원지 ~ 숭의역 밑쪽까지의 구간부터 196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 후 하천이 오염돼 심한 악취가 풍긴다는 신흥로3가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1994년부터 나머지 구간의 복개가 시작되었지만 복개에 따른 장마철 침수를 우려한 용현5동 주민들의 반발로 상류에 해당하는 중구 신흥로터리∼인하대병원 구간만 1994 ~ 95년까지 복개되었으며, 나머지 구간은 1995년 12월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고, 그 후 나머지 구간도 지금처럼 복개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숭의역 밑쪽 ~ 신흥아이파크 아파트 옆쪽까지의 구간이 2005년부터 복개가 시작되어 현재는 복개된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4)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현천도 예전에 주안갯골이 있었던 간석천과 마찬가지로 하류 쪽에 바닷물이 드나들던 \\\'용현갯골\\\' 이라는 이름의 갯벌이 있고, 이 일대가 수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드는 생태공원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점을 이용하여, 하류 쪽은 갯골을 이용한 생태공원으로, 중류 쪽은 주변에 시장이 위치한 특성을 살리도록 하며, 상류 쪽은 수봉산에서 발원하는 풍경이 수려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이 있다는 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명소가 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하여 자연적인 모습을 한 하천과 전통시장, 바닷물이 드나들고 생태적인 역할을 하는 갯골과 함께 주거지와 공단들이 하천의 생태와 적절히 조화된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3) (4) 참고 기사: [인천/경기]이슈 추적/용현천 복개 논란 (naver.com)
(2) 용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용현천 답사기 1/11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승기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10.33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남동공단유수지) |
복개 구간 |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 |
복개 년도 | 1980년대 후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승기천(承基川)은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1,4동 생고기제작소 옆쪽에서 발원하여 용현육교 밑쪽 ~ 태흥탕 옆 ~ 신라아파트 옆 ~ 신기사거리 옆 ~ 승기사거리 옆 ~ 중앙공원 안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 ~ 승기천교 옆 ~ 선학교 옆 ~ 원인재역 옆 ~ 동춘역 옆을 거쳐 연수구 동춘2동 동막교 밑쪽 합수점에서 남동공단유수지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10.33km 이다.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천 근처에 위치한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따 온 것으로,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도로 생겨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고 볼 것이며, 승기천은 조선 철종 때의〈동여도〉에는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생고기제작소 옆 ~ 인천터미널 건너편 주차장 옆(약 5.27km 정도)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에는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의 하류 쪽 구간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하천으로 존재하고 있다. (2)
3. 역사
승기천의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승학산 북쪽에 있던 마을인 승기리(承基里, 지금의 신비마을 일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고, 승기리는 한때 마을이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러한 유래가 확실하지는 않다는 점이 존재한다. (3)
또한 ‘승기천’ 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삼국사기(三國史記) 부터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 이르기까지 전혀 나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85년전까지도 이름이 없었던 하천으로 존재하였던 점으로 볼 때 (4), 1985년 이후에 누군가가 창작한 이름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유일하게 조선 철종 때의 동여도(東輿圖)에 동천(東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 존재한다. (5)
그 후. 1911년경에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경기도 인천부 구읍면 관청리, 향교리(이상 현재의 관교동 일대), 산성리, 학산리(이상 현재의 문학동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관산ᄂᆡ(官山川)’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지리상으로 승기천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추정된다. (6)
1910년대에 발간된 지도에는 수봉산 동쪽에 위치한 사충리(士忠里, 현재의 주안동 신기마을 일대)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지금의 승기사거리(옛 동양장사거리) 부근에서 남쪽으로 흐르기 시작하여 도장리(道章里, 현재의 선학동 북쪽)에서 바다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7), 수봉산에서 승기사거리 사이의 구간은 지금의 주안2동과 4동을 동서로 통과하였으며, 도장리 남쪽 구간은 바다의 갯골로서 지금의 선학동, 남촌동, 논현동 부근을 흘러가다가 대원례도와 소원례도의 동쪽으로 이어졌다. (8)
그 후. 지금의 연수구와 남동구 사이의 바다에 남동염전을 조성한 후부터는 (9), 갯골은 남동염전의 동쪽으로 흘러 옛 수인선 남동역 동쪽에서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으며, 물길은 예전과 같았다. (10)
한편. 남동염전은 인천 지역에 주안염전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진 근대식 염전으로, 1921년에 건설되었으며, 조선총독부의 제3기 염전 건설 계획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남동염전은 1920년 9월부터 축조가 시작되어 1921년 12월에 준공하였는데, 남동염전은 척전리(尺前里, 지금의 동춘동 청량산과 봉재산 사이)의 1구 염전(105정보), 승기천 하구를 가로막아 만든 2구 염전(105정보), 논현리의 3구 염전(90정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1)
그 후. 1985년에 남동공단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토지개발공사가 갯벌을 매립하고 공단부지를 조성하면서, 남동염전은 사라지게 되고 승기천의 직강화공사가 이루어져 현재 승기천은 연수구와 남동공단의 경계를 이루며 흐르다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동막역 부근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하천이 되었다. (12)
한편, 미추홀구 일대의 승기천 중상류는 1980년대 후반에 복개되었으며(13), 어느 용현동 토박이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 승기천 상류는 폭이 좁고 물이 맑았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지금의 주안7동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14)(1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승기천은 예전부터 상류 쪽 구간에는 폭이 좁고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 흘렀던 계곡이 있었으며, 인천용일초등학교 쪽 수봉산 독쟁이고개에서 시작되는 물줄기와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쪽에서 시작되는 물줄기가 신기마을 쪽에서 합쳐져 승기천 물길로 흐른다는 생태적인 가치가 있고, 중류 쪽은 주거지와 함께 인천터미널과 그 주변의 번화가가 위치한 도심의 활기찬 모습을 살리는 부분이 있으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부터 남동염전이 조성되기 이전까지 갯골로 존재하였고, 남동염전이 건설된 이후에는 막대한 양의 소금을 생산하였던 염전으로 존재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남동염전이 없어지고 남동공단이 조성되었고, 이 때 승기천의 직강화공사도 함께 이루어진 후 현재의 승기천 모습이 이루어졌다는 중요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다는 점을 제대로 살려 생태학적 가치, 활기찬 번화가 문화와 함께 인천지역의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가 복합된 생태하천으로 복원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2) 참고 기사 1: 인천의 하천을 찾아서-(9)승기천 발원지와 물길 < 교육 < 사회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신문 (incheonnewspaper.com)
(3) (4) (5) (6) (7) (8) 참고 기사 2: 물이 많아 물이 흘렀던 미추홀구…승기천 본류 찾기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9) 참고 기사 3: [인천이 원조] (15) 근대식 염전 | 서울신문 (seoul.co.kr)
(2) 참고 기사 4: 인주로 주간선으로 복개된 본류, 발원지 마져 유실 - 인천in 시민의 손으로 만드는 인터넷신문 (incheonin.com)
(5) 참고 게시물: ::: 전자지도(고지도) ::: (aks.ac.kr)
(6) 朝鮮総督府臨時土地調査局 (1911?). 《朝鮮地誌資料 京畿道 7》. 京城: 朝鮮総督府. 278쪽.
(12) 관련 기사: [땅과 사람들](12)인천의 마지막 남은 송도 갯벌 - 경향신문 (khan.co.kr)
(13) 관련 기사: 학산문화예술@tv : 내가 기억하는 승기천[1] - 오인영 (haksansodam.com)
(10) (11) (14) (15) 승기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승기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이나 관련 게시물인 인천 승기천 답사기 1/13 (tistory.com)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만수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km |
발원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3동 만월산터널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인천광역시 남동구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장수천) |
복개 구간 |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 |
복개 년도 |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 (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그 후에 복개되었음)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200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만수천(萬壽川)은 인천광역시 계양구 효성1동 천마산 자연물놀이장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만월산터널 옆쪽 ~ 햇빗마을벽산 아파트 뒤쪽 ~ 영풍1단지 아파트 옆 ~ 만수천 복개 주차장 ~ 만수빌딩 옆(인수대로 통과점) ~ 남동구청 옆을 거쳐 수산동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 합수점에서 장수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km 이다.
또한. 만월 심터 쪽 지천을 비롯하여 신동아아파트 쪽 지천,평안교회 쪽 지천 등 비교적으로 길이가 긴 지천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 지류 또한 발원지와 인접한 상류 쪽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간이 복개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약 4.37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되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만수천 본류가 복개되는 시기를 따라 길이가 길고 짧은 여러 지류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어 상당 수 구간이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만수천은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조선시대에는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다고 하며, 그 밖의 만수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만수천은 산업화 이후에도 1990년대가 되서야 복개되기 시작하는 등 비교적으로 늦게까지 물이 흐르는 상태로 존재하였고, 복개된 구간 중 상당 수 구간이 복개 흔적이 뚜렷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어 비교적으로 물길의 흔적을 찾기 쉬운 하천 중 하나이다.
복개된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약 430m)과 햇빗마울벽산 아파트 뒤쪽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으며, 만월산터널 옆쪽의 복개 구간과 만수천 복개 주차장의 북쪽 끝의 건너편 ~ 남동구청 옆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지만 그 후에 복개되었고, 남동구청 옆 ~ 인천아시안게임 남동경기장 옆까지의 구간은 2000년대 초반에 복개되는 등 만수천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으며, 복개된 대부분의 구간은 도로와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상황이 되었다. (1)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만수천은 상류 쪽에는 만월산과 광학산이 위치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수려한 청정계곡이 위치해 있을 뿐만 아니라 중류 쪽 구간도 역시 주거지와 함께 수 많은 지류들이 인접해 있는 특성을 이용하여 주민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며, 하류 쪽은 조선시대에 장수천과 합류하는 부근이 중국 무역선이 닿았던 포구로 쓰였 에 대한 관련 역사가 있었다는 특성을 이용하여 옛 포구와 무역선이 닿았던 역사를 보존하도록 하여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 참고 문헌 1: 남동구 20년사 127p, 2010.3
(2) 만수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만수천 (인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형태 | 호수형태를 판단하기 어려움 |
면적 | 50,067㎡(1920년대 중반 매립 이전) |
위치 |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중앙동,신안동,자양동,대동 일대 |
유입/유출 | 가양천?, 자양천?, 용운천?, 대전천? - 소제호(유입) 가양천?, 자양천?, 용운천?, 대전천?(유출) |
매립 구간 | 일제에 의하여 철도관사촌이 건설되는 등으로 모든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20년대 중반으로 추정 |
1. 개요
소제호(蘇堤湖)는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중앙동,신안동,자양동,대동 일대에 있었던 호수형태를 판단하기 어려운 호수로 면적은 50,067㎡으로 축구장 약 일곱개 정도의 면적을 가진 호수이다.
소제호는 비록 과거 대전지역에 있었던 얼마 안 되는 호수 중에 하나이지만, 1600년대 우암 송시열이 사랑했었던 못이라는 역사가 있는 만큼 역사가 상당히 오래 된 못이라고 할 것이다. (1)
2. 이 호수가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정보
소제호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7년에 일제에 의하여 매립되었고, 그 자리에 생활하수가 흐르는 인공하천인 대동천이 만들어지는 등으로 일부 물길이 정리되는 것과 동시에 경부선 철도의 주변지역이라는 영향으로 약 100여 동 정도의 관사를 지어 철도관사촌이 형성되게 되었다.
그 후.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대전역사 주변을 재개발하는 동구 삼성4구역 재개발 사업 계획이 수립되면서 철거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지만, 역사,문화의 보존차원에서 관사촌 일부가 재개발 구역에서 제외되고, 일부 구역은 일부 관사 건물을 이전하도록 하는 등으로 역사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계획이 발표되면서 일부가 보존되게 되었다.(2) (3)
3. 역사
조선시대 성리학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은 공자, 주자와 같이 \\\\\\\'송자(宋子)\\\\\\\'로 존칭될 정도로 명망이 높았던 학자였고, 27세에 장원으로 합격한 후, 학문적 명성을 널리 알리며 봉림대군(鳳林大君*후일의 효종)의 사부로 임명되기까지 하였으며, 이때의 1년 동안 봉림대군과의 연이 어찌나 깊었던지,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으로 왕이 치욕을 당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혀가자 이에 낙향하여 10여 년 간 그 어떤 벼슬도 사양하고 학문에만 몰두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1649년에는 나라가 안정을 찾고 효종이 즉위하게 되면서 송시열에게도 관직을 내리자 비로소 벼슬에 나아갔고, 이후 북벌 계획의 핵심 인물로 등극하게 되었다. 하지만, 북벌 계획은 김자점(金自點) 일파에 의해 무산되었고, 그 이후로는 향리에서 은둔 생활을 보내게 되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향리가 바로 소제호 주변지역인 것이다.
우암 송시열이 소제동에 살기 시작한 시기는 1653년이고, 소제동에 살기 시작한 이유는 자신의 고향인 충북 옥천과 가까운 이곳 소제동에서 노년의 생활을 보내기 위한 연을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암 송시열은 소제호 앞에 기국정을 짓고 연꽃과 국화와 구기자를 심었는데, 기국정이라는 명칭이 이곳에 심은 \\\\\\\'구기자(己)\\\\\\\'와 \\\\\\\'국화(菊)\\\\\\\'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우암은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며 학문을 논했고, 남간정사에서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현재 가양동에 위치한 우암 사적 공원에서 이 건물들을 볼 수 있는데, 기국정은 원래 소제동에 위치하였지만 일제 강점기 때 남간정사 옆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또한. 우암 송시열이 소제호에 자리하였던 이유는 단순히 고향 근처 지역이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우암이 직접 쓴 \\\\\\\'삼매당(三昧堂)\\\\\\\'의 편액에 적혀있었던 내용 중 옛날 대전 지역의 \\\\\\\'팔경(八景)\\\\\\\'이 적혀 있는데 그 중에는 소제호도 포함되어 있어 그만큼 풍경이 아름다웠던 곳이었다는 이유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소제호의 명칭 중 현재 존재하는 소제동의 명칭을 구성하기도 하는 \\\\\\\'소제\\\\\\\' 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하여는 하나는 소제호가 중국의 소주(蘇州)의 호수들에 버금갈 만큼 경치가 빼어났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 북송 때 항저우 서호(西湖)의 토사를 준설하여 쌓은 \\\\\\\'소제(蘇堤)\\\\\\\'라는 제방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었으며 이는 둘 다 호수로 유명한 중국의 소주(현재 쑤저우 시, 苏州市), 항주(항저우 시, 杭州)와 관련된 것으로, 그만큼 소제동은 소제호로 인하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던 곳이었던 것이다. (4)
그 후. 1907년에는 일제에 의하여 대전신궁이 건설되었고, 소제호는 일제강점기 시절인 1927년에 일제에 의하여 모든 구간이 매립되었고, 그 자리에 생활하수가 흐르는 인공하천인 대동천이 만들어지는 등으로 일부 물길이 정리되는 것과 동시에 경부선 철도의 주변지역이라는 영향으로 약 100여 동 정도의 관사를 지어 철도관사촌이 형성되게 되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이 일대에 큰 비가 내리면 어김없이 물길이 범람하여 주택과 상점들이 침수피해를 입기도 하였고,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인공하천인 대동천을 만들어 대전역 뒤로 물길이 통과하도록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 (5)
그 후. 소제동 철도관사촌은 대전역사 주변을 재개발하는 동구 삼성4구역 재개발 사업 계획이 수립되면서 철거될 운명에 처하게 되었지만, 역사,문화의 보존차원에서 관사촌 일부가 재개발 구역에서 제외되고, 일부 구역은 일부 관사 건물을 이전하도록 하는 등으로 역사공원을 조성하는 등의 계획이 발표되면서 일부가 보존되게 되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소제호는 조선시대부터 대전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로 존재하고 있었던 만큼 그 역사도 깊을 뿐만 아니라 관련 기록들도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었으며, 조선시대 때는 당시 저명한 학자였던 우암 송시열이 살았었고, 이 때부터 수려한 풍경을 자랑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제시대 때는 호수 인근에 대전신궁이 들어선 것과 함께 수 많은 철도시설이 들어서면서 그 주위로 철도관사촌이 형성되게 되었으며, 이 때 주변 지역에 비가 오면 홍수가 자주 발생한다는 이유로 인공하천까지 만들었던 역사가 존재하였으며, 그 후. 철도관사촌 일대는 재개발되려고 하였지만, 역사,문화의 보존차원에서 관사촌 일부를 보존하고 역사공원까지 조성하게 되었던 역사가 존재하였다는 것에 따라 과거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 까지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복원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실제로 호수가 복원될 경우 주변에 대전역이 위치해 있어 수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될 뿐만 아니라, 침체된 대전 구도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밖에 소제호와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4) 소제동역사 ] 우암 송시열이 사랑한 소제호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 참고 검색결과: 소제호 관사촌 : 네이버 통합검색 (naver.com), 소제호 대전 대동천 : 네이버 통합검색 (naver.com)
(3) ‘제2의 익선동’ 대전 소제동 개발 논란 : 네이버 뉴스 (naver.com), 중도일보 -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마스터플랜 내년초 윤곽 나온다 (joongdo.co.kr)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방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2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용봉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87년 |
1. 개요
서방천(瑞坊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1동 도동고개 밑쪽에서 발원하여 문흥IC 옆쪽 ~ 광주화물터미널 옆 ~ 동광주IC 옆 ~ 문흥상록아파트 옆 ~ 우산주공아파트 옆 ~ 용봉맨션 옆 ~ 전남대 광주캠퍼스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용봉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2km 이다.
또한. 신안교에서 광주천 합류지점까지 1.2㎞ 구간은 기존에 복개되었다가 1997년 다시 복개가 철거되고 복원되었고, 일부 구간이 무등경기장의 주차장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으며, 복개되지 않은 구간은 2012년에 지방하천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용봉로가 현재 복개된 서방천 구간의 위쪽을 지나가고, 전남대 정문 부근을 지나가는데, 복개되지 않았을 때에는 정문에 용봉교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하며,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게 된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2)
또한. 경양지천, 두암천을 비롯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3. 역사
서방천의 이름은 이 물길이 흘렀던 곳의 과거 지명인 서방면에서 유래했다. (4)
또한. 서방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87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현재는 복개된 구간 밑을 흐르면서 상류에서 신안교까지 흘러온 물은 신안교 밑에 있는 차집시설에 모였다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처리되고,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된 물은 다시 펌프를 통해 신안교 밑으로 보내져 광주천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하천의 유입,유출구조가 바뀌게 되었다. (5)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방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3)(4) 참고 백과 :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한성민. (2016). 용봉천 생태하천 복원사업. KDI 예비타당성조사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5) 서방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방천 - 나무위키 (namu.wiki), 서방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동계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5.54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82년)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1991년)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1997년) |
1. 개요
동계천(東溪川)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2동 동원사 위쪽 계곡 발원지에서 발원하여 동원사 뒤쪽 ~ 지산유원지 입구 ~ 지산아파트 앞 ~ 구 호남선 철길 앞쪽 ~ 광주중앙도서관 앞 ~ 전남여고 옆 ~ 그랜드센트럴아파트 옆 ~ 광주시민교회 옆을 거쳐 서구 양동 양동시장 옆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5.54km 이다.
동계천은 하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계곡의 일부 구간을 제외한 사실상 전 구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지산치과의원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82년애 복개되었고, 동원사 뒤쪽 ~ 지산치과의원 옆, 수창초 옆 ~ 양동시장 옆까지의 구간은 1991년에 복개되었으며, 수창초 옆 ~ 광주시민교회 옆까지의 구간은 1997년에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계천의 복개 구간 중 동계천로 구간과 상류,하류 쪽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도로가 하천 복개구간을 따라 개설되지 않고 불규칙적으로 개설되면서 현재는 동계천이 흘렀던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게 되었다.
3. 역사
동계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시절 까지의 기록에 대하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이를 찾기 어렵지만, 동계천 이름의 유래가 예전 광주읍성의 동쪽을 흐르는 개천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으로 보아 하천이 광주읍성의 해자로 기획되어 인위적인 물줄기가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현재 동계천이 복개된 곳인 동계천로 모습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과거 광주읍성의 동문 밖 일대는 땅이 질퍽했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 일대 사람들은 흔히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하였으며. 동계천과 가까운 곳에 경양방죽도 있었기 때문에 동계천은 경양방죽의 수원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동계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천변 양쪽으로 주택가가 밀집했었다.
그 후. 동계천은 복개 후 환경이 좋지 않고, 악취 문제가 가장 심할 뿐만 아니라 상당구간이 오염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환경단체나 광주혁신추진위원회(시청 시장직속기관) 등에서 생태하천 등으로 복원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구체적인 생태하천 복원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참고 자료 1: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2) 참고 자료 2: 하천과 문화 Vol8 No1_강이야기2.pdf (riverlove.or.kr)
(3) 동계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동계천 - 나무위키 (namu.wiki), 동계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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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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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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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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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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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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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용봉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8.61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서방천) |
복개 구간 |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1990년대 중반으로 추정)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1994 ~ 1996년) |
1. 개요
용봉천(龍鳳川)은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살레시오 중, 고 뒤쪽에서 발원하여 광주선우학교 옆쪽 복개 시작점 ~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 옆 ~ 월산어린이공원 앞 ~ 고려중, 고 옆 ~ 광주공고 옆 ~ 호남고속도로 굴다리 밑 ~ 용봉패션의거리 앞을 거쳐 신안동 신안교 뒤쪽 합수점에서 서방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8.61km 이다.
또한. 예전에 발원지에는 \\\\\\\\\\\\\\\'일곡저수지\\\\\\\\\\\\\\\'라는 저수지가 있었지만, 현재는 매립되어 예비군 훈련장으로 변화되어 있으며, 과거에 저수지였던 흔적은 없어졌지만 \\\\\\\\\\\\\\\'일곡제골\\\\\\\\\\\\\\\'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발원지 쪽 일부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각각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중반에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은 1994 ~ 1996년까지 복개되었다. (2)
또한. 현재 복개된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3. 역사
용봉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지만, 1990년대 중반에는 광주선우학교 옆쪽 ~ 북부경찰서 앞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94 ~ 1996년에는 북부경찰서 앞 ~ 신안교 뒤쪽까지의 구간이 복개되면서 용봉천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복개되었다. (2)
상류쪽에는 살레시오 중, 고등학교와 광주선우학교와 함께 일곡 벽산, 대림, 현대, 청솔아파트를 비롯한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게 되었으며, 중류와 하류 구간은 상당 수 구간이 현재의 설죽로로 변화되어 존재하게 되었다.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용봉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처: 역사문화자원 1000 > 역사문화 자원 1000 (gjstory.or.kr)
(1) 참고 백과 :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2) 출처: 준공표지석(신안교 교차로에 위치)
(3) 용봉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용봉천 - 나무위키 (namu.wiki), 용봉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극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9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광주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
1. 개요
극락천(군분천)極樂川(軍盆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봉선2동 아리랑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광주남부경찰서 옆 ~ 구 유안저수지 앞 ~ 라인광장,모아1단지 아파트 앞 ~ 백운교차로 뒤쪽 ~ 무등시장 앞 ~ 광주서석고 옆 ~ 중흥파크맨션 옆 ~ 광주종합터미널 앞 ~ 유덕중 앞을 거쳐 서구 치평동 무진교 밑쪽 합수점에서 광주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9km 이다.
또한. 극락천은 군분천(軍盆川)으로도 불렸고, 이는 조선시대에 현 광천동, 치평동, 쌍촌동, 화정동 일대를 관할했던 군분면(軍盆面)과 관련 있으며, 복개도로인 군분로의 이름도 이 하천을 복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복개되었고,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다. 또한. 1970년대에 직강화된 현재의 군분로 구간을 제외한 구간은 이전 그대로의 물길이 존재하였고, 이러한 이유로 현재의 주월동, 월산동, 화정동의 경계가 깔끔한 형태의 직선이 아니고 골목길을 따라 여러 번 굴곡이 많게 형성된 것은 예전에 극락천이 흘렀던 경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2)
3. 역사
과거 극락천이 복개되기 이전에는 현재의 유안근린공원이 있는 곳에 유안저수지가 있었고, 현재의 제일풍경채(구 남구청) 아파트가 있는 곳에 조봉저수지가 있었으며, : 주월동과 백운동 경계에는 건지보(乾地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가 위치한 곳 근처의 들을 \\\\\\\'건지봇들\\\\\\\'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화정동과 농성동 경계에는 보성보(寶城洑)가 있었고, 이러한 보를 보성 군수를 지냈던 정화(鄭和)가 축조한 데에서 보성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3)(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구문화원 문서를 참조 (4) 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극락천은 예전부터 본류를 비롯하여 크고 작은 여러 지류가 있었고, 주로 봉선동 제석산 기슭에 발원지가 있었으며, 본류로써 그 중 하나인 한태골은 광주남부경찰서 근방에서 용산동으로 이어지는 샛길인 아리랑고개 북서쪽에 있고, 한태골에서 흘러나온 물은 유안저수지에 모였다.
그리고 제석산 구름다리가 있는 고개에서는 다른 지류가 흘러나왔고 이러한 물길은 조봉저수지로 이어졌다. 또 다른 지류인 불로천은 대각사가 있는 골짜기인 부처골에서 발원했다.
지금의 광주은행사거리와 삼익사거리 근처에서 제석산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지류가 합쳐져 진다리로 흘렀고, 참고로 진들과 진다리는 백운광장 근방의 한 지역을 말하며, 이 일대는 지대가 낮은 것과 더불어 극락천 물 때문에 땅이 질퍽했고, 여기에서 질퍽한 들이라는 뜻의 진들, 진다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5) (자세한 내용은 광주드림 기사를 참조 (6) 하시기 바랍니다.)
진다리에서 합쳐진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다가 광복천 합류 이후 수박등(현재의 월산근린공원)과 짚봉산 사이의 저지대를 북서쪽으로 흘렀고, 광천동에 도달한 후에는 현 광주종합버스터미널 부지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광주천으로 합류했다. (7)
그 후. 극락천은 1970년대에 현재의 군분로 구간이 직강화 된 후, 1994년에 현재와 같이 복개되었고, (8) 그 밖에 여러 지류에 대한 복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어 정확한 복개 연도를 예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9)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동계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2)(3)(5)(7) 참고 백과 :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4) 참고 자료 : 정화 군수와 보성보 (gjsgcc.or.kr)
(6) 참고 기사 : ‘진다리’ 유래 아세요? < 광주 갈피갈피 < 핫클릭 < 기사본문 - 광주드림 (gjdream.com)
(8) 출처: 광주광역시 남구문화원. (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9) 극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극락천 - 나무위키 (namu.wiki), 극락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광복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3.15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남구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극락천) |
복개 구간 | 전 구간 복개 |
복개 년도 | 1994년 복개로 추정 |
1. 개요
극락천(光復川)은 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효덕초등학교 옆쪽에서 발원하여 밝은내과 옆 복개 시작점 ~ 대주1차 아파트 옆 ~ 삼성디지털프라자 건녀편 ~ 광복천 푸른길공원 안 ~ 장산초 옆 ~ 주월2동 행정복지센터 옆을 거쳐 주월2동 무등시장 옆 합수점에서 극락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3.15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모든 구간이 복개되었고, 광복촌이 조성된 1976년부터터 광복천이 합류하는 극락천이 복개를 완료한 시기인 1994년 사이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광복천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광주에 광복동이라는 지역이 없었음에도 광복천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가 아마도 하천이 있었던 곳 주위인 주월동의 현재의 광복마을길 일대에 1976년부터 독립애국지사를 위한 광복촌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이 광복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
광복천의 이름 유래 중 하나인 광복촌은 지난 1976년부터 정부에서 무주택 독립 유공자와 후손을 위해 주월동의 광복마을길 주변, 금당산 기슭의 선명학교와 옛 경전선 철도가 놓인 푸른길 공원 사이에 조성하였다. (2)
광복촌을 조성할 당시 국가에서는 광복촌 조성을 위해 넓은 땅이 필요했고, 상이용사촌이 있던 동구 소태동에 조성할 계획이었지만, 광복회 회원들의 반대로 당시 대부분 논과 밭이었던 주월동에 조성하게 되었다. (3)
광복촌에는 이태리 건물 형태의 고급 주택 12채가 각각 24평 규모로 지어졌고, 당시 주택 건설에는 200만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이 중 정부에서 50만원을 지원하고 나머지 100만원과 50만원은 각각 융자 및 자부담 몫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웠던 몇몇 독립 유공자들은 주택을 배정받고도 융자와 자부담 걱정으로 세를 놓거나 팔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4)
광복촌에 입주한 독립 유공자는 광복군으로 임시정부와 통신연락 활동을 펼친 최봉진, 광주학생 독립운동의 주역이었던 윤창하‧송동식을 비롯한 수 많은 유공자들이 근처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되며, 한말 의병장인 심남일, 조선독립 실현을 위해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한 이홍빈, 3‧1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김동훈을 비롯한 여러 독립유공자의 후손도 광복촌에서 함께 생활했으며, 윤창하 독립 유공자께서 살았던 주택이 광복촌에서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5)
또한. 광복천은 150m 정도의 제석산에서 발원하는 극락천과는 다르게 해발고도가 2배 정도인 금당산(304m)에서 발원하여 상대적으로 상류쪽 하천 선형이 뚜렷한 편이며, 중간부분은 애매한 구간이 많고, 예전부터 평소에 물이 흐르지 않는 하천으로 존재하였다.
그 밖에도 광복천은 흔적을 많이 감춘 극락천 상류와는 다르게 비교적으로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며, 하상경사는 산자락에 가까운 상류부를 제외하고는 그리 급하지 않기 때문에 극락천의 상류보다는 덜 가파른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광복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8) 참고 게시물 : 광주 광복천 답사기 1/9 (tistory.com)
(6) 참고 기사 : 광주 남구의 광복촌 마을을 아십니까? - 오늘경제 (startuptoday.co.kr)
(9) 광복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광복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58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영산강) |
복개 구간 |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복개 년도 | 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서창천(西倉川)은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월드컵동로 옆 ~ 풍암생활체육공원 옆 ~ 광주월드컵경기장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풍암저수지 밑 ~ 운리초등학교 옆 ~ 풍암지구IC 옆 ~ 호반리젠시빌 옆 ~ 광주세광교회 옆 ~ 벽진고가도로 밑을 거쳐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58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약 1.29km 정도)까지의 구간과 풍암호수공원 밑 ~ 광주세광교회 옆쪽(약 2.29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0년대 초반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서창천에 대한 일제강점기나 조선시대 이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195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하천 상류쪽에 풍암저수지를 축조된 것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부터 풍암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1999년에 현재와 같이 풍암호수공원으로 공원화되었다.(1)
그 후 2023년 6월부터 11월 현재까지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에 물을 공급하던 영산강의 취수장이 고장나면서 하천 수량이 눈에 뛰게 줄면서 약 5개월째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의 용수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창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 관련 백과 :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
(6) 참고 기사 : 영산강 취수장 5개월 째 중단…호수·하천 유지용수 공급 안 돼 (naver.com)
(2) 서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58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영산강) |
복개 구간 |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복개 년도 | 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서창천(西倉川)은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월드컵동로 옆 ~ 풍암생활체육공원 옆 ~ 광주월드컵경기장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풍암저수지 밑 ~ 운리초등학교 옆 ~ 풍암지구IC 옆 ~ 호반리젠시빌 옆 ~ 광주세광교회 옆 ~ 벽진고가도로 밑을 거쳐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58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약 1.29km 정도)까지의 구간과 풍암호수공원 밑 ~ 광주세광교회 옆쪽(약 2.29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0년대 초반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서창천에 대한 일제강점기나 조선시대 이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195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하천 상류쪽에 풍암저수지를 축조된 것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부터 풍암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1999년에 현재와 같이 풍암호수공원으로 공원화되었다.(1)
그 후 2023년 6월부터 11월 현재까지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에 물을 공급하던 영산강의 취수장이 고장나면서 하천 수량이 눈에 뛰게 줄면서 약 5개월째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의 용수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창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 관련 백과 :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
(6) 참고 기사 : 영산강 취수장 5개월 째 중단…호수·하천 유지용수 공급 안 돼 (naver.com)
(2) 서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58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영산강) |
복개 구간 |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복개 년도 | 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서창천(西倉川)은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월드컵동로 옆 ~ 풍암생활체육공원 옆 ~ 광주월드컵경기장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풍암저수지 밑 ~ 운리초등학교 옆 ~ 풍암지구IC 옆 ~ 호반리젠시빌 옆 ~ 광주세광교회 옆 ~ 벽진고가도로 밑을 거쳐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58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약 1.29km 정도)까지의 구간과 풍암호수공원 밑 ~ 광주세광교회 옆쪽(약 2.29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0년대 초반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서창천에 대한 일제강점기나 조선시대 이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195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하천 상류쪽에 풍암저수지를 축조된 것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부터 풍암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1999년에 현재와 같이 풍암호수공원으로 공원화되었다.(1)
그 후 2023년 6월부터 11월 현재까지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에 물을 공급하던 영산강의 취수장이 고장나면서 하천 수량이 눈에 뛰게 줄면서 약 5개월째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의 용수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창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 관련 백과 :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
(6) 참고 기사 : 영산강 취수장 5개월 째 중단…호수·하천 유지용수 공급 안 돼 (naver.com)
(2) 서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58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영산강) |
복개 구간 |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복개 년도 | 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서창천(西倉川)은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월드컵동로 옆 ~ 풍암생활체육공원 옆 ~ 광주월드컵경기장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풍암저수지 밑 ~ 운리초등학교 옆 ~ 풍암지구IC 옆 ~ 호반리젠시빌 옆 ~ 광주세광교회 옆 ~ 벽진고가도로 밑을 거쳐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58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약 1.29km 정도)까지의 구간과 풍암호수공원 밑 ~ 광주세광교회 옆쪽(약 2.29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0년대 초반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서창천에 대한 일제강점기나 조선시대 이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195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하천 상류쪽에 풍암저수지를 축조된 것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부터 풍암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1999년에 현재와 같이 풍암호수공원으로 공원화되었다.(1)
그 후 2023년 6월부터 11월 현재까지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에 물을 공급하던 영산강의 취수장이 고장나면서 하천 수량이 눈에 뛰게 줄면서 약 5개월째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의 용수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창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 관련 백과 :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
(6) 참고 기사 : 영산강 취수장 5개월 째 중단…호수·하천 유지용수 공급 안 돼 (naver.com)
(2) 서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서창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7.58km |
발원지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 발원지 |
하구 |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영산강) |
복개 구간 |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복개 년도 | 2000년대 초반 복개로 추정 |
1. 개요
서창천(西倉川)은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짚봉산 밑쪽에서 발원하여 월드컵동로 옆 ~ 풍암생활체육공원 옆 ~ 광주월드컵경기장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 ~ 풍암저수지 밑 ~ 운리초등학교 옆 ~ 풍암지구IC 옆 ~ 호반리젠시빌 옆 ~ 광주세광교회 옆 ~ 벽진고가도로 밑을 거쳐 서창동 서창둑 옆 합수점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7.58km 이다. (1)
2. 복개에 대한 정보
월드컵동로 옆 ~ 풍암호수공원 식물원 옆(약 1.29km 정도)까지의 구간과 풍암호수공원 밑 ~ 광주세광교회 옆쪽(약 2.29km 정도) 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2000년대 초반에 현재와 같이 복개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역사
서창천에 대한 일제강점기나 조선시대 이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지만, 1956년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하천 상류쪽에 풍암저수지를 축조된 것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부터 풍암동 일대가 개발되면서 1999년에 현재와 같이 풍암호수공원으로 공원화되었다.(1)
그 후 2023년 6월부터 11월 현재까지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에 물을 공급하던 영산강의 취수장이 고장나면서 하천 수량이 눈에 뛰게 줄면서 약 5개월째 서창천과 풍암저수지의 용수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2) (3)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서창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또한.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1) 관련 백과 :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
(6) 참고 기사 : 영산강 취수장 5개월 째 중단…호수·하천 유지용수 공급 안 돼 (naver.com)
(2) 서창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서창천 - 나무위키 (namu.wiki)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경양방죽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형태 | 인공 호수 |
면적 | 약 150,000㎡ 정도(1936년 1차 매립 이전) |
위치 |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일대 |
유입/유출 | 서방천의 경양지천의 여러 지류 물줄기들 - 경양방죽(유입) 경양방죽 - 서방천의 경양지천 ~ 서방천 ~ 광주(유출) |
매립 구간 | 1936년에 호수의 북,동,남쪽의 상당수 구간을 매립한 후 1968년에 나머지 구간이 매립되어 현재는 모든 구간 매립 |
매립 년도 | 1936년(1차 매립), 1968년(2차 매립) |
1. 개요
경양방죽(景陽防築)은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일대에 있었던 인공호수로 수심은 각각 1936년 1차 매립 이전에는 약 10m 정도였고, 1968년 2차 매립 이전에는 약 1~4m 정도였으며, 면적은 각각 1936년 1차 매립 이전에는 약 150,000㎡ 정도이고, 1968년 2차 매립 이전에는 약 60,000㎡ 정도였다.
경양방죽은 1440년 조선 세종 22년에 광주목사로 부임한 김방이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3년의 공사기간을 들여 완공했다는 설,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되었고 조선 시대에 보수했다는 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공호수이지만 상당히 역사가 오래된 호수라고 할 것이다. (1)
또한. 계림동에 있었던 학교법인 유은학원에 속한 학교(동성고, 광주여상, 동성중, 동성여중)들의 교가에 경양방죽이 \\\'경양호\\\'라는 표현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4개 학교 모두 가사는 똑같고 학교마다 중간 부분에 광주동성, 광주여상, 동성여중으로 바꿔서 부른다. (2)
2. 이 호수가 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것에 대한 정보
경양방죽은 1935년 당시 전라남도 도지사였던 야지마 스기조(矢島杉造)를 중심으로 매립 계획이 세워졌고, 이러한 계획은 \\\'일본건국기념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계림초등학교 뒤에 있었던 경호대라는 산을 헐고 일본인들의 거주구역을 만드는 계획이었다.
그 후 1936년에는 광주부는 공유수면 4만여 평의 매립을 허가하며, 이러한 허가 결정은 당시 급격히 증가하던 인구를 수용하고, 공유수면매립을 통하여 땅을 팔아 재원을 충당하려 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결정에 당시 광주부민들은 \\\"장차 광주가 대도시로 발전할 때를 대비해서 경관이 수려한 풍치지구로 보전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이에 반대해 저명한 인사였던 최흥종 목사를 위원장으로 하여 \\\'경양방죽 매립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조선총독부에 청원을 하는 등 반대운동을 벌였지만 총독부는 이를 묵살했으며 결국 경양방죽은 매립이 강행되었으며, 당시의 여론을 의식했는지 본래의 전면 매립하려고 하였던 계획에서 계획이 변경되어 1/3은 호수로 남게 되었고, 매립 이후 1940년부터는 2년간 매각이 진행되었고, 1941년에는 매립지에 부영주택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3)
8.15 광복 이후 광주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가운데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1950년대에 경양방죽은 상당히 늘어난 광주 인구로 인하여 심각하게 오염되어 저수지 기능을 상실했고 수질은 점점 악화되었다.
1966년, 광주시는 이와 같은 이유로 남은 경양방죽마저 매립을 결정했다.
태봉산을 헐어서 나오는 토사로 경양방죽을 매립했는데,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숨어있었다.
광주시는 시내의 중심도로인 금남로를 당시로선 파격적인 8차로로 확장하려고 했는데 정부는 광주같은 작은 도시에 왕복 8차로 도로가 필요하기나 하냐고 하면서 예산을 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돈이 필요해진 광주시는 태봉산을 헐어 그 토사의 일부를 팔고 경양방죽을 매립해 만든 계림동 신시가지를 분양해 그 돈으로 금남로 확장공사를 했으며, 이는 1968년에 이루어진 일이다. (4)
3. 역사
경양방죽은 1440년 조선 세종 22년에 광주목사로 부임한 김방이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3년의 공사기간을 들여 완공했다는 설, 또는 삼국시대에 축조되었고 조선 시대에 보수했다는 설이 있고, 당시 규모는 대략 15 헥타르, 수심은 10m에 달했고 규모로 볼 때 호남 지역 최대의 인공호수였으며, 경양방죽 안에는 두 개의 작은 섬이 있었고 호수의 주변으로는 수백년된 팽나무, 왕버드나무, 귀목나무 고목들이 만발했다고 한다.
또한. 경양방죽은 1940년대~5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시민들의 사랑받는 명소였고, 여름에는 피서객들이 모여들어 뱃놀이를 했으며, 겨울에는 얼어붙은 경양방죽 위에서 주로 썰매와 스케이트를 탔다고 한다.
그 후. 경양방죽은 앞서 설명한 바에 따라 1936년에 상당 수 구간이 매립되었고, 1968년에는 나머지 구간이 매립되면서 1969년에는 광주시청이 이 곳으로 이전하면서 지어졌고, 그 후 2004년에는 광주시청이 지금의 위치인 상무지구로 이전하면서 지금은 이곳에 홈플러스 계림점이 들어서게 되었다. (5) (6)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경양방죽과 관련하여 개발자가 미처 알지 못하였던 사실이나 기록이 있을 경우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1) (3) (4) (5) 경양방죽 - 나무위키 (namu.wiki)
(2) 광주동성고 교가 참조 - 학교소개 > 교가 (gen.hs.kr)
(6) 경양방죽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경양방죽 - 나무위키 (namu.wiki), 경양방죽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심곡천(부천)에 대한 주요 정보입니다.
길이 | 약 8.52km 정도 |
발원지 |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 발원지 |
하구 | 경기도 부천시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굴포천) |
복개 구간 |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약 3.0km 정도) |
복개 년도 |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1980년대로 추정)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1986년)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1990년대 초반으로 추정) |
1. 개요
심곡천(深谷川)은 경기도 부천시 소사본동 성주산 여우고개 밑에서 발원하여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 {쌍굴다리} ~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 ~ 부천소방서 앞 ~ 부천시청 옆을 거쳐 오정동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에서 굴포천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길이는 약 8.52km 정도이다.
또한. 심곡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천은 인천에도 있지만 이 두 하천은 역사상이나 기록상으로도 전혀 관련이 없는 각각의 다른 하천이라 할 것이다.
2. 복개에 대한 정보
현재 소중공원 옆쪽 ~ 소명여고 사거리 앞까지의 구간(약 3.0km 정도)과 기둥교회 건너편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약 4.52km 정도)이 복개되었고, 복개된 시기는 각각 소중공원 옆쪽 ~ 소사역 앞까지의 구간은 1980년대에 복개되었고, 소사역 앞 {쌍굴다리} ~ 부천소방서 앞까지의 구간은 1986년에 복개되었으며, 부천소방서 앞 ~ 지역난방공사 삼거리 옆 합수점까지의 구간은 1990년대 초반에 복개되었다.
또한. 예전에 복개구간으로 존재하였던 소명여고 사거리 앞 ~ 기둥교회 건너편(약 1.0km 정도)까지의 구간은 심곡천 고향의 강 복원사업으로 2017년 5월에 복개를 철거하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한 구간이다. (1) (2)
3. 역사
심곡천에 대한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고, 그 이후의 역사도 자세히 밝혀진 부분을 지금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 상황에서의 물길 복원의 가능성과 물길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이유,기대효과,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의견
심곡천에 대한 관련 역사나 자료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얼마 없어 어떠한 방향으로 생태하천으로 복원할 지를 구체적으로 특정짓기가 어려우므로 복원 방식이나 주제 등에 대하여 자신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제보하기 바랍니다.
현재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 2탄-사라진 물길 복원 방안 제시 및 서비스 이용후기 공모대회가 개최되고 있으므로, 이 곳에 대하여 나만의 참신한 복원 방안이 있다면 경진대회를 통하여 이를 제안해주시기 바랍니다.
국내 최초의 복개하천을 비롯한 사라진 물길을 주제로 하는 공모전 ‘사라진 물길을 담다’ 경진대회를 개최합니다. 복개하천, 사라진 못, 사라진 호수, 사라진 습지와 같은 사라진 물길을 더욱 더 효과적으로 기록하거나 이에 대한 참신한 복원방안을 기다립니다. 접수 기간은 2021.9.17(금) 12:00 ~ 10.20(월) 24:00 까지 이며, 대회는 1탄: (1). 사라진 물길의 경로 – 그 물길에 담겨있는 기록, 이야기 공모 부문, (2). 이미 기록된 사라진 물길에 대한 또 다른 내용 공모 부문과 경진대회 개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공식 경진대회 페이지(바로 가기)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1) 참고 기사: 부천시 심곡천, 생태하천으로 재탄생…5일부터 시민 개방 - 매일일보 (m-i.kr)
(2) 심곡천(부천)에 대한 기록,역사,이야기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관련 백과인 심곡천 (경기도)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에 게시된 내용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서비스는 국내 최초로 복개 하천, 사라진 못⋅호수⋅습지⋅샘 등 지금 사라진 물줄기들과 관련 기록⋅이야기들을 알기 쉽게 지도 형태로 표시하여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또한.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서비스의 운영자는 국토⋅환경⋅역사분야의 공식적인 기관도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나 공무원 또는 관련 직업 종사자도 아니며, 그 분야의 대학(원) 학과를 전공한 전공자도 아닙니다. 단지. 운영자는 지리와 수질환경,한국근현대사 분야에 관심이 풍부한 일반 국민으로 제 2의 그레타 툰베리를 꿈꾸며 개발 등으로 복개,매립되어 사라지게 된 복개하천, 못, 습지 등의 여러 물흐름을 발굴하여 이를 복원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여론과 관심을 고조시킬 목적으로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인 ‘사라진 물흐름을 찾아서’ 서비스를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운영자가 사라진 물길 찾기 지도를 정성껏 만든 것에 우리 모두 고마움을 느끼고 좋은 목적으로 활용하시기를 바라며, 앞으로 지구온난화를 비롯한 기후위기 등으로 환경분야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더 커질 수 있어 서비스를 더욱 더 소중하게 여기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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